2008년 2월 26일 화요일

No country for Old Men (2007) Joel & Ethan Coel


주연: Tommy Lee Jones, Javier Bardem, Josh Brolin, Woody Harrelson, Kelly Macdonald

이번에 오스카상 넷을 받은 작품. 상당한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코엔(코언?) 형제가 만든 영화로, 그들의 영화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2000)" 밖에 보지 못한 나로서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가 차지할 지위를 평가할 수는 없기에 ( '오 형제여..'에 대해서는 재담꾼이 만든 잘 짜여진 코미디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빌리기로 한다: "지난 1월 영국의 영화지 <엠파이어>는 코언 형제에 관한 특집을 마련하면서 그들의 지난 11편을 총정리했다. 그러면서 영화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코언 형제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에 대한 정리였다. 그들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것은 바로 비명(Scream!), 뚱보(Fattie!), 뚱보의 비명(Fattie screaming!), 구토(Vomit!), 기괴한 이름(Bizarre names), 이상한 헤어스타일(Crazy hair), 그리고 원(Round and round) 등이다. 아마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이나 그의 공격으로 인해 뚫리는 열쇠구멍 같은 원의 이미지 정도만이 이전과의 접점들일 것이다. 혹은 그가 연기하는 ‘쉬거’라는 이름도 ‘기괴한 이름’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밀러스 크로싱>(1990)을 제외하자면 코언 형제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나지만 전혀 비명을 들을 수 없다. 그러니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 영화의 이전작들에 늘 등장하던 비명이나 뚱보 같은 이른바 ‘잡다한’ 것들을 모두 걷어낸 간결한 영화다." '노인을...'은 유일하게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영화라 아무래도 이 형제의 전형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여지가 적었던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임: 그러고보니 파고(Fargo 1996)도 보았었는데 이 형제의 이름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이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깐느에선 감독상을 받기도. 잘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한데, 왠지 낡은 영화 같은 느낌. 1987년 미네소타가 배경인데 셋팅, 의상 등을 너무 잘 재현한 탓일까? 아니, 내 느낌은 갑갑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긴 이야기를 단편으로 축약해 놓은 것 같은 느낌. 지나치게 잘 짜여진 것 같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재현한 것이라 장난을 덜 친다고 누가 평했던데, 그 때문일까? 그렇다면 다른 영화를 더 봐야 이 형제들이 어떻게 노는지 파악할 수 있으려나? 짐작컨대 번뜩이는 기지는 보이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은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어쨌든 '노인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 형제의 가장 성공한 영화로 남을 것 같다. 다음 영화에선 CIA를 다룬다는데 과연 '노인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가 2005년에 쓴 동명소설이다 (소설이 출간되기도 전에 제작자 스콧 루딘이 판권을 샀고, 코엔 형제에게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배경은 1980년대 텍사스.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전쟁이 아주 폭력적인 국면으로 접어들던 시대'라고 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마약밀매 대금 2백만불을 놓고 텍사스와 멕시코를 넘나들며 쫓고 쫓기는 '싸나이'들의 세계... 주제는 한 마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인들의 푸념 18번, "요즘 젊은 것들... 쯧쯧... 세상이 점점 못살 곳이 되는 것 같아. 그 때가 좋았지... "

제목이 독특해 혹 특별한 유래가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네이버'에게 물어보았다.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아일랜드의 시인 Y.B.Yeats가 노년기인 1928년에 쓴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따온것이라고 한다. 시의 내용은 죽음에 관한 것이고, 이 구절 원래의 뜻은 '거기(비잔티움, 시에서 비잔티움은 영원함을 상징하는 상상의 세계)는 늙은이들이 살 곳이 못된다' 정도에 해당. 우리말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런 면에서 시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해석될 수 있도록 번역되었다. 허나 출전의 의미보다는 감독 혹은 작가가 어떤 의도에서 가져다 썼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지난 해 '밀양'의 한자를 'secret sunshine'으로 해석한 것이 옳은 지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했는데,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한다면 오히려 영화보는 재미를 스스로 줄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고보니 과감하게 제목을 포기한 그런 영화는 없는 것 같다. 그림에서 흔한 '무제'(no title)란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는 없지 않은가? 김기덕 감독이 최근 추상화 쪽으로 경도되는 것 같은데 '숨'보다 좀 더 추상으로 나가면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매우 잘 짜여져있다. 없어도 좋을 장면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줄거리가 탄탄하고 긴장감 있게 편집했다. 또 매우 절제된 사운드만 내보낸다. 배경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다심지어 죽는 장면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웃음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름 웃기는 멘트들이 가끔 등장하는데 그건 관객을 위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운드의 효과는 오히려 더 크다. 관객들이 세세한 소리에도 쉽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계단 밟는 소리, 산소통을 이용해 문 따는 소리, 자동차 소리 등등. 대사도 많은 편이 아니다. 쫓고 쫓기는 장면이 많으니 그럴수 밖에 없겠지만, 많지 않은 대사는 대개 함축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영화는 자칫 느슨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는데, 영화의 긴장을 유지시켜 주는 건 우선 스토리다. 쫓고 쫓기고, 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스릴러는 대개 그런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은 놀래키기도 한다. 죽어야 할 시점이 아닌데 주인공이 죽어버린다거나,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등장했던 인물도 힘한번 못쓰고 죽기도 하고, 뜬금없는 교통사고가 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도 참 싱겁다. 늙은 보안관이 알듯 모를 듯한 꿈얘기를 하고 있는 중에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이다. 분명한 결말을 보지도 못했고, 확실한 교훈을 얻지도, 듣지도 못한 관객들은 어리둥절 박수칠 타이밍도 갖지 못한 채 극장을 떠나도록 내몰린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 '즐길 수 있는 자들만 보시오. 누가 내 영화 보러 오라고 했소.'라는 감독의 배짱이 느껴지는 영화.

나이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안목은 있으나 젊은이들의 총질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늙은 보안관 에드역의 토미 리 존스.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며 전체 영화를 끌고 가는 역할. 원래 텍사스 출신이라더니 먼지 폴폴 날리는 배경과 잘 어울림. ('파고'의 여자 경찰 마지 군더슨 같은 분위기. 자기 역할은 제대로 잘 수행하지만 세상사에 시큰둥한... 어떤 의미에서 '블랙 코미디'적인...)

르웰린 모스역의 조시 브롤린.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며 아내와 함께 트레일러에 산다. 직업은, 글쎄, 사냥꾼? 표정변화가 거의 없으면서도 절제된 연기를 빼어나게 잘 함. (우리 스티븐 시갈 헹님의 그 '변화무쌍한 무표정연기'와는 급이 다름.ㅎㅎ)

안톤 쉬거(Anton Chigurh)역의 하비에르 바르뎀. 냉정한 킬러의 전형. 죽임에 대한 일관된 철학의 소유자. 하지만 그 일관성은 우연을 배제하지 않는다. 가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는데, 그 결정 방식은 동전던지기. 이 양반이 전신불수로 스페인 영화 Sea Inside의 주인공이었던 그 배우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아차렸다. 도무지 비슷해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그 영화에소는 몸도 불었고, 머리도 벗겨지고, 입까지 비뚜룸해서 실제로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이번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이 정도 핵심역할을 했으면 주연상을 주고도 남을 뻔했다. 이 영화에서 바르뎀이 주인공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더 이상 기괴할 수 없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나온다. 이 영화는 그 헤어스타일만으로도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유머라고는 도통 모를 것 같은 연쇄살인범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니. 스페인어 억양이 있다는데 난 전혀 catch하지 못했다. 한 번 더 보면 들리려나?

모스의 부인 칼라를 연기한 켈리 맥도널드양. 백치미라고 할까. Kalifornia (Dominic Sena, 1993)의 Juliette Lewis같은 분위기. 그녀에 대한 평을 베껴온다. "일견 다정다감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내의 모습이지만 남편의 잘못된 선택을 방관하였고 욕망에 편승했다.거액의 돈을 원했고 보안관의 도움을 거절하였다.안톤이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묻는다.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꼭 그렇게 안할 필요는 무엇인가?안톤은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영화 속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반드시 알야 할 필요는 또 무엇인가? 여하튼 르웰린, 칼라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직, 부정, 연민, 독함의 경계를 쉬 넘나드는... 정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 욕심에 충실하기도 하는... 오히려 안톤같은 킬러가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처음과 끝을 늙은 보안관 에드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혹은 꿈으로 마무리 하면서 일견 일관성을 유지하고 주제의식도 드러내는 것 같은데 - 그 장면의 해석에 집착하는 평이 많은 것 같다 - , 내가 보기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뜬금없는 죽음, 교통사고, 결말 등은 영화 혹은 소설을 꼭 그런 식으로 볼 필요는 또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어짜피 우리 인생도 그리 잘 짜여져있지는 않지 않은가? 주요소에서 생사를 가를 동전에 대해 안톤 왈 "나도 동전하고 똑같은 식으로 여기 온거야"라고 말한다. 인생은 그런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그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p.s.) 이 영화에 왜 이렇게 후한 점수를 주었는지 자문해 본다. 오스카상 타기 이미 수개월 전에 이 영화를 봤고, 또 그 전까지 다른 이들의 평론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이 크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내 기호가 크게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의 내면과 복잡한 삶을 사실적으로 잘 드러내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고,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 감독의 스타일이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나는 영화. 그래서 대부분의 김기덕 영화나 이명세의 'M' 에서 보여주려는 촌스러운 스타일은 사절. 또 실험적이지만 절제할 줄 알고, 너무 무거운 척하지 않는 영화를 선호한다. 타코르프스키 같은 '왠 철학자?' 스타일은 그래서 별로. 이미 영화 바깥 세상에서 충분히 공부하고 있거늘, 영화까지 공부하면서 보고 싶지는 않거든. 이런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내 취향에 맞았던 영화는 최근에 본 것으로 한정할 때 이 '노인을...' 외에 루마니아의 감독 Cristian Mungiu의 '4 months, 3 weeks & 2 days' (2007)나 '밀양'(2007)을 꼽을 수 있겠다.
한가지 더. 영화 포스터가 촌스럽기 그지없다. 영화 배경이 1980년이기 때문에 포스터까지 '고풍스럽게' 가져가는 건 좋은데, 얼마든지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 윗 사진은 널리 알려진 포스터보다 밝고 또 텍사스 풍경(이겠지?)도 보여서 조금 더 낫다. 포스터가 더 발랄했더라면 메마른 유머가 기본 정서인 이 영화에 훨씬 더 어울릴 뻔했다. (결국 다른 포스터를 찾아 바꿨다. 훨씬 낫다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