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출범할 이명박 정부의 행정부 조직개편을 두고 말이 많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조직개편은 의례히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더 시끄러운 이유는 그 개편 폭이 전례없이 넓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내 눈길을 끄는 내용 중 하나는 과학기술부(과기부)의 운명이다. 어떤 식으로든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 과기부는 노무현 정권에서 부총리급으로 격상되었던 호시절을 그리워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과기부 개편에 대한 대표적인 논점중 하나가 '과학'과 '기술'을 붙이느냐 떼느냐다. 처음 인수위에서 내세웠던 안은 과학, 기술을 분리해서, 과학 쪽은 축소된 교육부와 합쳐서 인재과학부로 만들고, 기술 쪽은 산업자원부가 흡수하여 지식경제부의 일부로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과학'과 '기술'이 너무 '친한' 것, 특히 기술에 종속되다시피한 과학의 신세를 늘 가련히 여기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좋게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논의되는 사정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과학의 미래를 심히 염려해야 할 상황에 가까운 것 같다. 과학이 포함된다고 하지만 교육부도 기능도 대폭 축소된다고 하니 그 둘의 연합체인 인재과학부의 서열이 '실용주의'의 모터로 떠오르는 지식경제부에 밀려도 한참 밀릴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럴 경우 이미 강고하게 자리잡은 기술 중심 패러다임이 오히려 강화되고, 김대중 정부 이후에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가까스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은 기초과학의 기반이 상실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이명박 정부는 기초학문의 산실인 대학을 자율화하려고 한다는데 그 명목으로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일 작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기초연구에 대한 정당성은 늘 기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주어졌는데 (한국식 과학의 사회적 계약), 이제 산업화 가능한 기술을 더 강조하다보면 그렇지 않아도 찬밥인 기초과학은 이제 차다 못해 얼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지... 일부 학자들 중 한국에서 유난히 '과학기술'이라는 서구에서는 쓰지 않는 새로운 단어를 쓴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나도 과학, 기술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전개된 원인 중 하나가 한국에서 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사회적 성찰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을 찬 방으로 내쫓고, 기술을 더 우대하는 식으로 과학, 기술을 나눈다면, 그런 경우 과학에 대한 성찰력 부족을 만회할 기회는 오히려 더 줄어드는 상황이 만들어 질 것이다. 대개 과학자들, 과학자 단체에서는 "과학과 기술은 함께 가야한다"는 논리로 과기부가 분리되는 것에 반대하는 모양인데, 그런 논리로 과학자의 입장을 변호할 수밖에 없는 한국 과학자들의 신세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과학의 과학성, 기술의 기술성, 이 둘의 경계가 어디서 나뉘는지에 대한 성찰의 부족은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해결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그 부족함의 정도가 더 깊어질 것 같다. (한 가지: '과학기술'이 우리만 쓰는 표현이라는 데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과학과 기술'을 편의상 '과' 없이 붙여 쓰는 것 아닌가? 영어 표현으로도 "science and technology" (약자로 "S & T")는 자주 등장한다. 독일어 "Wissenschaft und Technologie" (W &T) 도 마찬가지고. 다만 '과학기술'이라고 늘 부르다보면 과학, 기술을 굳이 나누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일이겠지만. 혹시 '과학기술'이라는 독립적인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로 가기로 한 모양이다. 언제 또 바뀔 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잘 된 일인가? (2월 20일, 양당 합의문 중: "교육과학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한다." )
p.s.) 과학, 기술을 섞어 쓰는 예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 우연히 발견한 사례가 있어서 덧붙인다.
사례 1) 신문 기사
"순수성과 객관성-. 과학기술.과학자는 독점적 지위를 늘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과학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자의 순수한 열정이자, 동시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18세기까지 서양에서 과학기술의 후원자는 계몽군주. 귀족이었다. 과학자는 궁궐.살롱을 드나들며 후원자와 교감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연구자의 열정이 좀 더 통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후 '과학기술이 돈이요, 무기'라는 의식이 퍼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후원자의 얼굴은 군주, 귀족에서 국가, 기업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라의 뭉칫돈은 그 사회 과학기술의 방향.속도.내용을 정한다.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대규모 과학기술 연구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조는 인용자)
이 짧은 인용문만 봐도 "정신사납다", 어지럽다.
사례 2) <조선의 프로페셔널>(2007, 안대희 지음) 중.
18세기 인물인 최천약을 '과학기술자'로 표현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란 '과학자'와 '기술자'를 총칭하는 표현아닌가? 그 시대 조선에 B. Latour가 사용한 개념'technoscience' 의 담지자라고 할 - Latour 스스로 이런 표현을 쓴 것 같진 않지만 - 'technoscientist'의 원형 모델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책을 읽지 않아서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굳이 현대적 개념을 가져다 쓰고 싶으면 어색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기술자'가 더 적합한 표현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다빈치를 과학기술자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은가?
과학, 기술의 개념사에 대해서 짧게라도 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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