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6일 수요일

세계사회론

교수신문 2006년 10월 01일

문화전파에서 국가역할 분석...'세계사회론' 주목
빌레펠트대에서 명박 받은 존 마이어 교수와 스탠포드학파


지난 5월 빌레펠트대는 미국 스탠포드대의 존 마이어(John W. Meyer) 교수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사회학자로서는 1980년 수상자인 노베르트 엘리아스 다음으로 두 번째다. 1978년부터 스탠포드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금까지 (공)저자로서 발표한 논문과 책이 2백 종이 넘을 정도로 왕성한 학문활동을 펼쳐왔는데, 특히 초기의 교육사회학과 조직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가 1977년 브라이언 로완(Brian Rowan)과 함께 써서 American Jounral of Sociology에 발표한 조직에 관한 논문은 그 저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며, 동시에 신제도주의적 조직사회학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연구했던 분야는 사실 세계사회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이어는 제자들과 함께 -- 이들을 흔히 ‘스탠포드학파’라고 부른다 -- 사회학에 "지구화’ 바람이 일기 훨씬 전인 70년대부터 세계적 제도, 문화의 등장과 그것이 세계적으로 관철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던 것이다.
마이어의 주요 관심사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사한 제도와 문화적 지향이 지역적 조건이 매우 다른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그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제도,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국가의 정체성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이런 제도·이념을 동틀어 ‘세계문화’(world culture/polity)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삽된 세계문화가 그것을 수용하는 국가에 무리 없이 관철되어 합리화를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파된 제도와 실천 사이의 어긋남이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고, 때로는 상충되는 이념이 수입되어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스탠포드학파는 지금까지 이런 세계문화의 전파, 수용의 메카니즘을 교육, 환경문제, 정치, 과학 등 다양한 사례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독일 사회과학계에서는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신제도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 마이어의 이론은 특히 조직과 세계화 연구에서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견해와 비교되면서 빈번하게 다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동료들과 함께 1987년에서 2000년 사이에 쓴 이론편에 해당하는 논문 일곱 편을 모은 ‘세계문화: 어떻게 서구의 원칙이 세계적으로 관철되는가’(Suhrkamp)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마이어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는 이 같은 최근 독일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레펠트대와 마이어의 세계사회론의 관계에는 더 특별한 것이 있는데, 지난 2000년 사회학부 내에 세워진 ‘세계사회 연구소’가 마이어 이론에 비교할만한 독일 버전 세계사회론의 중심지라는 점에서다. 이 연구소가 지향하는 연구의 이론적 뿌리는 니클라스 루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이어처럼 루만 역시 세계사회 테제를 이미 1971년에 발표한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 이를 더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데 이는 70~80년대에는 그가 이론작업을 위해 수용할 수 있는 경험적 연구나 문헌들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한다(R. Stichweh).
루만의 정의에 따르면 사회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합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지구적으로 연결 가능한 이 시대에 사회는 세계사회일 수밖에 없다. 세계사회 바깥에 다른 사회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사회는 공유된 가치, 민족-인종 등 집합적 정체성, 법적 헌법적 토대 등으로 통합된 공동체가 아니다. 세계사회의 통일성은 내적 분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데, 이 내적 분화는 원칙은 일차적으로 기능적이다. 하지만 정치, 법, 예술, 경제, 과학 등의 기능체계들의 분화 결과가 곧 세계사회의 성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둘은 다른 게 아닌 것이다. 이 기능체계들을 이루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영토적 구분은 원칙적으로 의미가 없지만, 정치체계의 경우에는 -- 법도 마찬가지 -- 2차적으로 국가 단위로 분화되어있다고 본다.
루만의 세계사회론에서 국가는 여러 기능 체계를 영토 안에 포괄하는 지역적 단위가 아니라 다만 세계정치체계의 기능을 지역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에 에 맞게 수행할 수 있도록 분화된 부분체계인 것이다. 이런 루만의 국가 이해는 마이어의 이론과 유사한 점이 있다. 두 이론에서 세계사회와 국가는 서로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세계사회라는 창발적 질서 속의 행위자로 등장한다. 다만 국가와 관련해서 루만의 관심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세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자율적인 다른 기능체계들과의 관계 속에서 국가가 어떤 기능, 과제를 수행 하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고, 마이어는 세계문화 확산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확인하는 데 있다. 기능적 분석과 문화적, 이념적 분석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데, 경험적 분석을 위해서는 두 이론을 보완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회연구소’는 지난 해 ‘세계사회: 이론적 접근과 경험적 문제들’(Lucius & Lucius, 502면)이라는 묵직한 논문 모음집을 펴냈는데, 그 속에서는 두 세계사회론의 흔적이 모두 발견된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우선 여러 세계사회 개념과 다양한 이론적 이슈를 소개하는 논문들이 실려 있고, 정치, 특허, 스포츠, 무역, 네트워크, 초국가적 헌법 등 다양한 세계사회 현상에 대한 논문들이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은 세계사회에서 국가, 유럽지역의 의미, 지역 간 비교에 대한 논문들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90년대 이후 주춤하던 지구화 논의가 독일에서는 마이어, 루만 등의 이론적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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