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귀속(歸屬)지위

며칠 전 집 근처 서점에서 겪은 일. 책을 주문하면서 내 주소, 이름 따위를 알려줘야 했다. 이름을 보던 주인장, 어디 정씨냐고 묻는다. "나주 정씬데요"라는 내 대답에, 그 양반 왈 "예, 저도 정씨라서요...". "아 그러세요..."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집에 돌아온 후 그 상황을 '복기'(復棋/復碁?)해 볼수록 뭔가 찜찜했는데 결국 그 원인을 발견했다. 그 양반이 내 본관(本貫)을 물어봤으니 나도 물어봐 주는 게 예의바른 행동이라고 기대되진 않았을지...

그런데 어쩌나... 난 그 양반이 같은 본, 심지어 8촌 아저씨 뻘이 된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반가웠을 것 같지 않고, 그런 정보 자체가 전혀 궁금하지가 않은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몇 년 전 에피소드 하나...

한국에서 독일 기업을 방문한 일행 (세 명) 통역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호텔에서 처음 대면한 이후, 그 양반들이 이것 저것 묻기 시작. 독일 땅에서 유학생을 한 명 만났는데 그 사람을 과연 어떤 카데고리에 집어넣어야 할 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그들이 '독일 유학생'이란 카데고리는 가지고 있을 리는 없을테니... 변죽을 울리는 Q/A 시간이 지나고, 알고 싶어서 입 안이 간질간질 하던 질문을 던진다.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내 답을 들은 그들의 표정에서 난 심지어 '회심의 미소' 비슷한 것을 읽었다. 이제서야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겠다는 안도하는 분위기... 재미있게도 일행 중 한 명이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그 정보가 내게 좀 더 특별한 의미가 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보인 반응은 며칠 전 서점에서와 비슷했다. '아 그러세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가 오히려 반대 입장에 있었던 기억도 있다. 디플롬 과정에서 이행해야 할 '실습'(Praktikum)을 위해 '참여연대'에 '다니던' 시절. 오며 가며 상근 간사들과 인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에 대해 어느 누군가가 '저 분도 독일에서 공부하셨는데'라고 하는 것.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 '독일 출신'에게 가서 '아, 독일에서 공부하셨어요. 저는 지금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비슷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 양반 반응이 참 서늘했는데...한 마디로 '그런 것 좀 그만 따지죠'. '어디 참여연대까지 와서 연고를 좇느냐'는 그런 반응으로 이해했다. 그 상황에선 '그 사람 참 까칠하네. 뭘 저렇게까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런 것'을 덜 따지게 된다. 여기서 '그런 것'을 사회학 개념으로는 '귀속지위'라고 통칭할 수 있겠다.

(...) 사회학적 성찰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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