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예능인-지식인

'예능'은 매우 독특한 카테고리다. 텔레비전 방송국 부서로 '예능국'은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부서로는 '드라마국', '보도(제작)국', '편성국', '시사교양국' 등). 하지만 그 예능국은 드라마, 뉴스를 제외한 다른 방송 프로그램, 특히 개그, 코미디, 가요 등 각종 '쇼'에 대한 것이었다. '예능'이 하나의 독립된 방송 장르처럼 사용된 역사는 - 내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 그리 길지 않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주말 버라이어티쇼'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아마 시초가 아닐까? '버라이어티', 그러니까 여러 장르가 섞였다는... 언제부터인지 드라마도, 개그도 아니면서 여러 분야 출신 연예인들이 나와서 '토크'를 하거나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방송거리'을 만들어 내는 - constructed reality - 그런 프로그램에 '예능'이란 표현을 붙이게 되었다. 현재 한국 텔레비전 방송은 '드라마'와 '예능'이 양분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학계에서도 학제간 연구, 학문간 융합, 통섭을 강조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혼성모방' 어쩌고 하더니 텔레비젼에서도 장르 간 혼성이 대세인 모양이다. 사실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입심'이다. 유머, 재치의 향연장인데 정말이지 그곳에서 살아 남는 사람들의 '예능 본능' 혹은 내공에 놀랄 때가 있다 (거기에다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자막, CG등을 덧붙이는 '작가', PD들의 내공 또한 대단하다. 특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의... 작가, PD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는 것도 자주 관찰된다). 한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남자건 여자건 많은 말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어쨌든 입담 좋은 사람들은 '고향' 장르에서는 시원찮아도 예능에서 탁월함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출신 분야에서 시원찮다는 것 자체가 입담 소재가 된다. 그래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가 '컨츄리 꼬꼬'의 멤버 탁재훈, 신정환 (연예인들의 '어두운' 과거도 소재거리다. 연예인 부부들끼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그런 풍토를 두고 너무 '험악해졌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연예인들이 사적,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것, 그건 시대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른 바 지식인들 중에서도 '예능'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미 나름 그건 계보가 있다. 왜 TV에 단골로 출연하던 박사님들, 교수님들 있잖은가. 조경철 박사 (천문학), 김정흠 교수 (물리학), 조문부 (새 박사), 하재봉 (영화, 연예?)... 허나 그들은 그들의 전문분야를 끝까지 안고 간다는 점에서 '예능인'이라고 얘기하기 힘들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쪽에 가장 가까이 간 인물로 '진중권' '김용옥'씨 정도를 꼽을 수 있을텐데... 아무리 그 진,김 선생이라고 하더라도 - 예를 들어 - '라디오스타'에 한 자리 차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식인들은 그 지식인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예능'에 끼워주진 않는다 (왕년 씨름선수였던 김만기 교수가 보이기는 하고 교수임이 대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나 씨름선수로서 정체성이 더 강한 경우다).
여하튼... 진중권씨가 어떤 강연에서 자신을 대중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춘 지식인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서, 그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다 여기에 이르렀다. 진 선생이 얘기한 내용을 그래돌 옮기면...

나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나는 본래 의미의 지식인보다는 일종의 아이돌로 소비된다.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왔다. 옛날 지식인처럼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귀염둥이’다(웃음). 자기 대신 게임을 해서 그를 위해 싸우는 ‘캐릭터’가 된 거다. 내가 ‘진화한 먹물’인 셈이다. 독백형·지사형·선지자형의 전통 먹물은 씨도 안 먹히고, 지금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을 보면 철저하게 대화 구조로 풀어낸다. 저도 별명이 '횽아'다. 대중이 "중권 횽아를 괴롭히지 마라" 해버린다(웃음).

그 밖에 이 기사에서 하고 있는 얘기는 그럴듯하다. '그럴듯하다'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붕붕 뜨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의외로 쉽다. 그리고 덜 위험하다. 대개 현재 발언이 미래에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현재적 의미가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자극을 주는, 혹은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그런 내용이 있는 더러 있다.

ps) 진선생의 얘긴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에 대한 기사, 발언을 읽거나, 접해 들은 뒤에 종종 찜찜함 기분을 갖곤 하는데, 불쑥 불쑥 던지는 큰 얘기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에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런 논리적 일관성 부족을 현란한 언사로 덮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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