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만들어진... 상상된... 구성된... ' - 발견' '-탄생'

"만들어진 우울증" (크리스토퍼 레인, 한겨레출판)이란 책이 나왔나 보다. '만들어진...' 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표현인 모양이다. 짐작은 했지만 역시 원제는 뉘앙스가 다르다. "Shyness: How Normal Behavior Became a Sickness". 지난 해엔간 출간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원제도 'God Delusion'이다. '만들어진...' 외에 수 년전부터 비슷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 책제목으로 자주 등장한다. 민족주의 연구 쪽에서도,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는 원제가 'Imagined Communities',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은 "The Invention of Tradition".

철학, 사회이론 쪽에서는 '사회적, 문화적 구성..'이라는 표현이 수십년 동안 지배적이다. 몇 전 년에 출간된 "The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라는 광우병 연구서 얘기를 들으면서, 흠, 이젠 좀 진부한 표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을 정도로. "Ian Hacking은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a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이라는 책에서 서구학계에서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이라는 말이 남용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정확히 무엇이 구성되었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Hacking은 또한 건축적 메타포인 사회적 구성construction이라는 말이 얼마나 마구 쓰이는지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당연한 대상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쓴다던가, 아니면 구성되었다는 말을 쓰기 힘들 정도의 분석을 내놓으면서 건축적 메타포인 사회적 구성이라는 말을 끌어다 쓰는 것을 지적한다. (...) Hacking과 같은 학자는 '사회적 구성'이라는 말이 남용된다고 개탄을 하는데, 한국에는 일견 그런 거북하고 어려운 말을 사용한 책 제목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신 재미있게도 한국에서는 최근에 '탄생'이라는 메타포가 많이 쓰이고 있다.."

방금 이 구절을 인용한 인터넷 사이트는 고맙게도 '-의 탄생'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책 이름을 모아 놓았다. 그 양반 추적에 따르면 국내서 중에서는 이진경의 <근대적 시. 공간의 탄생> (1997)이 선구적인 모양이다. 올 해 나온 '번역의 탄생'(이희재)가 있고. 서구학자 중에서는 푸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예컨대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푸코) [원제는 The Birth of the Clinic: An Archaeology of Medical Perception/ 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혹음 '임상의학의 탄생'. 이진경과 푸코는 '친하니까' 푸코 영향이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구성주의, 푸코류 포스트모던 대략 그런 전통에서 쓰기 시작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윗 사이트에서는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탄생'을 알려준다. 바로 니체의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oedie)! 포스트모던 사상의 선구자로 니체를 꼽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연만은 아닐 지도...
'-탄생'의 기원을 아날학파에게서 찾는 이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탄생'의 개념이야말로 아날 학파와 심성사의 방법론을 대표하는 표제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푸코가 '탄생'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전면에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아날 학파의 '배경'을 성공적으로 전유하고 매력적으로 자기화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으로서의 역사, 제도로서의 역사가 아닌 하나의 개념과 그에 따르는 심성으로서의 역사, '탄생'의 개념은 바로 이러한 역사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훌륭한 키워드인 것. '
그 밖에 '탄생'을 달고 있는 책들로... '연옥의 탄생'(2000), '아동의 탄생' (2003),'개인의 탄생'(2006),원제도 'Die Entdeckung des Individuums'1997), '생각의 탄생' (2007)(원제는 'Spark of Genius' 1999), '젊음의 탄생' (이어령 2009).
'발견'은 '낭독의 발견' (KBS 1TV).
그 기원이 아날학파든, 푸코든, 아니면 니체든, 이 같은 '구성주의'적 제목달기가 한국에 유행하고 있다는 건 한국 지성사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증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변화의 내용과 원인이 과연 무엇일지, 그것을 알아내는 건 분명히 재미있는 지식사회학적 과제다. [한 가지 추측은 이런 변화가 '한국 근대성/현대성의 특성, 기원 등에 대한 관심 증가와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것. 내가 요즘 접할 수 있는 종이신문인 '조선일보'에서도 '100년전 우리는'이란 제목의 연재물에서 20세기초 한반도 풍경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한 가지 추측은 한국사회 매스미디어, 지성계, 혹은 공공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는 인식론이 바뀌고 있다는 것. 리얼리즘에서 구성주의로...]

조금 다른 맥락에서... 최근 한국 민족주의 연구를 추적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인식 역시 놀라울 정도로 유연해졌음을 발견하고 있다. 딛고 서 있는 토대가 여전히 취약해서인지 '새 것'을 선호하고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참으로 역동적이고 용감한 (... )다 [이 괄호 안에 어떤 표현을 넣을 지 사회학도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민족? 국민? 어떤 집단에 이름을 붙이음로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 쉽지 않다. 아는 것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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