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는 근대성이다. 사회 변화, 시대의 흐름을 높은 고도 심지어 구름 위에서 내려다 보려면 '근대성' 이란 단어를 피하기 힘들다 (물론 '근대' '근대성' '모더니티' 같은 개념을 쓰지 않고서 역사학, 사회이론 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얘기다). 초기 사회학자들이 '근대성' 혹은 '근대'의 등장을 설명하려 했다면, 20세기말부터 사회학자들은 이 근대성/근대의 변환을 설명하고 있다. 전근대-근대-후기-(혹은 탈-) 근대!! 이런 시대 구분, 사회 성격 구분이 너무 '도식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폐기'하자는 주장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건 '탈근대'적 현상이라고 가볍게 이해해주시면 된다.
근대성을 추상화해서 역사적으로 유럽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는 multiple modernities 주장은 비서구인 관점에서 볼 때 위로는 될지언정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그냥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인정해주자. 물론 그 과정 자체는 이미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유럽이 진공상태 혹은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기에... 그건 굳이 걔네들이 잘 나서가 아니라 우연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우연... 그러니 너무 주눅 들 필요도 없고, 자존심에 상처받은 것 표내면서 '오버 리액션'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그 근대는 '속성상' 특수적이기 보단 일반적, 배제적이기 보단 포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양한 변이, 변형은 근대에 원래부터 프로그램되어있었던 것이다. 서구가 근대의 오리지날이고 비서구는 서구를 좇아가고 (근대화) 거기에 성공하는 나라들은 다 비슷해진다는 수렴론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났다. 서구식 근대가 있었던 것이고, 서구란 것도 그 내부를 살펴보니 다양한 변이들이 발견되고 있고, 비서구에서는 또 그 나름대로 다양한 근대 버전이 관찰되는 것이고... 그러니 근대의 다양성, 변이는 기준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분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지만 그래도 '근대'라는 상위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지, 그게 핵심적이 논쟁점이다. 난 그런 게 있다고 보는 것이고... 그런 '근대'가 있다고 상정하는 입장도 또 나뉜다. 그 '근대'가 생명력을 다해서 '탈근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입장과 '근대'의 핵심적 특징은 지속으로 관찰되고 있다는 입장으로.
여기에서 단일한 근대, 근대의 지역적 변이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근대'가 객관적 실체로 물건처럼 관찰되는 대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근대는 구성물이다. 모든 사회적인 것이 그러하듯이... 한국의 근대성을 유적 발굴하듯이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 한국도 근대라는 틀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 그렇다고 온전히 우연도 아니지만... -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성이라는 OS로 세계가 포맷되었고, 이제 그 이후론 좋건 싫건 간에 일단 근대성이라는 OS로 부팅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다른 OS를 깔 수만 있다면 우린 전혀 다른 세계사를 쓸 수 있다는 말씀...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민주주의' '인권' '자아실현' '화폐경제' 같은 근대적 결과물 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
한국적인 것 -> 탈근대? (이어령, 김지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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