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4일 월요일

"흥미롭게도 임재범 신드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은 '나는 가수다'를 서바이벌이라는 냉혹한 게임의 법칙에 맡겨두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쟁의 조건에서 처절하게 자신을 불사르는 고통의 스펙터클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스펙터클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윤리에 대한 대리물이라고 하겠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현실에서 강제되고 있는 경쟁구도를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로 이해한다. 이 세계에서 이들은 자기 자신의 과잉을 드러낼 수가 없다. 이 과잉에 대한 억압이 곧 결핍을 낳는다.

결핍은 없는 것이라기보다 너무 많아서 강제로 억눌러놓은 것이다. 임재범이라는 과잉의 존재는 대중에게 ‘돌아온 탕아’라는 종교적 형상의 파토스를 각인시킨다. 이 파토스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탈권위적 카리스마이다. 카리스마는 카리스마이되 가르치거나 명령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한 것이다. 임재범에 대한 동일시는 이 때문에 일어난다. ‘고고한 천상’에 노닐던 예술가가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전도된 영웅서사에 한국 사회는 쉽게 감동을 받는다.

김종서를 비롯해서 김태원에 이르기까지 이런 영웅서사를 만들어온 이들은 익히 존재했다. 과거에 청춘스타였던 노주현이나 한진희 같은 배우들이 코믹연기를 펼치면서 ‘망가지는 모습’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주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반감이 상존한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이지아-서태지 소송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이택광 블로그에서)


"고통의 스펙터클..." "임재범 = 돌아온 탕아" (가르치거나 명령하지 않고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모두 설득력있는 설명인 것 같다. 세 가지로 구분해 보자.
(1) 일단 성공했거나 전문가여야 한다. 전문가적 카리스마... (사회적 지위)
(2) 그 사람은 극적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필요하면 각색해서라도... 고통, 극복...),
(3) 그 사람은 대중에게 친근해야 한다. 너무 전문가인 척하면 안된다.
대중시대에 주목받고 대중적으로 성공하려면 이 세가지를 갖춰야 한다. '나가수' 바깥에도 널려 있다.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개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고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을 갖추지 못했고, - 그 때문에 - (2)를 더 극적으로 만들지 못했던 대표적 정치인이 이회창씨다. 그 밖에 황우석씨를 들 수 있고... 또 이건 굳이 한국 상황에만 해당하진 않는다. 오바마는 또 어떤가...
대중, 대중문화, 대중적 영웅이 막 만들어지던 시절에 - 히틀러? - 영웅은 너무 대중적이어선 안되었다. 신비주의... 없으면 오히려 만들어야 했다. 대중의 기대, 대중문화의 성격이 바뀐 것. 그저 수동적으로 소비만 하기엔 오히려 신비적 영웅이 낫다. 적극적 소비의 시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네트워크 지식사회에선 신비주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예: 인터넷의 신상털기). 괜히 아닌 척 했다가 창피당하기 십상. 전문가가 전문가적임을 주장할 비장의 카드가 줄어든다. 조금만 노력하면 대개 갖출 수 있다. 접근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열려있다. (하다못해 - 접속수가 적을 순 있겠지만 - 유투브를 통해서 공개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 발 앞서가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적절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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