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9일 금요일


"...파버카스텔의 만년필 뚜껑은 무척 무겁다. 다른 만년필처럼 뚜껑을 뒤쪽에 끼고 쓰기 어렵다.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뚜껑이 가벼우면 파버카스텔 만년필이 아니란다. 뚜껑을 뒤에 껴서 쓰는 만년필은 폼이 안 나기 때문이란다. 불편해야 고급이라는 거다..." (김정운 '남자의 물건'에서)

꼭 그래야 폼이 나는 건지, 더 고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특징에 그런 이야기가 얽혀 있을 줄이야...
언제부터인지 소설 읽기가 힘들다. 아니 읽어보려 해도 읽어내기가 힘들다. 소설의 느린 흐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애 느리거나 아니면 빠르거나 해야 눈에 들어 오는 것 같다. 아애 느린 쪽은... 詩나 그림같은... 머리 속으로 그려 볼 수 있는...  아니면 아주 짧은... 단상... 정곡을 찌르는 기가 막힌 표현들이 언제부터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어적, 역설적 표현들... 빠르다는 것은... 맛있는 정보의 전달이 쉽게 잘 되는... 소설처럼 산문적 표현의 힘을 빌지 않고 바로 내지르는... 김용옥, 진중권, 김정운의 글을 그래서 좋아한다. 굳이 소설을 읽는다면... 아마 호흡이 빠른 SF나 스릴러, 추리 쪽이 내 취향일 것이다. 그 반대 쪽에 감성적 에세이나 한껏 멋을 부린 느린 소설이  있고...

2012년 6월 28일 목요일

"비도덕적 인간과 도덕적 사회"

물론 이는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를 비튼 표현이다. 니버의 주장의 핵심은 그가 서문에서 요약한 대로..

"개인의 도덕적-사회적 행위는 사회 집단의 도덕적-사회적 행위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 집단의 도덕이 이처럼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는... " 이 구분을 통해서 니버는 "순전히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 영역들"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인간 사회의 정의를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는 정치가 꼭 필요"함을 주장한다. 개인 윤리 차원에 집중해서는 사회 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란 억압의 수단일 뿐이므로 소멸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 국가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보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미국에선 국가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꽤 진보적 입장이었을 것이다.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연애에서 신혼까지...그 기간은 아름답다. 아니... '알흠답다'. 참으로... 모두...눈을 덮고 있는 '꽁깍지'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수상 등 새로운 국정 책임자가 권좌에 오르면 이후 한동안 언론이 좀 봐준다. 정치인, 행정부의 부정, 잘못을 까발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언론들도 말이다. 이를 허니문 기간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에 나쁜 관계로 출발할 필요 없는 공적인 만남... 예를 들어, 같은 조직 내에서... 물론 처음 그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그러나 그건 매우 짧은 순간이고... 이내 그 사람에 대한 훨씬 더 다양한 정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보의 생성과 유통 정보는 매우 복잡하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이는 구성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frame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정보에 근거해서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다. 고쳐지고, 또 새로운 판단이 내려지고, 또... 부정적 판단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같은 부서원이나 친한 사람들에겐 호감인데, 좀 무뚝뚝한 탓인지, 교류가 많지 않은 사람들에겐 비호감으로 비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드물게 모든 사람에게 두루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말... 드물다.
결론은... 뭐... 뻔하다. 호감을 주는 요소를 강화하고, 비호감을 주는 요소는 없애거나 개선하라! 타인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이면 호감형 인간이 좋지 않을가? 자주 볼 일 없어도 보면 반갑고 좋은... 스스로 그런 인간형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암... 
각국 장애인 관련 제도, 정책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는 점들이 많다. 특히 소위 신자유주의의 천국이라고 이야기하는 영국과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정책이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직접적으로 장애인 차별이나 권리를 보호하는 법, 정책 뿐 아니라 인권, 차별금지 등 보편적 접근 역시 발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정책이나 제도가 신자유주의와 본질적으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각종 소수자, 약자의 권리 보장은 자유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한다. 이는 복지제도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이들이 빈곤상태에 이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먹여살려서라도 그들의 소비를 이끌어내야 비로소 자본주의는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 등 소수자 보호 정책과 복지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은 이런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비로소 새세상, 새누리가 열린다고 주장한다. 복지제도나 인권 등 윤리는 그저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너무도 이상적인 주장이라서 실현가능성이 적어보이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너무도 황당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곳이라서... 미래 바람직한 변화의 모습에 대한 기대 수준을 상당히... 매우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인권, 복지라도 제대로 적용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후 같은... 꿈은 꾸되... 눈은 좀 낮은 쪽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월요일엔 여행 후유증으로, 어젠 병원 다녀오고 점심 거하게 먹고 새텔레비전 설치하고 용돈 벌이용 원고를 쓰느라, 오늘 오전엔 어제 못다 쓴 원고를 마저 쓰느라 보냈다. 내 공부와 관련해서 지금 상태는 지난 목요일 저녁과 같다고 봐도 좋을듯. 리듬을 다시 잡기가... 이렇게 힘들다. 8월 경에 기대했던 일이 하나 있는데... 점심 때 확인해 보니... 그것도 물 건너 갔다. 한편으로 섭섭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금 내게 남은 과제 그리고 학술대회에서 느낀 그 느낌을 그대로 쭉 밀고 가는 길만 남은 셈이라 오히려 홀가분하기도 하다. 배수의 진을 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이.. 아니 조그마한 틈이라도 없는지 찾기 마련이다. 그럴 여지는... 기가 막히게도 잘 찾아낸다. 지금 내겐... 고맙게도... 그럴 구멍, 틈이 거의... 거의... 보이질 않는다. 잘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한 길... 한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학술대회 참석 등으로 평소와 다른 리듬으로 주말을 보낸 후 맞은 월요일의 사무실. 학술대회를 계기로 만난 이들과 함께 얘기 나누면서 얻은 넓은 시각이 '급'좁아지고, 자유로운 정신 등이 '급'냉각되는 곳이다. 비록 실내온도는 30도에 육박해서 뜨거운 열기가 지배하지만... 어서 빨리 학문과 교육의 세계로 뛰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어서...

2012년 6월 21일 목요일

사귐 혹은 관계맺기의 출발은 공감대찾기다. 공감대는 과거 혹은 이미 지니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미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찌되었건 공감대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애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게으름보다는 백 반 낫다.
오늘도 호랑이는 고양이 짓을 할 뿐이고... (2:7로 지다)
모처럼 참석한 회식자리에선 ... 공감하기 힘든, 혹은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사실... '공감'의 전제는 '관심'이다. 특히 사람... 삶에 대한 관심...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나... 그저 일화에서 일화, 과거의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어질 뿐인 이야기가 내 관심과 흥미를 끌지 못할 뿐...
다시... mundfaul...

mundfaul...

얼마전 '힐링캠프'에서 작가 박범신 선생이 들려 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홀로 걷되 함께 가고, 함께 걷되 홀로 가기... 여럿이 등산길을 나서면... 혼자 걷는다. 많은 얘기 나누지 않고 가끔씩 어때? 괜찮아? 정도로 격려하면서... 딱 그 정도가 좋지 않은가? 
말이 너무 많다. 정보가 너무 많다. 지식이 너무 많다. 흰소리들이 너무 많다.
침묵을 견뎌하질 못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소음이라도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게 필요할 때가 있지. 하지만... 역시 문제는 어느 정도냐는 것...
분위기,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못하다면... 차라리 말이 적은 편이 나은 것 같다. mundfaul... 
그런 성향 탓인지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이 좋다. 물론 그는 분명히 다른 맥락에서 한 얘기일 테지만...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푹푹 찌는 날씨때문에
겨울을 그리워하다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나타샤... 
찾아보니 정확한 제목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5년 발표했다고... 아니 정확하겐 그의 연인 자야(나타샤)와 이별하며 전해 준 시라고...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 타고 눈이 푹푹 나리는 산골로 들어 가고 싶은 날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a senior writer at Newsweek and The Daily Beast"인  Tony Dokoupil이란 양반이 쓴 "Zombie Apocalypse? Could the Internet bring on a face-eating epidemic?"란 글을 읽었다  (잡지 팔아먹으려고 너무 '선정적' '자극적'으로 쓴다는 비판을 얻기도 한... ("Newsweek Writes Sensational Stories to Sell Magazines?").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구절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Last fall Oxford research fellow Susan Greenfield warned that ignoring the way digital experience rewires the brain—literally “blowing the mind”—may one day be akin to doubting global warming. And in a video essay on YouTube, the writer Will Self argued that our wired world is “inherently psychotic,” a place where a single screen hosts both the real and virtual life, with just a mouse click between them. Does the Internet cause insanity? No. But for some vulnerable souls, it may excite their already destructive states of mind."


"it is well established that city living—with its constant noise and lack of solitude—is linked to higher rates of insanity; now research is showing that our nonstop connectivity may duplicate this stress, pushing unsteady minds toward full-blown mental illness."


인터넷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는 끊임 없는 소음, 홀로 있는 시간의 부족 탓에 도시인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디지털적 경험이 우리 뇌를 꼬이게 만든다는... 마음에 파멸적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사회학자들은 대부분 근대/현대사회의 핵심적 특징을 독특한 합리성을 갖는 다양한 영역으로의 분화로 꼽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최근의 변화에 대한 진단이다. 근대/현대 이후인가? 탈근대/탈현대 사회인가? 어떤 단절이 있는가? 본질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주장하는 바가 바로 컴퓨터, 통신기술 등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의 역할이다. 더 이상 독립된 영역으로 분화된 사회가 아니라 갈수록 경계가 모호해지는 네트워크사회라는 것. 하지만 네트워크 사회는 복잡성이 더 높아지는 사회다. Dokoupil이 경고하려는 것은 네트워크, 연결성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들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복잡성,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넘어서는... 어쩌면 그런 과잉 복잡성에 직면해서 우리는 정보량의 감축이 필요하고, 기능적 분화 같은 근대적 질서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더 강력하게 요청되는 지도 모르겠다.

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사무실 실내 온도가 30도를 넘어서자 비로소 작동되는 에어컨. 평소에 에어컨의 찬 바람, 특히 지나친 냉방에 진저리를 치는 편이지만, 지금 에어컨 바람은 무척이나 반갑다. 다행히 추울정도로 찬 바람은 아니다. 지금 확인해 보니 온도는 28.8도. 뭐... 선풍기도 천천히 돌아가고 있으니 견딜만 하다. 더 견디기 힘들고 심지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건 과잉냉방이니까...
그럼에도... 이런 오후에 집중해서 뭔가를 하긴 힘들다. 음... 어떻게 해야하나...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모를 잘 섬겨야 한다는 얘긴 자주 듣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더 자연적이고, 부모에 대한 사랑, 즉 孝는 훨씬 더 도덕적이다. 도덕은 강조, 권장, 장려, 요구나 반대로 억압, 억제에 관한 것이다. 인간관계, 사회생활, 종교생활 등에서 무엇인가를 하라고 애써서 권면하는 것과, 혹은 하지 말도록 억압하는 것들은 모두 반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문명적 질서가 유지되니까... 자연에서는? 힘에 의한 질서가 생기는 것이고... 인간 문명은 자연 (혹은 욕망, 혹은 욕망의 자연)을 억누르는 그 스트레스의 산물이다.
인간은 '문명'과 '자연'(혹은 본능)의 갈등 가운데서 적절한 위치를 찾아간다. 그 모습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모습을 한 줄로 세운다면... 승화' '초월'이 한 쪽 끝에, '거침없는 발산'이 다른 한 쪽에 있을 것이다. 대략 중간쯤에서 보이는 모습을... '위선' 혹은 '이중적 태도'라고 볼 수 있을 듯.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면서 사는 - 그래서 욕먹고 비난받는 -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서 도인, 도사, 성인의 경지에 오른 - 그래서 추앙받는 -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착한 척, 적당히 악한 척, 욕망의 표현 수위를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살아간다. 욕망이란 문명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원초적인 것이라 조절, 억제하는 힘이 조금만 약해져도 그 틈을 비집고 분출해 버린다.
오랫 동안 종교생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온 사람들이 - 심지어 목회자들도... - 한 순간에, 너무도 쉽게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은.... 그래서 눈을 뜰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심지어 무의식 상태에서도 욕망을 억누르고 성스러움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강박에 가까운 요구를 잘 따랐음에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너무도,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만큼... 욕망, 자연의 힘은 강하고, 그것을 억누르려는 힘은... 참 보잘 것 없다.
근대는 어쩌면 이런 욕망을 다스리는 방식이 가장 정교하게 발달되어서 많은 대중을 억압하던 시기일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런 관점에서 근대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각종 계몽, 교육이 흥황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어쩜 그 극단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여줬던 것 같고. 자본주의 블록은 그 대신 욕망, 특히 경제적인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수정, 교정하거나 혹은 그 폐해,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을 취했고... 그 보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물질적 보완 장치를 '복지국가'로 부르고, 의식적/ 정신적 장치를 '시민의식' ('시민종교')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장치는... 비경제적인 욕망 추구의 용인이다. 대표적으로 ... '성의 자유'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 선진국에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이 복지국가 등과 맞물려서 어느 정도 잘 작동했다.
한국의 경우... 다른 경로를 거친다. 경제적 욕망의 노골적 추구와 다른 욕망, 비경제적이거나 문화저인 욕망의 억압이 한국의 근대화의 특징인데...한편으로 경제적 욕망 추구는 더 노골적이 되었고, 다른 욕망 추구 욕구도 강해지는 것 같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 영화 '은교'와 책 '욕망해도 괜찮아'의 흥행이다. 사회의 소프트화, 감성화라고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리프킨 '공감의 시대'). 여하튼 - 박범신의 표현에 따르면 - 오욕 칠정을 더 쉽게 표출한다. 박범신이나 - 읽으보진 않았지만 - '욕망해도 괜찮아'는 그 동안 억압되었던 욕망을 드러내라고 권하지만, 사실 우린 '경제적 욕망'은 과잉표출되었다. 그런 점들을 지적해 주어야 할 것. 어쩌면 마광수나 장정일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아니... 그런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2012년에 '은교'나 '욕망해도 괜찮아'가 나올 수 있었을 지도... 
여하튼... 욕망, 오욕칠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욕망'의 과잉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 동시에 다양한 욕망, 욕망 간의 충돌을 조정, 조절해야 할 필요도 커지고... 그런 조정 메커니즘은 터무니 없이 저발달되어 있다. 서구에서는... 개인, 개인화라는 메타문화가 여전히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커니즘이었다. 그것에 기초한 계몽, 교육, 신뢰, 합리성, 시민의식, 복지국가 등 다양한 메너니즘이 발달했고... 한국은... 그런 측면에선 여전히 후진적이다. 어쩌면 한국의 근대화에선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메너니즘은 '위선'이 아닐지...


(떠 오르는대로 쓰다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아이디어 수집 ,기록 차원이니 '독자들'^^께선 이해해 주시길...)

2012년 6월 15일 금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 사무실에 나와서 어제 그리워하던 그 빵을 먹다.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커피를 마시며... 집에 두고  온 빵을 그리워하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페친인 황두진 선생이 올린 사진이다 (이런 식으로 공유해도 되려나...저지르고 본다...).  Winter in Seochon이라는 설명과 함께... 서슬한 겨울 기운이 반갑기도 하지만... 다가 올 겨울을, 저런 겨울 풍광을 가볍게 그리고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 현 켠이 서늘해 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더 이를 악물어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보낸 지난 주말 생각에 월요일 아침 마음이 무겁다. 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야... 중요한 건... 오늘...지금...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일요일 저녁... 날씨는 거의 한여름이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는... 도로 옆이라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 아파트를 기준으로 양쪽에 있는 보행자 신호등이 동시에 켜져 있는 동안 만큼은 조용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독일에서였다면 냉장고에 넣어 둔 백포도주를 마실 그런 분위기...

'해방'이라... 기독교가 얘기하는 해방은 대개 죄로부터의 해방인데... 죄로부터 해방되는 대신 교리로 구속되는 건 아닌지... 그렇다고 소수 의견/ 교리/ 성경해석을 모두 인정하는 게 적절한 태도가 아님 또한 분명하고... 진지하게, 특히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기독교 가르침의 본질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해방'에 대해서 대개 비슷한 결론을 얻는 것 같다. 죄로부터 해방만을 강조하는 것은 교리로의 구속이다. 진리는...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내포되어있는 의미의 풍성함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 손실을 감수하고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언어로 표현된 진리는... 진리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교리에 대한 태도는 그래야 할 것이다. 교리를 이야기하면서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양... 너무 기고만장해서는 안된다.

2012년 6월 8일 금요일

남의 시선과 판단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대로 사는 편이지만...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이지만 ㅠㅠ) 어디 사람이 늘 그럴 수만은 없는 일 아니던가. 어제... 문득... 그런 시선을 느꼈다. 상대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해서? 노우!!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그런 상황이었을게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결론은 같다. 내 자존심/자존감에 '기스'가 난 것!
우선 자세를 더 곧게 하고 허리를 펴고 고개를 약간 더 위쪽으로 향하게 했다. 수영을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고... "먼저 가겠습니다"라는 얘기도 평소보다 더 크게 했다. 물론... 대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그냥 잊게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치유책이 필요하다. 더 미루지 말고, 더 속도를 내고, 더 이를 악물고서...  

2012년 6월 7일 목요일

內密한 얘길 페이스북에서 잘 꺼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그리고, 당연히)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반응이 거의 없는 이 곳에서야 정말이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200여명에 달하는 독자/친구들이 읽을 가능성을 염두지 두지 않을 수 없는 페이스북에서는 그 독자들의 시선과 반응이 신경쓰이는 것이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신경쓰이는 일일테니까... 그래서 페북에선
- 다른 이의 글이나 기사을 소개하거나
- 좀 더 객관적인 토론이나 의견 교환이 가능한 주제에 대한 내 견해를 드러내거나
-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잠언 혹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블로그에서 내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지극히 사적인 견해라서 그것을 두고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또 반박을 하고... 그런 과정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는 논쟁적이더라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이 더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기대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그닥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는 내 감상들을 드러내는 블로그에선 그런 과정을 원천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여하튼 어떤 매체든 자신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이용하면 될 일이다.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다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햇다.. (...) 근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법적대책은 커녕 논문하나 제대로 된 것도 하나도 없다...걍..외국자료 가져다가 베껴놓은 수준이라니... 진짜 허걱이다!!!"

오프라인 지인이기도 한 페친이 남긴 글이다. 그리고 이는 이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애인 문제를 공부, 연구한 지난 1년간 느낀 바이기도 하고.
즉, 한국에 당장 절실하게 필요한 연구 분야가 참 많다는 점. 이는 그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공부를 좀 깊게 하면 크게 환영받을 것이라는 점.다만... 내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점. 어떻게든 환경받는 연구가 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

자존감? 자존심?

'자존감' 별로 '태클'걸 일이 없는 중립적이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것 같다. 자존감은 충분히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반면에 '자존심은',  뭐랄까...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예컨데 '쓸 데 없는 자존심' 같은 표현으로... 필요 이상으로 가지는 경우를 가리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사실 그런 구분에 대한 얘길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자존심이건 자존감이건 간에... 어떨 때 그런 감정에 손상을 입는지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  별 뜻 없이 한 말을 상대방은 자존심/자존감에 대한 도전이나 심지어 모욕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나라면 참 면목없을 그런 상황인데도 태연하거나 심지어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문제의 8,90 퍼센트는 바로 그 차이 혹은 어긋남 때문에 생긴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린 어떤 사람의 자존심/자존감과 관련된 예민하거나 예민하지 않은 부위를  남들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 정말 친밀한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오래된 친구들이나 부부 사이에서... 의외로 부모, 자식 간엔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것도 일종의 위계적인 관계이고 그런 경우 기대되는 바에 맞추어서 상대를 대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자존심/자존감에 관한한...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가지고서 평가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왜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느냐고 다그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너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너냐고 따지는 것과 같은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덜 예민해지기도 하고 예민한 부위가 바뀌기도 하겠지만... 성격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그런 민감 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인정과 배려에 관한 문제인 듯...

2012년 6월 6일 수요일

"우월한 유전자..."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개 널리 기대되는 특징을 갖춘 사람들, 가족들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으로서... 뭐.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학자들도 대개 유전 반, 환경 반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으니, 적어도 50%의 진실은 담겨져 있다고 봐도 좋을 듯. 아니 사실 "우월한 유전자.."라는 표현이 지칭하는 대상은 대부분 널리 기대되는 '환경'도 갖춘 사람들이니, 사실 "우월한 유전자에 좋은 환경까지..."라는 말의 줄임말로 볼 수 있을 지도... 환경은 좋지 않은데도 기대되는 좋은 특징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 '집념, 노력의 승리, 성공' 같은 표현을 쓰지 '우월한 유전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니...
"우월한 유전자..."는 이런 저런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인 듯하니 유전적 결정론, 심지어 우생학적 사고라고 판단하여 그 부분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지는 않아도 될 듯.

2012년 6월 5일 화요일

프로야구보다 오히려 아마야구 경기에서 파인플레이가 더 많이 보인다고 한다. 그 이유는... 프로들은 어려운 공을 쉽게 잡기 때문이라고... 이런 논지는 학문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어렵지 않다. 너무 쉬워서 "저런 얘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예수님 말씀도 거기에 속하고... 깊은 지식을 갖지 못한 어설픈 전문가, 학자들이 전문(적으로 들리는) 용어, 외국어 어휘를 섞어가면서 '어렵게' 얘기한다.
"모든 사람은 4세 이전의 경험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두뇌가 아직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기 이전이라 우리가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형태의 기억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그냥 두뇌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 그런 것이죠."

오늘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글에서 읽은 내용. 우리는 볼 수 있는 것 혹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얘기와 상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지식, 정보의 구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지금 포스트모던시대라 그렇다는 둥 얘기하기도 하지만 어디 그러랴. 중세시대엔? 삼국시대엔? 달랐을까? 그나마... 근대에 들어서 '실증주의'가 잠시 세력을 얻은 적도 있지만 (그 흔적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건 인류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실증주의'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 '유물론' '경험론'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경험적으로 검증되고 확증된 진실, 진리, 사실, 법칙, 원리들을 추구하려는 경향... 지금 시대엔 -  근대이후거나 후기근대거나... -  검증되거나 확증된 진실, 진리, 사실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해하는 것 같기도.. 왜? 자기가 믿고 싶은 진실, 진리, 사실을 믿는데 방해가 되기에... 그런 사례들은 한 무더기다. 대표적으로 '천안함 사태'가 생각나는군.
이 세대는 또 편집에 익숙하다. 글자, 문서는 물론이고 영상 기록의 힘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모든 편집은 조작, 왜곡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불과 십수년 전만해도 '신문에 났는데'라고 얘기하면 그 주장이 먹혔다는 '사실'(!)이 낯설 정도로... 종이 신문의 경우... '한겨레 신문' 창간이 큰 기여를 했던 것 같다.

2012년 6월 4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날은 더운 편이지만... 그래도 뜨근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다. 겨우내 책상 한 켠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탁상용 가습기를 치웠다. 습도가 낮을수록 더 좋은 계절으로 접은 든 지 한참만에... 분주한 주말을 보내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무덤덤한 일상 - 그래 내겐 이게 일상이지... - 으로 돌아오다. 무덤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