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모를 잘 섬겨야 한다는 얘긴 자주 듣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더 자연적이고, 부모에 대한 사랑, 즉 孝는 훨씬 더 도덕적이다. 도덕은 강조, 권장, 장려, 요구나 반대로 억압, 억제에 관한 것이다. 인간관계, 사회생활, 종교생활 등에서 무엇인가를 하라고 애써서 권면하는 것과, 혹은 하지 말도록 억압하는 것들은 모두 반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문명적 질서가 유지되니까... 자연에서는? 힘에 의한 질서가 생기는 것이고... 인간 문명은 자연 (혹은 욕망, 혹은 욕망의 자연)을 억누르는 그 스트레스의 산물이다.
인간은 '문명'과 '자연'(혹은 본능)의 갈등 가운데서 적절한 위치를 찾아간다. 그 모습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모습을 한 줄로 세운다면... 승화' '초월'이 한 쪽 끝에, '거침없는 발산'이 다른 한 쪽에 있을 것이다. 대략 중간쯤에서 보이는 모습을... '위선' 혹은 '이중적 태도'라고 볼 수 있을 듯.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면서 사는 - 그래서 욕먹고 비난받는 -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서 도인, 도사, 성인의 경지에 오른 - 그래서 추앙받는 -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착한 척, 적당히 악한 척, 욕망의 표현 수위를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살아간다. 욕망이란 문명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원초적인 것이라 조절, 억제하는 힘이 조금만 약해져도 그 틈을 비집고 분출해 버린다.
오랫 동안 종교생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온 사람들이 - 심지어 목회자들도... - 한 순간에, 너무도 쉽게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은.... 그래서 눈을 뜰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심지어 무의식 상태에서도 욕망을 억누르고 성스러움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강박에 가까운 요구를 잘 따랐음에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너무도,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만큼... 욕망, 자연의 힘은 강하고, 그것을 억누르려는 힘은... 참 보잘 것 없다.
근대는 어쩌면 이런 욕망을 다스리는 방식이 가장 정교하게 발달되어서 많은 대중을 억압하던 시기일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런 관점에서 근대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각종 계몽, 교육이 흥황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어쩜 그 극단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여줬던 것 같고. 자본주의 블록은 그 대신 욕망, 특히 경제적인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수정, 교정하거나 혹은 그 폐해,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을 취했고... 그 보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물질적 보완 장치를 '복지국가'로 부르고, 의식적/ 정신적 장치를 '시민의식' ('시민종교')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장치는... 비경제적인 욕망 추구의 용인이다. 대표적으로 ... '성의 자유'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 선진국에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이 복지국가 등과 맞물려서 어느 정도 잘 작동했다.
한국의 경우... 다른 경로를 거친다. 경제적 욕망의 노골적 추구와 다른 욕망, 비경제적이거나 문화저인 욕망의 억압이 한국의 근대화의 특징인데...한편으로 경제적 욕망 추구는 더 노골적이 되었고, 다른 욕망 추구 욕구도 강해지는 것 같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 영화 '은교'와 책 '욕망해도 괜찮아'의 흥행이다. 사회의 소프트화, 감성화라고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리프킨 '공감의 시대'). 여하튼 - 박범신의 표현에 따르면 - 오욕 칠정을 더 쉽게 표출한다. 박범신이나 - 읽으보진 않았지만 - '욕망해도 괜찮아'는 그 동안 억압되었던 욕망을 드러내라고 권하지만, 사실 우린 '경제적 욕망'은 과잉표출되었다. 그런 점들을 지적해 주어야 할 것. 어쩌면 마광수나 장정일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아니... 그런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2012년에 '은교'나 '욕망해도 괜찮아'가 나올 수 있었을 지도...
여하튼... 욕망, 오욕칠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욕망'의 과잉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 동시에 다양한 욕망, 욕망 간의 충돌을 조정, 조절해야 할 필요도 커지고... 그런 조정 메커니즘은 터무니 없이 저발달되어 있다. 서구에서는... 개인, 개인화라는 메타문화가 여전히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커니즘이었다. 그것에 기초한 계몽, 교육, 신뢰, 합리성, 시민의식, 복지국가 등 다양한 메너니즘이 발달했고... 한국은... 그런 측면에선 여전히 후진적이다. 어쩌면 한국의 근대화에선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메너니즘은 '위선'이 아닐지...
(떠 오르는대로 쓰다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아이디어 수집 ,기록 차원이니 '독자들'^^께선 이해해 주시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