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2일 화요일

Human Nature (2001) Michel Gondry

주연: Tim Robbins, Patricia Arquette, Rhys Ifans
각본: Charlie Kaufman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베니스, 토론토를 비롯해 전 세계 38개 영화제에서 88개 부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41개 상을 수상한 화제작 '존 말코비치 되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이때 받은 상의 갯수만 해도 열 셋. '존 말코비치 되기'가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 작가로 불리게 해줬다면, 두번째 야심작 '휴먼 네이쳐'는 그를 세계 최정상 시나리오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CF로 기네스 북에 오른 리바이스 'Drugstore'를 연출한 미셸 곤드리 감독은 헐리우드의 초대형 러브 콜을 마다하고, '휴먼 네이쳐'를 그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성 멘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실제로 그리 좋지 않았다. 언급할만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대중의 평가도 박한 편이었다 (imdb에서는 6.2/10 를 받았고 한국 cineline 에서도 비슷한 6/10을 받았다. 난 7.5/10 정도는 주고 싶다.). 하지만 곤드리 감독과 카우프만은 새로운 영화에서 한 번 더 손을 잡는데, 그것이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이 두번째 합작 영화는 오스카 각본상을 비롯 모두 36 개의 상을 받는 등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imdb user rating도 8.5/10로 최상위급에 속함.). 난 개인적으로 'Eternal Sunshine'보다 'Human Natue'를 더 재미있게 봤다. 'Eternal sunshine'은 서로 다른 기억이 충돌하는 것을 절묘하게 화면으로 표현하는 등 연출력이 뛰어나고, 전체적으로 보아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소재가 주는 충격이 좀 덜하다. 인간 기억의 고장 혹은 인위적 개입으로 삶이 뒤죽박죽되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적지 않고, 그런 소재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들도 여럿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human nature' 는 'Eternal'보다 엉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재료를 깔끔하게 잘 요리했고, 또 마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뤄서 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비인간의 경계 설정".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이거 왠일인가, 마구 마구 귀찮아진다. 그래서 줄거리 요약은 과감히 생략. 도대체 난 이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왜 블로그를 만들어 애써 흔적을 남기려는걸까? 몇 명이나 읽을 거라고... 그 이유는 ... 영화 조달(?)하고, 보는 데 나름 적지 않은 노력, 시간을 들이니까, 거기서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다. Anyway,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인간본성에 대한 영화다. 인간은 어떤 본성/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인간이려면 이 본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동물과 인간의 구별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처리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영화는 이런 류의 질문을 시종일관 던진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일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혹은, 침팬지들)은 없을 것이다. 경계 설정을 문제삼으려고 하면 그러니까 다른 접근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어느 한 범주에 넣기 애매한 잡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여러 유형의 경계문제를 논하는 학술적 논의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이 영화의 경우, 온 몸에 털이 나는 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숲 속에서 태어나 동물처럼 자란 존재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다른 한 편 매우 '인간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에티켓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의 필수조건이라고 믿으며, 쥐실험(자세한 내용 생략, 혹시라도 앞으로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을 통해 그런 인간성은 학습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생물학자. 그를 중심으로 물고 물리는 인간/비인간 (혹은 덜 인간)들의 관계. 에티켓을 신봉하는 그도 하지만 성욕의 노예이긴 마찬가지. 다만 '덜 인간' 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을 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참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았고, 때로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 장치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오히려 '참 인간'인지도... (cf.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끝부분에 귀여운 반전이 있음도 언급해 두고 싶다 (그게 없었으면 싱겁게 끝날 뻔 했다). 결론적으로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인간인가? 본능, nature 만 따지자면 인간도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어야 인간이다. 본능을 '인간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나름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정도인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 Tim Robbins도 좋지만 연기하기 훨씬 더 어려웠을 털복숭이 여자역을 잘 소화한 Patricia Arquette가 더 강하게 남는다.

댓글 2개:

  1. 첫 댓글을 남깁니다. 꼭 정선생님께서 제 블로그에 긴 댓글을 남겨주신데 대한 보답성 댓글은 아닙니다.
    우선은 이 글을 남김으로써 저도 블로그에 들르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려드리며 (ㅎㅎ) 던지신 질문자체가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질문이라서 짤막하게 아이디어를 덧붙일까해서요.
    정선생님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정선생님 스스로의 잠정적인 답변에 덧붙여서 저는 위의 포스터를 한번 나름 세밀하게 보았는데요. 여성 캐릭터가 신체의 부위를 "가리고" 있네요. 무엇으로부터 "가리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어떤 사람은 이 행동을 동물의 보호색 (숨기)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저건 분명히 "가리고" 있는 거죠? 물론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시대에 가리는 부분들이 달라왔고 또 다르겠습니다만...(우리는 이미 그 지점은 알고 있죠.) 정선생님께서 잠시 지적하셨던 바 에티켓 이라는 것도 사실 이러한 "가리기", 혹은 좀더 나아가서는 "체면지키기"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요. 이건 좀더 보편적으로는 "Moral"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지극히 사회학적인 개념이죠.
    자...그럼...."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바꿔 질문하자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동물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심리학자들의 답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중의 적어도 한 부분은 제 생각에는 사회학적으로 추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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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급한 것처럼 포스터 그림을 '객관적 해석학'으로 분석해 보면 재미있겠네요 (영화포스터임을 알려주는 그런 부분을 가리고 말입니다). 가운을 보니 의사 혹은 과학자일 남자가 위풍당당 서있고, 그것도 다수로, 벌써 지배적이지요, 그 속에 중요부위(?)를 가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남녀. 그들이 가리기 위해 사용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나뭇잎. 급하게 가려야 했던 모양인데 주위에 그것 밖에 없었나 봅니다. 당당한 인간과(문명인?), 그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은 인간과, 하지만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랑 달랑 나뭇잎. 부끄러움을 안다는 점에서 벌써 인간화가 꽤 진행된 상태인 것 같군요. 그 정도로 하고, 어쨌든 남녀의 모습은 아담, 하와 모티브를 가져다 쓴 것이 분명합니다. 서양미술사에 비슷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창세기 기사에 따르면 범죄한 이후에야 비로소 벌거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했다는... 비록 타락했지만 부끄러움, 수치를 알아야 인간이라는 그런 성경의 인간이해. 타락하기 이전 본래의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라면, 사실 가리지 않는 것이 원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건가요. 현대의 누디스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걸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본모습을 가린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가리지 않아야 더 인간적이라고 해석하는 거지요.참으로 인간적인라는 것은 사회적 구성입니다. 생물학자들은 인간 종을 달리 정의할 테지만 (종족 번식 가능성), 동물생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동물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 시선을 보냅니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인간도 동물이니까요. 기독교 신학자들은 달리 주장할 것입니다. 성경의 정신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존재이고, 다른 피조물과 구별될 뿐 아니라 다스리도록 창조된 존재니까요. 그것을 반드시 인간우월론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그 인간에 '흑인'을 포함시키지 않았으니까, 모두 해석의 문제이고, 시대정신의 문제입니다. 결국 다시 사회적 구성입니다. 인간이해의 변화, 차이 등에 대한 역사학적, 사회학적 연구, 문화비교가 분명히 있을 텐데 들은 바가 없는 것 같군요. 이렇게 기록을 남겨 혹시 나중에 학진에 공동프로젝트 신청할 때 참고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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