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을 구분하고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유통되어 왔다. 지금까지 여러 버전의 '오리엔탈리즘' '옥시텐탈리즘'이 있었을 것이다. '서양 - 문명/ 동양 - 야만' 같은 구분 도식도 있었을 것이고.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자주 얘기하는데, 오늘 요즘 한창 뜨고 '계시는' - 동양식 존대?^^ - '다윈' 선생과 미시간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니스벳'의 가상 대화록에서 그런 내용을 발견했다 (여기). 사실 그 주장 자체로는 전혀 신선하진 않다. 다만 예로 든 사례들을 혹시 나중에 '써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흠. 우린 '먹는다'라는 표현을 이런 경우에도 쓰는 구나.'써 먹다'. 고 노통께서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고.) 어쨌든 이런 구분법은 그럴듯 해 보이고, 실제로 그런 면이 많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선뜻 동의해 주기는 꺼려지는 그런 주장이 (어쩌면 '체계이론'도 이런 인상을 주지 않나 모르겠다. 그래서 대개 '표면적으로 보아 그런 것 같긴 하나, 실상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반론을 얻어 '먹게' 되는... Knorr-Cetina 교수가 'Unterkomplexitaet'라고 비판했던 그런 맥락... )결론적으로 다른 사고방식이 융합하고 있다는 주장은 오히려 쉽게 동의해 줄 수 있겠다.
니스벳=네. 미국과 중국 아이들에게 소, 닭, 풀을 보여주고 이 중 2개를 하나로 묶어보라고 해봤어요. 그랬더니 중국 아이는 주로 소와 풀을, 미국 아이는 소와 닭을 묶더군요. 중국 아이는 소가 풀을 먹는다는 관계적 이유 때문에, 미국 아이는 소와 닭이 동식물 분류상 같은 동물에 해당된다는 범주적 이유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물속 장면을 보여준 애니메이션 실험에서도 확인됐어요. 일본 학생은 물고기보다는 물속 배경을, 미국 학생은 물고기 자체를 더 잘 기억했죠. 동양인은 주변 환경에 기초해 개별 사물을 기억하는 관계적 사고를 하는 반면, 서양인은 배경과 개별 사물을 분리해 생각합니다.
다윈=전체론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의 차이로군요. 아주 새로운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니스벳=한 20년 전쯤에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중국계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불만을 품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한 충격적 사건이 있었어요. 미국인은 이 범죄의 원인을 그 학생의 사악한 본성 탓으로 돌렸지만 중국인들은 그 학생의 주변 관계, 총기 구입이 쉬웠던 상황들을 언급하며 ‘상황론’을 들고 나왔지요.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맥락을 훨씬 더 중시합니다.
다윈=그러고 보니 동양인은 문화적으로 모두 ‘공자’의 후예들이랄 수 있겠네요. 유교는 개인의 개성보다 공동체 속의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이죠. 그런 전통이 요즘처럼 문화들이 서로 융합되는 사회에서도 인간의 사고 과정 속에서 여전히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니스벳=의학 전통도 문화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허리가 삐끗해서 동양의 침술을 경험해 본 서양인이라면 다 느꼈을 거예요. 서양 의학은 병든 ‘부분’을 고치거나 도려내는 수술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 동양 의학은 몸의 전체 균형을 되찾아 질병을 치유하려 하죠.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분석과 관계, 본성과 상황, 추상성과 실용성 등은 서양과 동양의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키워드입니다.
다윈=솔직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긴 합니다만 뭐랄까, 문화 간 생각의 차이를 입증한 이 연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처럼 들리지 않아요. 예컨대 선생의 연구 결과가 맞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도 가능하잖아요. 분석력과 개성적 사고에 상대적으로 능한 서양인들이 경쟁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더 적합하다, 적어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과학계에서는 동양인들이 불리하다, 뭐 이런 결론 말입니다. 이건 좀 위험한데요….
니스벳=다른 건 다른 거죠. 하지만 서양인이 추상적 사고와 분석 능력에 상대적으로 뛰어나 과학적 탐구에 유리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동양인이 능한 실용적 사고와 관계적 사고로는 사회적 갈등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거나 한쪽으로(서양 자본주의 문화) 흡수통합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융합되는 흐름이죠. 서양인이 점점 더 동양의 문화를 찾고, 동양인이 서양의 경쟁적이고 개성적인 지배문화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요?
다윈=이제야 독자들이 이 책을 ‘무경계5’로 뽑아줬는지 알겠어요. 동서양의 경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 사고 과정을 좀 더 명확히 보여줬다는 뜻이겠네요. 독자들이 저보다 더 현명합니다. 고맙습니다. 차 더 하시겠어요?(More tea?)
니스벳=중국에서는 이 상황에서 ‘Drink more’라 말하죠. 서양은 범주를 타나내는 명사를, 동양은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를 더 빨리 배우고 강조한답니다. 하하.
윗 대화록이 실린 기사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이런 내용을 다룬 니스벳의 책 '생각의 지도'(2003, 김영사)가 한국에 번역되어 있다 (부제: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원제: The Geography of Thought). 그 소개글 중 일부...
동.서 사고방식의 차이를 논증하는 책. '인간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라는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을 뒷받침한다.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여타 학문에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생소한 동.서양인들의 심리적 차이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 학문으로 체계화했다.
동양은 전체를 종합하는 반면 서양은 분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동양은 경험을 중시한다면 서양은 논리를 중시한다. 동양은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한다면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이런 분류는 쉽게 추측가능한 이분법이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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