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정체성 - 가족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위치

질병관리본부가 2006~2008년까지 응급실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회복된 자살시도자 1천5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족구성원 또는 연인과 갈등’을 원인으로 든 사례가 46.5%를 차지했다고 한다. 반면 우울증을 포함 각종 정신건강 상태로 인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답은 14.1%에 그쳤다.

이런 통계치를 해석할 때는 항상 삐딱한 시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선 자살 시도한 후 '실패(?!)해서' 응급로 후송된 경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 (기사에서도 "자살 사망자의 동기와는 다를 수 있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을 덧붙이긴 했다). 또 기사에서도 연구자의 발언으로 소개되었듯이 "이같은 결과는 외국에 비해 우울증 치료를 많이 받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만약 가족 간 갈등의 결과 우울증 치료를 받는 경우는 어느 쪽에 해당하는 것이지? 두 가지 카테고리 '가족 간 갈등', '우울증'이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고서라도 기사가 전하는 내용이 내 평소 관찰 혹은 상식에 비추어 봐서 크게 어긋나지 않기에 정보가 쉽게 수용된다.
생명윤리학자들도 비슷한 얘길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참여할 때 '정보를 제공하고서 동의'를 받는 절차가 있는데 ('informed consent') '서구적' 전통에서는 대개 '당사자'가 그 결정권자이다 (혹은 다른 의료시술에 대한 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터이다). 현대 문명은 지역적 편차가 있겠지만 대개 개인, 개인주의, 개별 책임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이 경우도 그런 이해를 근거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아시아권'에서는 개인의 동의 이외에 '가족'의 동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실정'에 맞는 것이라고 생명윤리학자들은 얘기한다.

주체, 개인의 위치는 여러 좌표에서 설정되는데 - 계급, 체계, 지역, 학교 등등 - 특히 한국인들에 '가족' 내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맺어진 관계 속에서 갖는 위치가 무척 중요하다는 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얘길 좀 실감나게 전해주는 사회과적 연구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다들 큰 얘기에만 너무 열중하는 탓일까? including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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