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황우석 사태와 과학 민족주의 관계가 어떠했다는 말씀?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서 지배적인 견해는 박정희에서 한 정점을 이루었던 과학 민족주의가 ('박정희 패러다임') 지속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모스크바 테제는... 이 사건은 그보다는 과학 민족주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박정희 시절엔 과학, 기술을 조국근대화에 동원하는 정부 주도 국가 이데올로기였다면, 민족 영웅으로서 황우석의 등장은 과학자 스스로 자신의 연구를 국가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것을 언론, 정치 등이 가져다 쓰고, 그것이 다시 황우석의 발언을 강화시키고.. 등등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만들어 낸 co-product가 되었다 ('과학자','과학'의 민족주의화). 좁은 의미로 황우석 사태, 그러니까 황 지지 대중, 언론의 반응은 '갈등' 혹은 '사건'의 민족주의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한편으로는 박정희 민족주의에 비해 지속성도 짧고, 충성도도 그리 높지 않은 반짝 즐기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스포츠민족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엄청난 지지의 '쓰나미'가 보여주듯이 '민족주의화된 사건 이해'의 폭발력, 다시 말해 배제하는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갈등이라고 얘기하기도 뭣한, 너무 일방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황우석 사태는 국가중심성의 약화를 보여주는 사례인가? 더 기능적 분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얘기해 주기에 한국 국가는 여전히 너무도 강하다. 구조적으로, 의미론적으로... 그 끈질긴 생명력... '국가'나 '정치'에 대한 지나친 기대 그리고 급실망의 반복은 한국이 얼마나 여전히 '정치 중심적 사회'인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타협'이 어렵고, 사생결단의 혈전의 장이 쉽게 되는 건 바로 이 과도한 기대 때문이다.
과학 민족주의(애국주의)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박정희 패러다임' 주장자들이 얘기에는 기실 과학 거버넌스의 다른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다: 성장주의, 과학만능주의, 결과지상주의 등등. 민족주의가 유지되지만 다른 맥락에서 생성되는 것처럼 박정희 패러다이 얘기하는 다른 "특성" 역시 사라지진 않았고 다만 그것이 생성되는 맥락, 환경이 달라졌다. 그 대표적인 주장이 한국국가의 성격 변화:'발전국가'에서 '과학기술국가'로 (Uttam). 변화를 해 나가면서 국가중심성은 관철되고 있다. 보수, 진보에 큰 차이는 없다. 최근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소장 학자들의 정치지향성을 조사한 결과는 (표본 수 2^^) 이들 '국가중심적 사고' 정도가 예상 이상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안은? 쉽지 않다.
민족주의의 과잉이 염려되어서 탈민족주의를 실천하면 당장 담론의 공간이 비어 버린다. 채워 줄 "이념적 콘텐츠"가 터무니 없이 부족한 것이다. '국가 혹은 정치중심주의' 역시,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국가'혹은 '정치'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아애 관심을 거둔다면 정말 한 줌의 세력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게 놔두는 꼬락서니가 된다. 2mb와 그 무리들은 멀쩡한 대낮에 사람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가. 진부하지만 대안은 이미 나와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지만... 민주주의, 기능적 분화 같은 틀을 만들어 놓았다면, 이제는 '의미론' '담론'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가중심성 같은 지배적 관념을 대체할 "콘덴츠"를 부지런히 만들어 내고 유포해야 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