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4일 목요일

중심/ 주변

Zentrum/ Peripherie 라는 구분은 복잡성을 줄이는데 여러 모로 유용하고 실제로 알게 모르게 우리가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구분은 우선 종속이론에서 중심부, 주변부, 반주변부 운운할 때 연상되는 그런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서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애해야 한다. 읽어야 할 논문이 너무 많다면 그 중에서 인용되는 빈도가 높은 논문을 읽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되는데, 자주 인용되는 논문은 '명성'이라는 '장'에서 중심부에 위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중심/주변 구분은 대개 신분 질서 속에서 이해되어서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결정은 대개 귀족등 상층부에서 일어난다. 역사학에서, 역사 기술에서 '큰' 사건, 인물 등 중심부를 중심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그런 '큰 이야기'가 아닌 '작은 이야기'를 강조하는 흐름이 없진 않다. "장기 지속"을 얘기하는 아날학파, 푸코, 문화사, 일상사 등. 그 동안 역사기술에서 배제되었던 이름없는 이들, 여성, '써발턴', 피지배자, 식민지 백성 등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것, 혹은 복원하는 것, 절실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포스트모던"역사학이라고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허나 이런 노력이 기존 중심/주변의 구분이 갖는 제국주의적, 남성적, 지배적, 서구적 성격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것은 좋으나 그리고 난 이후에 별다른 설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때리고 비판할 '중심'이 건재해야 그것을 해체하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숙주 없는 기생충 같은 그런 신세는 아닌지... 이는 역사의 역설이라고 해도 좋을 듯. 서구 여성들은 어쩌면 60년대 여성운동이 한참 달아오를 때 가장 행복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선 90년대 일까?). 남성중심의 지배적 질서 (학문 포함)를 깨뜨리는 것으로... 민주화,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이고. 이는 "기생"의 운명이다. '주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루만은 한편으로 근대사회는 중심/주변 구분을 부차적인 것으로 자주 얘기한다. 근대 세계사회는 전근대처럼 지역적 차이나 신분 차이가 더 이상 중요한 구분이 아니고, 자족적인 여러 기능체계가 병렬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신분제에서 해방된, 다시 말해 개인화된 '개인'은 사회의 환경에 있다고 보니까. 하지만 근대사회에 대한 루만 이론에서도 중심/주변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데 그건 바로 "Primat der funktionalen Differenzierung" 얘기하는 그 자리에서다. "Primat"라... 참 애매하고, 비판에서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우선 다른 방식의 분화를 인정한다는 것. 사회적 불평등, 남성/여성, 민족적, 인종적 분화 등등. 기능적 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다른 분화 원칙은 기능체계를 가로 질러서 ("quer") 관찰된다는 것. 기능적 분화의 우선성에 대한 도전은 루만 스스로 제기했다. Inklusion/ Exklusion을 "meta code"로 보면서... inclusion/ exclusoin와 세계사회의 중심부/주변부 구분이 결합되면 "Primat der funktionalen Differenzierung"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그래도... 어쨌거나 "Primat" der funktionalen Differenzierung가 가장 중요/우세하다고 강변하는 주장이 루만 전통 체계이론의 핵심적 주장인데,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서구중심적''남성적' '큰이야기' 등등 전형적인 비판이 제기될 것이고. 어쩌면 그런 학문적 비판, 비난의 대상으로서 현역에 있는 드문 이론이라는 점이 체계이론의 기능은 아닐지... 어제 우연히 Knorr-Cetina와 Luhmann이 별도로 행한 인터뷰를 읽었는데, 루만은 늘 하던 자기 얘기를 반복하고, Knorr-Centina는 인터뷰 1/3 정도는 루만 비판에 할애했다. 질문자의 의도에 따른 결과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체계이론이 사회학에서 중심에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빌레펠트에서나 그렇지... 세계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루만을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로 보는 이들이 주류가 아닌가. 그렇다면 주변부에 위치한 체계이론은 '중심'에 더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고, '기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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