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에 민족, 국가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ethnicity"도 민족, 인종, 종족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nation과 구별하고, 또 인종엔 race란 단어가 있으니까, '종족'이 가장 적절한 번역어일 것 같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 이 언저리에 있는 말들은 하나 같이 쓰임새가 현란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애매모호함 때문에 더 각광받는 단어들 아니겠는가. 물론 지역적으로 한반도, 혹은 한반도의 남반부에서는 굳이 민족, 국가(국민), 인종, 종족을 엄밀하게 구분해서 써야 필요성이 크지 않았고 그래서 심지어 "우리 나라" "우리 말글" 등등 "우리"라고 표현해도 통할 정도 아니던가. 그런 탓에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그런 '편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사례를 하나 '고백'하면..
독일 유학 초기 "위험사회학" 수업을 담당하던 선생님 - 그 당시 '교수'가 아니었단 얘기다 ㅎㅎ- 과 개인 면담 시간에서 그 '업계'에서 나름 잘 나가던 S. Jasanoff 교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때 일이다. J 교수의 '얼굴'과 '옷차림'을 사진으로 봐서 알고 있던 나는 그 "외적 조건"을 기준삼아 "그 분이 '인도인'이죠?"라고 물어봤다. 선생님 왈, "아니. 영국인일 거야..." 영국에서 공부했던 이력도 알고 있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마음으로' 수용되진 않았다. '한 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도 아니고... '출신성분'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민족''인종'적 정체성을 판단하게 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특히 '한국인'에겐 익숙한 정체성 배치 방식이었던 것이다 (잠깐! 여기에서 '한국인'이란? ㅎㅎ).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아니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난 2세라고 할 지라도 외양이 한국사람같고, 한국말 '비슷하게' 하면 한국인 취급을 해준다. 유승준 덕에 멀쩡해 보이는 한국인도 '미국인' 취급을 해 줄 수 있다는 대오각성의 쓰나미가 밀려 들기도 했지만... '출신성분'에 기초한 정체성 배치 기제는 여간해선 바뀌기 힘들 것 같다. 박노자씨가 장사하던 어떤 아주머니 (할머니?)와 얘기하던 중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인정해 주지 않다가 결국 '귀화 한국인'으로 인정을 받았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가진 이들도 있다. 저 북쪽 사람들이 아닌 재일 동포 중에... 분단되지 않은 '조선'을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 물론 그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적 도움은 남, 북 그 어디에서도 기대하기 힘들다.
여하튼, nationhood, ethnicity는 앞으로 지구 어디에서나 큰 사회적 논란거리가 될 것 같다. "우리"에겐 - 아, 여기에선 '우리'는? 난 도대체 누구를 '우리'로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어렵다... - 너무도 익숙한 민족중심주의적 생각 틀은 한 번에 모두 버리기는 좀 그렇고 - 여전히 '민족국가건설' 같은 '근대적' 과제가 남아있으니까 - 잘 고쳐서 써야 할 것이다. '우리'라는 '정체성'은 별로 나은 대안같진 않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우리말글'로 고쳐 부르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듣기에 나쁘진 않으나 그 '우리'의 해석 경계가 너무 열려 있어서 오히려 갑갑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ps) "the term ethnicity derives etymologically and historically from the ancience Greek ethno, meaning 'nation'" 흠. 어원학적으로 따져선 별 소득이 없다. 의미론으로 접근해야... 이 "ethno"는 "ethnomethodology"의 그 'ethno'이기도 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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