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원근법의 발견은 시선의 주체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시선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시선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다. ... 관점의 주체에 대한 인식은 화가 마음대로 그림의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해주었다. ... 각 개인의 관점을 포괄하는 객관적 관점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근대 과학을 가능케 했다. 가상의 관점에 따라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물리학적으로 관찰하는 과학적 인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정운, 일본열광)

원근법은 시선의 주체의 발견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세상... 원근법의 다양성은 곧 중심의 부재로 이어진다. 시선은 탈육체화된다. 남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 관찰점일 뿐이다. 육체성을 버리고 추상화된다. 그런 추상적인 상상력으로 인해 서구의 근대는 공교롭게도 주체의 육체성을 벗어버린다. 원근법으로 인한 시선의 주체의 확보는 탈육체화된 시선의 주체화로 이어진다. 이런 아이디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아이디어가 루만 아닐까? "관찰", "관찰자"에 대한 루만의 아이디어...

원근법으로 인한 주체의 발견... 같은 아이디어는 사실 전체 사건의 부분일 따름이다. 그 이후엔 관찰자만 남는다. 관찰자는 주체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많은 학자들이 여전히 육체적 시선에 사로잡혀있다. 주은우의 작업. 시선과 근대성. 도시의 풍경에 대한 벤야민, 짐멜 등이 작업. 루만은 시선의 탈육체화를 극단적으로 끌고간 작업이 루만이다. 루만은 줄곧 관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때 관찰은 인간주체의 관찰만이 아니다. 공간적, 육체적 시선은 루만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합리성은 대개 "문자문화적 합리성"을 이야기하는데.... 원근법은 시각의 합리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시각은 단일한 것이 아닌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곧 합리성에 대한 도전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의 공존... (큐비즘?)

"이성중심주의는 비단 활자인쇄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과학적 신념을 기반으로 창조해낸 르네상스 원근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원근법은 중세의 다시점의 상징적 기법을 부정하고 단시점의 과학적 비례를 중시한 근대적 시각체제이며 시각의 합리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그 내부는 전통 서구철학의 인식론적 주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외부 대상 세계의 판단의 근거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상정되는 주체이며, 그의 목적합리적 이성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눈이라고 상정되었던 시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각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사실상 여러 개의 움직이는 시각들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들에 따라 판단되어 인지되는 세계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문자문화의 뿌리가 되는 논리적 일관성과 선형성과 달리, 다수의 객관성의 공존을 인정하는 영상문화가 싹틀 계기가 마련되게 되었다." (윤태진 외)


관찰, 관찰자에서 시작하는 루만의 이론은 그런 면에서 영상문화적인 접근을 지향한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영상 커뮤니케이션(visuelle Kommunikation)에 대한 루만의 설명이 많은 것 같진 않지만...

그러고보니 루만의 Beobachtung/ Beschreibung 구분에서... Beobachtung은 시각적이고, Beschreibung은 문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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