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9일 토요일

좀 우울한 얘기는 할 곳이 별로 없다. 심지어 처지는 음악도 여럿이 함께 듣기는 뭣하다 (드물게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경우가 있긴 하지만...). 노래방에서도 분위기를 가라 앉히지는 1인이 되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을 한다. Nicht immer... aber immer öfter...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 에너지를 얻길 원한다. 이야기든 노래든... 왜 그럴까?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까? 긍정적 에너지를 총동원해야 겨우 하루 하루 살 수 있기 때문일까?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서로 눌러 주는 것도 다 긍정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려 하기 때문이다. '인정욕구'라 해도 좋고...
오늘 EBS 다큐 '자본주의' 2편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이다.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힘은 '불안'이다. 불안하니까... 남들을 따라 한다고... 소외될까봐 돈에 더 집착하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따돌림에 민감했을까? 근대는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하지 않았나? 그 개인들은 다 어디가고... 집단에 목을 매는 사람들만 남아 있을까?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천화숙 (1997), 동아시아 근대화와 제문제"라는 논문 중에서..

"서구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정체성의 위기다. 서구 사회는 현재 심각한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실존의 문제다. 따라서 정체성의 위기란 서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주의의 원리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증거다. 합리주의의 본고장에서 그것도 ‘나’ 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공동체의 기본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위기가 발생했을까?
우리의 논의를 위해 중요한 사실은 소위 ‘유교적’ 근대 화론도 바로 이런 서구의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적 위기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유가들이 ‘유교적’ 근대화론을 제기하는 목적은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생각하면 좋을 구본준 기자가 전한 건축가 조민석, 조병수의 얘기...

"`한국성'이란 표현 그만하면 좋겠어요. 미국이나 독일에서 미국성 독일성 이런 이야기는 안하잖아요. 한국성은 이데올리기스러워서 싫어요. 지역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수많은 시대가 있는데 어느 시대가 한국성인가요? 우리는 유교의 한국, 농업국가 시대의 한국을 한국성이라고 너무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건축가 조민석. 

"열심히 살면(건축을 하면) 그게 바로 정체성이고 그게 바로 전통이 아닌가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진솔하게 하면 그게 이 시대의 전통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시대성과 장소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고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건축가 조병수

천화숙 교수의 얘기는... 새삼스럽게 유교와 기타 전통 운운하는 담론이 흥왕하는 이유는 근대성의 한 유형으로서 아시아적 근대성, 그 핵심적 특징인 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바로 근대서 자체가 변화, 진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요구되는 탈근대적 특징들 - 집단적인 특성, 공동체성, 지역적 차이 - 등에 대한 이해, 설명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아시아성, 한국성 논의는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두 건축가가 하는 얘기는... 한국성, 아시아성은... 사실 늘 만들어지고, 변하는 것이다. 유교, 논어, 공자, 맹자가 한국성의 뿌리인가? 참 촌스러운 얘기다. 그동안 서구에게 당한 것들을 우리끼라도 성토함으로써 정신적 위로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혹 번트에 대한 페티시즘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열심히 번트를 시키던 그 분이 ... 누구나 번트를 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강공을 선택했다. 그 찰나... 난 그 분의 철학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나 어긋날테야..."라고 반항하는 질풍노도 시기의 고집 센 청소년 같은 모습이 바로 그 분의 실체였던 것이다. 남들 얘기는 잘 안 듣는... 남들 얘기 듣고 자기 고집을 꺽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번트 좀 그만대라고 온 우주가 아우성칠 때는... 귀를 닫는다. 번트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난 니들 말 듣고서 내 뜻을 꺼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서... 그러다 모두가 포기하고서 조용해지면... 그 때는 더 이상 그런 시위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야 할 순간에도 안 댄다. "난 번트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 성향이 야구 경기를 풀어가는데 유리할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구에서도 수싸움, 기싸움에 능해야 하는데... 고집, 배짱 없이는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분석, 계산이 없다면 고집, 배짱이 통하지도 않겠지만...
그 분의 야구론, 리더십을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구성원들이 거기에 속해 있음을 즐겁게 인정하지 못하는 조직은... 안타깝다. 조직도 그렇고 조직원들도 그렇고... 그런 조직에라도 속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은 더 그렇고.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늦은 밤 수서역에서 3호선을 갈아 타려면 때론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지금이 그런 경우.

음. 오늘 하루는 그리 민족스럽게 보낸 것 같지 않다. 유일하게 잘한 일은 10km 뛴 것. 내일은 좀 보람있게 보내야지. 더 경건하게...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음. 서재응이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기록했구나. 나이스 가이 재응씨. 성격이 모질지 않아도 좋은 성적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삼.
오늘 기아가 모처럼 이겼나보다. 7:0으로... 내 모임때문에 생중계를 놓치긴 했으나 자정 무렵의 귀가길에 하이라이트는 기꺼이 즐김하리라.
모처럼 흥미로운 모임에 가는 길. 오늘의 주제는 치맥과 루만... 이렇게 주말은 또 한 번 지나가고...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 운전해서 벌초하러 가야하는데 아직 잠에 들지 못했다. 현재 시간 00:12 ㅠ ㅠ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대구에 왔다. 마음이 편치 않다. 과거를 마음껏 추억할 수도 없다. 이 도시가... 낯설다.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눈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급 올랐다. 그런데... 페북에서 놀다보니 15분여가 금방 지나가네. 짜증냈던 게 머쓱해지는구만.
오늘 런닝머신에서 5km를 뛰면서 25분대를 목표로 삼았다. 한 150여 미터를 남겨두고서 - 마지막에 최고 속도인 시속 16km로 한참을 달리는 바람에 무리가 간 탓인지 - 기계 전원이 나가 버려서 최종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25분 50초  정도 나왔을 것 같다. 최근 성적이 좋은 편인데... 근력운동 탓인 것 같다. 그동안 근력운동을 그저 근육을 키우고 몸매 좋게 하는 운동 정도로 생각했는데... 참 무지했던 것. 근력운동과 기타 유산소 운동의 결합이 가져오는 효과를 요새 톡톡이 보고 있다. 체력, 건강 관리 등에선 우등생인데, 정작 논문처럼 가장 시급한 일에 대해선 열등생이니... .. ㅠㅠ

야구를 볼 때... 가장 짜증나는 경우는... 그냥 잘 못할 때가 아니다. 생각 없고, 센스 없이 경기에 임할 때... 여러 번 강조하지만... 야구는 매우 매우 지적인 스포츠니까... 기아 타이거즈에서 야구 센스 혹은 야구 지능이 빼어난 선수는... 이용규, 김선빈, 안치홍... 이들은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좀 떨어지는 경우는... 실명을 거론해서 좀 미안하지만... 뭐 그들이 여길 볼 일이 없으니... 나지완, 차일목, 김주형, 신종길... 한 마디로 경기 흐름을 읽고, 상황에 맞는 플레이하기... 운동선수도 학생시절 지적인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운동을 더 잘 하기 위해서라도...

서재응은 오늘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본인은 최고의 투구를 했고, 2점 차 리드 상태에서 내려갔지만, 후속 투수들을 점수를 내 주는 바람에...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해설자 김정준씨가 한 말이 참 오래 오래 남을 것 같다. '나이스 가이'라는 별명을 가진  호인 서재응. 승리를 날려도 그저 웃을 뿐인 서재응. 차라리 그가 더 자기 중심적이고, 고집이 셌다면... 후배들이 그렇게 쉽게 승을 내 주었을까... 대투수들 중엔 소위 못된 성격 소유자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사람이 좋은 것이 약점이 될 수 있고,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진리'는 야구에도 통하는 것 같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김시진 감독이 잘렸다. 성격 때문인가? 아니... 뭐. 모질다면 모진 김성근 감독도 지난 해 잘렸으니... 성적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감독 잘리는 건 성격, 성적과 상관 없는 것 같기도... 구단 임원들과 친해야 하나?

ps) 서재응이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뒀다. 결국.. 자기 힘으로 경기를 끝내야 겨우 승을 챙길 수 있는 이 불편한 진실... 서재응은 나이스 가이였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기에, 어제 승리에 대해서 그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독하지 못해서 잃은 것도 있었겠지만, 반면에 얻은 것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건이었다.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페친 은수미님이 친구의 생각이라면서 소개한 글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며, 사회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윤은 그것의 부산물.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는 괴물로 바뀌고 인간적, 사회적 가치는 제거되어야 할 악이 되었다."

거기에 달린 댓글은 대동소이한 내용들인데... 그를 대표하는 하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기업은 이윤창출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2가지 목적을 적절하게 균형있게 추구해 가야할 듯 합니다"

동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자세히 읽어보면 의미가 불확실하다.

첫번째 인용한 글에서 기업이 추구할 수 있는 목적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이윤
(2) 사회에서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드는 일
(3) 인간적-사회적 가치

글의 논리는 이렇다.
- 기업의 목적은 (2)여야 한다. (1)은 결과일 뿐이다.
-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1)만 추구하고 (3)은 제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3) "인간적-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혹시 (2)와 (3) 을 같은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나?

두번째 인용문은... "이윤창출" "사회적 책임" 두 가지를 구분하는데... 이 역시 서로 배제하는 카테고리인지 의심스럽다. 이에 대해서 기업은 "이윤창출"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라고 하면 그만이다. 요즘처럼 고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 일자리 창출, 고용 그 자체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한 책임을 감당하는 일도 없는 것 같으니 더더욱... 도대체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바르게 살기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구분은 과학 연구에 대해서도 자주 제기된다. 과학은 지식 생산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식의...

체계이론적으로 볼 때 이런 혼동은 잘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능체계는 사회 전체에 대해서 특정한 "기능"을 충족시킨다. 다른 기능체계에 대해서는 "서비스"(Leistung)을 제공한다. "기능"과 "서비스"가 구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업이 기능체계는 아니지만... 윗 구분을 가져다쓰면... 기업에게 이윤창출은 "기능"에 관련된 것으로,  사회적 책임은 "서비스"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능"과 "서비스" 사이에 균형이 잡혀야 기능적 분화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서구에선... 기능과 서비스의 균형을 맞추려 애써오고 있고 (최근엔 기능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강조점이 바뀌는 듯),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지향하던 비서구에서는 "서비스 지향성"이 강했는데 최근엔 오히려 "기능"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듯...
진지하고 깊을수록 가벼워야 한다. 어설프게 진지하고, 깊은 경우 그것을 동네방네 알린다. 진지함과 깊음이 더 진지해지고, 깊어지면... 도리어 가볍고 얕을 수 있다.  좋은 깊음은 얕음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cf. "좋은 유머는 지성의 결정체다. 반대로 좋은 지성은 유머여야만 한다.")
지금 프로야구에선 김기태 LG감독과 이만수 SK감독 간의 갈등이 화제다. 이만수 감독은 늘 좀 위태위태했다. 열정이 있고, 솔직한 것은 좋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한 팀과 팬들의 입장에서 좋게 보일 뿐이다. 상대팀, 타팀 팬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이감독은 이런 얘길 했나 보다. "야구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러니... 결국 그런 태도가 만들어 낸 일들이 쌓여 있다가 폭발한 모양이다. 기아 팬들이 선동열 감독에 갖는 불만, 불신도 그 본질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 같다. 기사를 통해서 팀내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지만... 선감독은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대화, 소통은... 결국 상대를 배려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방법이다. 반대로 상대를 무시하는 가장 손쉽고도 치명적인 방식은... 입을 닫는 일이다. 모름지기 오고 가는 의사소통이 적으면 오해는 쌓이기 마련이다. 야구는 이기기 위한 것? 글쎄... 그 이전에 야구는 사람이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아무리 뭐라해도 성적이 좋으면 결국... 다 용서가 된다는 점. 김성근 감독이 그런 경우... 어쩔 수 없다. 사람이... 결국... 그런 걸...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 퇴근한 직원들 책상을 둘러보곤한다. 무거운 내용의 책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도올선생의 '금강경강해'. 사실 모두나름대로 깊고 깊은 고민을 하며 살아갈텐데 직장에선 도무지그런 얘길 나눌 겨를이 없다. 가장 많은 대화가 오사는 점심시간에도... 70%는 하나마나한 흰소리들... 다들 알면서도 괜히 지나치게 상찰적이기 싫어서... 그녕 얇은 대화로 만족하는 것 같다. 꼭 그래야 할까?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런닝머신에서 5km를 26분 32초에 뛰다. 개인 신기록!
'우리' 도올 선생은 이런 얘기도 했다. "주색(酒色)의 절제의 공부가 곧 보약이다" ㅋㅋ


다음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올 어록'(?), 혹은 '도올 복음'(ㅎㅎ)
  • 어릴 때 배운 훌륭한 고전의 한 구절은 평생을 지배한다.
  • 인간학은 우주학이다. 
  • 학문하는 자세의 첫째는 호기심 있어야 하고. 둘째는 자존심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건강은 위대한 신비이다.
  • 동양철학서는 건강서적이기도 하다.
  • 의학의 발달이 오히려 건강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 과학의 발달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원래 가진 능력을 소멸시키기도 한다.
  • 모든 과학도 결국 인간학이다.
  • 젊은이들을 수학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 인간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바로 유학의 기본이념인 수신(修身) 정신입니다
  • 인쇄 매체는 느낌의 전달에 한계가 있지만, 언어는 느낌의 전달이 가능하다.
  • 진정한 사회의 리더는 여성적이어야 한다.
  • 문명은 모험이 없으면 사멸한다.
  • 문명을 배우되, 그것이 없더라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문명의 진화에 따라서 몸의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 인간의 모든 제도에는 어느 한 면에서 말할 수 없다. 항상 양면성(兩面性,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 인간(人間)이란 사람을 뜻하는 명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間)가 얽혀서 형성되는 인간세상, 즉 휴먼 소사이어티(Human Society)를 의미합니다. 인간(人間)은 인(人)이 아닌 인간세(人間世)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고존(孤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人)이기 전에 사이(間)의 존재인 것입니다.
  • 인간의 사회에 자유와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다.
  • 살아있는 풀 한 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
  • 역사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이러한 양태(樣態)의 변화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 완전은 불완전보다 하위개념이다. 
  •  욕은 타이밍timing, 時의 예술이다. 
  •  우리의 지식은 거의 전부가 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의없는 독단은 죽음이다.
아래 쪽에... "욕망해도 괜찮아? 아니! 늘 그런 건 아냐"라는 주제로 쓴 글에 덧붙이는 이야기... 응원군을 좀 멀리서 끌고 왔다. "중용"(中庸) 4장을 김용옥 선생이 설명한... (출처)


4장 [지미장知味章]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道가 왜 행하여지고 있지 않은지, 나는 알고 있도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도度를 넘어서서 치달려 가려고만 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마음이 천한데로 쏠려 미치지 못한다. 도道가 왜 이 세상을 밝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도다. 현명한 자들은 분수를 넘어가기를 잘하고 불초不肖한 자들은 아예 못미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시고 먹지 않는자는 없다. 그러나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맛"은 생리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문명의 소산이다.
"맛"은 인간의 감성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것이지만 가장 고도의 복합적 체계이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괘감을 "색色" 즉 성감으로 본 것은 부차적인 것을 춴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치誤置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ment이다.
"맛"은 일차적으로 미각味覺을 의미하는 것으로 입口에 속하는 것이지만, "맛"은 실제적으로 구규九竅전체의 감성에 해당한다.
맛은 이성과 감성을 매개하며 주관과 객관을 통합하며 상대와 절대를 통섭하며 인간과 하나님을 융합하는 것이다.
절제없는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없는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맛은 전문성을 문명에 제공하는 끊임없는 문화이다.

여기에서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은... "절제없는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없는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제... 절제가 필요하다. 억제, 강제, 억압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참는 게 아닌... 절제가... 절제할 때 비로소 한 계단 올라 설 수 있다.
방금 스마트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는... 그리고  좀 찔리는... 허나 그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하다는 점. 사람들의 욕망, 욕구에 부합하는 점이 있다는 점. 고용문제, 세수에 민감한 경제정책적으로 볼 때 그런 어마어마한 시장과 그 시장에서의 거래를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 그나마 이런 저런 부작용, 해로운 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개인의 절제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스스로의 책임으로...!!  결국 개인 책임의 윤리?? 책임의 윤리는 다른 차원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경우 스마트폰 제조사나 통신사 등등.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명백한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스마트폰 제조, 유통을 금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리가 필요한 것.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 그러니 좀 '알아서' '책임지는 자세로' 스마트폰에 대해서 생각해 달라.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윤리 경영!!을 선포할 수도 있다. Na und?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Non! 문제는 한 번 더 옮겨졌을 뿐이다. 윤리로 도피한 것이고... (Flucht in die Ethik als Problemverschiebung!) 윤리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인 것도 사실이다. 윤리는 의미있는 기능을 하고 있다. 변화하는 정당성 요구에 체계들이 부응하도록,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구의 경우... 체계 자체의 이상적 기능 --> 사회적 책임 요구 수용... 의 형태겠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회적 책임 요구 ---> 체계 자체의 이해 수용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순서가 바뀐 것.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루만 이론의 특징이자 내가 장점으로 생각하는 점은 양면을 동시에 관찰한다는 것이다. marked space와 unmarked space를 동시에... 우리는 "the marked"에서 시작하는데 익숙하다. 눈에 보이는 바로 그것, 존재하는 그것에서...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비존재 없이는 존재가 존재할 수 없다. 비록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그처럼 차이 -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 같은... - 에서 출발하는 루만의 이론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루만이 이론 구성에서 크게 의지했던 스펜서-브라운은 그의 책 "Laws of Form" 1장을 시작하기 전에  '노자'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을 한자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 "無名天地之始: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천지의 원천이며.."

며칠 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소개한 앙드레 모루와의 얘기가 맞아 떨어진다. "어쩌면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춘 것..."이라는...

"무엇을 하는 것, 무엇인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것, 무엇이 아닌 것"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일 수도...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나 박범신의 "은교"에선 비슷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박범신 선생은 언젠가 힐링캠프에서 오욕칠정을 너무 억누르면서 살지 마라고 했던가... 허나.. 박 선생 스스로도 무지 억누르면 살 것 같다. 그렇게 억눌린 감정을 소설로 발산하는 것 아닌가?
진실은... "욕망해도 괜찮지 않다" 혹은 "욕망을 드러낸다고 살림살이 좋아지는 것 없다" 쪽인 것 같다. 욕망이란... 드러낸다고 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욕망이지... 차라리 욕망을 절제하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욕망을 절제하면 대개 금욕적이 되고, 시야가 좁아지고, 남을 판단하게 되고... 김두식, 박범신은 그런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 같다. 욕구불만 사회의 폐해가 만만치 않으니까... 별 것도 아닌 욕망 - 그래... 사회비판도 욕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을 강제로 억압하는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uncool한가... 예를 들어 쥐그림을 처벌하는 그 쥐새끼들...  욕망을 잘게 쪼개서 문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그래야 집단적 욕구불만에 걸리지 않는다. 집단적 욕구불만, 억압된 심리가 표출되는 극단적 방식이 성폭력이고 자살이다.
과잉 억압은 절대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고 욕망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결론은...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되 가능하면 절제하는 것이 좋겠다는...다만 그것이 억압때문은 아니어야 한다는...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페이스북에도 소개했지만... 꽤 큰 충격을 준 글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춘 것"이라는 앙드레 모루아의 얘기... 그리고 그것을 소개한 송인수 선생이 덧붙인... "선한 것을 많이 감춘 사람은 아름답고, 어둔 것을 더 많이 감춘 사람은 부끄럽다"는 얘기... 그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졌다. 지금도 부끄럽고... 아마... 평생 이런 부끄러움을 갖고 살 것 같다. 원체 발산형이라기 보다는 축적형에 가까운 터라... 감춰두고 숨겨둔 것들이 많은 탓이다. 이중, 삼중, 사중...적인 내 모습을 잘 알고 있기에... 행여라도 감춰둔 모습이 들키면... 그렇게 부끄러운 것이다. 내가 감춘 것이 나라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그렇다면... 정말... 한심한데, 부끄러운데...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조금 더 괜찮은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감추어져 있던 어두운 것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선한 것을 숨기면 될까? 음... 가능할까?
블로그에 쓰는 글들은 말 그대로 자판가는대로 쓰는 글들이다. 수필... 생각거리만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서 쭈욱 써 나가면 된다. 생각을 쭈욱 밀고 나가면 된다. 생각의 속도와 글의 속도가 대개 일치하는 편이고... 글의 질을 높이려면 나중에 한 두번 더 읽고서 교정해주면 된다. 내 생각의 수준이 딱 글의 수준이고, 그래서 내가 곧 글이라고 해도 좋다.
논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 생각의 속도와 글쓰는 속도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간극을 메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쭈욱 써내려가기도 힘들 뿐더러, 표현이나 단어도 낯설다. 뭔가 써놓은 것들도... 도무지 나 같지가 않다.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무엇으로 쓰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논문형 글쓰기에 약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뭘 써야 할 지 잘 몰라서 그런지... 내 얘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지...
말로 풀어내는 건 좀 다른 것 같다. 그런 경우...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바로 그게 논문에 대한 내용일지라 하더라도... 특히, 루만, 한국 근대성 등... 내가 오랫동안 고민한 주제에 대해서는... 그런 느낌이 덜한 분야는... 안타깝게도 과학, 과학정책, 생명윤리 같은 주제들이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여전히 생경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돌이킬 수는 없는 법. 하루 빨리 이 생경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한다.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대안이 없다. 대안이... 다른 길이...
오늘 아침 커피는 실패다. 미지근한 물을 삼분의 일 정도 부은 것. 팔팔 끓는 물을 더해 보았지만... 뜨거운 커피를 맛볼 수는 없었다. '블콘블롯'(Vollkornbrot) 사이에 구다 치즈를 껴넣은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즐기려는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도... 빵은 맛있다. ㅋ
선동열 감독이 기아 타이거즈를 맡을 때 나도 적잖은 기대를 했었다. 정규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실망이 크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 것 같다. 성적이 좋았다면...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에 있을 땐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팬들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가지만 지적하면...
우선... 선수들 기를 죽이는 편이다. 강하게 키운다, 혹은 선수들과의 기싸움에서 이겨서 카리스마를 가지고 팀을 장악한다...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기아에선 팀 스피릿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선수들과 친밀한 의사소통을 잘 못하거나 안하는 것 같고, 많은 경우 언론을 통해서 선수들을 질책한다.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카리스마를 얻고, 기사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잃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선수들의 마음이다.
두번째로 번트를 지나치게 많이 댄다. 통계적으로 희생번트는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확률을 높이지 못할 뿐더러, 그보다 더 나쁜 영향은...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위축시킨다. 공격에서의 위축은 수비에서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신뢰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위축은 또 다른 위축을 낳고... 지금 그런 악순화 고리가 형성된 상태다.
모르짐직 리더는... 구성원들의 사기를 살려줘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카리스마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이 두가지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 것인가? 이는 거의 자유와 평등이 민주주의에서 균형잡힌 상태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만큼 리더쉽에선 어려운 숙제다.
안타깝게도 선동열을 그리 매력적인 리더가 못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감독은... 인격(person)이 없는 조직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그 평가의 대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인격인지도 모른다. 잘 되면 감독 탓, 못 되도 감독 탓.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다시 월요일... 지난 주말은... 어땠나... 음... 특별한 일은 없었던듯. 아. 한독사회학회 모임에 참석했던 일이... 있구나. 다음 모임에서 발표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일을 저질러야 할 듯. 역시 '사회학'이 내몸에 맞는 옷인듯.
'기능적 분화', 특히 기능체계 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보지 않고, 또 전체 통합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루만적 견해를 취하는 일이 사회분석에 얼마나 유익한지... 그런 점들을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루만도 이념형적 (idealtypisch) 견해와 경험적 관찰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혼동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런 점도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고... 루만을 교조적으로, 너무 추상적으로만 좇는 접근방식은 철저하게 배격하고...
기능적 분화의 단점과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기능체계들의 체계합리성 추구, 환경을 자기 체계의 기준으로 포섭하려는 전체화 경향이  결국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점이라면... 체계 간의 견제로 어떤 특정 체계의 독단을 막을 수 있고 기능체계의 '올바른' 작동은 개인주의, 합리성, 공공성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기능적 분화, 기능체계들의 독립분화 같은 착상은 독일 같은 지역에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전쟁이 끝나면서 오히려 더 그런 경향이 강화된 것 같다. 전체화하려는 경향에 대한 강한 거부감... 그런 지점에서 루만은 하버마스가 만나는 듯. 하버마스는 경제, 정치 같은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경향을 강조했고... 루만은 경제, 정치나 그 어떤 체계도 다른 체계를 지배하거나 규정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건 경험적 사실에 대한 분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기층에는 그러길 바라는 희망, 소망의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발전국가 주도의 근대화 시기에는 국가가 기능체계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기능체계들의 자율적 역량이 더 강화되면서, 국가는 그런 기능 체계들의 자율성을 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점진적이 상승과정은 아니다. 전진, 후퇴... 이런 과정들이 있겠지만, 그런 경향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MB 정권은 기능체계의 자율성에 관한한 심각한 정도로 퇴행적 개입을 했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했고 (물론 본질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ㅠㅠ), 앞으로 설령 큰애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더 나빠지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낙관적, 나이브한 진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학과 과학의 자율성에 관한한...국가적 개입은 DJ, 노무현 정부에서 결코 약하지 않았으며, 멩박씨에게서 더 강하지도 않았다. 여하튼 멩박씨는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약탈적' 정권 - 약탈해서 자기 배 채우기, 해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먹기... - 이었고, 뭐 국정 철학이랄게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렇단 말씀.

기능적 분화 경향의 강화를... 결코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정 체계에 의한 식민화 경향을 저지하고, 기능적 분화, 기능 체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게 바로 상식과 공정성을 세우는 방식이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막연한 낙관주의를 버려야한다. 정답은 없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할 것. 싸이처럼... 서양 꽁무니만 좇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근대적 질서는 야만을 키우고 있다. 나찌는 과거만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부정의 윤리? 그게 도움이 될까?
도덕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무도덕을 윤리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을까?
루만의 기능적 분화이론은 고전적 분업론과 다르다. 기능체계들은 단순히 기능을 사이좋게 나눠서 사회의 재생산에 기능하는 게 아니라 기능체계의 자율성은 체계들 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반드시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연규윤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다들 잘 알고있다. 무슨 어려운 이론으로 따지고 분석할 필요도 없다. 연구윤리는 더 잘 지켜져야지. 남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언급하는데... 뭐. 새롭게 언급할 이유도 없다. 이 부분은 상당히 분명하다. 과학의 내적윤리는... 상당히 분명한 부분이다. 문제의식도 분명하고, 지향해야 할 바도 분명하다. 애매한 경우들이 있지만... 그건 그 때 그 때 결정하면 된다. 그 부분은 더 강조되어야 하고, 이론의 여지가 매우 적다. 연구윤리를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 그런 점도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강조점이 좀 다를 뿐... 알려져 있긴 하다. 그것 역시 시간을 두고 변할 것이다.

어려운 점은 과학의 내적 윤리가 아니라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윤리문제다. 이 부분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새로운 윤리적 논점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문제가 문제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성폭행, 성추행 사건을 빌미로 폭증하는 한국 사회의 성적 담론은? 어쩌면 억눌렸던 성적 욕망, 상상력이 이를 빌미로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지도...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비집고 나온다. "지랄 총량 불변의 법칙"(김두식)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지랄'은 곧 꿈들대는 에너지니까... 사회에서 에너지는 결국 담론으로 표출된다. 여기서 담론이란...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다 포함한다. 전쟁, 육체적 폭력 등도 포함하는...  사회의 에너지, 혹은 담론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된다는 건... 여러 사실로 '증명'된다. 민주국가는 말싸움, 논쟁이 그것을 푸는 중요한 방식이고, 독재국가일수록 3S에 관대하고, 사회주의국가들은 서커스나 스포츠에 투자하고, 빈국들에선 스포츠나, 소수그룹 패기로 풀고... 선진국, 문명국은 그런 에너지를 합리적, 세련된 방식으로 푸는 방식이 발달된 나라들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완충장치를 다양하게 갖춘 것이다.

2012년 9월 3일 월요일

(무슨... 의식의 흐름을 좇는 초현실주의처럼...  이런 글은 떠 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놓은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 무시하시길...)

가족주의, 권위주의, 연고주의... 가 신뢰 형성을 막는다. '전근대적 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적 합리성의 기초는 개인주의다. 구조자체가 전근대적이었을 때는 우선 구조를 바꾸는 일에 집중한다. 구조를 바꾸면 문화도 바뀌리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사회의 구조적 조건에서 일부 저항을 받기는 하지만,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전근대성을 뻔뻔하게 드러내면서도 살아남는다.
특히, 전근대적 문화가 변화된 구조의 재생산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함이 드러날 때 비로소 문화 변혁에 힘이 실린다. 문화는 결코 구조 변화를 그대로 좇아가는 법이 없다. 독자적인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적 문화가 새로운 구조와 잘 지내게되면 전근대적 문화를 바꾸기는 더 힘들어진다. 대표적으로 정치계, 언론계, 조직 문화, (일상적) 친밀한 관계  등을 들 수 있겠다.
역기능을 보이는 분야들이 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선수들 (히딩크가 선수들끼리 서로 이름부르도록 한 것,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일시적, 일회적 사건이었다. 홍명보가 감독으로서 이끈 올림픽 대표팀도 위계적 질서를 중시했다고 하고... '고참의 역할' 운운하는 프로야구팀들... 선후배 관계를 확인하는... ), 과학의 경우 실험실의 권위주의, 위계적 질서 등이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 나아가 과학의 긍정적 재생산에 방해가 됨이 드러나면서... (황우석 사건), 혹은 연고주의에 의해 부정한 방식으로 취득한 학위가 경력에 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경우도 줄어들 수도 있다.
기능적 분화는 전근대적 문화와 관련해서 두 가지 경향을 동시에 종용한다. 한편으로 근대적 문화가 역기능, 혹은 구조의 지속에 불리하게 작용함이 드러나면서 근대적 문화 도입을 종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구조의 유지와 재생산에 전근대적 문화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할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 전근대적 문화는 살아남는다.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적 구조의 재생산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때 그 때 다르다.
체계이론적 접근을 통해서 우리는 구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문화의 변화 그리고 수렴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다. 오히려 근대적 구조가 전근대적 문화의 온존, 지속을 - 합법적으로 - 가능하게 만들기도 함을 보여줄 수 있다. 근대적 구조, 특히 기능 체계의 합리성은... 사회 전체에 대한 비합리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방식은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근대적 문화는 유지,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적 구조와 전근대적 문화의 친화성!!
연구윤리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닌 접근이다. 체계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절차 같은 것.
하지만 그런 연구윤리조차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전근대적 문화다.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적 구조에서도 여전히 많은 경우 효과적이고, 그래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기능체계는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조직'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네트워킹을 생각하면 더더욱...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근대사회의 기능적 분화는 조직사회라는 특징과 갈등을 빚을 때가 많다. 특히... 일관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않은 비서구 지역에서는 더더욱...
기능적 분화는 비합리적 문화가 발흥하기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억제하는 메커니즘들이... 이리 저리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것들로 지켜내기엔... 버거워 보인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가 열심히 얘기했는데 상대방은 내 이야기 이전에 그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내 얘기를 무시하거나...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모름지기 못할 때도 응원해주는게 진정한 팬아니냐는 얘길 가끔 듣는다. 주로 연패중인 팀의 선수들의 입을 통해서... 틀린 얘긴 이니나 공감하긴 힘들다. 팬이 선수와 맺는 관계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회현상을 서로 연결된 전체 속에서 보려고 애를 쓰는 사회학도로서, 특정한 입장에 기초해서 세상을 전체화하는 시도에는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생긴다. 기독교적 관점도 그에 해당한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사회학도로서의 '나'와 매우 잘 지내는데.... 교회에서 듣게 되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학도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견해 사이엔 서로 삐그덕대는 지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과연 화해시킬 수 있을까? 차라리 좀 독특한 공동체를 찾아 볼까? 물론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관계들이 있다. 에휴. 한국에서 개인주의는... 때로는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free hug' 장면을 담은 유투브 동영상을 보았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감동을 준다. 길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 Ich-Es가... 포옹을 하면서... Ich-Du가 된다.
Ich-Du 관계가 축소되는 현상...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지는 현상... 그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 편으로 '자유'를,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를 의미한다. 작은 공동체가 이상일까? 유토피아? 여유, 여가, 놀이가 있는?
"수렵채취사회에서는 일주일에 12-20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나머지는 스포츠, 예술, 음악, 춤, 제례의식을 즐긴다."
"문화적 다양성에도 붉구하고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망 중 하나는 '놀이'이다.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서도 논다. 삶의 목적과 방법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놀이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은 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놀이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빼앗긴다. 공부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보라. 죽기살기로 매달려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남들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잘 사는 게 도대체 뭔가?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 아닌가?

거대한 사회 - 심지어 세계사회 - 가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속되려면 소외, Ich-Du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놀이의 상실, 일에 대한 강박... 그것은 근대적 질서일까?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엄청난 강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역할 갈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신경쇠약, 우울증은 근대인에게 주어진 천형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긴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살아간다. 표내지 않고... 가끔씩 긴장이 풀어지면서 억눌리거나 왜고된 욕망이 억압을 뚫고서 분출되는 경우가 있다. 성폭행, 살인, 자살 등이 바로 그런 사례 아닐까? 근대인/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강박, 억압, 혼란, 갈등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런 상태의 위험상, 긴장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안철수씨가 진보/ 보수의 구분이 아닌 상식/비상식으로  구분하고 자신을 '상식파'라고 했다는데... 이는 좌우 구분과 좌우 이념 논쟁을 낡은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은 사라져서도 안되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비상식과 몰상식이 횡행하는 시기에 상식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상식은 전제이지 목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식적 좌파와 상식적 우파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