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정체성이 약한 사람일수록 집단의 정체성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문화에서는 집단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이 약한 것은 아예 문제시되지도 않는다. 사랑은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부단한 노력인데, 나를 알기도 전에 집단에 흡수되어버리면, 나와 너는 사라지고 집단 정서만 남는다. ...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히 성적인 것과 관련된 애욕의 경험이다. 그러한 감정은 일시적으로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사랑을 느끼는 대상과 유아적인 무경계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 이는 순간적인 환상일 뿐이고 곧 현실로 돌아오면 그 감정은 사라진다. ... 이는 거짓 사랑인데... 진짜 사랑의 경우엔 자아의 경계가 순간적으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한계를 확장해가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상대와 신비로운 연합의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 상대방을 알ㄹ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자아의 경계를 확장시켜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가 내 안에, 내가 상대 안에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양혜원, 2012.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69 - 70)
아내에게 선물한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다. 내 견해와 싱크로율이 한 80, 90 퍼센트는 되는 것 같다. 위 인용문은 빨간색으로 밑줄 죽 그은 부분 중 하나다.
아내에게 선물한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다. 내 견해와 싱크로율이 한 80, 90 퍼센트는 되는 것 같다. 위 인용문은 빨간색으로 밑줄 죽 그은 부분 중 하나다.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늦은 밤... 도서관... 몇 시간 동안 별로 한 게 없다. 몇 가지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 논문쓰기로 옮겨가기가 쉽지 않다. 확실하게 끊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일도 있고...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고... 지난 일이라 잊는게 맞는 일도 있고... 사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참 부끄러운 그런 소소한 일들이다. 이런 일에 매여서 시급한 일에 집중못했다는건... 사실 핑계다. 공부하기 싫은 핑계를 찾다보니 그런 일이 우연찮게 걸려든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찜찜한 마음을 안고서 귀가하게 생겼다.
Late night... in the library... During last few hours I did almost nothing fruitful. I was stuck to some iussues. On one issue it was just because of the lack of my concentration. On another issue I just need to wait till this would go by. On the third issue I just had to forget it because it already happned. Are these issues really responsible for my idling? Not really. I just needed some excused to my idling. Those issues were there by chance and used to legitimize my idling and laziness. Well, I would go home having this feeling of being ill at ease again.
Late night... in the library... During last few hours I did almost nothing fruitful. I was stuck to some iussues. On one issue it was just because of the lack of my concentration. On another issue I just need to wait till this would go by. On the third issue I just had to forget it because it already happned. Are these issues really responsible for my idling? Not really. I just needed some excused to my idling. Those issues were there by chance and used to legitimize my idling and laziness. Well, I would go home having this feeling of being ill at ease again.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인문학이 언제나 모호하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인문학자들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단순명쾌하게 자신의 전공학문의 틀에 맞춰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외부 세계의 실제 행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그들이 배운 학문적인 메커니즘을 어떻게 세계 속에 대입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제 사회 속에서 사회를 인식하는 일반적인 사람들(뭐, 이를 대중이라고 불러도 좋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간극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공부'하는 '태도'가 되어있지 않다고 엄숙하게 꾸짖기까지 하는데, 우스울 뿐이다."
"인문학자" 이택광을 비판하는 글의 일부분이다. 사회과학에 대해서는 좀 관대하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 반복과 재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학은 통계로써 실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치밀한 사고전개과정을 보여주는 논리가 인문학의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도 아닌 사회학은 통계로써 실재를 간접으로 입증한다? 사회학을 잘 모르시는 모양. 여하튼 그가 특정 유형의 인문학을 비판하는 그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에도 잘 적용된다. 사회(과)학에서의 통계적 접근은 오히려 그 밑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통계, 통계 해석은 거의 대부분이 쓰레기니까... 여하튼 사회를 이론의 틀에 맞춰서 설명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실제 사회에 대한 치밀한 관찰, 분석 없이 이론만 앵무새처럼 읊을 때 발생한다. 그러니 사실 저 비판도 초점을 제대로 잡진 못했다.
"인문학자" 이택광을 비판하는 글의 일부분이다. 사회과학에 대해서는 좀 관대하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 반복과 재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학은 통계로써 실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치밀한 사고전개과정을 보여주는 논리가 인문학의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도 아닌 사회학은 통계로써 실재를 간접으로 입증한다? 사회학을 잘 모르시는 모양. 여하튼 그가 특정 유형의 인문학을 비판하는 그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에도 잘 적용된다. 사회(과)학에서의 통계적 접근은 오히려 그 밑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통계, 통계 해석은 거의 대부분이 쓰레기니까... 여하튼 사회를 이론의 틀에 맞춰서 설명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실제 사회에 대한 치밀한 관찰, 분석 없이 이론만 앵무새처럼 읊을 때 발생한다. 그러니 사실 저 비판도 초점을 제대로 잡진 못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Since the world in all its faㅜcy wisdom never had a clue when it came to knowing God, God in his wisdom took delight in using what the world considered dumb - preaching, of all things! - to bring thosee who trust him into the way of salvation. While Jews clamor for miraculous demonstrations and Greeks go in for philosophical wisdom, we go right on proclaiming Christ, the Crucified. Jews treat this like an anti-miracle - and Greeks pass it off as absurd. But to us who are personally called by God himself - both Jews and Greeks - Christ is God's ultimate miracle and wisdom all wrapped up in one. Human wisdom is to tinny, so impotent, next to seeming absurdity of God. Human strength can't begin to compete with God's 'weakness'" (고전 1: 20? - 25)
매우 공감가는 표현... 이런 저런 학문을 모두 경험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라 더 각별하게 들린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강함은 하나님의 약함, 어리석음과 경쟁할 수도 없다.
매우 공감가는 표현... 이런 저런 학문을 모두 경험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라 더 각별하게 들린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강함은 하나님의 약함, 어리석음과 경쟁할 수도 없다.
긴 연휴를 보내고... 난 그 중 이틀 사무실에 나왔지만... 다시 사무실 그리고 월요일. 아버지까지 오셔서 모처럼 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바빠서 함께 긴 시간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여러 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좀 거리감을 갖던 딸도 다시 예전 그 친밀 모드로... 물론 얼굴을 자주 못보면 다시 돌아가려나... 여하튼 다시 정비해서 새마음으로 시작하길...
아침 6시 경에 일어나 10km 정도를 달렸다. 10월 초에 하프마라톤 대회 신청을 했고, 지난 번엔 기록도 기록이지만 체력의 문제를 느낀 터라 이번엔 좀 준비를 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뛰려고 생각 중인데, 지금까지 이 간격으로 세 번 뛰었다. 첫번째는 8km를 매우 힘들게 뛰었고, 두번째는 12km를 뛰었는데 덜 힘들었고, 오늘은 10km를 어렵게 않게 뛰었다. 중간에 따라붙는 러너가 한 명 있었는데 가볍게 제치고, 마지막 스퍼트까지... 역시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다. 꼼수는 물론 대단한 전략, 전술도 필요없다. 그저 꾸준히 달리면 되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기량을 내려면 그에 맞는 훈련을 해야겠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그냥 자주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 같다. 이젠 혼자 달릴 때면 거리, 시간도 재지 않고 그저 주위 풍경을 즐기면 달리기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Today I went run for about 10km. After "that" accident, I made up my mind not to bring my mobile phone while running. Instead I will try to enjoy the running itself and the environments, too. In early october I will participate in a marathon race. To prepare that I decided to run every two days. I've run three times after that decision. 8, 12 and 10 km. The first running was so hard. After running 8km I was so exhausted. The second running of 12km was okay. Today's 10km running was even less tough. Running seems to be one of the most honest sports. As long as you run just for hobby, you do not really need any sophiscated strategies or training plans. Just do excercise. The more you spent time in running, the stronger and faster you would be.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를 찾아 듣다. 그들의 앨범을 다 들어 보진 않아서.. 좀 편파적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혹은 목소리는 두 곡. 우선 1집(1984)의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김창남 작사, 문승현 작곡, 조경옥 노래). 작사했던 김창남은 현재 성공회대교수, 노래를 부른 조경옥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두번째 노래는 4집 (1994)의 "진달래"(이영도 작사, 한태근 작곡, 김은희 노래). 오래 전 녹음된 노래라 좀 촌스럽긴하다. 사실 노래 자체, 목소리 혹은 창법도 다 좀 촌스럽다. 그런데... 그게 매력적이다. 풋풋하고, 아련하다. 내 대학시절도 생각이 나고... 추석을 앞두고... 좀 아련해진 마음을... 아련한 노래로 위로한다. 하지만 이런 기분에 오래 빠져있을 수는 없는 일...
Another new day has just begun. Wait, wait! Another new day? No, no. You are wrong. It's a day that cannot be reapeted never again. You have to reapect and thank the day that lies before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day".
I haven't brought anything for breakfast. Recently I could feel that my belly area is swelling. That ares is called - in somewhat beautified expression - love chain. I had got some boils in internal parts of my mouth, that appears typlically when people get tired. I thought that I need more nutrition. Maybe that't the reason why I feel uncomfortable in my tight jeans.
I haven't brought anything for breakfast. Recently I could feel that my belly area is swelling. That ares is called - in somewhat beautified expression - love chain. I had got some boils in internal parts of my mouth, that appears typlically when people get tired. I thought that I need more nutrition. Maybe that't the reason why I feel uncomfortable in my tight jeans.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I announced on my and Luhmann group's facebook boards that I will quit viewing facebook before finishing my years old task at least as late as the end of this year. Even though I will visit facebook occasionally, I cannot leave any message on it. This blog will be more important.
여기까지 쓰면서 느꼈는데... 영어로 바로 쓰면 더 버벅거리게 된다. 영어 표현에서 막히니까 생각도 막히는 그런... 역시 한글로 써야 내용의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설령 영어에서 헤매더라도 다시 참조할 근거가 생기는 것 같다. 모어(母語)는 그래서 모어인듯... 지금 상태에서 영어로 바로 쓰는 건 만용이 아니라 무식한 짓인듯...
While I try to find out proper English expression, my process of thinking becomes blocked. To writen in English directly without Korean texts mean not that I am brave and corageous but foolish.
여기까지 쓰면서 느꼈는데... 영어로 바로 쓰면 더 버벅거리게 된다. 영어 표현에서 막히니까 생각도 막히는 그런... 역시 한글로 써야 내용의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설령 영어에서 헤매더라도 다시 참조할 근거가 생기는 것 같다. 모어(母語)는 그래서 모어인듯... 지금 상태에서 영어로 바로 쓰는 건 만용이 아니라 무식한 짓인듯...
While I try to find out proper English expression, my process of thinking becomes blocked. To writen in English directly without Korean texts mean not that I am brave and corageous but foolish.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갑질"을 절제함에 대해서...
갑을관계... 당연히 내게도 해당된다. 주로 "을"의 입장으로... "갑"의 입장일 때도 있다. 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 "을"의 입장에 있을 때 "갑"의 불합리한 요구, 요청, 지시에 대해서 난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편이다. 하지만 "을"이 내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경우엔 불만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 그 "을"이 어릴 경우... "갑질" "꼰대질"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을"의 "감정노동" 강도를 내가 앞장서서 높이고 싶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서비스라고 느끼게 되는 그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해야 한다. 갑을관계가 아니라 공공성, 공적 상식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문제제기를 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공공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에티켓 등이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어린, 아니 젊은 "을"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까 말까 몇 번 고민하다가 결국 참기로 한 후, 남아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한 방편으로 이곳에 털어놓는 것이다. 어차피 이젠 너무 늦었다. 갑질도 타이밍인 것을... 갑질도 해본 사람이 잘하는 것을...
흠. 이것을 영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갑질"로 찾아보니 "being bossy"라는 표현이 있네.
Being bossy is not easy. I am accustomed to play the role of subordinate. The few situations when I take the role of master are service sectors like cafeteraia, market place. Even though the services I get are not proper, enough I often hesitate to express my feeling of dissatification especially when the employee are younger than me. The idea occurs that they are suffering from emotional labour and I don't want to increase their work intensity. It means then that I shoud endure the streeses form the unsatisfactory services. I lost some chances to complain. Now it became bad timing. I have not other option that just eduring the stress. Being bossy is not my specialty.
흠. 이것을 영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갑질"로 찾아보니 "being bossy"라는 표현이 있네.
Being bossy is not easy. I am accustomed to play the role of subordinate. The few situations when I take the role of master are service sectors like cafeteraia, market place. Even though the services I get are not proper, enough I often hesitate to express my feeling of dissatification especially when the employee are younger than me. The idea occurs that they are suffering from emotional labour and I don't want to increase their work intensity. It means then that I shoud endure the streeses form the unsatisfactory services. I lost some chances to complain. Now it became bad timing. I have not other option that just eduring the stress. Being bossy is not my specialty.
I had a big lunch. Not because it was a splendid mean, but because I just ate too much. Feeling such a full stomach I just can't begin writing. Maybe I should to go to a cafeteria.
Now. I'm in a cafeteria near the library. The interior is okay. Coffe is okay only when order americano. The quality of complexer kind of coffees is very very poor. The workers who make coffee (100 miles away from barista) are not disciplined at all. Today I ordered - mistakenly - caramel mocha. It was just a well mixed sweet drink having strong chocholate taste. Maybe I should find another cafe.
Now. I'm in a cafeteria near the library. The interior is okay. Coffe is okay only when order americano. The quality of complexer kind of coffees is very very poor. The workers who make coffee (100 miles away from barista) are not disciplined at all. Today I ordered - mistakenly - caramel mocha. It was just a well mixed sweet drink having strong chocholate taste. Maybe I should find another cafe.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서울의 건축, 좋아하세요" (최준석, 2012, 휴먼아트).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서울의 여러 건축물을 소개하는데 매 건축물에 대한 글은 도입부에 그림 등 예술이야기를 꺼내고 건축이야기 하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런 구조는 전형적인 것이라 그 자체로는 낡고 촌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읽으면서 매번 긴장한다. 과연 구조의 촌스러움을 설득력있는 내용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촌스러움으로 남을지... 작가는 내공이 뭍어나오는 탄탄한 내용으로 단순하고 전형적인 구조가 갖는 위험성을 극복한다. 틈틈히 읽고 싶은...
그 중에서 '경동교회" 편을 읽으면서 든 생각...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역설적으로 김수근의 작품이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일본풍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립부여박물관도 만든... 그가 깊은 신앙심, 청명한 정신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동교회를 만들 때만큼은 그런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입구를 대로변에서 한참 돌아 들어가는 곳에 만들었다던지, 십자가 위 쪽만 창문을 내었다던지... 지금 출석하는 교회와 비교된다. 큰 길을 향해 활짝 열려져 있는 입구, 들어가자 마자 백화점처럼 바로 드러나는 계단, 왁자지껄 떠드는 일층 로비... 더할나위 없이 환한 교회. 주렁주렁매달린 스피커 소리는 대부분 너무 시끄럽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시장 속에서도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엄숙하고, 조용하고, 무거워야 성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성스러움, 교회다움이 교회건축에 어떻게 드러나야 할까. 더 고민할 주제...
그 중에서 '경동교회" 편을 읽으면서 든 생각...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역설적으로 김수근의 작품이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일본풍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립부여박물관도 만든... 그가 깊은 신앙심, 청명한 정신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동교회를 만들 때만큼은 그런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입구를 대로변에서 한참 돌아 들어가는 곳에 만들었다던지, 십자가 위 쪽만 창문을 내었다던지... 지금 출석하는 교회와 비교된다. 큰 길을 향해 활짝 열려져 있는 입구, 들어가자 마자 백화점처럼 바로 드러나는 계단, 왁자지껄 떠드는 일층 로비... 더할나위 없이 환한 교회. 주렁주렁매달린 스피커 소리는 대부분 너무 시끄럽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시장 속에서도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엄숙하고, 조용하고, 무거워야 성스러움을 더 잘 체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성스러움, 교회다움이 교회건축에 어떻게 드러나야 할까. 더 고민할 주제...
Someone is in mind. I've known him for a long time. He owes a great deal to me, a great deal to what he has acheved (...). Occasionally he expressed his appeciation to me. However, it appears that he dose not want that this would be known to others. He even appears to try to distort his career as if he has been engaged with this for a long time. Maybe he has a different opion about describing his own career than me. With my wife I had some conflicts on writing her cv. We were (and still are) different on the matter how honest and precise we should be in wrting cv. Maybe I am to conservative and sensitive whenever honesty matters. I "still" believe that honesty is the best policy. Most of Koreans might laugh at me. I don't think that this will be changed easily. Ant it's a good thing too. Das ist aber auch gut so!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채동욱, 조선일보 관련해서 나눈 이야기..
"혼외자식은 이미 알려졌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왜 명예훼손 소송을 하지 않느냐? 그 여자의 편지... 우습다. 누가 그걸 믿을까? 사생활이긴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그것이 사실이면 공직에 있기 힘들다. 처신을 잘 하던가, 그런 전력이 있으면 애초에 공직에 나서지 말았어야... "
누군가의 흠을 잡았다면 흠을 잡은 사람이 근거를 대야 한다. 근거도 제대로 대지 못하면서, 흠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전형적 '적반하장 賊反荷杖. 왜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관점, 주장이 다르다. 매일같이 라쇼몽이다.
ps) 법무부장관이 감찰하겠다고 밝혔고 한 시간 여만에 채총장은 자진사퇴했다. 자진사퇴 소식을 듣고 채총장 아들이 맞나보다 생각했고 그에 대해서 실망했다. 그런데 그가 사퇴를 발표하면서 사실무근임을 재차 강조했고,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니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그가 무척 미숙하게 혹은 순진하게 대응했다는 점. 본인은 떳떳하니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적반하장격으로 소송, 명예훼손 운운하며 길길이 날뛰다 결국 시인하고야 마는 선례와 비교될까봐 그랬을까? 어쨌건 그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길 믿고싶다. 거짓으로 드러나면 크게 실망할 것 같다.
"혼외자식은 이미 알려졌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왜 명예훼손 소송을 하지 않느냐? 그 여자의 편지... 우습다. 누가 그걸 믿을까? 사생활이긴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그것이 사실이면 공직에 있기 힘들다. 처신을 잘 하던가, 그런 전력이 있으면 애초에 공직에 나서지 말았어야... "
누군가의 흠을 잡았다면 흠을 잡은 사람이 근거를 대야 한다. 근거도 제대로 대지 못하면서, 흠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전형적 '적반하장 賊反荷杖. 왜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관점, 주장이 다르다. 매일같이 라쇼몽이다.
ps) 법무부장관이 감찰하겠다고 밝혔고 한 시간 여만에 채총장은 자진사퇴했다. 자진사퇴 소식을 듣고 채총장 아들이 맞나보다 생각했고 그에 대해서 실망했다. 그런데 그가 사퇴를 발표하면서 사실무근임을 재차 강조했고,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니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그가 무척 미숙하게 혹은 순진하게 대응했다는 점. 본인은 떳떳하니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적반하장격으로 소송, 명예훼손 운운하며 길길이 날뛰다 결국 시인하고야 마는 선례와 비교될까봐 그랬을까? 어쨌건 그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길 믿고싶다. 거짓으로 드러나면 크게 실망할 것 같다.
I just can't remind what I was going to write. About the counfusion/ perplexity I had to experience yesterday night?
The ideas came back!
Having the attitude of being frank and humble often results in negative results. When I open myself and reveal my shortcomes, my talk partners tend to show their sympathies at the very sight. However, in other occasion they try to teach (or scold or even attack) me based on my own evaluation of myeslf. My own words come back and hit me like a boomerang. Being "too" frank, humble and self-critical shoud be avoided. That's a very bad habit. It means that we cannot avoid living in solitued (to some degree). A very frustraing and bitter truht on human lives!
The ideas came back!
Having the attitude of being frank and humble often results in negative results. When I open myself and reveal my shortcomes, my talk partners tend to show their sympathies at the very sight. However, in other occasion they try to teach (or scold or even attack) me based on my own evaluation of myeslf. My own words come back and hit me like a boomerang. Being "too" frank, humble and self-critical shoud be avoided. That's a very bad habit. It means that we cannot avoid living in solitued (to some degree). A very frustraing and bitter truht on human lives!
Yesterday I went run for 14km with Mr. Kim and Mr. Kwon. The first half we ran together with the speed that exceeds my normal pace. While others even speeded up during the second half, I had to sruggle with my heavy legs and rain. I was almost exhausted as if I ran a full-course. Long-distance Running must be one of the most honest sports. There Re no tooms for tricks. The distance and speed reflect my training exactly. Clash courses are of no use. It cannot work at all.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I feel very confused today. I wont describe in detail. In most cases time is the solition. Just some key words: instincts, being young, struggle for recognition, to live cool, to live in my iwn ways, old peopel who are there to teach and scold.
ps. I thought that those poeple who always try to teach and scold others are in lack of wisdom, but I am the one who needs the wisdom to respect sincere advice even though it is bitter at first. "A good medicine tastes bitter." When everyone around me react me only with sweet words, then my (internal) teeth might all be decayed.
ps. I thought that those poeple who always try to teach and scold others are in lack of wisdom, but I am the one who needs the wisdom to respect sincere advice even though it is bitter at first. "A good medicine tastes bitter." When everyone around me react me only with sweet words, then my (internal) teeth might all be decayed.
과학 지식은 어떤 특징을 가고 있는가? 확실한 새로운 지식의 생산인가? 이 때 확실함은 확실한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우선 새롭다는 점때문에 시간의 검증을 필요로 한다. 묵은 지식은 새로운 지식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 확실성은 잠정적이다. 불확실하다. 과학은 불확실성의 기초 위에서 비로소 확실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과학을 응용, 이용하는 측면에서는 과학 지식의 여러 측면 중에서 새로움, 확실성 같은 측면에만 집중한다. 확실해야 기술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확실해야, 아니 적어도 확실하다는 이야기가 먹혀야 정치적 결정의 정당화에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참 태생적으로 매우 불안한 체계다. 위태로운...
Scientific knowledge have many aspects. Newness, tentativeness, cerntainty... Certain is scientific knowledge only tentative (provisional). However, certain certainties should be definite and unquestionable. The applicability or usefulness of scientific knowledge are based on this aspect.
과학을 응용, 이용하는 측면에서는 과학 지식의 여러 측면 중에서 새로움, 확실성 같은 측면에만 집중한다. 확실해야 기술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확실해야, 아니 적어도 확실하다는 이야기가 먹혀야 정치적 결정의 정당화에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참 태생적으로 매우 불안한 체계다. 위태로운...
Scientific knowledge have many aspects. Newness, tentativeness, cerntainty... Certain is scientific knowledge only tentative (provisional). However, certain certainties should be definite and unquestionable. The applicability or usefulness of scientific knowledge are based on this aspect.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Farewell to facebook
I just deleted the facebook icon from the bookmark of my web browser. Before doing that I removed the facebook application from my smartphone. On the board of Luhmann Group I left the message that I will be absent from facebook till about the end of this year. This is a small step that shows how desperate am I in finishing my dissertation. I hope that I could concentrate on my dissertation better.
스스로 판단하기엔 난 좀 무던하거나 무난한 편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심지어 무색무취, 혹은 우유부단한 편으로 비쳐질 것이다. 여하튼 감정기복이 심한 편은 아니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고민이 많고, 좀 쉽게 우울해지는 성향이 있었는데 그런 시기를 넘기고 나선 무난한 편이었던 것 같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한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낌없이 주는 경우엔... 의심하게 된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무엇인가를 베풀 때는 기대하는 바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 상대방이 나를 서운하게 했다면 그 원인은 대개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쉽게 얘기해서 서운하다는 건 본전 생각이 난다는 말의 그럴듯한 표현이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주는 경우... 크게 서운해 할 일도 없다. 물론 그런 태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살면서 이런 저런 감정을 화끈하게 드러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뭐. 그늘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 정도 그늘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대로 본다. 그 간극이 어찌나 큰지... 라쇼몽...팩트는 하나인가? 노우! 네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람들 간에 팩트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도 다른 팩트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기억은 여러 개다. 내가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다른 기억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사실 그게 진실에 가깝다. 하지만 진실은 그처럼 예외적인 경우, 예외적 인물에 의해서 알려질 뿐...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마치 객관적인 팩트가 있는양, 그것을 믿는 척하면서, 그런 전제 위에서 이뤄진다. 객관성은 허위의식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객관적 진리, 팩트를 의심하는 순간, 그런 믿음을 버리는 순간 우리가 얻는 것은 자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객관적 진리가 없다는 진리,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Objectivity can be supported only by the help of false consciousness(Falsches Bewußtsein) that obejctivity is possible.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No! The truth that there is no such truth shall make you free.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낌없이 주는 경우엔... 의심하게 된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무엇인가를 베풀 때는 기대하는 바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 상대방이 나를 서운하게 했다면 그 원인은 대개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쉽게 얘기해서 서운하다는 건 본전 생각이 난다는 말의 그럴듯한 표현이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주는 경우... 크게 서운해 할 일도 없다. 물론 그런 태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살면서 이런 저런 감정을 화끈하게 드러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뭐. 그늘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 정도 그늘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대로 본다. 그 간극이 어찌나 큰지... 라쇼몽...팩트는 하나인가? 노우! 네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람들 간에 팩트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도 다른 팩트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기억은 여러 개다. 내가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다른 기억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사실 그게 진실에 가깝다. 하지만 진실은 그처럼 예외적인 경우, 예외적 인물에 의해서 알려질 뿐...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마치 객관적인 팩트가 있는양, 그것을 믿는 척하면서, 그런 전제 위에서 이뤄진다. 객관성은 허위의식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객관적 진리, 팩트를 의심하는 순간, 그런 믿음을 버리는 순간 우리가 얻는 것은 자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객관적 진리가 없다는 진리,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Objectivity can be supported only by the help of false consciousness(Falsches Bewußtsein) that obejctivity is possible.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No! The truth that there is no such truth shall make you free.
I just met my mentor Dr. Kim. As usual he pointed out exactly what I had to do. I got the motivation needed. Time management! That's the point. Immersion in writing! That's what I miss. However, we met in a smoking room in a coffee shop. After an hour in a smoking room I feel very bad. Furthermore, the conflict between my wife and mother gives me an extra stress. Well. Do you think you could finish the dissertation? Maybe not by myself. But probably yes with his help. Cheer up! Be confident!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좀 지난 기사지만 갈무리해둔다.
"한국이 스웨덴보다 빈부격차 적다?…통계청 직원도 못믿는 ‘지니계수’"
기사에서 소개하는 통계 이외에 자살률, 범죄율에 통계에도 차이가 크다. 심지어 국가기관 간에도.. 이런 부실한 통계에 근거해서, 예를 들어 자살률의 급증을 논하는 연구들은 근본적 한계,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
"정부 공식 통계의 신뢰성이 약하다 보니, 해석을 두고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수를 두고 박 후보는 600만, 문 후보는 800만에 이른다고 언급했다. 박 후보는 정부 통계를, 문 후보는 노동계와 민간 연구소의 추산을 따랐다. 두 후보간 비정규직 정책의 차이는 이렇게 정책 생산의 전제인 통계의 차이에서도 비롯됐다. 비정규직 통계는 노동부가 2005년 비정규직수가 9만명 늘었는데도 37만명 감소했다고 잘못 발표해, 당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큰 홍역을 치르면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
좀 지난 기사지만 갈무리해둔다.
"한국이 스웨덴보다 빈부격차 적다?…통계청 직원도 못믿는 ‘지니계수’"
기사에서 소개하는 통계 이외에 자살률, 범죄율에 통계에도 차이가 크다. 심지어 국가기관 간에도.. 이런 부실한 통계에 근거해서, 예를 들어 자살률의 급증을 논하는 연구들은 근본적 한계,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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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식 통계의 신뢰성이 약하다 보니, 해석을 두고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수를 두고 박 후보는 600만, 문 후보는 800만에 이른다고 언급했다. 박 후보는 정부 통계를, 문 후보는 노동계와 민간 연구소의 추산을 따랐다. 두 후보간 비정규직 정책의 차이는 이렇게 정책 생산의 전제인 통계의 차이에서도 비롯됐다. 비정규직 통계는 노동부가 2005년 비정규직수가 9만명 늘었는데도 37만명 감소했다고 잘못 발표해, 당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큰 홍역을 치르면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
2013년 9월 10일 화요일
"몽골 지배기는 한민족의 반도국가가 독립성을 잃은 시기였다. ... 이 종속상태는 한민족의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문명수준을 높여 적응력이 더 높은 정체성을 빚어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 20세기 후반... 미국에 대한 종속상태가 한민족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그러나 아무리 이 종속상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도, 그 기간 중 한민족이 인권 확립과 산업 발전이라는 중요한 성취를 이룩한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보다 높은 문명 단계의 열쇠인 이 두 가지 성취가 종속 상태 덕분에 더 쉽게 이뤄진 면도 있다. ... 원나라와의 깊고 넓은 접촉을 통해 고려가 겪은 정신적 변화를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중국문명 학습에 시차가 사라진 것이다. 10세기 이후 중국의 인쇄술 발달로 중국문명의 학습이 원활해졌는데, 이제 고려의 인쇄술 자체가 첨단 수준으로 발전하여 문헌 보급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왕실과 귀족층 인원이 원나라 황도에 상주하면서 중국의 문화 발전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중국문명과 고유전통 사이의 관계를 전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몽골 전통과 중국문명을 병립시킨 원나라 문화정책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원나라 멸망 후 전통적 중국왕조라 할 수 있는 명나라와 상대하게 되었을 때 조선의 외교정책, 그리고 세종의 문화정책은 이 시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ex.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 --> 훈민정음/한글...)
" (김기협, 밖에서 본 한국사, 156f).
이런 논리를 일제 강점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뉴라이트' 역사관아닌가? 그런 면도 있음을 인정할 수는 있다. 결과적으로... 또 모든 문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기도 하다. 자주가 항상 최선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음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 아닌가?
역사를 해석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또 심지어 무섭기도 한 일이다.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갈릴 수 있으니...
" (김기협, 밖에서 본 한국사, 156f).
이런 논리를 일제 강점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뉴라이트' 역사관아닌가? 그런 면도 있음을 인정할 수는 있다. 결과적으로... 또 모든 문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기도 하다. 자주가 항상 최선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음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 아닌가?
역사를 해석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또 심지어 무섭기도 한 일이다.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갈릴 수 있으니...
페친 포스팅에 내 견해를 담아서 공유라려고 한참을 쓰다 결국 포기했다. 내 상태가 한심해 보여서... 지금 페북질이나 하고 있을 "시국"이 아니잖은가? 어젠 결국 거의 내 공부를 못했다. 아니 안했다. 집중할 수 없어서... 그리고 밤에 도저히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없어서... 사실 입 안이 헐었는데...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그렇게 열심히 산 건가? 마라톤 때문일까? 나이 탓일까? 기력이 쇠했을까? 여하튼 그런 저런 핑계로 어젠 생산성 제로였다. 오늘은 좀 달라야 할 것 아닌가? 아침부터 1시간 페북... 으이구. 이젠 끊는다. 저녁까지.
2013년 9월 9일 월요일
"나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성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왔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성서의 신관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성(reason)과 계시(revelation)라는 신학의 고전적 문제가 새롭게 다시 제기된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는 창조적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양자 사이의 대화의 역사이다. 신학은 가능한 한 둘의 거리를 좁혀 조화와 일치를 추구하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은 계시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계시는 이성의 빛에서 항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모든 신학은 시대성을 띠며 역사적 상대성을 면하기 어렵다. 무한한 실재인 신에 대한 인간의 유한한 언어는 궁극적으로 상징적, 메타포적, 유추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며, 성서의 언어까지 포함하여 신에 관한 모든 담론은 결코 문자적 진리가 될 수 없다."(길희성, 하나님을 놓아주자)
"Have you ever come on anything quite like this extravagant generosity of God, this deep, deep wisdom? It's way over our heads. We'll never figure out.
Is there anyone around who can explain God? Anayone smart enogh to tell him what to do? Anyone who has done him such a huge favor that God has to ask his advice?
Everything comes from him; Everything happens trough him; Everything ends up in him. Always glory! Always praise! Yes. Yes. Yes."(로마서 11: 33 - 36. The Message)
"Have you ever come on anything quite like this extravagant generosity of God, this deep, deep wisdom? It's way over our heads. We'll never figure out.
Is there anyone around who can explain God? Anayone smart enogh to tell him what to do? Anyone who has done him such a huge favor that God has to ask his advice?
Everything comes from him; Everything happens trough him; Everything ends up in him. Always glory! Always praise! Yes. Yes. Yes."(로마서 11: 33 - 36. The Message)
지난 주말 벌초 때문에 광주에 내려갔다 로아 외가에서 주말을 보내고 돌아왔다. 금토일 삼일을 꼬박 놀았다.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여느 월요일보다 더 어렵다. 10시 반. 지금까지 페북하고 뉴스보면서 놀았다. 이제 다시 심기일전해야 할 시간이다. 수요일까지 목표한 바가 있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힘들다. 여하튼 최대한 노력은 해야하니까..
Last weekend, we drove to Kwangju to cut the weeds around graves of our ancestors. On that occastion we spent few days with wife's family. I was ouf of work for three full days. Today it is harder to get to work than other Mondays. It's already half past ten. This morining I spent time on facebook and news. According to my plan, I have to finish three chapters till this Wendsday. Can I do it? It appears to be pessimistic. However, I must just do my best. Nothing else!
Last weekend, we drove to Kwangju to cut the weeds around graves of our ancestors. On that occastion we spent few days with wife's family. I was ouf of work for three full days. Today it is harder to get to work than other Mondays. It's already half past ten. This morining I spent time on facebook and news. According to my plan, I have to finish three chapters till this Wendsday. Can I do it? It appears to be pessimistic. However, I must just do my best. Nothing else!
페친인 저명한 사회학자가 이렇게 썼다.
"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게 사회학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요즈음 우리 사회의 모습은 혼란스러움을 넘어선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집단적으로 취소한 것이나 김조광수씨의 결혼식을 폭력적으로 방해한 것을 지켜보면, 우리 사회의 관용과 다원성이 이렇게 취약했던 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성찰의 내용엔 동의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용과 다원성이 이렇게 취약했던가"라고 "깊은 우려"를 갖는 건... 좀 아니다 싶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건 지식인의 책임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비판이 매번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면 그건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전교 1등을 못따라 잡는다고 야단만치는 선생님같다고나 할까... 단언컨대, "우리 사회의 관용과 다원성"은 2013년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이룬 성취를 인정한 토대 위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비판을 하더라도 해야한다. 실랄한 비판은 꼴찌를 자극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도높은 비판, 야단이 반복되면 그런 식의 비판은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잔소리'가 될 뿐이다.
이런 성찰의 내용엔 동의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용과 다원성이 이렇게 취약했던가"라고 "깊은 우려"를 갖는 건... 좀 아니다 싶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건 지식인의 책임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비판이 매번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면 그건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전교 1등을 못따라 잡는다고 야단만치는 선생님같다고나 할까... 단언컨대, "우리 사회의 관용과 다원성"은 2013년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이룬 성취를 인정한 토대 위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비판을 하더라도 해야한다. 실랄한 비판은 꼴찌를 자극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도높은 비판, 야단이 반복되면 그런 식의 비판은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잔소리'가 될 뿐이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2013년 9월 3일 화요일
이 정도면 가히 페이스북 중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중독을 치료하려면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 처방책이다. 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빨간 숫자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독 그 빨간 숫자가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숫자도 작고. 그렇다고 내가 많은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뭔가 동할 때 올리는 것인데... 그게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전보다 더 그렇다. 그 사이 뭐가 달라졌을까?
It is no exageration to call it "facebook addiction". "Not posting at all" might be the most effective way to cure this addiciton. Apparently I'am addicted to confirm the red numbers, which showd the numbers of comments. Recently the appearance frequency of red numbers is decreasing, so is the size of the numbers. It seems that with my thoughts I do not gain much symphaty. What happend?
2013년 9월 2일 월요일
분명히 시급한데...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괜히 페이스북이나 들낙거리고. 그나저나 내가 공유하는 글에 대해서는 '좋아요'가 극히 적다. 흠. 그다지 공감을 얻는 얘기가 아닌 모양이다. 내 취향이 독특한 걸까?
Surely it is a critical moment. However, I have some difficulties in concentrating and writing. I just wandering in innocent facebook. Recently there are only very few 'likes' to my postings. Maybe my ideas do not get much sympathy. Do I think somehow unusually?
Surely it is a critical moment. However, I have some difficulties in concentrating and writing. I just wandering in innocent facebook. Recently there are only very few 'likes' to my postings. Maybe my ideas do not get much sympathy. Do I think somehow unusually?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누누히 말했는데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열려려있다는 의미라고 했어요. 궁극적인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분에게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계속 어떤 걸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그걸 계시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뭐꼬, 522쪽)
"I have stressed again and again that the questions on God has not yet finshed. This dosen't mean that God's way is uncertain but it is open in a eschatological sense. God is relevant to eternal life. That is the reason why we should focus on HIM. HE continues to address us. We call it revelation.
"I have stressed again and again that the questions on God has not yet finshed. This dosen't mean that God's way is uncertain but it is open in a eschatological sense. God is relevant to eternal life. That is the reason why we should focus on HIM. HE continues to address us. We call it revelation.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다. 영유아 대상으로 하는 새벽기도회도 있어서 오늘 참석했다. 그런데... 영아(嬰兒)를 참석대상으로 삼는 기도회란 게 사실 좀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가고 싶어해서... 또 아이를 핑계로 가서 기도하면 되니까...
하지만 오늘 좀 씁쓸한 경험을 했다. 이 교회는 전형적인 중산층 대형교회다. 송파구, 강동구 경계에 있는데 근처에 이렇다할 대형교회가 없기도 한데다... 중산층들이 좋아할 여러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오늘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담임목사의 '안수기도' 때문...
목사의 기도가 더 영험(?)한가? 담임목사, 큰목사가 기도하면 더 큰 축복을 받는가?
그 때문인지지 너무 많은 영아, 유아, 부모 및 식구들이 참석해서 주최측(?)도 사뭇 놀란 모양. 목사님도 이 많은 아이들을 보니 언제 다 기도할지 걱정된다고 얘기하실 정도...
여하튼 안수기도 시작. 앉은 순서대로 안수기도 시작... 우리는 분명히 중간쯤에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거의 맨마지막 차례가 되어서야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었다. 거의 40,50분 기다린 듯. 서로 먼저 받고 가려는 마음들이 강했던 반면에, 순서를 배정하는 과정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독점적 축복을 받게하겠다는 부모들의 자식사랑 자체도 경쟁적이지만, 그 기도를 받는 순간 자체에 자기 자식을 먼저 들이미는 모습 또한 가관이었다.
이렇게라도 담임목사의 기도를 받아내면 축복이 임할 거라고 믿는지... 이게 도대체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슨 용한 점쟁이, 영험한 무당에게 가서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참 의심스럽다.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는 기복주의, 성공지상주의, 경쟁주의의 정수를 본 느낌이다.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정용섭님의 "기독교가 뭐꼬?"를 읽은 탓일까... 정말 이건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적 욕망, 종교심을 교회의 틀을 가지고서 충족시키는 집단적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 좀 씁쓸한 경험을 했다. 이 교회는 전형적인 중산층 대형교회다. 송파구, 강동구 경계에 있는데 근처에 이렇다할 대형교회가 없기도 한데다... 중산층들이 좋아할 여러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오늘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담임목사의 '안수기도' 때문...
목사의 기도가 더 영험(?)한가? 담임목사, 큰목사가 기도하면 더 큰 축복을 받는가?
그 때문인지지 너무 많은 영아, 유아, 부모 및 식구들이 참석해서 주최측(?)도 사뭇 놀란 모양. 목사님도 이 많은 아이들을 보니 언제 다 기도할지 걱정된다고 얘기하실 정도...
여하튼 안수기도 시작. 앉은 순서대로 안수기도 시작... 우리는 분명히 중간쯤에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거의 맨마지막 차례가 되어서야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었다. 거의 40,50분 기다린 듯. 서로 먼저 받고 가려는 마음들이 강했던 반면에, 순서를 배정하는 과정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독점적 축복을 받게하겠다는 부모들의 자식사랑 자체도 경쟁적이지만, 그 기도를 받는 순간 자체에 자기 자식을 먼저 들이미는 모습 또한 가관이었다.
이렇게라도 담임목사의 기도를 받아내면 축복이 임할 거라고 믿는지... 이게 도대체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슨 용한 점쟁이, 영험한 무당에게 가서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참 의심스럽다.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는 기복주의, 성공지상주의, 경쟁주의의 정수를 본 느낌이다.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정용섭님의 "기독교가 뭐꼬?"를 읽은 탓일까... 정말 이건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적 욕망, 종교심을 교회의 틀을 가지고서 충족시키는 집단적 행위일 뿐이다.
2013년 9월 1일 일요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정말 60-70년대에 대단했습니다. ... 복부인들.. 복덕방에 가서 아침에 계약하고 저녁에 50% 붙여서 팔곤 했습니다. 그리고 복덕방 주인들은 2-3%의 커미션을 먹고요"(기독교가 뭐꼬, 525)
사실 한국 현대사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게 훨씬 더 실감나고 사태를 더 잘 보여주는 방식일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잘하는... "룸싸롱"이라던지... 실제로 한국 부유한 계층들의 보여주는 천박성은 이런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졸부' '속물근성'이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예외적인 사례는 아닐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그런 속성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우는 어떤 다른 점이 있는 지를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천박한 졸부들... 분명 한국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사실 한국 현대사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게 훨씬 더 실감나고 사태를 더 잘 보여주는 방식일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잘하는... "룸싸롱"이라던지... 실제로 한국 부유한 계층들의 보여주는 천박성은 이런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졸부' '속물근성'이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예외적인 사례는 아닐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그런 속성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우는 어떤 다른 점이 있는 지를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천박한 졸부들... 분명 한국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