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아 칼럼 이병권의 과학산책 중에서...
"Sickness, Illness, Disease와 같은 용어들인데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Sickness는 가장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써 우리가 흔히 “아프다” “앓는다”라고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즉, 마음이 아플 수도 있고 물리적인 신체의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는, 전인적인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객관적 고통 또는 불편함을 통털어서 칭하는 단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 Sickness란 용어는 Illness와 Disease를 다 포함한다.“편하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질병(illness) 이란 단어는 정상, 안녕(well-ness)과 반대되는 용어이다. 이는 구체적인 치료(cure, treatment)의 대상으로서의 질병인 Disease와는 그 의미가 구별된다. 즉, illness는 주관적 경험이 내포되어 있으며 타인, 사회. 문화등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론적인 가치의식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흔히들 Illness를 사회적 질병, Disease를 생리학적 질병이라고도 부른다. 치료(Cure)란 용어는 Disease를 다루는 과정과 그로 인해 기대되는 효과를 말하며, 치유는 인간을 원래의 안녕well-ness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 때, 치유는 치료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질병의 치료가 치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 누가복음 17장 12-19절엔 예수가 문둥병자 열명을 치료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열명 중 한 사람 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었다고 한다. 예수는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묻고서 돌아온 이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10명이 치료를 받았으나 오직 한 사람 만이 치유된 것이다. 위 복음서 내용은 또한 1세기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사회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당시 명예와 수치는 지고한 사회/문화적 핵심 가치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질병(Disease)은 신체 기관의 이상이며 적절한 생의학적 처리(treatment)에 의해 고쳐질(cure)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는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는 의미에서의 질병(disease)이란 개념이 없었다. “아프고” “앓는” 모든 일들이 사회, 문화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복음서가 말하는 병자들을 생리적 질병에 시달리는 오늘날의 병자들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복음서의 병자들은 당시 사회/문화적 특히 종교적으로 ‘수치 (부정함)’라는 멍에를 지고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러므로 복음서가 주목하는 것은 병(disease)을 뛰어 넘어 인간에게 가해지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종교적 제한이라는 질병(Illness)이다. 치유의 본질은 인간의 삶을 해치는 아픔 (Sickness)으로부터 (그 원인이 생리적인 병disease든 사회/문화적인 병illness이든 관계없이)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되돌려 주려는 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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