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1. 오늘 멘토 2호를 만났다. 어제도 새벽 네시까지 준비했다. 물론 낮시간을 충실하게 썼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늘 그렇듯이...

2.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말로 넘기긴 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완해야하고 또... 또... 그나마 뭔가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된다니 해볼만하다. 더 집중해야 하는데... 아... 쉽지 않다. 어영부영 축내는 시간이 요즘들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정신차려!

3. 은행에 갈 일이 있었는데 간 김에 해외에서 쓸 수 있는 신용카드도 신청했다. 독일행 준비 작업 중 하나다. 여권 유교기간도 지났던데... 티켓팅을 해야 한다. 아니 그 전에 교수님과 연락을 취해야 한다. 심지어 이번 학기에 독일에 머무는지도 확인하지 않았으니...

4. Sun 덕분에 야구 관심을 좀 줄일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덜컥 물러나버렸다. 끝까지 Sun답다. 쿨하지 못하게... 떠밀려서... 나로선 좋은 일만은 아니다. 감독이 바뀌는 바람에, 그것도 나름 기대할만한 감독으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아닌가. Sun은 끝까지 도와주질 않는구만.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1. 어젠 "보고서" 작업할 게 있어서 새벽 네 시경 잠들었다. 늦게까지하려고 밤늦게 커피를 마시긴 했는데 카페인 효과가 필요이상으로 강해서 얼떨결에 그 시간까지...

2. 딸은 나에 대해선 그런게 없는데 할머니나 엄마에 대해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을 보일 때가 있다. 조금도 안 떨어지려는... 오늘은 마음먹고 하루종일 할머니에게서 붙어있던 딸을 저녁식사 전 "떼어내어" 밖으로 나갔다. 대성통곡... 한 10분 쯤. 겨우 달래서 놀다 들어옴. 흠. 이쁜 짓만 하면 그게 어디 사람일까.

3. 보고서는 덴마크 이야기인데... 잘 모르는 나라 정책 이야기를 횡성수설... 보고서 내용이야 시원찮지만 그 덕분에 배운 점, 느낀 바도 적지 않다. 심지어 마지막 부분 "시사점" 쓸 땐 내가 쓴 문장과 내용에 살짝 감동하기까지... 

4. 이제 주제를 바꿔야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흠. 이렇게 어영부영 저녁시간 보내다 가게 생겼네...

5. 신해철 씨가 돌아가셨다고... 애통한 일이다. 어쩌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보다 더 안타깝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 같기에... 그런 양반... 필요한데... 

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페친 Alexander Park님의 이야기. 생각할수록 무섭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모든것을 재현해 내는것이 아니라
몇가지 뇌에 저장된 핵심 단서들만을 조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것이라는 것이 뇌과학의 연구 결과...
기억을 너무 믿지 말라는 야그인것이다"
이런 건 꼭 다시 생각난다. 갈무리해두지 않으면 다시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물론 남에게 소개하려면 에코가 이런 이야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했는지 확인해 봐야 겠지만 일단...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고속버스티켓을 출력하려고 윈도우7이 깔린 노트북을 한 시간 가까이 붙들고 씨름해도 되질 않았다.다. 윈도우 xp가 깔린 컴에서는 얼마 전에 성공했으니까 그쪽에서 하면 될테지만 도대체 왜 안되는지 그 원인을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해당 회사에 전화까지 해 봤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지 않는다. 궁리하고 검색한 끝에 문제는 32비트와 64비트의 차이임을 알아냈다. 마침내 출력! 짜증도 나지만 뿌듯함도...
1. Begin again"을 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였다. "Inside Llewyn Davis"보다 한 세 배는 족히 더 재미있는... 마지막 해피엔딩만 아니었더라면 다섯 배까지 쳐줄 수 있었을 듯. 혹시라도 두 커플이 모두 재결합했다면? 그럼 엔딩이 망친 영화였겠지.

물론... 내 이런 평가는 그리 공정하지 못하다. 왜? 나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치와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정도 사이엔 꽤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르윈"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컸고, 반면에 "비기 어게인"에 대해서는 거의 바닥...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재미로 치면 비긴 어게인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인사이드 르윈은 즐기기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들이 훨씨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모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 소름돋았던 장면 중 하나는... 딸이 전기기타로 음악에 합류하는 장면
- 남자는 노래를 꽤 잘한다. 실제로 유명한 가수인지 찾아보고 싶을 정도...
- 마지막 해피엔딩이 좀 거슬렸다. 아 그전에 여주인공이 착한 역할, 중재자 역할을 떠맡을 때부터... 착한 영화 강박... 그나마 그 커플이 만나지 않아서 다행. 혹시라도 무대에 올라갔더라면... 끔찍...
- 두 사람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 것도 다행. 이건 "원스"에서도 감독의 의도한 바 였다고...

2. 12시가 넘으니 급피곤해진다. 오늘은 충분히 보람찬 하루였다. 잘 자요~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1. 어제는 멘토 2호로부터, 오늘은 멘토 1호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특히 멘토 1호로부터는 오랜만에 들은 긍정적 평가였다. "좋은데!" 이제 더이상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어느 길로 가야할지는 분명해진 셈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좋은 일이다. 멘토 1호 왈. 지금처럼 어디로가야할 지 고민하는 시간을 분명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물론 괴로운 시간이지만 내 관심과 지식을 들쑤셔가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너무 오래 가졌다.

2. 어제 만난 "옛동료". 그래도 여러모로 나를 챙겨주던... 올 해도 넘길 생각이나면서 타박한다. 할 말이 없다. 민망하다. 그래도 그 마음은 고맙다.

3. 오늘은 아내 생일. 고민하다가 어제 슬쩍 내민 아이템은 거부당했다. 오늘 꽤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서 겨우 선물을 샀다. 일단 난 대만족. 아내도 좋아할런지...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저녁엔 모처럼 영화도 볼 생각이다. 아. 얼마만인가..
진리는 유일하다! 유일한 하나의 진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개 진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진리가 정말 진리인지 겸손하게 고민하고 탐구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자신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그것이 진리가 아니어서는 안된다는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켜 줄 주장은 철썩같이 믿지만 그 믿음의 근거를 흔들 수 있는 주장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부인한다. 진리가 진리라면... 그따위 하찮은 몇 가지 주장, 사실들로 부정될 수도 없고, 반대로 몇 가지 주장, 사실을 진리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1. 모처럼 "옛동료들"을 만났다. 퇴임한 원장님 송별 기념으로 달리기 동호회 회원들이 모인 것이다. 반가운 얼굴들... 그렇게 어색하진 않은... 하지만 호, 불호의 감정은 감출 수가 없어서... 서로 서로에 대해서... 약간의 눈치보기, 불편함, 서운함 그런 감정들이 오감.
차를 가지고 간 탓에 앞에 놓인 족발만 열심히 먹었다. 사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유달리 맛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먹었다. 단지 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많이 하지도 않으니 더더군다나... 배가 무척 부르다. 불편한 느낌. 요즘은 배가 조금만 불러도 그렇다.

2. 멘토 2호를 오늘 만났다. 늘 그자리인 것 같지만 그래도 진전은 있다고 평가해주니 고맙고 반갑다. 내일은 멘토 1호를 만난다. 약속한 만큼 쓰질 못했다. 어젠 좀 늦게까지 해보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몸이 받혀주질 않았다. 오늘은 어떨지. 내 몸님의 처분에 따를 밖에...

3. 아빠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딸이 얘기했대서 오늘은 저녁 식사 후 일부러 딸에게 갔다. 지금은 잠을 깊게 못자고 계속 칭얼거린다. 뭐가 불편한지...
1. 아침에 컴퓨터 화면을 보는데 작은 글씨들이 잘 안보이는 것 아닌가. 착잡해졌다. 그런데 두어시간 지난 지금 확연히 좋아졌다. 아침이라서 그랬나? 마음도 조금 더 밝아졌다. 안과에 한 번 가보려고는 하는데... 그래봐야 성큼 문 앞에 다가온 노안을 돌려보내긴 힘들텐데...

2. "아빠는 로아랑 안 놀아줘." 딸이 그런 이야기를 했나보다. 오늘 오전에. 사랑은 결국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어릴수록 더 그럴테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 원리라면 원리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다시 착잡해진다.

3. 페북에 올라오는 글들 보느라 시간을 많이 뺏기지만,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냥 스스로 위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페북 때문에 알게 된 이야기, 지식들이 무척 많다. 오늘은 이 시를 알게 되었다. JTBC "학교다녀오겠습니다"란 프로그램이 있나 본데 거기에서 소개된... 먹먹해진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1. 요세미티 깔고 쓸만하게 만드느라 적지않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시간을 더 생산적인 일에 썼을 것 같진 않다. 공부총량불변의 법칙...

2. 맥북에어... 전체적으로 보아 아직 쓸만한데... 키보드감이 나빠졌다. 입력할 일이 많은 나에겐 치명적인 문제다.

3. 눈이 침침해지는 경우가 잦다. 드디어 노안이 강림하시나보다. 이렇게 육신이 먼저 나이를 먹는다.

2014년 10월 18일 토요일

1. 요세미티 업그레이드가  오래 걸렸다. 처음 해보는 클린 설치 때문이다.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런데 결국 큰 차이가 없다. 요세미티 디자인도 생각보단 별로고, 특별히 빨라지지도 그렇다고 느려지지도 않았다.

2. 어제 새벽에 딸이 우는 바람에 깬 이후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컨디션, 기분 바닥...

3. 멘토 2호 덕을 보고는 있는데 어째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상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탓이다. 부끄럽다.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극단주의는 열등감과 소외감 속에서 시작한다."

"역사적인 상실감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출현하고, 이들이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지지 기반을 얻어 성장하고, 더더욱 극단으로 나아가 건국까지 해버린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까지 설명한 '역사적 박탈감'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부터 설명할 '이슬람의 게으름'이다."

"초기 이슬람의 교리와 그 해석은 진보적이었고 세련되었다. 신자의 5대 의무에 '자선의 의무'를 넣을 정도로 경제 정의를 챙겼고, 여성을 비롯한 일반 인권의 개념을 발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예들은 여전히 오일 머니의 분배에 게으르고, 옆동네 극단주의자가 오늘 내 딸을 강간하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강간을 당하면 딸을 죽여버리는 식의 인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슬람의 신학이 그만큼 게을렀기 때문에 생긴 나비 효과다."

아래 게재한 "옳은 말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다"와 상통하는 얘기다. IS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옳은 말과 논리로 바꾸기 힘들다. 마음을 바꿔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은 이런 논리를 기독교에도 적용하고 있는데 꽤 설득력 있다.

"기독교가 극단주의를 방지했던 첫 번째 원인은 교황청이었다. 신학의 최종 해석권을 쥐고서, 너무 많이 나가버린 사람들은 이단 판정을 내리고는 파문을 던져 잘라내어버린다. 두 번째 원인은 토론이다. 정통과 이단의 사이에서는 마냥 토론이 벌어져도 용납한다. 옆동네 아랍에서 사촌인 이슬람이 발흥한 후로는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해야 할 필요도 있어서 지속적인 신학 발전이 이루어진다. 발전이 지나쳐서 이단이 되면 다시 쳐낸다. 이 사이클이 돌면서 기독교는 역사의 발전 상태를 따라가며 진화했다.

사이클의 기능이 퇴화해서 타락상이 손대기 힘들어지자, 마르틴 루터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이번엔 경쟁자로 형제가 뜬 것이니, 졌을 경우 영업상 문제가 크다. 초반엔 시아파와 수니파만큼이나 서로 물어뜯고 싸웠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세계가 되자 전쟁은 신학적인 토론과 경쟁으로 바뀐다. 세계 역사가 변화하는 만큼 구교와 신교는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한다. 

권위 있는 어르신 - 즉 정론의 존재, 그리고 토론이라는 두 가지 핵심을 통해 신학을 진화시키는 게 적응의 테크트리이건만...  기독교가 성공한 이 지점에서 이슬람은 계속 실패해왔다. 토론은 충분했으나 그 결과 지나치게 나가버린 케이스를 규제하거나 금지할 권위가 없었다. 칼리파? 그거 유명무실해진 게 언제인데. 술탄? 정치하기도 바쁜 애들인데 뭐. 이맘? 자꾸 새 학파만 만들고 뭘 바로잡는 쪽엔 약한 듯. 현재 슬슬 문제가 되고 있는 기독교 극단주의 세력 또한 같은 프로세스로 성장하고 있다. 

기독교 신교 강세의 국가 미국에서, 당연히 파문 등의 신학적으로 강력한 이단 제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흑인이나 여성의 인권/민권이 강화되고 세계 패권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상실감을 느낀 자들이 극단주의에 빠져든다. 근대 이슬람이 빠졌던 함정에 그대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이 상위 계층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정치 권력의 불균형 심화로 이어지고 정치와 경제의 사악한 결합을 낳는다.” Joseph E. Stiglitz(이순희 역),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 2013), 38면
"네덜란드인이나 네덜란드어를 가리키는 ‘더치(Dutch)’라는 영어의 표현은 네덜란드의 국가 기원보다 훨씬 오래된 유래를 지니고 있다. 로마 제국 멸망 후의 혼란된 시대에 현재의 네덜란드 지방에 거주하는 게르만족들은 ‘(동족인 게르만족의) 사람들’ 이란 뜻의 일반 명사로 ‘디에츠 diets’란 단어를 쓰고 있었으며 당시 고지 독일 지방에 거주하던 게르만족들은 ‘디우치 diutsch’란 단어를 썼고 디우치는 훗날 도이치(deutsch)로 바뀌었다. 이는 프로토-게르만어에서의 국가/사람을 뜻하던 ‘토이도 theudo’에서 내려온 단어로 게르만족을 뜻하는 튜튼(teuton)이란 단어와도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더치(dutch)와 독일인을 뜻하는 도이치(deutch)는 이러한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것이다. 한편 브리튼 섬을 정복한 앵글로색슨 족은 원래 게르만족의 일파였으나 점차 자신들은 앵글리스크(anglisc, englisc)라 지칭하고 본토 유럽 대륙의 게르만 어를 쓰는 종족들을 더치(dutch)라고 부르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라이버시'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것과 상호참조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구성체이다. (비트겐 슈타인)
 서양에서 관찰되는 60년대 말 이후 윤리, 특히 응용윤리의 부흥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한다. 그 이전엔? 도덕적, 규범적으로 꽤 안정되어있다는 이야기다.  (도덕과 규범의 차이는 무엇일까? 규범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도덕이 없다, 중요하지 않다가 아니라 도덕이 안정되어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규범적 질서와 관련해서 근, 현대사회를 탈도덕화라고 이야기하기가 뭣하다. 사실 근대사회를 도덕적 통합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보는 학자들이 적잖은데 - 특히, 체계이론 - 그건 명시적으로 그렇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근대적 규범, 가치에 대한 합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아닌가? 여하튼 60년대 말 이후 부상하는 응용윤리는 그런 기본적인 도덕적 합의만 가지고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문제와 갈등양상이 복잡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기존 규범, 가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전보다 "차이"를 더 강조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 이전엔 폭넓은 합의를 기초로 삼았다면. 하지만 이 둘의 관계에서는 연속성이 더 중요하다. 그것 없이는 새로운 윤리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전의 규범적, 도덕적 통합은 거시적 차원에서 국가주의, 제도적 민주주의 같은 것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미시적 차원에서는 유교적, 위계적, 집단적... 매우 합의 지향적이다. 자유, 개인... 이런 문화는 없다. 그나마 거시적 차원의 가치들이 지배적일 때는 이런 미시적 가치들이 덜 부각되었는데... 거시적 가치 지향이 해소되면서 오히려 미시적 가치들이 더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다. 어디에서도 근대적 가치는 - 유럽에 그 기원을 두지만 인류의 성취라도 볼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많은 -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용윤리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생명윤리. 그 핵심은 사실 자율성인데, 그런 토양 없이 구조적, 제도적 필요에 따라 그런 내용을 가진 윤리들이 들어오고 제도화된다. 그러니 그것들은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문화적 토양이 다른데 껍데기만 수렴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따라잡기는 가능할 것인가? 근대적 가치에 기반한 응용윤리들이 확산되면서 전체적인 문화적, 가치적 토양이 바뀔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구조와 문화의 차이. 문화지체! 그것인가? 따라잡을 것인가? 아니면 근대적 구조는 이러한 단순한 수렴, 따라잡기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말 궁금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도 알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청종하자면... 유럽에 기원을 둔 근대의 사회구조와 문화를 놓고 볼 때... 근대적 사회구조는 덜 매력적이지만 근대적 문화만큼은 인류의 성취로 봐야 할 것 같다. 자유, 평화, 연대, 개인, 자율성, 차이 같은 가치들... 지향하고 싶은... 그것과 반대되는 통합, 위계, 하나됨 등등은 진부하고 때로는 역겹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분명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응용윤리, 그 제도화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규범적 문화가 바뀌고 있다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응용윤리는 거기에 해당할까?

근대사회에서 규범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은 "법"에 있다. 하지만 "법"만으로 규범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 다른 규범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만능주의, 소송 과잉 현상을 보게되는 것이다. 법과 법 이외 다른 규범들이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 생명윤리 같은 응용윤리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따져보면 다양한 규범이 동시에 작동한다 (넓은 의미의 "윤리"). 법으로 형태로, 각종 지침, 제도, 조직으로 그리고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규범의 다양한 형태들 간에 공통점, 수렴 등이 있어야...


"규범"이란? 존재(sein)나 필연(Müssen)의 법칙인 自然의 法則과는 다른 인간의 사화생활에 관한 當爲로서의 規範(Sollensnorm): 법, 종교, 도덕, 관습, 예절 따위 등. 공식 규범, 비공식 규범...

규범 간의 조화는 필요한데... 어떤 기준으로 규범을 구분하고 그것들 간의 조화를 이야기할 것인가? 전통적인 방식은 강제성 여부 등을 기준으로
- 법 vs. 도덕, 관습.
- 공식적 vs. 비공식적 규범.
- 항의 규범 - 제도적 규범 (공식 규범?) (Krohn)
-  체계에 따른 규범. (체계 내적 규범의 구속력이 약하니까 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체계 내적 규범적 통합은 다양한 규범을 이용해서 이루어진다. 법, 도덕, 관습, 신뢰 등등). 이런 경우 구조적 연결이알고 할만하다. 체계는 규범적 통합을 위해서 법과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윤리와도 연결되고...  체계 간 지향하는 규범이 다를 경우에 갈등이 커진다.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옳은 말로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옳은 말로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나 역시 좌충우돌 끝에,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상처를 입은 후에 몸으로 느낀 바다. 잘 정리했다.


"사람은 생각한 뒤 변하는 것이 아니라, 느낀 뒤에 변화하는 존재다. 특히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을 때는 더욱 생각보다 느낌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고,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적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에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 없이 이성, 논리, 분석, 판단에 따른 옳은 말만 넘쳐나는 대화와 설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설령 다른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고, 누가 봐도 틀린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도 그것을 옳은 말로 함부로 지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시작한다면, 둘 사이의 대화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옳은 말로 상대를 망신 주고 불안하게 만들면 마음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버리면, 사람의 마음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만 한다. 이것이 보통의 마음 작동 법칙이다. 그런데, 사람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되면 옳은 말을 사용해서 반사적으로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교정하고자 하는 반사적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옳은 말을 해서 상대방을 바로잡아놓겠다’는 마음을 최대한 눌러놓아야 한다. 긍정적 감정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관계라면, 더욱더 마음에서 일어나는 교정 반사 욕구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손배 소송의 천국’ 한국은 이상한 후진국"


한겨레신문 기사인데 기획 의도가 이렇다.

"손잡고는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줄임말이자,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 모임입니다. <한겨레>는 손잡고와 함께 지난 6월부터 공동기획을 진행해 손배 가압류로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삶과 해당 사업장별 쟁의와 소송 진행 상황 등을 조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왔습니다. 연속 기획 마지막회로 각국의 손배 가압류 현황과 법제도를 소개합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사용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현상이 자주 관찰되는데 그런 문제에 대한 것이다. 어디 노동자 파업만 그런가. 대한민국 기득권층, 권력, 재력 따위를 가진 자들은 유독 "법"을 애정한다. 대통령을 비롯 정부도 그렇고... 소송을 아주 쉽게 낸다. 정치인들 선거치루면서 상대 후보에 대해서 소송을 내는 것도 그렇고... "소송공화국"이란 표현도 누군가 썼을 법하다. 시민운동, 저항운동도 그래서 "법" 제정 혹은 개정에 매달리는 것이다. 법이 있어야 비로소 움직이기 때문. 물론 그것이 법의 중요한 기능이고, 소송을 항의 수단으로 삼는 것 또한 선진국에서 비롯된 전통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가 심하다. 갈등 해결이나 저항의 수단으로 소송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기 보다는, 저항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소송을 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권위주의 국가 시절엔 더 손쉬운 수단이 있었다. 무력, 폭력... 민주화 이후로 차츰 "소송"이라는 더 세련된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에선 협약이나 자율규제 전통이 없다시피하다. 그러니 정치화, 사법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한국에선 그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
새물결플러스출판사. 김요한 목사님. 멋있는 분이다. 지향하는 바가 멋있고 그것을 뚝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모습도 멋있다. 나는 그렇게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글쎄...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솔직히 얘기하자면...

1. 오늘 범 대략 8시부터 12시까진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건성 보냈다. 하여 사무실에서 밤을 샐 마음을 먹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아무래도 부담이 덜하다.


4. "글쓰기는 주제다"(남영신)는 정말 탁월한 책이다. 지금 내 상황에서 매우 유익한... 그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으려 한다.

5. 생각이 너무 많다. 좀 더 과감해져야 하고, 좀 더 내 생각과 내 주장의 핵심을 끄집어 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용기다 용기. 완벽주의자에게 결핍되기 쉬운 덕목...

6.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지금은 김동률. 허나 노트북 스피커라 너무 후지다. 물론 옆 집을 생각하면 더 좋은 음질을 즐기길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7. 여하튼 모처럼 밤을 새려고 마음을 먹은 날이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고, 적잖은 나이를 먹었지만 어째 내 상황은 제자리다. 제발 그걸 뛰어 넘자고, 삶의 질을 한 단계라도 더 높이자고 지금 이러는 것 아닌가.

8. 그 분은 내 삶 따위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실 테다. 우주적 그리스도... 전 그냥 제 삶을 소박하게 살게요. 대한민국 어디 한구석에서... 소박한 삶을...  그냥 소소한 즐거움, 만족, 행복, 때로는 고민, 갈등, 슬픔... 따위를 겪으면서 말이죠. 어휴. 스케일이 얼마나 소박한지... 다행스럽게도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은 무척 낮거든요. 그러니 전 그리 많은 관심도 필요없어요. 더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가세요.

9. 페이스북에서 후배가 노안을 확인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적색과 녹색 바탕 중 녹색 바탕 위 글이 더 잘 보인다면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저하되었거나 노안이 시작된 것"이란다. 난 초록색 바탕 글이 더 잘 보인다. 그래 그럼 노안이 시작된 거냐? 그런거야? 알았다고. 놀랍지도 않아. 놀랍지 않아고... 놀랍지 않아고...... ㅠ ㅠ  흑흑...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1. 오전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아마 어제 별로 생산적이지 못했던 탓인 것 같다. 어영부영 보낸 시간이 많았고, 또 h와의 대화 내용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나 보다.

2. 도대체 뭘 쓰고 싶은지, 무슨 주제를 전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끝까지 쓸 수 없다.
언젠가 후설도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 할텐데....

" 후설은 실증주의가 의식과 대상을 실체적으로 분리시켜 사고하는 것이 철학적 오류라 비평하였다. 후설은 우리의 의식은 항상 어떤 무엇(즉 대상)을 향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상 역시 의식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대상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후설의 이러한 주장을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at)"이라고 한다. 이는 후설 철학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별을 보면서 한 쪽으로는 과학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다루면서 한 쪽으로는 예술적인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을 인식하는 주체의 지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후설은 실증주의가 객관성을 절대적으로 부각한 나머지 가치 판단과 같은 인식의 주관성을 부정함하는 것은 오류이라고 지적하였다. 후설은 "실증주의가 철학의 목을 잘랐다"고 표현하였다."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야구 승부에 대해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점수를 낼 수 있을 때 내야 한다. 상대가 무너질 때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 점수 차이가 좀 난다고 느슨하게 경기에 임하다가 나중에 호되게 당한다. 따위의... 실제로 그렇다. 모든 운동 경기가 다 그렇지만...  축구, 야구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흐름을 가져온다" 혹은 "흐름을 뺏긴다" 표현들이 그걸 가리킨다. 독립구단 감독과 야인으로서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성근 감독은 프로야구 감독 시절에는 적잖은 비난도 받았다. 상대의 약점, 헛점을 때로는 야비하게 보일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
목수가 연장 탓하는 법 아니라고 했지만 칭찬은 허용되는 일 아닌가?
Scrivener란 글쓰기 프로그램이 좋단 얘길 들었다. 한 번 쓰려고 시도해 봤는데 그 땐 그 유용성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시도해보았다. 왠걸.... 이건 신세계다. 내가 간절히 구했던 바로 그 기능들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이 없어서 제대로 못 썼다는 이야길 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 이 프로그램 덕을 단단히 볼 것 같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둘 수 있다.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어떤 종류이건 팔딱팔딱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면 그건 시퍼렇게 살아있음 보여두는 징표다. 욕망을 저주의 대상으로 삼을 일만은 아니다. 
정확한 이야기인지, 표현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충분히 상상가능한 이야기...

"아우슈비츠 담벼락에 씐 표어는 ‘정직은 인생의 보물’, ‘웅변은 은, 침묵은 금’, ‘이 건물 안에서는 모자를 벗을 것’ 따위였다. 강제수용소 시스템의 최고책임자 하인리히 히믈러의 좌우명도 ’무엇을 하든지 예절 바르게’였다..."

큰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곧잘 소소한 일로 상대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스스로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전히 발 견되는 계몽주의적인, 도덕주의적인 표어들을 참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윤리는 밀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나간다. 일단 그처럼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이야기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탈도덕적, 탈윤리적이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느니.... 각종 지켜야 할 도리를 나열하는 인간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도덕, 윤리는 매우 중요하고도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리는 그렇게 경고하는 역할 정도면 족하다. 쭉 지속되는 것은 기능적 분화다. 사회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윤리의 르네상스, 부흥, 윤리정치 같은 담론은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규범적 질서는 사회구조적 질서를 앞서지 못한다. 그저 뒤치닥거리 하는 정도...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영성
신비
재미
매력/ 끌림
차연/숭고
영원
그리움
열정
확신

지조
구원은...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냐가 중요하다. 기독교의 표준 답변인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면... 도대체 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것이고.
"죄로부터의 구원" "인간은 죄인이다" 그런 전제는 사실 확 와닿지 않는다. 동아시아 전통이 기본적 삶의 태도를 상당히 규정하고 있고, 21세기라는 시대적 조건의 제한을 받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추구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 경우 구원은 출발지점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불만족, 불안으로부터의 구원? 그렇게 볼 때 구원은 어쩌면 (잘 알진 못하지만 불교의) "해탈"과 비슷한 개념일 수도...

"우리가 구원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이 어딘가 부족한 게 있다는 걸 전제한다. 만약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런 삶의 형식들이 완전하고, 완전히 만족스럽다면 우리는 구원이니 뭐니 하면서 말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생산해내는 삶의 조건들이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 종교라는 구체적인 체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의 모든 행위를 이런 구원론적인 지평에서 확대해 나가기 마련이다.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많이 벌고, 조금 더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을 갖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노력은 자기를 구원하려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정용성, 신학공부, 78 -79)

누구나 궁극적으로는 자기구원을 추구한다. 종교인, 기독교인들도... 생태운동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구원이 아니라 타인구원, 세계구원을 추구한다고? 아니 그것 역시 자기구원의 한 형태일 따름이다. 다만 좀 더 이기적이고, 노골적인 자기구원과 구별될 뿐. 물론 그 차이는 결코 크지 않다.
"이정석, 유전공학적 구원론에 대한 신학적 논의"

흥미로운 주제다.결론은 좀 안이하지만...

"인간은 자기 존재의 신비를 하나씩 밝혀가고 있으며, 거대한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하고 그 적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를 고통과 범죄로부터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그동안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악에 있으며,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치유를 통해 해결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죄성이 해결되고 신과 같이 완전한 성품을 회복한다는 성화는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인간성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내외의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현대의 유전공학은 죄성을 결함 있는 유전인자로 규정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범죄성향을 제거하면 언젠가 완전무결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만일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기독교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죄악의 문제는 원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도 사실은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한 조상이 범한 타인의 죄를 아무 동의 없이 부과하고, 또 그 죄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인간의 내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13)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두 측면, 즉 죄책과 오염에 대하여, 죄책감(guilt)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억압상태에서 살던 종교적 시대를 탈피한 현대인은 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강박관념은 심층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인간성의 오염(corruption)은 해당 유전인자의 결함에서 유발된다고 판단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개인과 인류 전체의 그릇된 성격과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나 성령의 치료라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잘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기독교의 속죄론과 유전공학의 유전자 치유를 통한 죄성의 해결을 조화시키려는 타협적 노력도 있다. 로버트 브렁스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새 인간과 유전공학적인 새 인간의 두 비전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서 인간의 유전공학적 노력을 통하여 기독교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로날드 콜-터너도 복음서가 강조한 질병의 치유가 약화된 현대에 있어서 신학과 유전공학은 공히 인간에게 결함이 있다는데 동의하며, 결함있는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타락으로 인한 죄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속적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신과 인간은 공동창조자로서 신의 창조사역에 참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5)"
Robert A. Brungs, "Biology and the Future: A Doctrinal Agenda", Theological Studies 50(1989): Ronald Cole-Turner, The New Genesis: Theology and the Genetic Revolution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책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 공동체에게 모두 부과된 법적 형벌이기 때문에 유전자나 육체와 무관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믿고 수용할 때 죄책과 정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로움과 영적 평화가 주어진다. 칼 라너에 의하면, “생명공학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테크놀로지는 은혜의 수용이 모든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변경하지 말고 수용해야 할 은혜, 즉 우리 유전적 유산의 창조적 은혜를 방해한다.”40)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체중이 좀 늘어서 과자류 등 단 간식을 완전히 끊었다. 10일쯤 전인 것 같다. 내친 김에 식사량도 줄였고, 어젠 심지어 점심을 건너 뛰었다. 처음 며칠 중간 중간 먹고 싶은 욕망, 유혹이 불끈 솓아 오를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다. 먹을 것, 식사에 대한 강박관념, 식탐에서 조금 벗어나니 참 편하긴 하다. 얼굴이나 몸이 확실이 더 날렵해졌다. 다만 배가 유독 불룩 나와서 뱃살이 가장 늦게 빠진다더니 역시 그렇구나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배가 불룩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보여서 생각을 하다가 떠오른 장면이 기아에 굶주리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검색해보니... "기아부종"이라는데...

"북한, 에디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어린이들은 충분한 열량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단백질 등의 특정 영양소 역시 부족한 상태에요.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조직이나 장기의 세포가 위축되는 증상이 생겨요.특히 지방조직과 근육에서 즉시 나타나요.뼈만 남은 앙상한 팔과 다리가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요.하지만 배는 불룩하게 부풀어 있어요.이러한 현상을 기아 부종이라해요.이는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서 혈액 중의 단백질 함유량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태인 저단백혈증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것이에요.저단백혈증은 신체 조직의 저항력과 회복력을 약화시켜 상처의 치유를 더디게 하고 몸이 붓는 부종을 일으켜요.부종은 혈액의 단백질 농도가 낮아져 삼투압이 감소하고 그 결과 조직액이 조직공간 속에 축적되어 조직이 붓는것이에요.혈관에서 빠져나온 조직액은 림프관으로 모아져 가슴관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삼투압이 낮아져 조직액을 림프관이 흡수하지 못하면 부종이 나타나게 되는거에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단백질 공급이 평소에도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최근엔 다른 영양소에 비해서 더 줄었으니. 당장 닭가슴살과 우유를 사왔다. 칼로리 적은 단백질의 대명사 "닭가슴살"이 왜 그토록 인구에 회자되는지 그 까닭을 몸으로 확인했다.
"루시": 욕심을 너무 많이 냈다. 소재, 주제,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대책없이 판을 너무 키웠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는데. 마지막 부분 한국 "악당들"의 활약(?)에선 헛웃음만...
"군도": 역시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스타일 욕심. 그것도 흉내 낸... 타란티노 ... 뭐. 그렇게 노골적으로 베낀 경우가 없었으니 한국 맥락에서 신선한 맛이 없진 않지만... 아쉽다. 이동진 형은 타란티노 외에 한국영화 "도둑들"과 "놈놈놈"을 언급하던데...

"saiposexual"이란 단어가 있나보다. " a person sexually attracted to intelligence in others" 여느 성향처럼 누구나 다 조금씩은 가지고 있겠지만 좀 더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겠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진 않는다.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산책나왔다. 인도네시아산... 좀 쓰지만... 아니 필요하다. 어제 밤을 새다시피했으니... 

2014년 10월 1일 수요일

참 역설적인게....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정당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권에서 바로 그 이유때문에 공공성을 고려한 정책들을 화끈하게 도입했단 말이지. 박정희의 경우 의료보험제도나 그린벨트, 전두환의 경우 과외폐지 같은.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공공성에 부합한 정책을 확실하게 밀어붙인 경우도 있지. 김영삼의 금융실명제, 역사바로잡기 같은...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당성이야 있었지만 지지기반이 취약했지. 김대중은 IMF라는 위기 때문에 그나마 뭔가 해 볼 수 있었지만, 노무현 정권은... 그리고 그 다음 이명박, 박근혜... 그들은 확실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고 지지기반도 탄탄한 편이라서 노골적으로 친기업, 친기득권 정책을 화끈하게 폈지. 거리낌없이... 자신들 지지기반의 욕망을 채워주는... 공공성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1. 사무실 근처에 카페가 여럿 있다. 그 중 Japanese Cafe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곳이 있는데, 글쎄 뭐가 일본식인지 잘 모르겠지만... 커피를 포함해서 모든 메뉴 가격이 비싼 편인데, 커피 맛은 가격 대비 형편없다. 다만 일찍 열기 때문에 몇 번 들렀는데... 오늘 아침처럼... 여전히 커피 맛은 거지같고, 세트메뉴로 파는 샌드위치 맛은 더 거지같다. 이 집을 다시 이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2. 인간관계의 기본은 존중이다. 애정이나 친밀감을 보여줄 수는 없을 지라도 최소한 무시해서는 안된다. 무시받는 느낌,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배신감... 일본식 카페의 커피와 샌드위치에 잘 어울리는 기분이다. 어쩌면 이렇게 쭉 무시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렇다면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3. 사랑, 애정... 아... 얼마나 어려운가. 사랑이 뭔지는 잘 몰라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굳은 마음, 식은 마음, 따뜻하지 않은 시선... 사랑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사랑 사랑하는지 알겠다. 그만큼 사랑이 어렵고 희귀하다는 얘기다.
오늘 페북을 통해서 알게된 미국 의료법 전문 변호사의 블로그. 의대 출신으로 미국 변호사가 되었는데 그런 과정을 담은 책도 냈나보다. 온전한 한국어 문장이 아니란 점이 옥의 티지만 내용에 크게 공감해서 일부 옮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