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易老學難成
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페북은 정말이지 보물창고와 같다. 아니 쓰레기도 그만큼 많이 모여있으니 단서가 붙어야 겠다. 잘 선별해서 잘 쓰기만하면.... 다으믄 크게 공감했던 햄벨스란 페친의 글이다. 페북에 공유하긴 했지만 여기에도 갈무리해둔다.
햄벨스
12월 27일 오후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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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미숙
시장경제란 '약육강식의 장'이 아니라 인간의지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문명입니다. 여기에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정보가 각 경제 주체들 간의 경쟁을 통해 모색되고 가격의 형태로 분배됩니다. 당연하게도 양질의 정보는 그냥 유통되는게 아니라 경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문화적 기구를 운영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의 뒷받침을 받습니다. 이는 맑시즘 내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이러한 “문명화” 작용을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자본주의 초기단계를 특징짓는 시시한 사기술과 도둑질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직껏 현대 정치경제학의 법칙”입니다. 생산이 대규모로 발전할수록 사회 내부에서 기만적인 사기술이 사라지고 시장의 유지를 위해 공정성과 투명성이 높아져갑니다. 그런 맥락에서 “노동대중에 대한 사소한 도둑질을 통한 공장주들간의 경쟁은 더 이상 이득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 시간은 금이고, 특정한 상업적 도덕성이 순전히 시간과 불편함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 노동조합까지 허용되며 심지어 “(적당한 시기에) 파업을 통해서도” 자본가들의 “목적에 기여”하는 수단을 찾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소수의 손에 자본의 집중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들의 작은 경쟁자들을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분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어찌됐든 그 자체는 문명화 작용의 산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기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유통된 정보들은 상당히 신빙성 있고 유용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의 창출은 기본적으로 국가 관료제, 즉 청와대 비서실, 경제기획원, 한국경제개발연구원(KDI) 등에 의한 하향식下向式이었습니다. 맑스가 경제의 "사령관"이라 불렀던 기업가 집단, 즉 전경련, 대한상공회의, 기타의 공업회 등의 정보 창출 능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는 같은 국가 주도 경제개발을 했던 일본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일본에서는 민간기업의 기술개발이나 설비투자 동향 등 기업에서 정보가 축적되는 상향식上向式 흐름과 그에 조응하는 일본 통산성의 산업정책 수립에 의한 경제발전 방향의 조율이 이뤄집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정반대로 이뤄지죠. 다음의 사례를 보시죠.
산업화 당시 한국 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육성과 관련된 세부적인 계획과 목적을 정하고, 위의 요지를 국내 각 자동차회사에 충분히 주지시켜 각 회사로 하여금 한국형 승용차의 양산화에 대한 구상과 세목을 기재한 사업계획서를 73년 8월 5일까지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립된 정책이 민간기업에게 신뢰할 만한 정보로서 검증되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여 정부가 사실상 국유화된 은행을 동원해 마련한 국내외 자본을 기업들에게 분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적 금융이 국내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저 43.9%(1970)에서 최고 70.5%(1985)로 꾸준히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금융산업을 시종일관 국가가 통제하고 있었기에 현재까지도 한국 은행업은 "전당포" 수준을 넘지 못할정도로 수준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은행의 제1의 업무는 기업을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대출을 해주는 것인데 그런 능력을 키워본 적이 없기에 "정보"를 '판별'하지 못하고 빌려주는 액수만큼의 "담보"를 잡습니다. 이건 시장경제의 “부족”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가 유통되었기 때문에 정부가 더이상 시장경제의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의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국가의 계획은 지속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하준은 경제개발계획을 안 한다고 하는데 김영삼 시절 경제개발계획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얘기는 쏙 빼먹더군요. 한국은 더이상 국가로부터 기업들이 하청을 받아 경제를 운영할 정도로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일본식으로 정보를 수렴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는 위의 글에서 말했듯이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기업의 "생산성 격차"에서 나옵니다. 근무자 300명 이상의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16%인데 반해 근무자 1~4명 수준의 영세 기업체=자영업체에서의 비정규직 비율은 82.5%입니다. 그런데 대기업의 부가가치 생산은 중소기업의 그것의 무려 3.19배로 EU 15개국의 평균 1.6배의 거의 2배 수준입니다.
자영업체가 전체 사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2.5%이고 거기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40%를 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곧 영세기업체의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영세기업체들의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에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영세기업체의 수가 92.5%나 되는 나라는 매우 드뭅니다.
이것은 시장의 "과잉"이 아니라 "부족"의 문제입니다. 시장경제의 수준이 낮아 상인 조직이 활성화되지 않고 조직화되지 않아 아무나 약간의 영세한 자본만 있어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KDI에서 나오는 보고자료들을 봐도 자영업체로의 너무 많은 유입과 그로 인한 지나친 경쟁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저임금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질서를 세우고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생산성이 낮은 사업체는 적극적으로 도태시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질 때야 비로소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공산품 시장에 대해 말하자면 누구나 다 알듯이 한국형 산업화는 아래로부터 자생=전근대기 프로토 공업화를 통한 시장의 형성에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이식된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은 대기업이 위에서 먼저 형성되고 그에 맞춰서 아래에 산업연관적인 중소기업이 배치되는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지난 한국의 경제개발 방식이 이러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수급관계는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즉 대기업의 발전이 아무리 이뤄져도 그것이 중소기업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제조업 부분에서의 영세소기업의 증가가 정부의 지원 대상이 아닌, 국제 시장을 무대로 하는 것이 아닌, 국내 시장을 무대로 하는 자기자본을 토대로 한 창업이 주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점차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해 2013년에 17%대가 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세계시장과의 연결이라는 시장의 성장이 더 필요합니다. 그를 위한 국가의 개입 또한 필수적이겠지요.
이렇게 본다면 한국은 아직 시장이 굉장히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이 미성숙한 상태로 인해 선진국 수준의 대기업들과 중소기업의 연계가 상당히 많이 끊어져 있으며 시장에서 유용한 정보는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체 내부에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장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고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시장경제의 미숙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이며 시장경제를 성숙화시켜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보세력이 추구해야할 하나의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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