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9일 화요일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친구와 원수가 누구냐?”
“자기 자신”
그래 친구 없다 외로워말고 나와 친구하자꾸나. 아닌게 아니라 나만큼 나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어디 있으랴. 원수는... 나중에 얘기하자.
“자기 자신”
그래 친구 없다 외로워말고 나와 친구하자꾸나. 아닌게 아니라 나만큼 나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어디 있으랴. 원수는... 나중에 얘기하자.
오래된 서류를 정리하다가, 몇년 전 도서관 도서관에 출근할 무렵 - 독서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책들을 많이 빌려보게 되긴 했다. 그런저런 연유로 - 받은 "모범이용자상"의 부상이었던 "도서문화상품권" 만원권 3매를 발견했다. 이런 왕재수... 유효기간을 아직 한참 남아있지만 더 늦기 전에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필요하든 시급하지 않든 책이야 어떻게든 사는 편이라 굳이 책 사는데 쓰고 싶진 않고... 특별히 갖고 싶었던 걸 사려니 만원짜리 상품권 3매는 턱없이 모자라고...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 쉽지 않네.
ps) 결국 책을 사는데 썼다. 다만 그 상품권을 인터넷서점에서 쓸 수 있도록 바꾸는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상품권 발행 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는데.... 그것 자체가 귀찮은 일인데... 이를 위해 그 사이트는 보안 프로그램을 무려 세 개를 깔았다. 그러면서 웹브라우저를 껐다 켰다.. 이게 정녕코 IT강국인가?
ps) 결국 책을 사는데 썼다. 다만 그 상품권을 인터넷서점에서 쓸 수 있도록 바꾸는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상품권 발행 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는데.... 그것 자체가 귀찮은 일인데... 이를 위해 그 사이트는 보안 프로그램을 무려 세 개를 깔았다. 그러면서 웹브라우저를 껐다 켰다.. 이게 정녕코 IT강국인가?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흥미로운 글. 프레시안에 실린... "일본의 철도요금은 왜 그렇게 비싼가" 나중에 좀 더 꼼꼼하게 읽고 더 발췌해 둘 예정.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는 글.
"철도와 같은 거대 인프라를 책임질 민간 자본은 어떤 세력들이었을까? 바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바쿠한 체제를 지탱했던 지방 영주들 다이묘들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번을 해체하면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귀족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 귀족들에게는 지역의 광산 채굴권이나 공장 설립 등의 특혜가 주어지기도 했다. 자이바쓰(財閥), 재벌의 탄생이었다. 특히 천왕과 바쿠후의 대립 시기에 천왕 쪽에 붙었던 번의 직속 상인 그룹 미쓰이는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자 큰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 메이지 유신에 기여했던 번(藩)들을 특히 한바쓰(藩閥)라 불리는데, 바쿠한 체제에서 메이지 정부의 재벌로 재탄생한 신흥 자본가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철도는 수익을 노린 자본가들의 무분별한 투자로 급속히 확대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익을 올리지 못한 노선이 몰락하는 현상을 겪었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의 계획을 민간 자본이 수행하는 형식을 갖게 되었다. 이런 사정은 일본 자본주의가 갖는 특수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철도와 같은 거대 인프라를 책임질 민간 자본은 어떤 세력들이었을까? 바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바쿠한 체제를 지탱했던 지방 영주들 다이묘들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번을 해체하면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귀족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 귀족들에게는 지역의 광산 채굴권이나 공장 설립 등의 특혜가 주어지기도 했다. 자이바쓰(財閥), 재벌의 탄생이었다. 특히 천왕과 바쿠후의 대립 시기에 천왕 쪽에 붙었던 번의 직속 상인 그룹 미쓰이는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자 큰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 메이지 유신에 기여했던 번(藩)들을 특히 한바쓰(藩閥)라 불리는데, 바쿠한 체제에서 메이지 정부의 재벌로 재탄생한 신흥 자본가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철도는 수익을 노린 자본가들의 무분별한 투자로 급속히 확대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익을 올리지 못한 노선이 몰락하는 현상을 겪었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의 계획을 민간 자본이 수행하는 형식을 갖게 되었다. 이런 사정은 일본 자본주의가 갖는 특수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1. 영혼이 손톱만큼도 깃들지 않은 '산채비빔밥'을 먹고 왔다. 그래도 싹싹 긁어서 깨끗하게 비워냈다. 다 그런 법 아니던가.
2. 내 또래나 좀 더 나이든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놀랄 때가 있다. 나도 아는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이 젊을 때는 예뻤대다 그래서 남자들이 좋아했다나... 상상이 쉽게 가질 않는 것이다. 아. 이 사람들도 한 때 꽃다운 때가 있었겠구나 싶은 것이다. 이런 얘길를 종종 듣지만 '감히' 나 스스로를그 선상에 올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즘엔 내 또래나 심지어 선배보다 오히려 나이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드물지만 듣게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그렇게 젊음을 청춘을 잃는구나. 예를 들어 고종석 선생.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제망매가"의 저자. 분명히 그 양반의 경험에 가까울 소설... 그 민머리 중년 선생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니. 그리고 지금도 여자를 무척 밝히는 사람이라니... 더벅머리 소년과 청년에게 여성은 로맨스지만, 민머리 중년에겐 밝힘증이나 추태로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는 늙음, 나이먹어감에 관대하지 않은 것이다. '청춘예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 예전에 평생 마을 밖을 나가 볼 일이 별로 없었던 시절엔 챙겨야 할 사람이 뻔했겠지만... 그들이 사고 지평에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은 아마 셀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불가능하다. 가족, 동료들부터 저 먼 이웃에서 사고 전쟁 기아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까지... 너무 많이 안다. 신경써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의미 지평에서 끊어내지 않고서는 내가 살 수 없다. 어느 정도 선에서 끊을 것인가? 특별한, 고유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뱉는 '사람' '인간' '인권' '인류' 같은 말은 깡통이다. 속이 텅텅 빈... 어쩌랴. 그런 시늉이라도 내야 버틸 수 있는 것을...
4. 이놈의 도서관 웬 냉방을 이렇게 빵빵하게 하는지. 매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왔다. 영혼이 손톱만큼도 깃들지 않은 "칸타타 오리지날 원두커피 프리미엄 라떼 100% 아라비타 원드 블렌드". 게다가 미지근한.
2. 내 또래나 좀 더 나이든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놀랄 때가 있다. 나도 아는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이 젊을 때는 예뻤대다 그래서 남자들이 좋아했다나... 상상이 쉽게 가질 않는 것이다. 아. 이 사람들도 한 때 꽃다운 때가 있었겠구나 싶은 것이다. 이런 얘길를 종종 듣지만 '감히' 나 스스로를그 선상에 올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즘엔 내 또래나 심지어 선배보다 오히려 나이들어 보인다는 얘기를 드물지만 듣게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그렇게 젊음을 청춘을 잃는구나. 예를 들어 고종석 선생.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제망매가"의 저자. 분명히 그 양반의 경험에 가까울 소설... 그 민머리 중년 선생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니. 그리고 지금도 여자를 무척 밝히는 사람이라니... 더벅머리 소년과 청년에게 여성은 로맨스지만, 민머리 중년에겐 밝힘증이나 추태로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는 늙음, 나이먹어감에 관대하지 않은 것이다. '청춘예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 예전에 평생 마을 밖을 나가 볼 일이 별로 없었던 시절엔 챙겨야 할 사람이 뻔했겠지만... 그들이 사고 지평에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은 아마 셀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불가능하다. 가족, 동료들부터 저 먼 이웃에서 사고 전쟁 기아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까지... 너무 많이 안다. 신경써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의미 지평에서 끊어내지 않고서는 내가 살 수 없다. 어느 정도 선에서 끊을 것인가? 특별한, 고유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뱉는 '사람' '인간' '인권' '인류' 같은 말은 깡통이다. 속이 텅텅 빈... 어쩌랴. 그런 시늉이라도 내야 버틸 수 있는 것을...
4. 이놈의 도서관 웬 냉방을 이렇게 빵빵하게 하는지. 매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왔다. 영혼이 손톱만큼도 깃들지 않은 "칸타타 오리지날 원두커피 프리미엄 라떼 100% 아라비타 원드 블렌드". 게다가 미지근한.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같다"(Peter L. Berger)
버거가 뉴욕 뉴스쿨에서 공부할 때 발자크 소설로 사회학 수업을 한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 사회의 이러저러한 이면을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좋은 소설은 좋은 사회학과 같다"가 될 테지만.
여하튼 좀 다른 의미로 좋은 사회학과 좋은 소설을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제가 분명해야 하고 (때론 주제가 분명하지 않다는 분명한 주제), 그 주제가 드러나는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장인의 솜씨로 주제를 잘 요리해서 재미있고 또 읽은 후 유익이 남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면 좋은 소설, 좋은 사회학.
버거가 뉴욕 뉴스쿨에서 공부할 때 발자크 소설로 사회학 수업을 한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 사회의 이러저러한 이면을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좋은 소설은 좋은 사회학과 같다"가 될 테지만.
여하튼 좀 다른 의미로 좋은 사회학과 좋은 소설을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제가 분명해야 하고 (때론 주제가 분명하지 않다는 분명한 주제), 그 주제가 드러나는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장인의 솜씨로 주제를 잘 요리해서 재미있고 또 읽은 후 유익이 남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면 좋은 소설, 좋은 사회학.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1. 세속적, 그러니까 널리 통용되는 그렇고 그런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평가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아닌 척하다가 때로는 무의식적인지 그런 기준에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을 보는 것도 반갑지 않다. 왜?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닌 척하지만 누구도 그런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가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성공한 축에 끼고 싶다. 노골적이냐 아닌 척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적극적 부정 몸짓은 그 부정의 대상이 마음 속에 이미 억세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2. 어제 하루 '쉬고' 사무실에 나와보니 책상 위에 박사학위 논문이 놓여져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이의...
3. 사랑의 출발은 인정(認定)이다. 특정 시기, 특정한 관계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이 자연스러울 뿐, 다시 얘기해서 별 노력없이도 그냥 갖게될 뿐, 대부분의 경우 "사랑"은 적극적인 의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별로 달갑지 않은 모습도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상대가 바뀌길 원한다면 상대의 현실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이 무슨 역설인가? 상대가 바뀌길 원한다면 바뀌지 않은 현상태를 인정하고 심지어 사랑해야 한다는...
2. 어제 하루 '쉬고' 사무실에 나와보니 책상 위에 박사학위 논문이 놓여져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이의...
3. 사랑의 출발은 인정(認定)이다. 특정 시기, 특정한 관계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이 자연스러울 뿐, 다시 얘기해서 별 노력없이도 그냥 갖게될 뿐, 대부분의 경우 "사랑"은 적극적인 의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별로 달갑지 않은 모습도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상대가 바뀌길 원한다면 상대의 현실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이 무슨 역설인가? 상대가 바뀌길 원한다면 바뀌지 않은 현상태를 인정하고 심지어 사랑해야 한다는...
2014년 7월 16일 수요일
3시 12분이다. 오후가 아닌 오전... 아니 새벽.... 이럴 때를 대비해 비축해둔 "사골미역국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낮 시간은 어영부영 어찌나 잘 가는지. 긴요하지 않은 일에 한두시간, 식사 후 한두시간, 집중하지 못해 한두시간...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서 쓰는 시간이 막상 얼마되지 않는다. 모처럼 밤을 새면서 진도를 나가본다. 멘토 역할을 해주는 분과의 만남을 다시 시작했고 - 시즌 2 - 내일, 아니 오늘이 시즌 2 두번째 회 되겠다. 이번 만남을 위해서 얘기할 거리는 마련했으니 귀가해도 좋겠으나 뚜벅이인걸. 첫 차를 기다릴 밖에... 그나저나 이 드라마는 과연 시즌 2로 종영될 것인가?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Her"(그녀)를 보고: Spike Jonze, Charlie Kaufman, Michel Gondry
모처럼 영화를 보다. "Her". 우리말 제목은 "그녀". "She"가 아니고 "Her"가 제목인데엔 나름 이유가 있을텐데 우리말 제목으론 그런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특히, 이동진 형의 해설에 따르면...
동진 형의 평을 영화 보기 전에 읽어서 나름 기대를 가졌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가 별로 없다. 형의 해설은 화려하지만 딱 그만큼의 얘기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다. 평면적이다. 여전히... 평면적이다 못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무수한 영화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영화보다는 한 수 위이긴하지만... 많이 모자랐다. 몇 달만에 보는 영화로 낙점되기엔...
김독 Spike Jonze 영화 본 게 뭐 있나 찾아봤더니... 이런 "존 말코비치 되기" 감독이었다. 그 영화로 상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Her"로 받은 상이 더 많다. 심지어 오스카 각본상까지. 그 정도는 아닌데.... ㅠㅠ
"존 말코비치 되기"는 자신의 각본이 아니다. Charlie Kaufman. 그는 Michel Gondry이 감독을 맡은 "Human nature"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 셋은 이래저래 얽히고, 그 탓인지 세 영화가 서로 연결점을 갖는 것 같다. 동진형은 "Eternal..."을 연상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백배는 더 "Human nature"와 가깝다. 다만 그보다 상상력이 한 열배쯤 떨어진... 예전에 이 블로그에 썼던 "Human nature" 감상평을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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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Nature (2001) Michel Gondry
주연: Tim Robbins, Patricia Arquette, Rhys Ifans
각본: Charlie Kaufman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베니스, 토론토를 비롯해 전 세계 38개 영화제에서 88개 부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41개 상을 수상한 화제작 '존 말코비치 되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이때 받은 상의 갯수만 해도 열 셋. '존 말코비치 되기'가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 작가로 불리게 해줬다면, 두번째 야심작 '휴먼 네이쳐'는 그를 세계 최정상 시나리오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CF로 기네스 북에 오른 리바이스 'Drugstore'를 연출한 미셸 곤드리 감독은 헐리우드의 초대형 러브 콜을 마다하고, '휴먼 네이쳐'를 그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성 멘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실제로 그리 좋지 않았다. 언급할만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대중의 평가도 박한 편이었다 (imdb에서는 6.2/10 를 받았고 한국 cineline 에서도 비슷한 6/10을 받았다. 난 7.5/10 정도는 주고 싶다.). 하지만 곤드리 감독과 카우프만은 새로운 영화에서 한 번 더 손을 잡는데, 그것이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이 두번째 합작 영화는 오스카 각본상을 비롯 모두 36 개의 상을 받는 등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imdb user rating도 8.5/10로 최상위급에 속함.). 난 개인적으로 'Eternal Sunshine'보다 'Human Natue'를 더 재미있게 봤다. 'Eternal sunshine'은 서로 다른 기억이 충돌하는 것을 절묘하게 화면으로 표현하는 등 연출력이 뛰어나고, 전체적으로 보아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소재가 주는 충격이 좀 덜하다. 인간 기억의 고장 혹은 인위적 개입으로 삶이 뒤죽박죽되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적지 않고, 그런 소재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들도 여럿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human nature' 는 'Eternal'보다 엉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재료를 깔끔하게 잘 요리했고, 또 마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뤄서 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비인간의 경계 설정".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이거 왠일인가, 마구 마구 귀찮아진다. 그래서 줄거리 요약은 과감히 생략. 도대체 난 이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왜 블로그를 만들어 애써 흔적을 남기려는걸까? 몇 명이나 읽을 거라고... 그 이유는 ... 영화 조달(?)하고, 보는 데 나름 적지 않은 노력, 시간을 들이니까, 거기서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다. Anyway,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인간본성에 대한 영화다. 인간은 어떤 본성/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인간이려면 이 본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동물과 인간의 구별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처리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영화는 이런 류의 질문을 시종일관 던진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일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혹은, 침팬지들)은 없을 것이다. 경계 설정을 문제삼으려고 하면 그러니까 다른 접근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어느 한 범주에 넣기 애매한 잡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여러 유형의 경계문제를 논하는 학술적 논의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이 영화의 경우, 온 몸에 털이 나는 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숲 속에서 태어나 동물처럼 자란 존재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다른 한 편 매우 '인간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에티켓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의 필수조건이라고 믿으며, 쥐실험(자세한 내용 생략, 혹시라도 앞으로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을 통해 그런 인간성은 학습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생물학자. 그를 중심으로 물고 물리는 인간/비인간 (혹은 덜 인간)들의 관계. 에티켓을 신봉하는 그도 하지만 성욕의 노예이긴 마찬가지. 다만 '덜 인간' 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을 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참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았고, 때로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 장치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오히려 '참 인간'인지도... (cf.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끝부분에 귀여운 반전이 있음도 언급해 두고 싶다 (그게 없었으면 싱겁게 끝날 뻔 했다). 결론적으로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인간인가? 본능, nature 만 따지자면 인간도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어야 인간이다. 본능을 '인간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나름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정도인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 Tim Robbins도 좋지만 연기하기 훨씬 더 어려웠을 털복숭이 여자역을 잘 소화한 Patricia Arquette가 더 강하게 남는다.
"결국 그런 면에서 보면 원제가 왜 'she'가 아니라 'her'인지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동진 형의 평을 영화 보기 전에 읽어서 나름 기대를 가졌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가 별로 없다. 형의 해설은 화려하지만 딱 그만큼의 얘기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다. 평면적이다. 여전히... 평면적이다 못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무수한 영화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영화보다는 한 수 위이긴하지만... 많이 모자랐다. 몇 달만에 보는 영화로 낙점되기엔...
김독 Spike Jonze 영화 본 게 뭐 있나 찾아봤더니... 이런 "존 말코비치 되기" 감독이었다. 그 영화로 상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Her"로 받은 상이 더 많다. 심지어 오스카 각본상까지. 그 정도는 아닌데.... ㅠㅠ
"존 말코비치 되기"는 자신의 각본이 아니다. Charlie Kaufman. 그는 Michel Gondry이 감독을 맡은 "Human nature"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 셋은 이래저래 얽히고, 그 탓인지 세 영화가 서로 연결점을 갖는 것 같다. 동진형은 "Eternal..."을 연상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백배는 더 "Human nature"와 가깝다. 다만 그보다 상상력이 한 열배쯤 떨어진... 예전에 이 블로그에 썼던 "Human nature" 감상평을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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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Nature (2001) Michel Gondry
주연: Tim Robbins, Patricia Arquette, Rhys Ifans
각본: Charlie Kaufman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베니스, 토론토를 비롯해 전 세계 38개 영화제에서 88개 부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41개 상을 수상한 화제작 '존 말코비치 되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이때 받은 상의 갯수만 해도 열 셋. '존 말코비치 되기'가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 작가로 불리게 해줬다면, 두번째 야심작 '휴먼 네이쳐'는 그를 세계 최정상 시나리오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CF로 기네스 북에 오른 리바이스 'Drugstore'를 연출한 미셸 곤드리 감독은 헐리우드의 초대형 러브 콜을 마다하고, '휴먼 네이쳐'를 그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성 멘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실제로 그리 좋지 않았다. 언급할만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대중의 평가도 박한 편이었다 (imdb에서는 6.2/10 를 받았고 한국 cineline 에서도 비슷한 6/10을 받았다. 난 7.5/10 정도는 주고 싶다.). 하지만 곤드리 감독과 카우프만은 새로운 영화에서 한 번 더 손을 잡는데, 그것이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이 두번째 합작 영화는 오스카 각본상을 비롯 모두 36 개의 상을 받는 등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imdb user rating도 8.5/10로 최상위급에 속함.). 난 개인적으로 'Eternal Sunshine'보다 'Human Natue'를 더 재미있게 봤다. 'Eternal sunshine'은 서로 다른 기억이 충돌하는 것을 절묘하게 화면으로 표현하는 등 연출력이 뛰어나고, 전체적으로 보아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소재가 주는 충격이 좀 덜하다. 인간 기억의 고장 혹은 인위적 개입으로 삶이 뒤죽박죽되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적지 않고, 그런 소재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들도 여럿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human nature' 는 'Eternal'보다 엉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재료를 깔끔하게 잘 요리했고, 또 마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뤄서 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비인간의 경계 설정".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이거 왠일인가, 마구 마구 귀찮아진다. 그래서 줄거리 요약은 과감히 생략. 도대체 난 이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왜 블로그를 만들어 애써 흔적을 남기려는걸까? 몇 명이나 읽을 거라고... 그 이유는 ... 영화 조달(?)하고, 보는 데 나름 적지 않은 노력, 시간을 들이니까, 거기서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다. Anyway,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인간본성에 대한 영화다. 인간은 어떤 본성/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인간이려면 이 본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동물과 인간의 구별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처리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영화는 이런 류의 질문을 시종일관 던진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일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혹은, 침팬지들)은 없을 것이다. 경계 설정을 문제삼으려고 하면 그러니까 다른 접근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어느 한 범주에 넣기 애매한 잡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여러 유형의 경계문제를 논하는 학술적 논의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이 영화의 경우, 온 몸에 털이 나는 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숲 속에서 태어나 동물처럼 자란 존재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다른 한 편 매우 '인간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에티켓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의 필수조건이라고 믿으며, 쥐실험(자세한 내용 생략, 혹시라도 앞으로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을 통해 그런 인간성은 학습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생물학자. 그를 중심으로 물고 물리는 인간/비인간 (혹은 덜 인간)들의 관계. 에티켓을 신봉하는 그도 하지만 성욕의 노예이긴 마찬가지. 다만 '덜 인간' 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을 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참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았고, 때로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 장치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오히려 '참 인간'인지도... (cf.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끝부분에 귀여운 반전이 있음도 언급해 두고 싶다 (그게 없었으면 싱겁게 끝날 뻔 했다). 결론적으로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인간인가? 본능, nature 만 따지자면 인간도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어야 인간이다. 본능을 '인간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나름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정도인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 Tim Robbins도 좋지만 연기하기 훨씬 더 어려웠을 털복숭이 여자역을 잘 소화한 Patricia Arquette가 더 강하게 남는다.
전체주의 정치와 과학자의 자유, 작가의 자유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책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 중 글쓰기를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몇 편되지 않는다. 책을 반납하기 전에 나머지 글들을 시큰둥하게 들추다 흥미로운 에세이를 발견했다. "문학 예방"(The Prevention of Literature). '예방'이란 번역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엇으로부터의 예방인지가 중요한데... 전체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문학의 자유를 보호하자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막상 내 눈에 띈 구절은 과학자의 자유에 대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많은 과학자들이 소련을 무비판적으로 찬탄한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연구 분야가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자유가 말살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소련은 급속도로 개발 중인 대국이라 과학 종사자가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그래서 그들을 후하게 대해준다. 과학자들은 심리학 같은 위험한 분야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에 비해 작가들은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 전체주의 국가는 당장은 과학자들에 관대하다.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치 독일에서도 과학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상 비교적 우대를 받았고, 독일 과학계는 전반적으로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역사의 지금 단계에서는 아무리 독재적인 통치자라 할지라도 물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자유주의적 사고 습관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고,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물리적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한, 이를테면 비행기 설계도를 그릴 때 2 더하기 2는 4가 되어야 하는 한, 과학자는 나름의 쓸모가 있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유까지 허용해줄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나중에, 전체주의 국가가 완전히 확립될 때에나 각성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사이 과학을 온전히 지키고 싶다면, 그가 할 일은 문학계의 동료들과 모종의 연대를 발전시키는 거이며, 작가들이 침묵당하거나 자살로 내몰리고 신문 기사들이 날조될 때 무심하게 념겨버리지 않는 것이다." (238 - 240).
아 그리고 이 책에는 더 본격적으로 과학을 다룬 글도 실려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Science?)
"...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 민족주의를 견디는 능력이 그렇다.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이란 말을 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독일의 과학계 전반은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 과학계의 장기적 전망을 망쳐버렸는지는 모르나, 합성석유나 제트기, 로켓, 원자탄 같은 것들에 대하여 필요한 연구를 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군수품들을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 수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인종 과학'이라는 만행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모양새만 조금 다를 뿐, 같은 광경이 어디에서나 펼쳐지고 있다. 영국에선 앞서가는 과학자들 중 다수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시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217- 218)
"예를 들어 많은 과학자들이 소련을 무비판적으로 찬탄한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연구 분야가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자유가 말살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소련은 급속도로 개발 중인 대국이라 과학 종사자가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그래서 그들을 후하게 대해준다. 과학자들은 심리학 같은 위험한 분야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에 비해 작가들은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 전체주의 국가는 당장은 과학자들에 관대하다.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치 독일에서도 과학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상 비교적 우대를 받았고, 독일 과학계는 전반적으로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역사의 지금 단계에서는 아무리 독재적인 통치자라 할지라도 물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자유주의적 사고 습관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고,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물리적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한, 이를테면 비행기 설계도를 그릴 때 2 더하기 2는 4가 되어야 하는 한, 과학자는 나름의 쓸모가 있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유까지 허용해줄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나중에, 전체주의 국가가 완전히 확립될 때에나 각성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사이 과학을 온전히 지키고 싶다면, 그가 할 일은 문학계의 동료들과 모종의 연대를 발전시키는 거이며, 작가들이 침묵당하거나 자살로 내몰리고 신문 기사들이 날조될 때 무심하게 념겨버리지 않는 것이다." (238 - 240).
아 그리고 이 책에는 더 본격적으로 과학을 다룬 글도 실려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Science?)
"...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 민족주의를 견디는 능력이 그렇다.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이란 말을 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독일의 과학계 전반은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 과학계의 장기적 전망을 망쳐버렸는지는 모르나, 합성석유나 제트기, 로켓, 원자탄 같은 것들에 대하여 필요한 연구를 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군수품들을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 수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인종 과학'이라는 만행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모양새만 조금 다를 뿐, 같은 광경이 어디에서나 펼쳐지고 있다. 영국에선 앞서가는 과학자들 중 다수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시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217- 218)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죽음 소식을 접할 때 가슴이 가장 뜨거워지는 것 같다. 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에 등장하는 존엄사 이야기 때문에, 오늘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죽어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사진 때문에... 동물의 죽음 때문에 그런 적도 많다. 생명... 가장 소중하다. 유일하니까. 반복될 수 없으니까. 만개하지 못하고 사그라든 그 잠재된 힘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으니까. 생명의 정지인 죽음은 어떤 경우이건 특별한 종교적, 우주적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죽음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끄는 죽음이 있다. 그것을 따져보면 나란 인간의 특징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하는 어떤 죽음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덤덤한 경우가 있고,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띄엄띄엄 읽고있다. 글쎄 썩 매력적인 책은 아니다. 원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쓰려고 했는데 출판시장의 반응을 고려해서 제목과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인지 죽음을 직접 다룬 부분도 적지 않다. 감정이 썩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매번 울컥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존엄사' 이야기다. 존엄하게 죽기로 결단하는 사람들 이야기.
"지금은 존언함 삶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해야 마땅한 세상이다"(128) "생명은 존엄하다. 그러나 죽음 역시 존엄해야 한다"(130) "원칙적으로 볼 때, 죽기 위해서 국가나 사회의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본질적으로 나의 자유이며 권리이다. 국가는 나를 죽일 권한이 없으며 살라고 명령할 권한도 없다.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삶에 대해서든 죽음에 대해서든 국가나 사회가 나의 의사 결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자기 방식대로 죽는 것은 만인에게 주어진 자연법적 권리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법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죽는다."(131)
"감각은 죽고 의식 혼자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자아는 감각과 정신, 욕망과 이성의 통일이다. 운동이 멈춘 후에 존재하는 의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130)
정신, 의지가 없는 육신...
분명 윤리(학)적 주제인데... 글쎄 연구 측면에서 파고 들고 싶은 영역,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존엄사. 흠. 많이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긴 한데. 죽음 자체가 그렇지만.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사회학자들의 접근은 대개 그런 식인데...
죽음....
"지금은 존언함 삶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해야 마땅한 세상이다"(128) "생명은 존엄하다. 그러나 죽음 역시 존엄해야 한다"(130) "원칙적으로 볼 때, 죽기 위해서 국가나 사회의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본질적으로 나의 자유이며 권리이다. 국가는 나를 죽일 권한이 없으며 살라고 명령할 권한도 없다.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삶에 대해서든 죽음에 대해서든 국가나 사회가 나의 의사 결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자기 방식대로 죽는 것은 만인에게 주어진 자연법적 권리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법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죽는다."(131)
"감각은 죽고 의식 혼자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자아는 감각과 정신, 욕망과 이성의 통일이다. 운동이 멈춘 후에 존재하는 의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130)
정신, 의지가 없는 육신...
분명 윤리(학)적 주제인데... 글쎄 연구 측면에서 파고 들고 싶은 영역,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존엄사. 흠. 많이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긴 한데. 죽음 자체가 그렇지만.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사회학자들의 접근은 대개 그런 식인데...
죽음....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조지 오웰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에서 '나는 왜 쓰는가'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더 도움이 되는 글은 '정치와 영어', 그리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우선 '정치와 영어' 중에서..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 나쁜 습관... (...)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 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256쪽)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 '애국적인', '현실적인', '정의' 같은 단어는 각각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다른 뜻을 여러 개씩 가지고 있는 경우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경우, 합의된 정의란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면 사방팔방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 (...)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의식적으로 부정직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해 사용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름의 정의는 있지만, 듣는 사람이 그와는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더라도 묵인하는 것이다. (...) 그밖에도 여러 뜻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속임수에 가깝게 쓰는 단어로는 '계급', '전체주의', '과학', '진보적인', '반동적인', '부르주아', '평등' 같은 것이 있다."(264쪽)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선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 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단어를 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의 표현법이 마구 밀려들어 대신 작업을 해버릴 것이다. (...)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싶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할 수 있을 것이고 (...)"(274쪽)
'과학이란 무엇인가'
길지 않은 글이다. 혹시라도 '과학과 사회' 같은 수업을 할 때 유용하게 읽힐 수 있겠다.
우선 '정치와 영어' 중에서..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 나쁜 습관... (...)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 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256쪽)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 '애국적인', '현실적인', '정의' 같은 단어는 각각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다른 뜻을 여러 개씩 가지고 있는 경우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경우, 합의된 정의란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면 사방팔방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 (...)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의식적으로 부정직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해 사용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름의 정의는 있지만, 듣는 사람이 그와는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더라도 묵인하는 것이다. (...) 그밖에도 여러 뜻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속임수에 가깝게 쓰는 단어로는 '계급', '전체주의', '과학', '진보적인', '반동적인', '부르주아', '평등' 같은 것이 있다."(264쪽)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선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 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단어를 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의 표현법이 마구 밀려들어 대신 작업을 해버릴 것이다. (...)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싶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할 수 있을 것이고 (...)"(274쪽)
'과학이란 무엇인가'
길지 않은 글이다. 혹시라도 '과학과 사회' 같은 수업을 할 때 유용하게 읽힐 수 있겠다.
페친을 대폭 정리했다. 요즘 페북을 열면 밀린 정보, 소식이 너무 많아서 쭉 읽어내려가다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오늘 짤린 페친들은 대부분 대부분 페북계의 명사들이다. 많은 페친을 거느리는... 그 중에서 특히 지금 내게 긴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는 명사 페친들...
페북을 들낙날락하면서 페친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고 (40여명?), follow를 하지 않도록 설정을 바꾸기도 한 (60여명?) 결과. 상당히 매우 무척 깨끗해졌다. 담백해졌다.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 십상인게 페북이다. 앞으로 쭉 이 기조를 유지! 지금은 넓힐 때가 아니라 오히려 좁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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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황두진 선생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여러모로..
"지난 12년간 사무실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다양성 보다는 응집력이 작은 조직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특한 하부문화(subculture)가 필요한데, 상식과 합리를 벗어나는 것만 아니면 무엇이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원 인터뷰에 악기 오디션이 필수라던가, 사무실 어느 곳에도 파란색은 없어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주 유쾌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하부문화다. (잘 생각해 보면 그런 회사들이 고만고만한 일이나 하다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바로 그런 편협성에서 관점도 나오고 개성도 나오는 것이다. 특히나 갈수록 세분화되는 현재의 시장 상황은 무딘 장검 보다는 예리한 단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어차피 시장 점유율 같은 것에 신경 쓸 일 없는 작은 조직이라면 (즉, 아주 작은 파이 조각만 먹고 살면 되는) 이렇게 좁고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이 오히려 생존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위대한 선언의 시대는 갔다. 건축으로 이야기를 끌고 오자면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하겠다'거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다'보다는 '모든 건물을 100% barrier-free로 설계하겠다'거나 '비 오는 날 모든 창과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겠다'가 훨씬 더 우리를 효과적인 존재로 만든다. 유럽에는 아직도 100% 손도면만 고집하는 건축가도 있다고 들었는데, 유명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세계는 풍성할 것이다.
하부문화는 대표자에게서 먼저 뿜어져 나와야 한다. 민주적 토론 같은 것은 나중 일이다. 그래서 대표자는 주저 없이 자기 하부문화를 밝히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이 잘 될 때나 못 될 때 구별 없이 적어도 자기들의 세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살고 있다는 재미라도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내가 어디가서 너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가 되는 거다. 사무실을 오래 하다 보면 일이 잘 될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 보다는 함께 rock밴드를 하거나 rock클라이밍이라도 하며 놀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전략인 셈이다. (*직원이 많은 회사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으니 거품 물지 맙시다.)
역설적이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면 오히려 이렇게 나가는 것이 어딘가 방 구석에 박혀 있던 사회부적응자/또라이/오덕/제갈량들이 몸을 일으켜 나에게 오게 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난 지금까지 매사에 주저주저함이 많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명령한다: '더 늦기 전에 생긴대로 살아라'."
페북을 들낙날락하면서 페친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고 (40여명?), follow를 하지 않도록 설정을 바꾸기도 한 (60여명?) 결과. 상당히 매우 무척 깨끗해졌다. 담백해졌다.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 십상인게 페북이다. 앞으로 쭉 이 기조를 유지! 지금은 넓힐 때가 아니라 오히려 좁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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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황두진 선생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여러모로..
"지난 12년간 사무실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다양성 보다는 응집력이 작은 조직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특한 하부문화(subculture)가 필요한데, 상식과 합리를 벗어나는 것만 아니면 무엇이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원 인터뷰에 악기 오디션이 필수라던가, 사무실 어느 곳에도 파란색은 없어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주 유쾌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하부문화다. (잘 생각해 보면 그런 회사들이 고만고만한 일이나 하다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바로 그런 편협성에서 관점도 나오고 개성도 나오는 것이다. 특히나 갈수록 세분화되는 현재의 시장 상황은 무딘 장검 보다는 예리한 단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어차피 시장 점유율 같은 것에 신경 쓸 일 없는 작은 조직이라면 (즉, 아주 작은 파이 조각만 먹고 살면 되는) 이렇게 좁고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이 오히려 생존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위대한 선언의 시대는 갔다. 건축으로 이야기를 끌고 오자면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하겠다'거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다'보다는 '모든 건물을 100% barrier-free로 설계하겠다'거나 '비 오는 날 모든 창과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겠다'가 훨씬 더 우리를 효과적인 존재로 만든다. 유럽에는 아직도 100% 손도면만 고집하는 건축가도 있다고 들었는데, 유명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세계는 풍성할 것이다.
하부문화는 대표자에게서 먼저 뿜어져 나와야 한다. 민주적 토론 같은 것은 나중 일이다. 그래서 대표자는 주저 없이 자기 하부문화를 밝히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이 잘 될 때나 못 될 때 구별 없이 적어도 자기들의 세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살고 있다는 재미라도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내가 어디가서 너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가 되는 거다. 사무실을 오래 하다 보면 일이 잘 될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 보다는 함께 rock밴드를 하거나 rock클라이밍이라도 하며 놀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전략인 셈이다. (*직원이 많은 회사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으니 거품 물지 맙시다.)
역설적이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면 오히려 이렇게 나가는 것이 어딘가 방 구석에 박혀 있던 사회부적응자/또라이/오덕/제갈량들이 몸을 일으켜 나에게 오게 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난 지금까지 매사에 주저주저함이 많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명령한다: '더 늦기 전에 생긴대로 살아라'."
유명한 김승옥 단편들을 몇 읽었다. 문학동네가 최근에 펴낸 중단편선집 "생명연습"에서. '생명연습'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김현이 극찬을 했던 소설(가)... 주로 1960,70년대 활동을 해서 아주 옛 사람인줄알았는데 1941년 생이다. 울 아버지보다 조금 더 많을 뿐... 그의 소설은 자기 스타일이 강하다. 만연체거나 세밀한 묘사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랬다면 아마 아무리 단편이더라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 줄거리는 분명한데 줄거리가 생생한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문체, 스타일에 대한 어떤 인상만 남길 뿐... 실제로 안개가 중요한 모티프인 '무진기행'처럼... 문체는 매우 모던하다. 최근에 씌여진 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스타일이 강하다는 점에서 김훈이 잠깐 연상되었지만 그보다 더 흐릿하다. 내 관점에서 볼 땐 좀 아쉽다.
2014년 7월 9일 수요일
손봉호, “내세가 없는 종교는 윤리에 치명적이다”(12년 2월 1일)
"내세가 있으면 혹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으면 악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상을 주고 벌을 주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볼테르 같은 프랑스 철학자는 반기독교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은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윤리에 있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내세가 기본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가 중요한 요인임을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한국에선 내세를 강조하는 불교나 기독교도 무속신앙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무속신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무속신앙이 다른 종교를 압도하는.... 내세가 없는 무속신앙이 내세가 있는 불교와 기독교를 압도하는 현상! 종교라는 요인, 내세 유무... 그런 것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속신앙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
"내세가 있으면 혹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으면 악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상을 주고 벌을 주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볼테르 같은 프랑스 철학자는 반기독교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은 만약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윤리에 있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내세가 기본적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에는 신도 없고, 내세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한국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철저히 현세 중심적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해야 합니다. 입신양명, 출세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경쟁심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도덕성은 엄청나게 낮아졌습니다. 이런 문화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외식의 문제, 겉만 번지르르하면 됩니다. 마음 속에 경찰이 없어요.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속에 경찰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속일 수가 있는 거지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식하고, 거짓말하고, 그걸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게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가 중요한 요인임을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한국에선 내세를 강조하는 불교나 기독교도 무속신앙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무속신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무속신앙이 다른 종교를 압도하는.... 내세가 없는 무속신앙이 내세가 있는 불교와 기독교를 압도하는 현상! 종교라는 요인, 내세 유무... 그런 것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속신앙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
2014년 7월 7일 월요일
미국에선 자동차가 다양한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는 비판은 정당한가? 자동차 수입을 어렵게 혹은 쉽게만드는 법과 제도 차이도 고려해야겠지만...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의 차이는 아닐런지... 다양성과 통일성. 미국에선 이러저러한 역사적, 지리적 이유로 구성원들 간의 여러 특징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다시말해 다양한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그 다양함을 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려면.... 미국에서 한국처럼 비슷비슷한 차들만 보인다?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그 큰 나라에서,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데? 한국에선 남과 다른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어지간하면 튀지 않으려고 비슷한 색깔 비슷한 유형의 차를 고르는 것이다. 좁은 나라, 문화적 인종적 유사성...
2014년 7월 5일 토요일
한 여름밤 / 정태춘
한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 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 아기도 잠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 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 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ps) 할머니는 대구 가시고, 엄마는 늦게 들어올 것이고...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재우고... 한여름밤에 와인을 마시다.
2014년 7월 3일 목요일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좀 더 상냥한 말, 좀 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대하면 좋겠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실수와 칭얼거리는 행동 등에 짜증이 나 혼을 낸다.
물론 부모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 때 당연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마음 아파한다.
부모의 짜증스러운 말투와 거친 행동이 아이나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하자.
기왕이면 사냥하고 다정한 말투와 부드러운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자녀들이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무시하고 거칠게 대우하면
다른 사람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집 안에서 사랑 받는 아이가 밖에서도 사랑 받는다.
함께 노력하고, 노력하고, 다짐하고 실천하자."
딸이 칭얼댈 때가 있다. 주로 잠들 때, 잠자다가 깨서, 아침에 일어나서... 세상에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를 기꺼이 참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차라리 시원하게 우는게 낫지...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지 마란다.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흠.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 46)
응용하자면... "아이가 이쁜 짓할때만 이뻐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좀 더 상냥한 말, 좀 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대하면 좋겠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실수와 칭얼거리는 행동 등에 짜증이 나 혼을 낸다.
물론 부모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 때 당연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마음 아파한다.
부모의 짜증스러운 말투와 거친 행동이 아이나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하자.
기왕이면 사냥하고 다정한 말투와 부드러운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자녀들이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무시하고 거칠게 대우하면
다른 사람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집 안에서 사랑 받는 아이가 밖에서도 사랑 받는다.
함께 노력하고, 노력하고, 다짐하고 실천하자."
딸이 칭얼댈 때가 있다. 주로 잠들 때, 잠자다가 깨서, 아침에 일어나서... 세상에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를 기꺼이 참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차라리 시원하게 우는게 낫지...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지 마란다.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흠.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 46)
응용하자면... "아이가 이쁜 짓할때만 이뻐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