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런 면에서 보면 원제가 왜 'she'가 아니라 'her'인지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동진 형의 평을 영화 보기 전에 읽어서 나름 기대를 가졌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가 별로 없다. 형의 해설은 화려하지만 딱 그만큼의 얘기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다. 평면적이다. 여전히... 평면적이다 못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무수한 영화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영화보다는 한 수 위이긴하지만... 많이 모자랐다. 몇 달만에 보는 영화로 낙점되기엔...
김독 Spike Jonze 영화 본 게 뭐 있나 찾아봤더니... 이런 "존 말코비치 되기" 감독이었다. 그 영화로 상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Her"로 받은 상이 더 많다. 심지어 오스카 각본상까지. 그 정도는 아닌데.... ㅠㅠ
"존 말코비치 되기"는 자신의 각본이 아니다. Charlie Kaufman. 그는 Michel Gondry이 감독을 맡은 "Human nature"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 셋은 이래저래 얽히고, 그 탓인지 세 영화가 서로 연결점을 갖는 것 같다. 동진형은 "Eternal..."을 연상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백배는 더 "Human nature"와 가깝다. 다만 그보다 상상력이 한 열배쯤 떨어진... 예전에 이 블로그에 썼던 "Human nature" 감상평을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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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Nature (2001) Michel Gondry
주연: Tim Robbins, Patricia Arquette, Rhys Ifans
각본: Charlie Kaufman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베니스, 토론토를 비롯해 전 세계 38개 영화제에서 88개 부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41개 상을 수상한 화제작 '존 말코비치 되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이때 받은 상의 갯수만 해도 열 셋. '존 말코비치 되기'가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 작가로 불리게 해줬다면, 두번째 야심작 '휴먼 네이쳐'는 그를 세계 최정상 시나리오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CF로 기네스 북에 오른 리바이스 'Drugstore'를 연출한 미셸 곤드리 감독은 헐리우드의 초대형 러브 콜을 마다하고, '휴먼 네이쳐'를 그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성 멘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실제로 그리 좋지 않았다. 언급할만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대중의 평가도 박한 편이었다 (imdb에서는 6.2/10 를 받았고 한국 cineline 에서도 비슷한 6/10을 받았다. 난 7.5/10 정도는 주고 싶다.). 하지만 곤드리 감독과 카우프만은 새로운 영화에서 한 번 더 손을 잡는데, 그것이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이 두번째 합작 영화는 오스카 각본상을 비롯 모두 36 개의 상을 받는 등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imdb user rating도 8.5/10로 최상위급에 속함.). 난 개인적으로 'Eternal Sunshine'보다 'Human Natue'를 더 재미있게 봤다. 'Eternal sunshine'은 서로 다른 기억이 충돌하는 것을 절묘하게 화면으로 표현하는 등 연출력이 뛰어나고, 전체적으로 보아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소재가 주는 충격이 좀 덜하다. 인간 기억의 고장 혹은 인위적 개입으로 삶이 뒤죽박죽되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적지 않고, 그런 소재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들도 여럿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human nature' 는 'Eternal'보다 엉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재료를 깔끔하게 잘 요리했고, 또 마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뤄서 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비인간의 경계 설정".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이거 왠일인가, 마구 마구 귀찮아진다. 그래서 줄거리 요약은 과감히 생략. 도대체 난 이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왜 블로그를 만들어 애써 흔적을 남기려는걸까? 몇 명이나 읽을 거라고... 그 이유는 ... 영화 조달(?)하고, 보는 데 나름 적지 않은 노력, 시간을 들이니까, 거기서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다. Anyway,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인간본성에 대한 영화다. 인간은 어떤 본성/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인간이려면 이 본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동물과 인간의 구별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처리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영화는 이런 류의 질문을 시종일관 던진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일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혹은, 침팬지들)은 없을 것이다. 경계 설정을 문제삼으려고 하면 그러니까 다른 접근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어느 한 범주에 넣기 애매한 잡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여러 유형의 경계문제를 논하는 학술적 논의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이 영화의 경우, 온 몸에 털이 나는 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숲 속에서 태어나 동물처럼 자란 존재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다른 한 편 매우 '인간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에티켓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의 필수조건이라고 믿으며, 쥐실험(자세한 내용 생략, 혹시라도 앞으로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을 통해 그런 인간성은 학습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생물학자. 그를 중심으로 물고 물리는 인간/비인간 (혹은 덜 인간)들의 관계. 에티켓을 신봉하는 그도 하지만 성욕의 노예이긴 마찬가지. 다만 '덜 인간' 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을 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참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았고, 때로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 장치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오히려 '참 인간'인지도... (cf.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끝부분에 귀여운 반전이 있음도 언급해 두고 싶다 (그게 없었으면 싱겁게 끝날 뻔 했다). 결론적으로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인간인가? 본능, nature 만 따지자면 인간도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어야 인간이다. 본능을 '인간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나름 많은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정도인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 Tim Robbins도 좋지만 연기하기 훨씬 더 어려웠을 털복숭이 여자역을 잘 소화한 Patricia Arquette가 더 강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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