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책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 중 글쓰기를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몇 편되지 않는다. 책을 반납하기 전에 나머지 글들을 시큰둥하게 들추다 흥미로운 에세이를 발견했다. "문학 예방"(The Prevention of Literature). '예방'이란 번역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엇으로부터의 예방인지가 중요한데... 전체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문학의 자유를 보호하자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막상 내 눈에 띈 구절은 과학자의 자유에 대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많은 과학자들이 소련을 무비판적으로 찬탄한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연구 분야가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자유가 말살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소련은 급속도로 개발 중인 대국이라 과학 종사자가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그래서 그들을 후하게 대해준다. 과학자들은 심리학 같은 위험한 분야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에 비해 작가들은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 전체주의 국가는 당장은 과학자들에 관대하다.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치 독일에서도 과학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상 비교적 우대를 받았고, 독일 과학계는 전반적으로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역사의 지금 단계에서는 아무리 독재적인 통치자라 할지라도 물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자유주의적 사고 습관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고,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물리적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한, 이를테면 비행기 설계도를 그릴 때 2 더하기 2는 4가 되어야 하는 한, 과학자는 나름의 쓸모가 있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유까지 허용해줄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나중에, 전체주의 국가가 완전히 확립될 때에나 각성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사이 과학을 온전히 지키고 싶다면, 그가 할 일은 문학계의 동료들과 모종의 연대를 발전시키는 거이며, 작가들이 침묵당하거나 자살로 내몰리고 신문 기사들이 날조될 때 무심하게 념겨버리지 않는 것이다." (238 - 240).
아 그리고 이 책에는 더 본격적으로 과학을 다룬 글도 실려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Science?)
"...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 민족주의를 견디는 능력이 그렇다.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이란 말을 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독일의 과학계 전반은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 과학계의 장기적 전망을 망쳐버렸는지는 모르나, 합성석유나 제트기, 로켓, 원자탄 같은 것들에 대하여 필요한 연구를 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군수품들을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 수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인종 과학'이라는 만행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모양새만 조금 다를 뿐, 같은 광경이 어디에서나 펼쳐지고 있다. 영국에선 앞서가는 과학자들 중 다수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시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217-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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