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이사 안내

좀 더 세련된 집으로 이사갑니다. 여기로 -->  https://jungkwangjin.wordpress.com

좋은 세상이라 세간을 고스란히 다 옮겨 갈 수 있네요. 새집 이름이 좀 후진데 나중에 바꿀 생각입니다.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비만은 인류가 수렵채집기, 즉 음식을 지방으로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생리 시스템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시기, 그 시기의 환경에 적응한 습성(시스템)이 고칼로리 음식이 사방에 널려 있는 환경으로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설명한다.(진화의 식탁, 44)

어떤 시스템/ 구조는 환경에 대한 적응의 산물. 환경이 변했는데 그 구조, 시스템을 고집하면? 그것은 비만과 같은 사회문제, 질곡이 된다.

한국의 국가주의, 실용주의, 국가주의적 과학 정책이 그런 것이다. 후발국으로서 경제성장, 산업화,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그런 상황에서 이는 나름 긍정적 결과를 가져 온 메커니즘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변한 환경에서는 이제 문제의 근원이 되기 쉽다. 이와 긴장 관계에 있는 새로운 구조, 제도, 문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두 제도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환경! 환경으로의 적응을 위한 구조, 제도, 문화!
환경변화! 한편으로 기존 구조, 제도, 문화의 지속.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구조, 제도, 문화 수용, 도입(변이).
이 둘 사이에 갈등!


- 다윈은 생물의 개체 수의 증가, 이로 인한 생존 투쟁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맬서스의 학설도...("다윈의 경건한 생각", 42쪽). 커닝햄은 이것이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가장 폭넓게 적용한 사례"라고 덧붙인다(ibid.).
- "굴드는 다윈주의가 '자연에 적용한 아담스미스의 경제학'이라는 참으로 정확한 표현을 했다"(49)

- "...경쟁을 통한 진보... 로버트 영 같은 역사학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조와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너무나 닮아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이 영국사회에서나 나올만한 이론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지요"("다윈의 식탁", 161)

다윈의 진화론 자체가 산업혁명, 자본주의 시장경제 확대, 도시화 등 당대의 사회적 조건과 이를 성찰하던지성사적 배경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겠다.

루만과 연결시키자면 개체 수의 증가는 커뮤니케이션 증가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론 이한 복잡성 증가, 복잡성을 처리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사회의 내적 분화. 개체들의 생존 투쟁에 비교할만한 커뮤니케이션 간의 투쟁이 있을까? '전쟁'? 혹은 체계의 이기적 확장으로 인한 체계 간 충돌?
과학이라고 똑같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의 축적되면서 지속되는 방향을 과학 내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 왜? 사람들이 과학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의 관심, 호기심, 필요에 따라서 연구 방향과 속도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과학이 "사회의 과학"이라는 점이 가리키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근대 과학은 지식과 주장의 확실함, 엄밀함을 검증할 수 있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왔다.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여하튼 과학자들, 특히 과학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영향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과학에 의한,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 태도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과학의 정당성을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여하튼, 생명과학이 특히 논쟁적이라는 점은 "사회의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다시 과학 지식 발전 방향에 영향을 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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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자가, 심지어 전체 과학자 집단이 먼 우주의 기원을 잘못 파악한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개미의 수렵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모형을 세우고, 공룡 멸종에 대한 황당한 설명을 하더라도, 이런 실수가 끔직(?)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인간에 대한 그릇된 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파국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높은 수준의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통속 다윈주의 심리학자들이 대체로 일상생활을 근거로 삼아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관관계에 대한 해명을 증거로 삼아선 안 된다."(P Kitcher 1987, Vaulting Ambition: Sociobiology and the Quest for Human Nature. MIT Press, p.9) ["다윈의 경건한 생각", Conor Cunningham, 297f에서 인용됨]

원문: "In the free-for-all of scientific research, ideas are often tossed out, tentatively accepted,and only subsequently subjected to genuinely rigorous tests. Arguably,the practice of bold overgeneralization contributes to the efficient working of science as a community enterprise: hypotheses for which there is "some evidence" or, perhaps, "reasonably good evidence" become part of the public fund of ideas, are integrated with other hypotheses, criticized, refined, and sometimes discarded. Yet when the hypotheses in question bear on human concerns, the exchange cannot be quite so cavalier.
If a single scientist, or even the whole community of scientists, comes to adopt an incorrect view of the origins of a distant galaxy, an inadequate model of foraging behavior in ants, or a crazy explanation of the extinction of the dinosaurs,then the mistake will not prove tragic. By contrast, if we are wrong about the bases of human social behavior, if we abandon the goal of a fair distribution of the benefits and burdens of society because we accept faulty hypotheses about ourselves and our evolutionary history, then the consequences of a scientific mistake may be grave indeed. (...) 
The genuine worry behind the political criticism of sociobiology is that, while claims about nonhuman social behavior may be carefully and rigorously defended, the sociobiologists appear to descend to wild speculation precisely where they should be most cautious.(Gould expresses admiration for Wilson's nonhuman sociobiology; however, even nonhuman sociobiology has its critics.)"
"진화"는 인간과 사회의 작동 설명을 위해서도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 때 '진화' 이해 혹은 사용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자연과학적 진화 메커니즘의 연장선상에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 사회다윈주의,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생존, 적응 등의 진화 메커니즘을 인간 행동, 사회의 작동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스펜서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봐야. 이런 접근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비난받기 쉽다. (2) 진화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파슨즈나 루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생물학적 진화 메커니즘을 비유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회 설명에 적용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화론적 설명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를 사회로 설명하는 방식이고, 사회 발전, 변동을 결정하는 요인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다. 진화를 분화라는 개념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
“한마디로 과학의 성공은 자정 능력에 있다. 과학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그 전에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던 미지의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 합리적 현상으로 바뀌어 간다.”(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9쪽)

"과학사회학"이란 분야를 전공으로 염두에 둘 정도고, 심지어 논문 주제도 "과학에 대한 공공 갈등"아닌가. 꽤 오랫 동안 "과학"에 대해서 읽고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이 "과학"에 대한 내 생각에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좁은 의미의 과학. 자연과학. 자연, 자연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경험 학문. 과학에 대해서는 극단적 견해가 공존하는 것 같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제공하는 활동으로 보고 무한신뢰를 보내거나 (과학이 왜곡되는 것은 과학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을 가지고 뭔가를 해보려는 비과학에 해당하는 할동... 과학 그 자체는 순수하다!), 아니면  다른 유형의 지식과 비교할 때  독특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그 차이를 과잉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저 여러 지식 중 하나일 뿐... 예컨대 과학적 지식과 신화적 이야기, 종교적 신념 간에 위계를 지을 필요 없다는 견해. 극단적으로는 여러 사회적 문제의 뿌리로 보는 견해까지...

여하튼 근대과학은 "사회의 과학"이다. 자연과학자들도 사회, 더 정확하겐 "사회적 환경"이 과학 지식 탐구에 미치는 영향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 영향의 범위가 그저 연구 방향, 연구 주제 선정이나 설정 정도인지, 아니면 지식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때론 사회의 과학이기 때문에 일부 왜곡된 지식이 득세하는 경우가 있어도 결국 "자정작용" 때문에 해결될 것인지...

여하튼 과학은 "사회의 과학"이다.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영향력이란 것도 수용되는 분야, 범위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학은 사회의 과학이다"라는 루만의 테제가 막연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 안에 어떤 과학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과학을 제자리 찾아주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이 한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과학자들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출 생각도 그럴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일종의 "인문사회과학을 통한 과학 통제론" 혹은 "민주적 과학 제어론" 같은 것을 제시한다고 비꼬면서...  과학도 잘 모르는... 이라고 얘기하면서. 그 원초적 책임을 과학자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는데는 인색하면서...

과학을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다. 과학에 대해서 필요한 것만 빼먹으려는...

반면에 그것을 비판하는 입장 혹은 과학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접근(STS)에선 일부 논쟁적 과학 주제를 중심으로 갈등을 부각시켜서 과학 자체에 대한 성찰 혹은 회의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 같다.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 과학은 자유로운 참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195)

이런 이상화된 과학에 이념, 가치, 문화는 정말 얼마나 실제 과학활동을 반여하는 것일까? 과학사회학자들, 과학학자들은 이 점을 끈질기게 파고 들었다. 머튼의 "마태효과"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핵심엔 이런 특징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다른 체계들과 다른 점이다.

한국의 경우 (1) 지나치게 실용주의적인 과학 이해 (2) 지나치게 정치화된 과학 이해, 이 둘이 지배적인 것 같다. 막상 당사자인 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지나치게 방어적,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대개 오만에 가까운 태도는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의 산물이니까.

여하튼 과학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과학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편으로 실용주의적 과학 이해가 여전히 지배적이고, 이 지배적인 경향을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정치화시켜서 그런 경향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게 갈등이 형성되면 과학에 제자리 찾아주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부터 언어를 사용했을까?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거다. 언어 학자들은 기원전 3,000년 경, 지금부터 약 5,000년 전에 사람이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초의 문자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자란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룩(Uruk)에서 발견된 문서로 기원전 3,100년 수메르어로 쓰였다. 앞으로 또 뭐가 발견될지는 모른다. 지금까진 그렇단 얘기다. 땅속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사람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다. 그게 언젠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벌거벗고 도끼 들고 사냥하러 다녔을 때도 말로써 의사소통을 했다."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으며,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 ( 논어 )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긴 배우는데 자기 생각이 없으면 죄다 헛것이요, 생각은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그 생각은 아슬아슬하다...
음. 이랬던가?

창조론은 원래 영어로 doctrine of creation이라고 씁니다. 그리고 진화론은 원래 영어로 evolution theory이라고 씁니다. 창조론에서 말하는 '론(論)'은 원래 영어로 'doctrine'을 뜻합니다.진화론과 똑같이 '론'(論)'으로 번역되었다고 본래의 의미가 같은 건 아닙니다. 창조론의 영어 표현에 나오는 'doctrine'은 원래 종교의 교리(敎理)나 교의(敎義)를 뜻하는 말이지만, 후에는 정치의 무슨 주의, 학문의 무슨 신조를 나타내는 뜻으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창조론에 대한 올바른 번역은 창조교리(또는 교의)가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진화론의 '론'(論)을 뜻하는 'theory'와는 개념 자체가 다릅니다

사실, 법칙, 이론

써먹을만한 내용이 있어서 무단으로 옮겨둔다.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과 이론 그리고 가설과 사실의 의미.

정보 미국과학진흥회(AAAS)에서 설명하는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 이론, 가설, 사실에 대한 용어 설명입니다. 


과학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이용되는 용어들. 

-  사실(Fact): 과학에서 사실이란, 반복적으로 확증되며 모든 실질적 의도에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관찰입니다. 그러나 과학에서 진리는 끝이 아닙니다. 오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내일 수정되거나 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가설(Hypothesis): 자연계에 대한 시험적인 진술로, 추론을 이끌어내며 이 추론은 검증이 가능합니다. 만약 추론이 입증되면 가설은 지지를 받게 됩니다. 만약 추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날 경우, 원래의 가설은 버려지거나 수정됩니다. 가설들은 더욱 복잡한 추론들과 설명들을 만드는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 법칙(Law): 일정한 조건하에서 자연계의 어떤 양상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일반화시켜 기술한 것. 
-  이론(Theory): 과학에서 이론이란, 자연계의 어떤 양상에 대한 잘 확립된 설명으로 사실들, 법칙들, 추론들, 그리고 검증된 가설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사실이 아닌 이론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용어들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와 과학에서 사용하는 의미를 혼동한 것입니다. 과학에서 이론은 증거의 축적을 통해 사실로 바뀌지 않습니다. 이론은 과학의 최종점입니다. 이론들은 많은 관찰과 실험, 그리고 창조적인 의견으부터 발달하는 이해(understanding) 입니다. 이론들은 많은 과학적 사실들, 법칙들, 검증된 가설들 그리고 논리적인 추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화론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과학 이론입니다. 이론이란 무엇인가? 과학 이론들은 사실들과 법칙들을 설명하며, 예측력이 있어서 검증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과 법칙을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론은 "추측"이나 "가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이론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이해(understanding)입니다. 그것들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 과학의 목표 입니다. 자연을 매우 잘 설명하여 크게 신뢰를 얻고 있는 이론들의 예로는 중력이론, 판 구조론, 원자론, 그리고 진화론이 있습니다. == 


NCSE(National Center for Science Education)가 설명하는 사실, 가설, 법칙, 이론에 대한 개념설명. AAAS의 설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  사실: 반복적으로 관찰되어 "맞다"고 인정된 관찰결과, 이지만 불변하진 않습니다.

- 가설: 시험 가능한, 자연현상에 관한 잠정적인 설명. 시험을 통해 강화되거나 버려집니다.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다" 같은 말은 그에 관련된 어떠한 간접적인 시험이라도 할 건덕지가 없기 때문에, 가설 축에도 끼지 못 합니다. 
- 법칙: 특정 전제조건 하에서 자연의 일부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일반화하여 설명한 것. 반드시 특정 전제조건 안에서만 만족하는 설명이므로 실제 세상에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디-바인베르크의 법칙, 멘델의 유전 법칙 등을 생각해 보세요. 법칙이라는 개념은 실제보다 과장되게 떠받들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닐 수 있습니다. 
- 이론: 자연의 일부분에 관한 잘 정립된 설명체계. 사실, 법칙, 추론, 검증된 가설 모두가 통합되어 이론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룹니다. 법칙과 반대로 이론이라는 말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법칙 정도로 확실하지 않아 머무르는 단계가 이론이다, 라는 오해는 적어도 과학에선 잘못된 것입니다. 이론은 끝까지 이론이고 법칙은 끝까지 법칙입니다. 이론은 검증이 덜 되었기 때문에 이론인 게 아니라 정말 충분히 잘 검증된 기반을 가진 설명체계이기 때문에 이론인 것입니다. 
 과학계에서 law는 관찰을 통해서 어떠한 현상을 진술하는것일 뿐입니다. 만유인력(중력)의 법칙 -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 을 예로 들자면, 이 법칙은 어째서 A가 B를 당기는 힘과 B가 A를 당기는 힘이 같은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두 힘이 같다고만 말할 뿐이죠. law에는 why가 없습니다. Theory는 이 law를 설명하는 단계입니다. 어째서 이러한 현상들이 생기는지, 그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theory는 "반증되지 않으면 진실 (true until disproved)"이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잡소리나 theory로 쳐주지는 않죠. 타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진화론이 진실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진화론은 진화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고, 그 누구도 진화론을 반증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입증시키는 다른 이론을 꺼내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창조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과학적 논리로는 취급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지상초대의 쇼"에서 발췌&요약한 글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이론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 이론 1. 모종의 설명으로 제공된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 또는 일군의 사실들과 현상들에 대한 해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확인 또는 입증되었으며, 알려진 사실들을 잘 설명한다고 제안 또는 이정된 가설. 일반법칙. 원리. 알려지거나 관찰된 사실에 대한 원인으로 주장된 진술. 
- 이론 2. 모종의 설명으로 제안된 가설. 즉 가정, 추론, 추정. 무언가에 대한 하나의 사상 혹은 사상들의 집합. 개인적인 의견이나 견해. 

진화론에 대한 문제에 한 마디로 답하자면, 과학자들은 '정의 1'의 뜻으로 이 단어를 쓰는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정의 2'의 뜻으로 쓴다. '정의 1'의 좋은 사례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설이다. 진화도 '정의 1'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다윈의 진화론은 정말로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다. 아주 방대한 "일군의 사실들과 현상들"을 해설한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확인된 또는 입증된" 가설이고, 보편적인 지적 합의에 따라 "일반법칙, 원리, 알려지거나 관찰된 사실에 대한 원인으로 주장된 진술"로 여겨진다. 단순한 "가정, 추론, 추정"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생물학자들은 진화라는 사실과 진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한 이론(보통 자연선택을 뜻하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및 '획득 형질의 유전' 같은 경쟁 이론들과 대비시킬 때도 있다)을 구분하곤 한다. 오늘날에는 진화라는 사실 자체를 반박하기란 더는 불가능하다. 반면 자연선택이 진화의 주된 추진력인가 하는 점은 아직 의심해볼 수 있다. 어엿한 생물학자라면 모두 자연선택이 진화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마도 유일한 추진력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음은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과 이론에 대한 엔하위키의 설명입니다. 


과학에서의 법칙 


과학(科學)에서 법칙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인과관계에 대한 기술이다. 이러한 법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이론이다. 예를 들어,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법칙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구는 가만히 있는데 태양이 움직인다는 설명인 "천동설",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지동설"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 둘 중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동설은 지구의 움직임은 물론 태양계의 움직임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또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이것이 유전법칙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데모크리토스는 정액 등 체액이 자라서 닮는다는 판게네시스설을 만들었고, 토머스 모건은 유전자설을 만들었다. 우리는 어느 쪽이 옳은지 알고 있으며 이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유전공학은 현재 매우 중요한 학문으로 자라났다. 따라서 법칙은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에 유용하고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쉬워 흥미를 가지기도, 그것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생겨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런 이론이 생겨나도 위에 나온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처럼 법칙을 설명하는데는 난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다만, 그런 법칙을 일부라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세워진다면 과학은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과학에서의 이론 


말그대로 설명과 동의어. 다만, 체계적인 설명이다. 사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론이다. 이론은 '사실', '입증된 가설', '법칙'들이 모여 하나의 설명 구조를 이룬것이다. 참고로 과학에서 '사실'이란 입증된 관찰결과를 의미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론이 갈고 다듬어져서 법칙이 된다고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 반대다. 법칙은 이론을 이루는 하위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다.
불과 며칠 전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다시, 미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 원유 생산 기술의 혁신으로 미국에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난다는데... 그게 지금 유가 하락의 원인이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나라는 러시아고... 미국 참 대단하다. 금융 위기로 곧 망할 것 같았는데... 참... 시대를 진단하기는 어렵다. 어려워. 변수가 너무 많아.]

페친이 소개한 어떤 교수의 글을 읽은 소감인데, 그 교수는 대단한 꼴통수구에 미국 추종자라고했다. 그래도 글 내용이 꽤 그럴듯해서 혹 했던 것인데... 그 이후 읽은 유가 하락을 다룬 타임지 기사의 논지는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급기야 오늘 접한 글은 급기아 "셰일에너지, 반짝 호황은 끝났다"


"셰일에너지 개발로 미국의 일일 석유 생산량은 2008년 500만 배럴에서 2014년 867만 배럴로 70% 이상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셰일에너지 개발을 두고 “셰일혁명”으로 일컫기도 한다. 석유화학 설비투자가 이어졌으며, 유전 시추가 늘어나면서 철강산업이 활기를 띄고, 저렴한 에너지비용으로 미국 제조업 전반이 혜택을 봤다는 것이 “셰일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근거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경기가 바닥을 치고 조금씩 상승하는 배경에는 셰일에너지 개발과 관련한 설비투자 증가가 한 몫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초부터 셰일에너지 개발 업체들이 줄파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활을 꿈꾸는 미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셰일에너지 개발업체들의 줄파산은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예고된 것이었다. 그것은 현재 셰일에너지산업이 갖고 있는 세 가지 근본적인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설득력이 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리려면 조심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역시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어봐야... 헛똑똑이가 되지 않으려면...

2015년 2월 9일 월요일

정윤수 선생 칼럼에 이런 인용문이 등장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세련되게 표현되어있다. [한국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제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물질적 조건들이 갖추어졌다는 얘기다.]

요컨대 문제의 열쇠는 문제가 발생한 곳, 곧 우리 내부에 다 내장되어 있다. 저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가 말한 대로 문제는 “(그것의) 해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이 존재하거나 그 생성 과정에 있을 때” 등장한다. 이를 직시하고 실사구시로 해법을 찾아낼 때 외부자의 따끔한 주사가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Marx가 한 이야기였다. 검색해 보니 꽤 널리 인용되는 구절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에 부쳐" 서문. 깊게 공부하지 않은 티가 팍팍... ("문제"로 번역된 독일어 해당 단어는 "Aufgaben"이다. "과제"가 일차 의미인데... 우리말 어감상 "문제"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좀 찜찜...)

원문은 이렇다.

"어떠한 사회구성 체도 모든 생산력이 그 안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 결코 발전의 완료 이전에 멸망하지 않는다. 또한 보다 높은 새로운 생산관계는, 이것의 물질적 존재조건들이 구사회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이전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올 자기에게‘ 제기한다. 왜냐하면 좀더 자세히 고찰해보면, 우리는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 생성과정에 있을 경우에만 문제 그 자체가 동장하는 것을 항상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 생성과정에 있을 경우에만 문제 그 자체가 등장하는 것을 항상 알게 되기 때문이다."

"Eine Gesellschaftsformation geht nie unter, bevor alle Produktivkräfte entwickelt sind, für die sie weit genug ist, und neue höhere Produktionsverhältnisse treten nie an die Stelle, bevor die materiellen Existenzbedingungen derselben im Schoß der alten Gesellschaft selbst ausgebrütet worden sind. Daher stellt sich die Menschheit immer nur Aufgaben, die sie lösen kann, denn genauer betrachtet wird sich stets finden, daß die Aufgabe selbst nur entspringt, wo die materiellen Bedingungen ihrer Lösung schon vorhanden oder wenigstens im Prozeß ihres Werdens begriffen sind."

Vorwort,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Geschrieben August 1858 bis Januar 1859. Erschienen 1859 bei Franz Duncker, Berlin.

 검색하면서 찾은 마르크스가 한 다른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인용문은 위에서 인용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진화론의 아이디어이기도 하고. 진화는 항상 현재 주어진 상태에서 발생한 변이의 결과라는...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칼 맑스, 『루이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18일』(프랑스 혁명사 3부작, 소나무, p163)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자 만이 학문의 빛나는 절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칼 맑스, [자본론] 프랑스어판 서문 중에서)
놀이학교를 다니는 딸이 무슨 발표회 비슷한 걸 했나보다. 딸이 가장 어리고 4,5세까지 있나 보다. 평소에도 수업이 계속 있다고 하고, 이번 발표회는 아마 일년여 동안 준비했던 모양이다.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또 예민해서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하는 편이라 염려되긴 했다. 하지만 놀이학교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고 하고 - [물론 지금도 아침마다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고는 하지만 막상 가서는 잘 논다고...] -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막상 오늘 발표회에서는 무척 힘들어 했다고 한다. 밝은 조명과 객석의 시선을 받으면서 무대 위에 서 있는 상황이 낯설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왜 아이를 그런 자리에 있게 했을까. 그런 자리가 왜 필요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연습한대로 잘 했으면 부모로서 기분이 좋았을까? 그랬을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단지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시비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일까? 꼭 그런 건만은 아니다. 애초에 놀이학교 보낼 때부터, 또 발표회 같은 것을 한다고 했을 때 탐탁치않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식구들, 주위 사물 환경 익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너무 가르치는 것, 따라하도록 하는 것, 어떤 틀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놀게 해주고 싶은데... 마음껏...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상황, 환경 때문에. 도시에서, 또 부모가 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탓에... 게다가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아서 집 바깥 활동에 대해서는 지켜보고 있는 편이다.
1. 현상태에서 한 걸음 더... 그러려면 지금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무엇인가 기술하는 행위는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의 Variation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사회는 커뮤니케이션 재생산 체계니까]. 대부분의 학문적 기여는 부정적으로 선택된다. 무시된다. 몇몇 가설(Hypothesen)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부정된다(혹은 지지받는다). 가설이 검증을 거치면서 자리를 잡으면 곧 지식이 된다. 이 지식은 기존 지식체계의 일부로 편입된다.

변이-선택-안정(Variation-Selektion-Stabilisierung)

2. 대단한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 것. 그냥 무시되는 대부분의 가설, 주장 중 하나가 될 테니까.

1.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2월도 벌써 9일이다. ㅠㅠ

2. 내가 가끔씩 들르는 카페. 근처에서 가장 진한 커피. 오후에 마시면 잠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는. 오늘 아침에 카페인 욕구가 평소보다 더 강해서 들름. 공부방까지 오는 동안 많이 식어 버림. 매우 추운 날이라. 아쉬움.

3. Time지 칼럼을 읽었다. 10대 딸 이야이기인데, 얼마나 변덕스럽고 예측하기 힘든지를 묘사하는 부분을 공감하면서 읽었다. 2돌 조금 더 된 딸을 둔 아빠로서... 그래서 애증이 수시로 교차한다.

4. 케이팝스타 이번 회 방송에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들었다. 이적의 노래라고.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을 마구 자극하는 노래. 어린 자식을 버릴 수 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뭔가 박혔는지 아니면 내부에서 생겼는지  딸 손가락에 조그마한 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사이 그것이 꽤 커졌는데, 어제 딸이 손가락에 뭐가 있다면서 그 부분을 박박 긁는 것이다. 어찌나 안타깝던지.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얘길 종종 듣는데... 그 심정...
사람에 대해서건 어떤 사회적 상태에 대해서건 격한 감정 변화가 좋지만은 않지만, 무덤덤함은 사실 그보다 더 나쁜 상태인 것같다. 무덤덤함을 확인하고 슬플 때가 있다.

5. 문재인씨가 당대표 당선된 후 박정희 무덤에 참배를 갔나보다. 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라고 보고. 하지만 그런 식의 통합 행보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같은 경우 정당 성격이 분명하다. 더 많이 가진 이들이나 혹은 그들을 동경하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정당. "보수"같은 세련된 표현을 붙여주기에도 주저하게되는... 여하튼 그런 정당이라는 점이 분명하니까 선그를 앞두록 "복지" 운운하는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뭘하는 정당인지 불분명한 정당이 보이는 나름 통합을 지향한다는 행보는 좌충우돌로 보이는 것이다. 넌 누군지를 밝히는 작업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은 개인이든 정당이든 사회든... 기초 중 기초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겠지만, 그런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6. 페북을 읽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 주제, 책들이 수시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방식으로 내 얘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자책하게 된다.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 끈기, 용기, 뚝심이 없거나, 충분히 흥미롭게 들리는 재료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만들어 낼 기술, 능력, 지식이 부족하거나. "야구" "신앙과 과학" 같은 주제는 전자에 해당하는 것 같고, 루만 이야기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마 이런 식의 고민 자체에 대해서는 그누구보다 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긴하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름의 틈새시장. 대부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근근히 살아가지 않는가?

2015년 2월 7일 토요일

진화...

생물학적 진화 - 인류 출현 - 문화적 진화 (빠른 속도...)

사회의 진화는 분화로 설명. 세 가지 분화, 세 가지 사회 유형
1. 분절적 분화
2. 위계적 분화
3. 기능적 분화
(앗시리아 - 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 [이집트 BC 3C 소강기] - 헬레니즘(그리스) - [BC146. 로마공화정 그리스 병합]- [BC 2C] - [악티움 해전 BC 31년) - 로마제국)


- 페르시아 시대: 페르시아 제국 통치 틀 속에서 이스라엘 귀환 및 재건, 유대교 형성을 이해해야
- 헬레니즘 시대:


- 페르시아 시대: 바빌론 유수


바빌론 유수( - 幽囚)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시드기야왕을 비롯한 유대인이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말하며,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날 때까지 약 50년 동안의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기간

히브리어 성경에 따라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추방되었던 다른 사건을 합쳐 말하기도 한다. 기원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면서 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것과, 기원전 582년경 바빌로니아가 임명한 예후드 지방 총독인 게덜라이어 암살 이후 바빌론으로 잡혀간 사건을 포함하여 3차에 걸친 추방이 있었다. 이 경우 기원전 597년에 바빌론으로 추방된 시점부터 첫 귀환이 일어난 538년까지 약 59년이 된다. 

특징

바빌론 유수기 동안 유대인은 고난과 고통으로 민족일치를 강화했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여 유대교를 정립하였고, 이 기간동안 경전을 정리하여 구약 성서의 기초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진보하고 화려한 문화를 체험하였다.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을 설정하였고, 그 신이 인간들을 심판한다는 개념으로 인간사에 윤리성을 도입하였다. 이 교리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여 그 때까지도 현세 지향적이였던 유대교를 선진화시켰다.[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과 역으로 기독교나 이슬람 처럼 유대교에 영향을 받아 창시되었다는 설이 양립한다].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한 후에도 유대인 중 일부는 바빌론에 남아 공동체를 유지하였으며 이들이 디아스포라의 유래가 되었다.

[조로아스터교-유대교 관계]

유대인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축을 허락한 페르시아의 정복왕 키루스 2세가 조로아스터교도였다.당시 페르시아는 영토 뿐 아니라 경제,문화,군사,체제 정비 등 다른나라들을 압도하는 오리엔트 세계의 패자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던 시기로 유대인들 역시 종교 뿐 만 아니라 문명 전반에 페르시아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유대교의 주류 종파 중 조로아스터교를 계승한 것이 바리사이파(바리새파)이다. 바리사이(바리새)란 말 자체가 페르시아(파르샤)의 유대발음이며 이들이 주장한 천사, 사후세계, 부활, 최후의 심판, 구세주등의 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그것을 그대로 흡수하여 바리새파 소멸 이 후에도 유대교의 주요교리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또다른 유대교 주류 종파인 사두개파는 모세율법에만 집착하는 교조주의파로서 구세주, 부활, 천사, 악마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두개파의 경우 사후세계의 개념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죽은 영혼은 그대로 무덤(셰올)에 거주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종교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동정녀에 잉태되어 태어날 구세주, 종말의 때에 일어날 최후의 심판, 조로아스터가 광야에서 정진할 때 앙그라 마이뉴에게 시험받았다는 내용, 조로아스터의 탄생 때 그를 방문했다는 마기(Magi) 등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그 자체. 예컨대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사탄은 본래 '고발자'라는 뜻으로, 인간의 신앙을 시험하여 신을 조롱하는 천사로 여겨지고 있었는데[5],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신에 맞서는 악마로 바뀌어졌다.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19세기의 학자인 제임스 다메스테터(1849~1894)는 오히려 유대교와 지배민족인 페르시아의 사상에 영향을 끼쳐 완성된 것이 조로아스터교라고 보는 주장했다. 조로아스터의 출몰의 시기는 대략 기원전 600년전후이고, 그 이전에 유일신 사상을 완성한 유대교가 페르시아에 역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이 역으로 조로아스터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으며, 메시아 예수와 비슷한 내용이 조로아스터교에 등재되기 시작한 시기가 되려 기독교보다 느리다고 보았다. 

현대에는 아무래도 현대 사회의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유대교, 기독교와의 영향이 가장 주목을 끌지만, 아무래도 조로아스터 교와 좀 더 연관성이 깊으면서도 대립성이 강한 종교는 인도의 종교. 브라만교와 힌두교이다.


 [페르시아 제국]

오늘날 이란의 영토에 근거한 여러 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를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넓은 의미로는 1979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개의 제국들을 모두 페르시아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본래 남부 이란의 한 주(州)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그 곳에 아케메네스조의 수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왕조를 그 지역 이름으로 불렀으며, 오늘날의 유럽 언어도 그것을 따랐다. 그래서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어에서는 이 나라를 페르시아라 통칭했다.

1.1 메디아(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

1.2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1.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1.4 파르티아(기원전 250년 – 226년)

1.5 사산 왕조(226년 – 651년)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키루스 대왕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 제국를 물리침으로써 최고로 강한 나라에 이르게 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에 키루스 원통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187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노예제를 금지하며 궁궐을 짓는 모든 일꾼은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병합한다. 제국의 영토는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 최고의 영토가 된다. 아케메네스의 영토는 인더스강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렀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국을 제외한 그 당시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세계를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때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부른다(기원전 499년 - 450년). 잘 알려진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와 스파르타 300명이 나라를 지켜냈던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은 아케메네스 제국과의 전쟁이야기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는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고 아케메니아 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쉽게 큰 땅을 복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케메니아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제는 자신들을 페르시아의 계승자로 부르면서 다리우스 3세에게 장엄한 장례식을 해주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딸 스타데이라와 결혼하였다. 

파르티아(기원전 250년 – 226년)

사산 왕조(226년 – 651년)

사산제국은 로마제국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하여 서로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훗날 비잔티움 제국에게 크게 패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이슬람 제국에 의하여 사산제국은 멸망의 길로 가게된다. 사산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야즈데게르드 3세가 이슬람 제국에게 패하여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헬레니즘 문명]

기원전 323년에서 146년 사이(혹은 기원전 30년까지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의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를 일컫는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고전기 이후의 시대로, 이후 로마가 그리스의 정복지를 지배하게 되면서 로마 시대로 넘어간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 문화, 예술, 문학은 로마 사회에 스며들어, 로마의 지도층은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구사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서남 아시아(근동 혹은 중동)에서 고대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리스 문화와 언어가 그리스인 지배자들과 함께 새 제국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반대로 헬레니즘 왕국들은 각지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어 필요나 편의에 따라 지역 관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페북 이야기.

"과학에 대한 지나친 확신도 때로는 맹신이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지요. 확실한 사실만 확실하다고 합니다. 가령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사실로 여기는 것은 아무 증거도 없이 믿는 맹신과는 전혀 다르지요. 그리고 과학은 무엇이든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면 그것을 즉시 폐기합니다. 고집 부리지 않아요. 그래서 과학이 신뢰할 만 한 겁니다."

"제가 사들이는 과학책들 중에서 과연 몇 년 후에도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하는 게 사실 많지 않습니다. 과학이라는 게, 참 냉정하더라고요."

과학이라... 자연과학에 경이로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 집단 지성, 비판적 사고, 검증... 인문학, 사회과학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뭐. 이런 이야기를 한 두 사람이 한 건 아니지. 대표적으로 포퍼도 떠오르고.

여하튼 자연과학으로 인해 인간사 여러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생긴 건 사실. 물론 과학의 눈부신, 경이로운 발전의 원인을 과학 내에서만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이 흔히 그런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자연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1) 근대 (자연)과학이라는  인간 활동의 발전과 제도적 확립이 철저히 시대적 산물임을 분명해 해주고 (2) 자연과학 지식 자체가 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해야 한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지식의 발전은 "종교"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경 등 신앙의 근거에 대한 이해, 신학의 변화 등등. 그리고 기타 인문학적 주제, 인간, 생명, 역사 등에 대한 이해에도... 사회에 대한 이해, 사회이론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사회생물학적 설명 방식이 생각난다. 진화론이 맞다면...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복잡성의 증가? 분화? 변이, 선택, 적응?
방금 페북에서 읽은 글


오늘 페북에서 읽은 인상적인 글
"“한국사회의 비극은 좋은 보수도 좋은 진보도 없다는 데 있다”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지금껏 내 경험으로 보수를 자임하는 자들은 대부분
속물들이었고, 진보연하는 자들은 무식한 양아치들이 많았다.
문제는 대중이 양아치보다 속물을 상대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점이다."
내 경험도 이와 유사하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의 대립 구도로 한국 사회의 문제가
보이지도 않고 풀리지 않는다. .
대중들은 진보도 보수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 사회의 문제는 좋은 보수를, 좋은 진보를 동시에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닐까?

흠.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지적질이기도 하고.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더 해 보시라.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진보와 보수를 따져 볼 수 있게 되었는지를. 경상도 번호판 달고 전라도 가면 주유해주지 않는다고 하던게 1987년 대선이었다. 보수/진보가 아닌 전라도/경상도 구분이 정치의 지배적 변수라고 했고 해도 좋을 상황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겨우 바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젠 좋은 보수, 좋은 진보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아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 지론인지만... 한국의 근대는 이제 시작이다.
[시론] 과학교육과 인문학, 그리고 융합! / 윤태웅

좋은 글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글은

[특별기고] 무의미성의 도전: 빅뱅 우주와 인간 존재 / 도정일

좀 덜 좋다.

과학이 가치나 문화와 분리되지 않았음은 둘 다 지적하고 있다.

도: "과학자들, 특히 자연과학자들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훈수"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듯하다. 과학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서 과학교 광신자처럼 보이는 도킨스나 그의 한국인 버전들이 떠오른다. 김W, 김U 씨들... 니들이 과학에 대해서 뭘 알다고... 이런 반응을 보인다. 과학은 가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완전히 틀린 소리다. 과학 그 자체가 인간이 발명한 거대한 가치다. 근대과학 이후 과학 하기의 필수 조건으로 올라선 일련의 절차들도 과학이 만든 소중한 가치들이다. 과학 정신도 그런 가치이며 옹졸한 국가주의, 부족적 배타주의, 인종 편견의 거부도 과학이 퍼뜨린 가치다. 민주주의, 합리성, 환대, 경청과 타자 존중도 과학이 올려세운 가치들이다."

윤: "도정일 교수도 언급했듯이, 과학도 인간이 발명해낸 거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과학 하면 물질문명을 떠올리고 단단한 확실성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결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이며 성찰적인 과정이자 문화입니다. 다만, 과학과 기술이 하나로 묶여 늘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인식돼 온 대한민국에선 아직 그런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을 뿐입니다. 과학교육과 인문학의 융합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윤 교수는

"도정일 교수의 글에 나오는 과학교육이란 낱말의 의미가 제겐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공계 대학에서 미래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전반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도정일 교수의 제언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 그렇지만 좁은 의미의 과학교육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우주에 관한 물리 이야기를 할 때 우주 속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함께 가르치라고 요청하는 거라면, 그건 과도한, 그래서 조금은 잘못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속 존재로서는 티끌만도 못한 것 같은 인간이 우주에 관해 그만큼 알아냈다는 건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더 놀라운 건 그걸 알아낸 방식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좁은 의미의) 과학교육의 문제는 외려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수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과학이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등을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과학과 수학 교육이 진정한 의미에서 더 과학적이고 더 수학적이어야 한다는 게 공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저의 생각입니다."

윤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연과학자들 중에 인문학이 훈수둔다고 질겁하는 이들이 있다. 윤 교수도 도 교수의 이야기를 "훈수"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공계 사람들은 인문학적 소양이 결핍돼 있으니 보완해주자!' 뭐 이런 식"의...

자연과학자들이 보이는 반응 중 하나는... (유명한 "두 문화"(스노우) 논지이기도 하지만...)

"그러는 너희들은 과학에 대해서 뭘 알아" "자연과학도들에게 인문학 배우라고 하지만 말고, 인문학도 너희들도 과학을 좀 배워."

윤 "문사철 같은 인문학(humanities)과 더불어 과학과 수학은 핵심교양(liberal arts)의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이과 학생들한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만큼 문과 학생들한테도 과학·수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과학을 인문학처럼 하는 게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을 핵심교양으로 함께 공부하는 게 답인 듯합니다. 과학과 인문학 모두 더 과학적이고 더 인문학적으로 말입니다."


핵심 교양으로 배울 건 서로 배우고... 과학은 더 과학적으로 인문학은 더 인문학적으로...

이 결론엔 전적으로 동감.

한국에 문제가 많다고들 하는데 당연한다. 한국의 근대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으니까. 그동안 이룬 것에 눈이 멀어서 한국의 현실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그 동안 애쓴 탓에 기초 중의 기초는 어느 정도 닦여졌다. 과학이던 민주주의건. 이제 그 기초 위에서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융합 같은 소리하지 말고 과학은 더 과학답게, 자본주의 경제는 더 자본주의 경제답게, 법은 법답게... 그렇게 근대화를 하면 되는 것이다.
1. 몇 가지 일로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을 엉뚱한 데 풀었다. 마음이 좀 풀리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다. 다른 일에서 얻은 짜증이 겹쳐서 그런 것인데 당사자야 그 사정을 알리 없으니... 에구.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2.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데... 그 열쇠를 얻으려고 집중해야 하는데...

2015년 2월 6일 금요일

1. "빅 히스토리"라고 들어는 봤는데... 어쩌다가 오늘 좀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게 무척 흥미진진한 얘기다. 내 관심사에 딱 들어맞는...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고...

다음 (얼마 전에 작고한) 조지형 교수의 강의 내용 제목이다.

1. 모든 것들의 역사를 합쳐놓은 역사-빅뱅이후 오늘까지,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역사 이해의 틀 
2. 우주의 탄생, 지구의 형성, 생명체의 등장과 진화, 인류의 출현 및 산업사회, 그리고 미래 등 다양한 현상들 속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층위의 상호작용의 본질 이해 
3. 빅히스토리의 주요 임계국면 -거대사의 8가지 임계국면이해를 통한 거대한 역사를 성찰: 
우주의 탄생(빅뱅), 별의 출현, 새로운 원소들의 형성, 태양계와 지구의 형성, 생명의 출현, 인류의 등장, 농경의 등장, 인류세계의 출현 
4. 우주시대와 우리나라 -우주시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5. 빅 히스토리와 지도 -137억년의 시간을 지도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것 
6.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 통합적 융합 교육의 온라인 모델

2.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태도가 있다. 대단한 확신... 진리를 독점한 듯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이념을 확신하는 열광적 지지자들에게서 풍겨나는 그런 분위기... 과학근본주의자들이라고나 할까. 과학교 신자같은 이들... 역겹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일어나서 거부한다.
1. 동안이었던 친구다. 그런데 오늘 페북에 올린 사진을 보니... 자기 전 혹은 아침 일찍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서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그런 심정이다.

2. 오래 전 알게 되었지만 깊은 친분은 딱히 없던 사람이다. 몇 해 전부터 페북을 통해서 소식을 다시 듣게 된... 예전 그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영역을 확장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마이너한 주제라면 주제인데... 그런 사람이 존경스럽다. 때론 사소해 보이는 주제라도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서 일가를 이룬... 그 이가 지금 남미에 가 있는 모양이다. 한 달 일정으로... 여행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거라고...

3. 따지고 보면 내게도 그런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적었듯이 "신앙, 학문, 과학, 역사, 사회 '등'"을 연결해서 일관되게 설명하기. ㅎㅎ 이 주제는 메이저 중 메이저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메이저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 중 한 주제를 잡아서 천착할까? 안타깝게도 내 관심은 그 연결에 있기 때문에 주제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그게 지금껏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에서 나도 참 독한 구석이 있긴하다. 이 주제를 끝까지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 걸 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도... 열매를 맺을 날이... 있겠지?

2015년 2월 5일 목요일

미운 네 살이라고 했던가. 한국 나이로 네 살이다. 만나이로는 두 살하고 3개월이지만. 예민하고 생각도 많고, 까다로운 편이다. 요즘엔 엄마만 찾는다. 엄마없을 때는 아빠, 할머니 싫다는 얘기를 매우 노골적으로 하기도 하고... 아빠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덜 하지만, 오후부터 저녁시간을 돌보시는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여간 서운해하지 않으신다. 언제까지 엄마일까 싶기도 하다. 조금만 더 크면 잔소리할 일이 더 많겠지. 아이가 귀엽고 예쁠 때가 있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이다. 자아가 강한... 좋아해줘도 그대로 갚을 거라 기대하기 힘든... 사람과 펫의 차이다.
1. 학부시절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신앙, 이성, 학문, 과학, 역사, 사회... 서로 쉽게 연결되지 못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고민을 놓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으니 그 사이 연결 가능성은 축적되었겠지. 최근에 - 스스로 판단하기에 - 획기적인 질적 변화가 생겼는데, 그 계기는 독일행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책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였다. 그 이후 틈틈이 "종교전쟁" "예수와 다윈의 동행" "아담의 진화" 등을 읽었다. 지금은 이전에 처음 몇 페이지 둘추다 말았던 "신을 옹호하다 :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이글튼)을 재미있게 읽고 있고. 이를 통해서 현대 과학이 표준적으로 제시하는 관점, 지식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신앙을 해석해도 좋고 또 내 기존 생각보다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도 좋겠다는 일종의 "그린라이트"를 얻은 것 같다. 내 생각틀 형성에 있어서 혁명같은 사건이었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다른 방향에서 따져봤던 오랜 고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도무지 답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다음 단계에서 또 다른 고민거리, 질문이 생기겠지만 여하튼 매우 반갑고 신선한 자극이고 도전이다.

2. 한편으로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다. 신앙, 성경,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달리한다면... 이전처럼 기대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3. 연결고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사 속 구성"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에 대한 싸움처럼 보이는 그 대립구도 자체가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근대라고 부르는...

4. 사회학도로서 난 그 시대(혹은 사회)의 한 단면을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붓과 물감을 써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우연! 원인과 결과를 따져야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지배적인 원칙은...
영국의 도미니칸 사제이요 신학자였던 허버트 맥케이브(Herbert McCabe, 1926-2001) 신부는 우스개를 섞어서 신학하는 일(doing theology)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신학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려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해 허튼 소리(넌센스)하는 것을 중지시키려는 작업이다.” ([theology] is not concerned with trying to say what God is but in trying to stop us talking nonsense.”)


그는 또 창조주 하느님을 최고의 제자가, 우주의 최고 경영자로 해석하는 견해에 대해서... "하나님을 지극히 크고 막강한 피조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적 견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in "Faith within Reason")

2015년 2월 4일 수요일

"기도"에 대해서 오랫 동안 이러저리 궁리해 보고 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처럼 뚝딱뚝딱해 주실 것, 아니 그 정도로 극적이진 않더라도 이리저리 상황을 조정해서 뭔가를 해 주실 것...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불행이나 사고 앞에서 "하나님은 뭘 하셨나요"라고 묻게 된다. 그게 아니라는 거지.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은 하나님이 두 손을 놓고 침묵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선박과 선박운행을 담당하던 사람들, 관련 사안을 감독 관리하는 행정관정 담당자들, 정책과 제도 담당자들의 잘못으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람이 할 일, 사람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초자연적, 기적적 개입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사태가 더 잘 이해되긴하지만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댈 데가 없어지는 느낌.
야구에 대해서 벌써 몇 번 늘어놓은 생각인데... 야구에 관심이 있으니 기사를 보게되고 그러다보면 또 생각이 나니까.... 요즘 모든 팀이 훈련 중이다. 따뜻한 곳에 캠프를 차려놓고... 취재라는 걸 취재원 말 받아적고 글로 옮겨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레기들의 습성은 스포츠 쪽에선 더 심하다. 그러다보니 어떤 팀이건 대개 이런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올해 캠프 분위기, 역대 최고" 막상 리그가 시작되어 명암이 엇갈리면 그땐 그 결과를 놓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맞추는 것이다. 에휴. 기레기들. 허니 어디 기레기들 탓만 할 수 있으랴. 독자들 책임도 절반 이상될 것이다. 한국의 전체적인 수준... 아직 멀었다.

2015년 2월 3일 화요일

쇄국. 중국 이외의 나라는 오랑캐로 여겼던 조선. 그래서. 양이. 서양 오랑캐.  보고도 못본척 했어야 했다고. 국보법보다 더 엄격하게 금했다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 판단 탓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는 잘못을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지도.... 신앙 역시...
"헬레니즘적 유대교"라. 흠...

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1- 기원전 2세기 중반까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만남 연구. 나남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문명에서 발원하여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정벌로 형성된 동서양 문명복합체였다. 그런가하면 고대 이스라엘 종교적 전통에서 발원한 유대교는 이 시기 팔레스타인에서 헬레니즘에 대하여 저항과 동화의 과정을 통하여 ‘헬레니즘적 유대교’라는 형태로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이것이 고대 기독교의 산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이후 서구의 종교학과 성서신학의 드넓은 토양을 제공했던 종교사학파의 명제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이다. 요컨대, 기독교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혼합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모태는 ‘헬레니즘적 유대교’요, 이 시기 유대교의 종파적 개혁운동의 결과이다."
"레위기"(직역성경에 따르면 "이름들")를 읽고 있다. 후반부엔 각종 규율들이 등장한다. 하나님과 유대민족 간의 계약. 그리고 유대민족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범들. 성경은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다. 계명을 둘러 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긴장과 갈등, 민족 간의 갈등 등등. 토라(율법), 규율, 계율, 계명은 갈등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는 원천이기도 하다. 갈등... 갈등 해소? 갈등 관리? 성경에서 갈등은 어떻게 관리되나? 갈등 관리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줄까?
1. 한 때 적을 두었던 조직. 모처럼 다시 가보니 홈피, 보고서 질 등이 lässt sehr zu wünschen übrig...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2. 세상만사는 무심하다. 그게 진실, 본질에 가깝다. 대단한 의미들을 부여해대지만... 무심함을 견디지 못하거나 감추고 싶은 인간 심사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세상만사 매우 복잡하다. 세상만사의 의미는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다. 감춰져 있다. 인과관계를 따져보겠다고? 그건 인간의 욕심이다. 그냥... 그저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고...

3. 인간 종은 물론 특별하다. 다른 종의 동물, 다른 형태의 생물, 무생물 등과 다른 독특함을 갖는 존재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일 뿐이다. 그러니 겸손해야지.

4.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들이 있다. 부수어야지. 내가 당당해야 비로소 씨알이 먹힌다. 그냥 내질러야 한다. 장애물로 돌진해야 한다. 상처를 입더라도...

5. 영어는 여전히 낯선 언어다. (당연히) 독일어와 비교해서도. 일상적 표현이나 단어나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때 확실하게 느낀다. 예를 들어.... 영어 문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페북사이트는 오늘 ㅇ이런 문장을 소개했다. "It's always been a great comfort to me that I could bring a book anywhere, to any place" 뭔가 틀렸다는 이야기인데... 어느 부분이 잘못인지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댓글을 보니 "bring"이 아니라 "take"라고 하고, 또 "a book"이 아니라 "books"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6. 어떤 신학자가 주야장천 (晝夜長川) 칼뱅 칼뱅해대는데, 어떤 이가 그에 대해 이렇게 비꼬았다. 칼뱅이 21세기로 살아 돌아온대도 그러진 않을 거라고... 어디 칼뱅 뿐이랴. 바울은 어떨까 또 예수는? 구약을 기록한 이들은? 성경의 저자들, 주인공들이  오늘 한국 주류 개신교가 그를의 기록과 당시 역사 해석하는 바를 본다면 아마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할 것같다. 역사와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한다. 시효가 지난 도그마를 붙들고 있으면서 진리로 우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글들이 눈에 띄면 챙겨보게 되는데, 말로만 시키지 말고 먼저 보이라는 얘기를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키기 전에 부모가 먼저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라는... 밥먹으라고 채근하지 말고 식구들이 함께 식사한다던가... 그렇다. 어디 자식 교육에만 그럴까. 말만으로 바꿀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말만 좋은 사람보단 차라리 과묵한 사람이 더 낫다. 과묵하기만 한 사람보다는 행동으로 잘 보여주는 사람이 더 낫고.

2015년 2월 2일 월요일

이런 주제를 "연구"하면 정말 재미있겠다. 한겨레 토요판 기사다.

"영어학원은 이렇게 현대사를 관통했다."
1. 기대(1)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요즘 그래도 기사는 꾸준히 생산되고 또 소비된다. 기사들의 내용을 표현하는 핵심 단어로 "기대"를 들 수 있겠다. 꼴찌 팀도 올 시즌에는 다를 거라며 기대담을 부추기고, 몇 년간 쇠락하던 선수도 올 해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다며 기대감을 복돋운다. 몇 년 겪다보니 이젠 그런 기사를 제대로 들춰보지도 않는다. 손쉽게 기사를 만들어 보려는 기레기들의 키보드 장난일 따름이니까. 정말 기레리들... 쓰레기들... 인간도... 기사도... 좀 고급스러운 스포츠 기사를 읽어 보고 싶다.


2. 기대(2).
손흥민의 만화같은 동점골. 그런 극적인 장면이 나왔다면, 결말은 한국팀의 승리였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만화가 아니었다. 현실은... 기대가 극적으로 부풀려지고 해피엔딩! 그런 이야기들은 선별된 특수한 사례들이다. 강연 100도(?)나 서점 한 귀퉁에서 접하게 되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예외적인 스토리에 익숙해지고, 기대치를 높였다간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1.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우종학, IVP)에서 촉발된 관심이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김윤성, 신재식, 사이언스북스)로 이어졌다. 아. 그 중간에 이러저러한 다른 책들도 찾아봤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라 업그레이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재미있게 또 흥미롭게 읽고 있다. 오랜 고민이 속시원하게 풀리는 듯한 느낌적 느낌을 갖는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그대로 발설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 발설...

2. 모처럼 가정예배를 드리다. 중간에 자기 의자를 들고 와서 성경을 들춰보던 딸이 뜬금없이 "예수사랑하심을"을 부르자고 한다. 하여 불렀더니 1절이 끝나기도 전에 그만 두고 이번엔 "산토끼"를 부르자고 한다. 본인도 어지간히 끼고 싶었나 보다.

3. 뭔가 답답함이 남아 있어서 근처 교회를 찾아가 봤다. 예전에 기도하려고 찾았다가 헛걸음 한 적이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오늘은 본당이 열려있다고 안내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지난 번엔 더 늦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답답함은 조금 해소됐다. 구체적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발설하기가 좀 그런 탓에 패스.

4. 알면 알수록 모르는게 더 많아진다더니... 그 말을 절감하게 된다. 경험적 연구에서 많이 쓰는 개념인 "원자료" "raw data"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진다. 2차 문헌들은 도대체 믿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자료를 확인하면서 파고들 수 있는 분야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얘긴 결국 인생은 그냥 평생 발톱 하나 어루만지면서 처음보는 코끼리를 그려내는 맹인 신세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헛되고 헛되다.
"다시, 미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 원유 생산 기술의 혁신으로 미국에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난다는데... 그게 지금 유가 하락의 원인이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나라는 러시아고... 미국 참 대단하다. 금융 위기로 곧 망할 것 같았는데... 참... 시대를 진단하기는 어렵다. 어려워. 변수가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