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논문이건 책이건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이건... 글이건 예술작품이건 간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하다 못해 메시지가 없다는 메시지라도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그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그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나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 정보나 지식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시켜야 한다. 그게 한국 사회에, 사회학 담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알려주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내가 읽은 리영희, 이원복, 박노해의 글에는 그게 있다. 리영희는 우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성의 빛을 비추려고 했다. 남들은 알고도 모른 체 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어 세상에 대한 우리 인식의 균형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다. 이원복도 분명하다. 문화민족, 존경받는 민족이 되려면 남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선진국 뿐 아니라... 특히 지금까지 널리 다뤄지지 않았던 지역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발칸반도, 동남아시아, 중동... 박노해...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분쟁지역에 대해서, 그 곳의 삶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 그곳에도 사람이었네... 메시지가 분명한 책을 한 권 더 추가해야겠다. 정수복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놀라운 책, 반가운 책이다. 거기에서 정수복 선생은 현대 한국이 갖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개인주의'에서 찾는다. 개인주의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살리는 일이 왜 긴요한지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내 논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문화의 비극. 구조와 문화의 불일치.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는 기능적 분화라는 서구적 틀을 좇아가지만, 거기에 맞는 문화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너무 서구중심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불편한 진실이다. 부인할 수 없는...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한국 문화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서구 중심으로 세계화된 문화가 외피를 이루고, 한국적 근대성이 만들어낸 문화가 속살을 이루는... 문화의 비극은 이 두 문화 사이의 갈등, 불일치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서구화, 서구적 근대화를 더 충실히 이행하면 문화의 비극이 사라질 것이라는 순진한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근대성 역시 문화적 비극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하지만 그것은 그 다음 과제인 것 같다. 한국에 필요한 문화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상식적인 것들이다. 개인주의, 인권 같은... 한 마디로 '상식' 혹은 '기본'. 기본이 갖춰져야 비로소 다양성, 복지, 윤리, 책임 등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식은 출발점일 따름이다. 하지만... 출발선에 제대로 세우는 작업을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정하게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게임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게임, 기능적 분화라는 게임... 착한 혹은 공정한 자본주의, 자본가...
궁극적으로는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지만... 내 논문에서 그런 얘기까지 꺼낼 수는 없는 일.
여하튼 한국은 정상 근대성, 정상 자본주의의 길을 밟고 있다. 정상 자본주의를 이르러야...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나? 반드시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성만 놓고 보면... 하지만 역사적 경험을 놓고서 판단할 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남이 밟은 경로를 밟고서... 충분히 소화한 이후에라야... 제 삼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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