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의 구조를 혁명적으로 (영성 혁명, 사랑의 혁명) 전복시킬 수 없다면, 가능한 대안은 기존 구조가 '영성' Ich-Du 관계를 지향하고 그것을 지지하도록 고쳐 쓰는 것이다. 과학은 진리탐구를 위한 인간의 지적 노력이다? 그것이 영성을 지지하지 않는한 그런 과학은... 글쎄... 물론 목적지향적이지 않은 연구의 결과가 긍정적 적용으로 이어진 바도 적지 않지만... 어쩌면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선... 연구활동을 지나치게 영성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제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서 다시 떠오르는 질문은...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는 한 방식을 난 Ich-Du 관계에서 찾긴 했지만... 더 고민할 문제다.
여하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환경, 인간과 기술, 인간과 체계와의 관계가 생명, 영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불평등 구조의 재생산, 상업화 경제화 경향, 소외, 배제 같은 현상이 막아야할 혹은 치유해야할 대표적 현상이다. 윤리, 특히 제도화된 윤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윤리는 결국 기득권, 소수 특권층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 아닌가? 윤리는 한편으로는 발전주의, 성장주의에 대한 성찰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과장된 윤리 주장도 별 도움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버마스처럼 담론윤리... 내용 없는, 지배 없는 자유로운 토론, 담론이 가능할까?
복지국가가 그런 것처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에 완벽한 윤리가 있을까. 어설프더라도 과학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리고 여전히 과학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에 경도되어 있더라도, 그런 논의를 통해서 윤리가 다양해지고, 일상과 더 밀접해지면 나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면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윤리'를 수리해서 써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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