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7일 화요일

'Ich-Es'와 'Ich-Du'의 구분을 중심으로 사회, 근(현)대사회의 작동 원칙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대사회에서는 Ich-Es 관계가 지배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만, 그 만남은 Ich-Es인 경우가 많다.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심지어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 동료들끼리도 '직장동료'라는 가면(persona)를 쓰고서 관계를 맺으니까. '도시'라는 구조는 Ich-Es 관계에 친화적이고, 체계 합리성, 체계 이기주의를 지니는 기능체계로의 분화라는 근대사회의 기본 구조에서 인간은 고작 환경에 위치할 뿐이다.  '근대사회' (특히, '도시')는 인간을 연료로 쓰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다. ('기능적 분화'와 '도시화'의 친화성. 도시의 익명성과 기능체계에서 인간의 원천적 배제와 유사).
이는 퇴니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구분하면서 얘기하려는 바, 즉 게마인샤프트의 상실이고,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고향 상실(Heimatlos)이고, 하버마스가 '체계'(System)와 '생활세계'(Lebenswelt)를 구분하면서 얘기하려는 바에 따르면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이고...
매체(media)의 발달은 Ich-Du 관계에 대해선 대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매개체 없이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가 Ich-Du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감 같은 원초적 매체 없이는 관계 맺기가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인간이 생래적으로 타고난 매체를 제외하면... 그런 것 같다는 말씀. 근대의 대중매체, 최근의 신미디어들은 Ich-Es 관계의 폭발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고... 물론 인위적 매체들도 자-알 쓰면 Ich-Du 관계의 형성, 영성, 거룩함 등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알 쓰면...

체계, 기능체계, 게젤샤프트가 그나마 게마인샤프트적인 속성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경우들이 있다. 그걸 어느 정도 성공한 지역을 우리는 복지국가, 선진국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Ich-Es 관계를 가장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서 가능했다. Ich-Du 관계는 사실 - 부정적 의미로 - 봉건적, 전근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신비적, 정서적 관계... 근대사회의 질서에선 Ich-Du 관계를 강조하면... 오히려 전체적으론 Ich-Du 관계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근대적 질서에선 Ich-Es 관계가 깔끔하게, 상식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Ich-Du 관계를 회복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한국에선 Ich-Es 관계를 상식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궁극적 과제는... Ich-Du 관계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이는 근대적 질서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킴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은 작은 규모에선 가능하나, 사회 전체, 특히 세계사회를 생각한다면... 실현 가능성은 뚜욱 떨어진다. 그 앞에선 복지국가, 선진국들도 크게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지금 한국에서 시급한 과제는 분명하다. Ich-Es 관계를 제대로 세우는 일. 그리고 가능한 Ich-Du 관계를 중심에서 놓지 않기...

Ich-Du 관계에서 '평등' '자유' 같은 문제는 어떻게 이해될까? (Ich-Du 관계를 '영성이 충만한 관계'로 이해하자. 내 식으로...) 아마.. 평등, 자유 같은 개념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줌을 통해서, 베풂을 통해서 받는 그런 관계 아닌가? 아마 '선물(物)의 경제학'이 그런 얘기 일 것이다. '권리' 같은 것도... '권리'는 Ich-Es 관계에 적합하다. 계산이 분명해야 하므로. 인권 등 각종 권리가 중요하고, 특히 약자의 권리를 법과 행정력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깔끔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Ich-Es 관계 정립을 위해서 그렇다. Ich-Du 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한계가 있다는 말씀.

Ich-Es 관계를 기초로 삼는 근대사회가 이루어 낸 긍정적 성과가 적지 않다. Ich-Du 관계로의 회복은 그런 성과를 긍정적으로 계승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퇴행적 혹은 문명도피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미국 아미쉬(Amish) 공동체처럼...  하지만 Ich-Es와 Ich-Du는 근본적을 다른 프레이밍, 혹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제대로 접목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런 주제에 관해서 다양한 연구가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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