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음악 감상부터...
마땅히 떠올릴 기억이 없는 옛 음악듣기처럼 심심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135분 동안 밥 딜런 노래 59곡이 나온다는 영화 'I'm Not There'(2007)를 도저히 좇아갈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밥'과 친할 기회가 없었고, 심지어 그의 대표곡이라고 할 'Blowin’ in the Wind'마저도 낯설기만 하다. 반면에 이 'Old Friends'는.... 아, 기타 반주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풋내 풍기던 그 더벅머리 시절... 그 때 나이 곱절을 넘긴 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남아 있는 이 느낌의 정체는...
[웃기는 일과는 멀어도 한참 멀 것 같은 사회학자들이 등장하는 유머라... 우연히 발견했는데 희소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올려둔다. 내가 찾은 곳은 http://junie.egloos.com/445486 인데, 그곳에서는 출처를 다시 '싸이월드 클럽, 책마을, 작성자 : 주차영준'으로 밝히고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도 몇 군데 있지만, 이 정도면 잘 만들었다. 그런데, 님, 우리 루만 형님을 빼 놓는 실수를... 아니면 '아직도 한 마디 해 보지 못한 수 많은 학자들'의 하나로 처리하셨나. 루만이 등장했다면 무슨 말을 남겼을까? 그러고 보니 '민방'쪽도 안 보이고. 이거 너무 편파적으로 섭외한 것 아니야? ㅎㅎ]
사회학자들의 TV 토론회....
<수많은 방청객과 패널로 둘러싸인 한 토론장. 세계 곳곳의 사회학자들이 한 마디 헛소리를 찌끄리기 위하여 포진한다. 중앙에는 나름 사회학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석학이라 알려진 기든스님이 마이크를 쥐고 사회를 보고 있다. 시끌벅쩍. 웅성웅성. 세상에서 가장 실용성 없는 학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란 대체로 이렇다>
사회자 멘트 : 자. 모두들 어떻게 지내십니까? 먼저 사회학계의 원로이자 사회학의 양대 산맥인 두 분에게 묻습니다. 베버씨, 그리고 맑스 씨,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가? 사회자인 저는 제 3의 길로 책도 많이 팔아먹고 명예도 얻고 욕도 많이 먹은 후학, 앤써니 기든스입니다. 선배님들,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버 : 아 그게 참,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맑스 : ㅋㅂㅅ . 제가 한 마디로 대답해 드리죠. 돈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격투에 들어간다. 양측의 수많은 지지자들이 격투에 달라붙어 삽시간에 그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기든스 : 하여간. 두 선배님들 그만 좀 싸우십쇼들. 제가 두 분의 입장을 대표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제가 서른이 되기 전에 쓴 논문에서 보면.....둫ㅂㄷ해ㅔㅂㄷㅈ후ㅇㅎㅁㅇㅎㄷㅎㅁㄷㅎ.
<방청석에서>
뒤르껭 : 둘이 맨날 싸움질이라니, 이거 완전 아노미로군. 짜증이 나서 자살하고 싶어지네.
스펜서 : 그러게, 대체 저 치들은 진화라는 걸 모르는군!
모스 : 적당히 주고 받으면서 양보하고 살면 될 것을.
레비스트로스 : 선배님, 맞는 말입니다. 사회학의 역사 이래로 저 둘은 매일 싸우는군요. '사회학'이라는 구조가 저 둘을 투쟁하게끔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슬픈 사회학이로군요.
밀즈 : 하여간 저 놈들, 저렇게 상상력이 부족해서야!
로크 : 어짜피 역사란 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데, 싸움은 필연 아닌가?
다윈 : 그리고 승자가 살아남는 거죠.
파슨스 : 그리고 저처럼 만사 오케이인 겁니다. 참고로 저는 언제나처럼 잘 지냅니다.
알튀세르 : 파슨스 선생, 안 물어봤습니다. 지금 제 앞에서 답부터 놓고 질문을 찾아보자 이겁니까.<그리고는 돌연 춤을 춘다>
후쿠야마 : 알튀세르, 이 지저분한 공산주의자 같으니! 자네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이가 어떻게 이 토론회에 참여했는 지 모르겠군. 공산주의는 종언을 고한 지 옛날인데! 너 같은 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려!
<찌질이 후쿠야마는 묵살당한다>
하버마스 : 저색히는 하여간 대화라는 걸 모르는군.
그람시 : 진지 깊숙한 곳에 묻어버릴까요? 아이구 허리야. 맨날 진지작업 하다보니 허리가 휘어서 이것 참.
데리다 : 그런데 나는 잘생겼지롱. 게다가 축구도 좋아한다구. ㄷ루멛ㄻㄷ함ㄷㄷ. 두헤댛ㅁ?
<데리다가 외계어를 시작합니다>
고진 : 쯧쯔. 저 인간 또 이성을 상실했군. 하여간 저 치들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아도르노 : 하지만 이성이 세상의 모든 답이 될 수는 없지요.
루소 : 이성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망쳐놓았는지 보시오!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오!
<루소는 다섯 병째의 포도주를 비웁니다>
페스탈로치 : 선배님, 술 좀 작작 처먹으이소. 그 시간 있으면 나랑 농사나 지으러 가지 그것 참. 교육학 망신은 다 시키네.
푸리에 : 자네, 나와 함께 공동 농장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는가? 크고 아름다운 공동 농장을 세워보자구. 자네 돈은 좀 있나? 여기 내 계획서를 한번 보라고. 일단 이 정도 규모의 땅에......
<장황하게 설명하는 푸리에 앞에서 페스탈로치는 빚쟁이들에게 끌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강인한 표정의 대머리 친구가 푸리에에게 접근한다>
레닌 : 어이 푸리에씨, 그런 공상주의적인 방법으로 세상이 바뀔꺼라 생각하나? 세상을 바꾸는 건 체계화된 혁명이야!
트로츠키 : 체계화되고, 국제적이고, 영구적인 혁명!
스탈린 : 그리고 피의 숙청!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뒷통수에 얼음 도끼를 꽂습니다>
조지오웰 : 저런 돼지같은 색히!
크로포트킨 : 국가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주의란 고작 저 정도지. 해답은 아나키라니까.
일리히 : 그러췌. 체계가 병폐를 만드는 거지.
마오 : 공허한 망상은 좀 집어치우시게. 그래서 자네들이 한 게 뭔가? 이상한 이상주의적 글이나 몇줄 찍 써 놓은 거 말고 또 뭐 한 일 있나? 나는 대륙적 기질로 일국 내 혁명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네만.
네그리 : 하! 국가. 국가. 국가. 대체 국가라니, 아직도 그런 철지난 단어를 입에 올리는 촌스러운 사회학자도 있나?
<네그리의 얼굴로 모형 비행기가 날아온다. 그의 옆에 앉은 하트의 얼굴에도 모형 비행기 한대가 날아와 그들의 얼굴을 강타한다. 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허물어진다. 남녀노소와 분야를 막론하고, 촬영장에 있는 전원 긴장하여 그 둘의 무너짐을 지켜본다>
보드리야르 : 저 둘, 무너진 것 같겠지만 사실 무너진 게 아냐. 그건 단지 이미지일 뿐이라고.
<일동 야유>
프레데릭 제임스 : 저색히 또 헛소리질이군. 요즘 헛소리꾼이 너무 많아졌어. 역시 제대로 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우리 마본좌님이신데 말이지. 문제는 돈이란 말야.
프루동 : 당연히, 소유는 도둑질이지!
<일동 조소>
H미드 : 그런데 왜 빨갱이들만 말하고 있나? 이래서 빨갱이들이 안된다니까. 대화로 미뤄봐도 쉽게 알 수 있지.
M미드 : 잘 만났다 조지 허버트 미드! 네놈 때문에 내 이름이 헷갈린다는 사회학도들의 투서가 있다르고 있다. 내일 오전 여덟 시 까지 사모아 섬으로 나오도록. 여성의 힘을 보여주마.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는 나오나 대학 사회학 교재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마가렛 미드와, 대학 사회학 교재에서는 나오나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지 허버트 미드는 옥신각신을 시작한다>
프레이리 : 또 싸움인가. 잠시 앉아 대화를 나눈다면 세계에 대해서 훨씬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 왜 또 싸움질인가.
니체 : 그러는 당신의 교육론도 터무니없는 이분법이잖아?
슈펭글러 : 결국 말싸움으로 치닫는 건가. 하여간 토론이든 뭐든 이렇게 막장으로 끝나기 마련이지.
할쉬베르거 : 이쯤에서 누군가가 토론을 좀 정리했으면 좋겠는데.........
들뢰즈 : 토론에 시작과 정리 따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크리스테바 : 아. 이런 식의 발상이란. 남성적 말하기의 한계지.
<여전히 한 구석에서는 마본좌와 베본좌를 위시한 두 세력이 사투를 벌이고 있고, 아직도 한 마디 해 보지 못한 수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말하기 차례를 기다리며 한껏 폼을 재고 있다. 사회자인 기든스는 방청객들을 상대로 자신이 저술한 교재의 우수성에 대해 논증하고 있으며, 토론은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여하튼 베를린에서 MoMA 전시회가 있었다. 포츠담광장 근처였던, 역시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전시관에서 뉴욕의 MoMA, 그러니까 The Museum of Modern Art 소장 작품이 대거 전시되었던 것이다. 뉴욕 그 미술관을 대폭 뜯어 고치는 중이어서 일부 작품들이 독일로 오게 된 것이었는데 독일 내 반향이 대단했다. 우리가 갔던 날도 입장까지 2시간 가까이 기다렸어야 했을 정도로. 그런 집단화된 행동의 근거는 뉴욕까지 가지 않고서 미국이 자랑하는 소장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합리적' 판단이었을까? Rational choice? 그 보다는 유명세, 호기심, 분위기 탓이 아니었을까? 나를 보더라도... 어찌되었건 그 일원이 되어 관람한 결과, 오랜 기다림에 비해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전시 작품의 수가 - 내 기대 혹은 예상에 비해 - 턱없이 부족했고, 대개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것이었고 원본만이 갖는다는 그 아우라도 (W.Bejamin)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현대미술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장르 혹은 표현형식 개발이 중요해져서 처음에는 충격을 주는 신선한 시도였겠지만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익숙해지면 원본을 봐도 그저 그만이거나 심지어 촌스럽게 느껴지는... (대표적으로 앤디 워홀). 그나마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게 바로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었다. "Gas" (1940)라는 주유소 풍경을 그린 그림을 비롯 몇 점 선 보였던 것 같다. 대번 "아, 미국이구나..." 그런 생각을 들게하는 그림들이 었다. 미국식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로치면 코엔 형제들 작품들). 어떤 요소가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까? 최소한의 소리만 들릴 것 같은 그런 한산한, 심지어 스산한 분위기, 그러다 한 방 총소리가 갑자기 정적을 깰 것 같은... (cf. 영화 'no country for old men'). 그리고 표정없는 얼굴들, 심지어 인물이 중심에 위치한 그림에서마저도... 움직임도 그리 많지 않아서, 대개 사람들은 그저 배경을 이루는 다른 사물들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정지해 있다 (그나마 'Gas' 속 주유소 직원 아저씨가 움직임을 보이는 편). 익명성? 파편화된 개인? "호퍼의 그림 속에서 인물들은 최소한의 언어만 사용할 듯하다."(정윤수). 우리에게 익숙한 뉴욕이나 헐리우드 같은 겉옷을 벗기면 드러나는 미국의 속살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호퍼 스스로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고독을 그렸다’고 말했다는데... 대도시? 소도시?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오늘 5월 15일이 이 호퍼의 사망일이란다. (요즘 내가 즐겨 보고 있는 정윤수씨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정윤수씨는 지금 그 날짜를 실마리삼아 365일 동안 매일 뭔가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나는 그 블로그에서 가끔씩 쓸 거리를 줏는 것이고... 아래는 호퍼 그림을 모아 놓은 영상물. 그 중에 나오는 인용구가 인상에 남아 옮겨 적는다. 호퍼씨 왈, "If you could say it in words there would be no reason to paint")
"루만은 심리체계와 사회체계의 기본구분을 기초로 데카르트, 후설, 뒤르카임에 의지해서 의식과 사회 사이의 내부/외부 차이 위에 이론을 세운다. 그에 반해서 부르드외와 기든스의 문화이론은 소쉬르와 후기 비트겐슈타인에 의지해서 이 내부/외부 차이와 거리를 두고 대신 지식구조와 행위실천의 분석적 기본차이에서 출발한다. "
Reckwitz, Andreas (1997), Kulturtheorie, Systemtheorie und das sozialtheoretische Muster der Innen-Außen-Differenz. In: Zeitschrift für Soziologie 26: 317-336.
이런 식의 프레이밍(혹은 범주화)엔 늘 왜곡의 위험이 따르는 법이지만 그걸 감수하지 않고서야 도무지 이론들을 비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두 문장에 8명의 학자를 등장시켜 편을 가르는... ㅎㅎ). 아주 신선한 구분이고 설득력도 있다는 '심증'은 가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