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5일 일요일

미래의 음악, 음악의 미래

한겨레 Esc에 인디 밴드 소개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좀 '복고풍'인데.... "열정과 풋풋함. 봄햇살처럼 다가오는 인디 밴드 둘".

기사는 두 밴드를 이렇게 소개한다: "데뷔 음반으로 ‘명랑음악’ 이미지를 확고히 한 ‘페퍼톤스’, 그리고 젊음의 순수함이 두드러지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다."

열정, 풋풋함, 순수, 젊음, 봄햇살... 아, 이런 닭살 돋는 어휘들의 향연이라니... 이런 꾸밈어가 어울리던 세대가 있지 않았던가? 소위 청바지, 통기타 세대, 대학가요제 세대? 81년생에서 85년생 사이인 현역 대학생들을 묘사하는데 다시 이런 어휘가 동원되다니... [이론적 근거가 없지는 않다. 돌고-도는-게-유행론부터 비코, 슈펭글러 등의 '역사순환론'까지 ㅎㅎ]. 아닌게 아니라 페퍼톤스 애네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머리모양 탓인지 70년대의 그 장발족 형님들 필(아니 휠)이 확 온다. 외모까지 복고풍인 것. 그게 전부가 아니다. 팀 이름도 '페퍼톤스'더니 2집 이름이 '뉴 스탠다드'란다. 역시 70년대 그룹 '블랙테트라', '샌드페블즈', '휘버스'와 한 가족이다. 혹시 '복고'를 '컨셉'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닌지? 아,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더 강한 판단은 잠시 유보.

어쨌든 이런 21세기 대학밴드들이 선배밴드와 다른 점은? 음반을 낸다는 점 아닐까? 혹은 “평생 음악을 하기 위해 먹고 살 직업을 찾을 겁니다”라는 각오? (이 아이들은 대개 '1류대'에 다니고 있단다. 공부 못하고 직장 얻기 힘들어 음악한다고 나선 대딩들로 오해당하지 않도록 우리 기자 선생님 친절하게 언급해 두신다. 이런 엘리트형 밴드, 이전에도 없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동물원'... ). '브로콜리 너마저'의 싱글 음반은 집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음향, 녹음기기들, cd 굽기, 컴퓨터, 인터넷 등등) 음악을 만들고 유통하고, 가수로 나서는 일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다. 이런 새로운 환경은 '저렴하게' 음악활동 하고 싶어하는 대학밴드, 인디밴드들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장치들이다. 추세를 보아하니 이런 음악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대중음악이 양분되는 현상까지 보여줄까? 기획사를 통해서 '사육'되며 주로 티비에 얼굴을 비치다 좀 뜨면 가수가 아니라 엔터네이너라고 강변하는 아이들(혹은 '아이돌')과 스스로 작곡, 연주하고, 저렴하게 음반제작, 판매하고, 콘서트하기 즐겨하는 아이들로? 아님, 콘서트 고집하는 이들이 한 켠에 늘 있었던 것처럼 비주류로 남고 말 것인가?

'위기'는 근대 이후로 익숙한 단어다. 약간 불편하지만 안전하긴한 신의 정원[혹은 왕의 정원]을 박차고 나와서 인간들끼리 뭘 해보겠다고 작당한 이후로 말이다. 위기 시리즈는 끝이 없다. 최근에는 경제위기, 에너지위기, 또 다른 영역에서는 한국영화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등등. 음악관련해서도 p2p를 통한 음원 공유로 음악활동이 위축되며 가수들 굶어 죽는다는 위기담론은 오래 전부터 유통되고 있다. 위기담론 유포는 대개기득권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음악의 위기는 음악인들의 위기인가 그렇지 않으면 음반장사 혹은 기획사들의 위기인가? 특히 한 두곡에 집중하고 나머지 곡은 부록같은 그런 앨범들 팔던 장사치들에게 위기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음악활동 자체가 위축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겨레 기사는 음악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이 달라지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다른 예로... 나름 자리를 잡은 가수들 중에서 자신들 노래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 그룹 누구였더라...). 문화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그런 대중음악시장이 형성된 이후로 음반을 만들고 파는 것이 음악 커뮤니케이션의 물적 토대가 되었는데, 그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그런 메카니즘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같은 지배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 인터넷 정보 공유 메카니즘 때문에...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현상을 도덕, 법에 호소하거나 위협한다고 바꾸기는 힘들다 (배아연구 규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식도 상품이고, 소유권, 재산권을 붙이고 보호하고 하지만 우리 인식 속에서 mp3 파일 주고 받는 행위는 음반가게에서 cd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 오는 행위와는 다른 범주로 분류한다. 음악을 즐기고, 음악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은 이들은 기획사, 방송국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존재를 알리고, 심지어 음반도 적지 않게 팔 수 있는 메카니즘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페퍼톤스 1집은 1만3000장 넘게 팔렸단다).

여기서 제시하는 내 테제: '질이 좋은 음악은 어떻게든 살아남게 되어있다.' 그러니 사육된 아이들의 매끈매끈한 '사운드'보다 인디밴드들의 거친 생소리를 훨씬 높게 평가하는 나로서는 p2p로 음반시장, 가수 사육메카니즘이 완전 무너진다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문학이 죽어간다는 진단의 근거도 좀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내 테제를 이 쪽에 적용하면: '좋은 인문학은 살아 남는다'.] 생각해보면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활동의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는다. 과거를 비춰보아 현재의 차이를 드러내고, 그러면 미래도 예측해 볼 수 있다. 그게 사회학의 이념이라면 이념이니까 뒷북치기, 기득권 유지는 특히 사회학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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