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1일 수요일

영국: 법개정으로 이종간 체세포핵이식 허용

또 한 번 영국이 앞서나갔다.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지난 19일 영국 하원에서 인간-동물의 교잡배아(이종간 체세포 핵이식)를 허용하는 법안이 찬성 336, 반대 176으로 통과되었단다 (관련 한계레 기사). 이 같은 이종배아는 연구목적으로만 만들 수 있으며 핀 머리 정도의 크기가 되는 14일 이전에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한다. "하원은 또 희귀병을 앓는 자녀의 치료를 위해, 시험관 수정을 한 배아 중 건강한 유전자를 지닌 배아를 골라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구세주 형제’(saviour siblings) 법안도 통과시켰다". 흠. 구세주 형제 법안이라... 어째 원어도, 번역도 좀 거시기하다. '맞춤형 아기법'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들리긴 한대, 설마 그게 정식명칭은 아니겠지. 둘 다 새로운 건 아니다. 탈핵 동물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건 한국에서도 2003년 12월 생명안전윤리법이 통과되기 전 황우석, 박세필 같은 연구자들이 소난자를 가지고 해 본 적 있고, 중국에서도 토끼 난자를 사용해 실험한 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혹은 숨어서 이 실험을 하고 있다가 영국인들의 '선구적' 결정에 조용한 지르고 있을 연구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실험에 그리 대단한 설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탈핵난자에 동물의 핵을 이식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아마 이번에 통과된 영국법에서도 당연히 금지대상일 것이다. 이런 이종배아를 만드는 건 무엇보다 인간 난자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또 인간DNA를 가진 줄기세포를 얻는 게 목적이니까. '구세주 형제 법안'의 내용이 되는 착상전유전자검사(PGD, PID)도 수 년전부터 여러 국가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다른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물론 영국이 이 연구를 법을 통해 명시적으로 허용한 최초의 국가인 것은 틀림없지만 - 이종간 체세포 허용은 확실, PGD는 아닐 수도 - , '세계 최초'라는 문구에 너무 현혹될 필요 없다. '박지성의 아시아인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참여'처럼 뭐든지 '최초'는 뉴스가치가 높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후 맥락도 좀 공부해서 소개해주면 좋으련만, 그냥 외신 받아 번역하는 수준이니... 똑똑한 독자들이 알아서 이해해라? 그렇지. 우리 한국인들 황우석씨 덕에 세계 그 어떤 국민보다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사실일테니... (나의 반복되는 매스미디어, 특히 신문 비판 혹은 비아냥이 언론인 개개인을 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둔다.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하신 분들 아닌가? 물론 주로 포탈에 낚는 글 올리는 언론인이라고 불러주기 민망한 그런 이들 제외하고. 한국 언론인의 지능, 역량이 특별히 낮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없다. 구조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금 딱 꼬집어서 뭐라 얘기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한국 매스미디어의 취약성을 자꾸 강조하는 건 만만한게 언론이라서가 아니라 공부하고 관찰할수록 매스미디어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쪽, 그러니까 생식보조술, 배아연구 분야에서는 늘 앞장서서 나가기는 했다. 대표적인 게 1978년 최초 인공수정 아기 브라운 탄생, 1997년 돌리 탄생. 영국은 자신들이 앞서나가는 분야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길 원하기 때문인지 공공 논의나 법제정이 늘 앞서 나간다. 법으로 허용하면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법 제정을 피하거나 미루면서 관리도 되지 않는 '눈가리고 아웅'-상태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에서는 '실용적' 결정이다. 굳이 동물난자를 쓰는 이유는 인간 난자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 황우석씨가 논문에서 수백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발표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난자를 모을 수 있었을지 그것 자체가 이슈였으니까 (결국 1000개 이상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umso erstaunlicher!). 숨어서 하더라도 일일이 통제하기 힘들고, 찬성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이런 이슈에 대해서 차라리 허용하고 관리철저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긴하지만,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가능하고,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다 해야 하는가? 현대사회의 악몽은 그런 경계 긋기가 매우 힘들다는데 있다.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싶거나, 연구비 타낼 수 있으면 하려고 하고, 기업들은 돈 벌 수 있다면 투자하려고 하고, 언론은 뉴스가치가 있는 방향으로 보도하면서 여론조성하고, 정치는 여론을 통해 유권자들을 관찰하고.... 딱 우리 울리히 벡 선생이 얘기한 'die organisierte Unverantwortlichkeit'가 어울리는 '시츄에이션'이다 (내가 벡선생을 별로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데 그 양반 제목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재주 하나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인 사회진단형 사회학자, 저널리스트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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