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란 단어를 자주 쓰긴 하는대 쓸 때 마다 좀 걸리긴 하다. 사실 대중이란 표현으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국민의 뜻'에서 그 '국민'도 그렇고. 그런 위험을 피하려면 이름이 길어진다. 미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 혹은 대중들. 음. 그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입을 반대하는 것 아닌가. 촛불집회에 수 만이 모였다고 하지만 그들이 대중인가? 대한민국 인구수에 비하면 턱 없지 적은 수 아닌가? 여론조사? 직접 물어 본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그들의 의견마저 언론 등을 통해 조작을 반영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할 말 없다. 대중은 철저하게 언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론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통제 메카니즘이 있으니까. 대중은 합작품이다. 언론, 인터넷, 정치, 사회운동 등등이 합작해서 만들어 낸 새로운 질서이다 (emergenz). 그 어느 단위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는 현대 사회이론에서 이런 co-evolution 적 시각이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가장 래디컬하다고 여겨지는(것 같은) Latour가 얘기하는 human/non-human 간의 관계도 결국 co-evolution아닌가?] 대중을 우선 대략 그 정도로 정의하자.
이 대중은 이슈에 따라 매우 다르게 조직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만 생각해 보자. 금모으기, 월드컵, 반미, 탄핵반대, 황우석, 디워, 이번에 미쇠고기. 내가 아래 글 '그 때 그 사람'에서 쓴 것처럼 다른 혹은 같은 사람들이다. 왜, 언제 동원이 될까? 우회하도록 해보자. 황우석씨의 경우 광우병내성 소를 만들려고 했늗네, 그 내용은 결국 유전자 조작이다. 일부가 그런 점을 지적했지만 그 때문에 반대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다. 반면에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한 거부감은 한국에서도 상당하다. 학자들은 GMO 반대여론 형성의 이유 중 하나로 소비자들에게 실제적인 유용성이 없음을 들고 있다. 미쇠고기의 경우 대중은 위험의 가능성만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명박씨는 초기에 싼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되었음을 강조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라고 본 것 같은데, 참 생각이 짧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한우가 비싸다고 한들 광우병 위험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수입되는 소고기를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참 절망스럽다. 푸른기와집에서마저 그 많은 여론전문가, 위험연구자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누구는 얼리버드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잠이 부족하다보니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 대중은 쇠고기에 그리 목매달지 않는다. 대체제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어떤 실제적 이익이 떨어지는지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어야 했다. 한국에서 대중이 형성되는 메카니즘을 보자.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해석틀은 여전히 경제성장, 잘먹고 잘살기다. 2MB는 왜 자신이 당선되었는지를 성찰해 봤어야지. 이명박씨가 너무 경제만 밝혀서 국민들이 질렸다? 천만의 말씀. 취임전후 지속된 이명박 정부의 여러 헛발질은 그 몰경제성, 비실용성 때문이다. 영어 몰입교육, 대기업친화적이기, 미쇠고기수입, 혹은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이 왜 실용적이며 어떻게 잘먹과 잘사는 것과 연결되는지를 설득시킬 수 있었어야지. 대중은 그리 지고지선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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