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9일 금요일

프리온

신문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광우병 이야기를 듣지, 아니 보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 후반 영국에서 한참 광우병으로 시끄러울 때도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최근 수입 쇠고기 사태 덕에 배우는 것이 많아진다. 인터넷에는 찌질이들이 아는 척 써 놓은 것들이 워낙 많이 돌아다니는데 믿을만한 내용이 한글 위키피디아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큰 품 들이지 않고 파악할 수 있다 . 광우병을 이해하는 핵심은 프리온(Prion)인데 이는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의 줄임말이다. 단백질을 뜻하는 'protein'에서 pr을, 감염성을 뜻하는 'infecious'에서 i를, 입자를 뜻하는 접미사-on을 붙여 만들었다. 1997년 미국의 스탠리 프루시너가 프리온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하였고 하니 참 최근 일이다. 프리온은 바이러스와 대단히 흡사하긴 하지만 살아있는 세포가 아니라 단백질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살아있지 않으니 죽지도 않는다.이 단백질은 좀 특이하다. 유전자 없이도 증식을 할 수 있다. 정상적인 형태일 때는 문제가 없으나 어떤 이유로 분자구조가 미세하게 바뀌게 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분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수백 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기타 자외선, 소독물질, pH의 변화 등 외부환경에 대단히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 바이러스를 포함한 일반적인 미생물의 소독 방법으로는 불활화가 불가능하다. 고압증기멸균(autoclave)기에서 134도로 18분 이상 가열하면 성질이 변형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주변의 정상 프리온들까지 물들여버린다는 사실. 똑같은 변형 프리온으로 바꿔버린다. 이 변형 프리온이 소의 몸 안으로 들어간 경우를 생각해보자. 결코 대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주변에 같은 형태의 변형 프리온들을 늘려나갈 것이다. 이 현상은 뇌세포에 치명적이다. 정교한 기계에 난데없이 구멍을 숭숭 뚫어놓는 꼴이 된다. 그 구멍들은 점점 커질 것이다. 뇌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고 결국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이것이 광우병이다. 이 불행의 메커니즘은 인체에서도 그대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프리온 인자는 단백질 구조를 다시 접음(refolding)으로써, 정상적인 단백질 분자를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진 단백질로 변환시킨다고 알려져있다. 가설이 있다. 알려진 모든 프리온들은 아밀로이드 접힘(amyloid fold)을 형성한다. 프리온은, 중추신경계에 쌓여서 아밀로이드라고 알려진 반점(plaque)을 형성함으로써 정상적인 조직구조를 붕괴시켜 신경퇴행성질환(neurodegenerative disease)을 일으킨다. 이런 현상은 뉴론의 공포(空胞; vacuole) 형성으로 하여 생기는 스폰지 모양의 구조로 인해 조직 내 “구멍”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바뀐 구조는 극히 안정적이며 감염된 조직에 축적되어, 조직손상과 세포의 사멸을 일으킨다. 프리온 질환의 잠복기는 상당히 길지만 일단 증상이 발현하면 질병은 신속히 진행하여 뇌손상과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신경퇴행성질환의 증상은 발작이나, 치매, 운동기능장애 및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 등이 있다.
알려져 있는 모든 프리온 질환들은 치료방법이 없으며 치명적이다. 하지만 쥐에서는 백신이 개발되었는데 사람에서의 프리온 감염을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더해 동물에서 프리온 단백의 발현을 막는 유전처리를 함으로써 프리온 감염에 내성을 갖게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물건너 간 황우석 씨의 광우병내성소 만들기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 되겠다].
프리온은 포유류에서 몇 종의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흔히 광우병(mad cow disease)이라 부르는 소해면상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과 사람에 발생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등이 있다. 다른 종 간의 프리온 단백질 간에는 작은 차이가 있어 종간의 프리온 질환 전파는 흔하지 않긴 하지만 인간의 프리온 질환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의 경우는 소에서 감염을 일으키던 프리온이 감염된 육류를 통해 사람에게 질환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우병의 역사에 대해 논문을 쓴 김기흥 박사에게 얻어들은 바에 따르면 영국에서 그동안 양이나 염소에서 발병하는 '스크래피'란 질병에 대한 기록이 오래 전부터 (그 양반 인터뷰를 보니 250년전부터였던 모양이다) 있었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흔히 광우병이라고 하는 소해면상뇌증(BSE)의 원조 격으로 보는 것이고. 책으로 출간된 그 논문의 제목이 The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From Scrapie to Prion (2006, Routledge) 인데 부제가 좀 거시기 하다. 스크래피는 질병이름이고 prion은 발병인자인데 from...to.. 호응이 안되는 것 아닌가? From Scrapie to BSE 라고 해야 더 논리적일 것 같은데...
이 양반을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인터뷰했는데 누군가 친절하게도 그 녹취록을 올려놓았다. 녹취록을 읽어보니 한 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광우병 자체가 아닌 광우병의 사회사 혹은 사회학을 대중들은 어디에 연결시켜야 할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도 어쩌다 보니 과학, 기술 관련된 주제를 디플롬 시절부터 계속 다루고 있는데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내 디플롬 논문 주제가 유전자조작식품 (GMO)였는데,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만 GMO 규제 논쟁이었지만, 어쨌든 한국에 가니 가족 중 한 명이 묻는 것이다. "그래, 도대체 GMO가 안전한 거야, 먹어도 되는거냐구?" 당연 나는 거기에 대해 별로 해 줄 얘기가 없었지만... 또, 언젠가 베를린에서 열렸던 생명공학 반대운동가들 컨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사회학도로서 생명공학 문제 연구하기'가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확이할 수 있었다. 생명윤리학과 구분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고, 생명공학에 대한 의식조사를 떠 올리는 이도 있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과학 혹은 학문에 대한 기대는 경험적으로 확정된 지식 제공인 것 같다. 아무리 과학 지식의 불확실성, 전문가들 간의 의견불일치를 경험했더라도, 여전히, 지지치 않고, 자연과학자들에게 전문가적 소견을 묻는다. 한번도 예측이 맞은 적이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다음 분기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반복해서 경제학자들에게 묻는다. 거기에 대해 전문가적 아우라를 가지고서 소수점 아래까지 숫자를 제시하는 경제학자들. 그렇게 자신있게, 분명한 확률, 수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학문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왠지 찌질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학문의 유용성, 실용성에 대한 기대의 변화... 중세 때 신학은 매우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복잡성을 척척 감소시켜 주었으니까. ...

댓글 1개:

  1. 아니나 다를까 언론에서 영국에서 연구중인 양반을 찾아내서 김박사 메스컴 탔어여 (초딩 댓글 말투...ㅋㅋ)
    제 블로그로 놀러오셔서 링크로 들어가 보시고 그에 대해서 제가 올려놓은 코멘트도 함 보셔여...
    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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