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4일 토요일

접미사 '딩': 의미론적 진화

요즘 한국 영화 제목을 영어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세상에 "원스 어폰 어 타임"이 한국 영화라니... 제목만 봤다간 속기 십상이다. 나름 한국 영화를 열심히 본 독일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가 영어제제목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정체를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제목을 '이딴 식'으로 달면 한국영화에 대한 인터내셔날 커뮤니케이션시 덜 혼란스럽긴 하겠다 (허나 역설적인 사실은 그런 제목을 단 영화치고 세계시장에 '진출'할 영화는 드물다는... ). 아, 영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사실은 "마이 뉴 파트너"란 진부한-티-팍팍나면서-게다가-어울리게-영어제목을-달고있는-한국 영화에 대해 누군가가 네이버에 올린 질문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해서 몇이나-될지-모르는-내 블로그-독자들과 나누어 볼까 하고 인용하려던 차에 영화제목에 대한 생각이 침입했던 것이다. 자, 이제 본론...

"오전에 마이뉴파트너를 보러갈건데요, 친구 두명이랑 같이 가는데 이 영화 괜찮을까요? 제가 되게 보고 싶어서 고른 영화인데.. 중딩이고요,친구들이랑 볼 수 있는 영화 좀 추천해 주세요?" (강조 인용자).

흠. 스스로 중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구나... 원래 초딩, 중딩, 고딩은 약간 깔봄의 뉘앙스가 진하게 풍기는 신개념이었는데... 예를 들어.. 서로 신분, 나이를 확인할 수 없는 인터넷 댓글놀이 마당에서 만약 어떤 참여자(네티즌, 최근엔 누리꾼이라고도 하더구만)이 약간 논리가 달리는 발언을 날리면 대번 거기에 대해서 '너, 초딩이지...'라는 덧글이 달라붙는다. 반면에 '너, 중딩이지...'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첨가: 이 글 쓰고 나서 새로 발견한 용례: "개념 탑제 하세요 중딩님" ('탑재'가 맞겠지만... 어쨌든 '너 초딩이지'라는 공격적 멘트를 날리기 힘든, '착한' 멘트들이 주로 오가는 분위기에서 상대를 가볍게 '갈구고'(음. 문자로 표현하니 어색하다 ㅎㅎ) 싶을 때 '초등' 윗등급인 '중등'에 '님'까지 덧붙여 주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저, 초딩인데요...혹은 '저, 중딩인데요'라고 지칭 혹은 고해하는 경우도 본 적이 없었는다. 위에서 인용한 것이 내가 관찰한 최초의 사례되겠다. '-딩'의 개념사라고나 할까? 그런 접근, 해 볼만하다. 내 관찰에 따르면 우선 '초딩'에서 시작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중딩', '고딩'으로 응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용처는 약간 다르다). 이후 '대딩'이라는 표현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러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했고 널리 쓰이는 것 같지도 않다. '딩'은 초중고에 연결될 때 더 잘 어울리는 접미사인 것이다. 또, 원래 상대를 깔아 뭉게기 위한 뉘앙스를 지닌 단어에서 위의 용례가 보여주듯이 상당히 중립적인 보통명사로 진화해 가는 것 같다 (역시 아무리 그렇더라도 '저는 대딩인데요...'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진짜 궁금하다. 누가 처음 '-딩'을 쓰기 시작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깜직한 발상이... 우리 고유어에서 '딩'이 들어가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것 같은데... 고작 생각해 낸 게 '문딩이' ([문둥이] 를 이르는 말로 전라도 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이말을 경상도에서는 [문디] 라고한다. Daum 참조). 그러고보니 '딩'은 '둥'의 변형일까? 그밖에 '둥'이 들어가는 단어: '막둥이', '귀염둥이', '재롱둥이' ... 그 밖에 초'등' -> 초'딩' 가설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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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장선생이 언급한 곳에 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설득력있는 '초딩기원설'이 제시되어 있다. 일부 인용 [일단 이 '~딩'이라는 어원의 유래는, 아무래도 고등학생의 그것에서 유래된듯 합니다.통신어체중. 그러니까 인터넷이 아주 많이 보급되기 전의 그 시절. 말을 줄여쓰는것이 진정한 통신어체로 빛을 내던 그시절이지요.뭐 가볍게 예를 들어서, '서울->설' 이 있군요. 이런 축약시스템에 고등학생을 삽입하면.고등학생->고딩 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 지난 1993년부터 몇년간, 통신어체는 빠르게 발전합니다.당연히 '~딩'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중딩,고딩,대딩,직딩 이런식으로 줄여쓰기도 생활화가 되기 시작하지요.문제는, 당시의 초등학생은 국민학생이였으므로, 초딩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자아, 이 시기를 지나서. 대망의 인터넷 세대. 1997년부터 피시방의 본격적인 도입으로.(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호황으로)인터넷은 바야흐로 미친듯이 퍼져나갑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많은 사람들을 PC방으로 몰리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동시에, 무한한 정보의 세계.PC통신사들은, 차츰차츰 인터넷으로 그들의 자금을 이동하기 시작합니다.이시기의 어린 아이들. 즉 현재의 초등학생들은, 그런 제한이 풀린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접하게 되죠. ... 그렇게 빠르게 인터넷을 접한 아이들.호기심가득 찬 어린아이들이 들여다보는 그 몇십인치 모니터는, 그어떤 놀이보다도 재미있는 도구. 그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 완성되지 않은 예절지식과 개념으로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그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초딩'이라는 악명을 붙이기에 이릅니다.어른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댓글, 글, 태도, 말버릇. 현재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인물 전체를 비하해 '초딩'이라는 악명을 붙입니다. 굳이 초등학생이 아니고 어른일지라도.'어른인 주제에 행동거지나 사고판단이 초등학생수준이다' 라는 평가의 대답이 바로 이 '초딩'입니다.] 음... 난 '초딩'이 먼저 시작된 후 용례가 확대되었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구나. 나도 파란색에 흰색 메뉴가 박혀있던 초기화면, 거기에서 얻어 낸 자료를 가위질 해서 레포트 제출하던 일 등 피시통신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채팅, 토론에 참여한 편은 아니었다. 이른바 '통신언어'를 습득할 기회는 없었던 것. 그 때 '고등학생 -> 고딩'으로 음운축약되는 현상이 있었구나. 생각이상 접미사 '딩'의 역사가 길고 그 의미론의 변화도 훨씬 역동적이다.

댓글 1개:

  1. 전...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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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ding"lichung의 맥락에서 이해해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ㅎㅎ... (약간은 진담이기도 하고 농담이기도 합니다.)
    구글에 물어보니 (정선생님께서 "네이버에 물어보다"라는 표현을 언젠가 쓰셨기 때문에 저도 이 표현을 써 봅니다...ㅋㅋ) 어떤 이가 나름 초딩의 어원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ㅋㅋ) 설득력 있는 (ㅎㅎ) 글을 올려 놓았군요. http://hiziri.egloos.com/68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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