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넷으로 접한 한국 기사들 중에서 일부 내용을 옮겨 놓는다.
"맨유, 오늘 모스크바 입성…아시아선수 최초 유럽챔스리그 결승전 출격 가능성"
"2007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에 이어 '추격자'로 3년 연속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쾌거를 이룬 하정우는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21일 귀국한다"
특히 하정우에 대한 기사는 정말이지 '안습'이다 (기사작성: 뉴스엔 홍정원 기자, newsen은 방송연예전문신문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찌질'의 정도가 좀 심하다.). 칸 영화제 3년 연속 참석하는 쾌거라... 이런 멘트가 생각난다. '조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 (혹은 태극 용사들) .... 이제 ... 쾌거를 이루고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그런 프레이밍의 원형은 스포츠 경기 결과에 대한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순위가 분명히 매겨지는 스포츠 경기, 특히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1등을 하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제패로 표현된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당성 결핍, 국민 통합 등) 스포츠민족주의 형성에 애쓴 이후로 만들어진 해석틀은 그 이후 다른 맥락에서 변주된다. 우선 국제기능올림픽이나 세계수학올림피아드 등 스포츠 외 다른 국제적 경쟁의 결과에 대한 해석, 보도에서 발견된다. 또 세계적인 성취인지 불분명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세계적인 결과라고 우기는 것이다. 황우석 연구에 대한 프레이밍이 대표적이다. Science지에 논문싣기는 과학계의 올림픽 (혹은 월드컵이) 되었고, 두 번이나 논문을 실은 황우석은 올림픽 2연패를 한 것이다. 박지성의 활약도 이제 세계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진다. 세계최고 수준인 영국 프리미어리가의 일등 팀에서 뛰니까 그 팀의 우승으로 박지성은 이미 금메달을 딴 셈이다 (경기출전회수가 모자라 팀이 리그에서 1등을 해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챔피언스컵 결승전까지... 챔피언스컵은 유럽프로팀간의 경기이지만 유럽리그 수준이 가장 높으니 명실상부한 세계최강팀을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시아 선수 최초'! '한국인 최초'는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에게 쉽게 자리를 내 준다 (당연하다. 뉴스가치가 더 있으니까). 한 가지 질문! 여기에서 '아시아'란? 음... 그렇게 딴지 걸었을 때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정도로, 우리 (우리는 또 누구? ㅎㅎ)는 이런 프레이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동양 최초', '동양인 최초', 이런 표현이 사라졌다는 것. 동양과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굳이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서양/동양' 이분법으로 처리되지 않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같은 세계가 우리 인식의 범위에 들어 온 결과일까?] 챔피언스리그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 프로팀을 가리는 경기이고, 박지성이 아시아인 최초로 그 결승전에 참여하는 것이 뉴스거리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준결승 이후 그 얘길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괴로울 따름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보가 아니다. 물론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정보이긴 하다. 한국기자들 참 끈질기고, 공부안한다는 그런 정보 말이다 (앗차차. 사실 그것도 이미 알려져 있긴 마찬가지 ㅎㅎ). 한국 언론, 아니 다시 정확히 표현하자, 인터넷을 통해서 관찰한 한국 언론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 (한국 언론계에 몸 담고 계시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그러니, 별로 열받으실 필요없다. 읽을 리도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하정우. 칸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하는 신기록 혹은 대기록을 세운 모양이다 [아시아 운운하는 게 없는 걸 봐서 한국신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왜 '한국인 최초...' 같은 이틀을 붙이지 않고, 소심하게 '쾌거'라고만 표현했을까. 신기록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던 탓일까? ㅎㅎ 칸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하나라고들 한다 (이런 '세계 .. 대' 운운은 주로 '후진국'에서 자는 등장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해석틀의 원천은 일부 잘 나가는 나라의 서구중심주의자, 혹 민족주의자들이 지들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sic! not 수상!)이라니. 대기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naming, framing (혹은 titling?)은 그런 기록이 많아질수록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주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후진국으로 느끼고, 그런 기록이 드물어야 '세계최초' '아시아 최초'라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사건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잘 나가는 나라가 되었으니 아시아 최초, 동양최초라는 표현은 벌써 퇴조기에 있는 해석틀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 탓인지 박지성의 아시아 최초는 반갑기까지 ㅎㅎ), 세계최초도, 글쎄, 왠지 진부하단 느낌이 든다. 이런 변화는 루만의 이론에 따르면 전형적인 구조와 의미론의 공진화 현상이다. 세계 차원에서 평가하기라는 의미부여작용과 세계 차원에서 평가받는 성취이루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어주고 당기면서 함께가는것. 구조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상에 비쳐볼 때 칸 영화제 3회 연속 참석을 두고 쾌거 운운하는 건 의미론적 지체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런 프레이밍도 역시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의미론적 변이(variation)가 덜 활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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