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6일 금요일

"국정에서 사라져보린 과학기술" (이덕환) (디지털타임스 2014.06.03)

좀 길지만 전문을 옮겨 놓는다. 어쩌면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기대는 박정희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부침을 겪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정점에 달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GNP 대비 과학기술투자비 같은 지표상으로는 2mb 정부나 심지어 그네 정부에서도 늘었을 법도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같은 거대 담론이나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조치(2004년)는 그 이후론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멩박씨는 과기부와 교육부를 합쳐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로 만들지 않았던가 (2008년). 아래 글에서도 지적하듯이 그네씨의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이 아닌 ICT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던가. 과학이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노무현 이후로 급 줄었음을 보여주는 현상 아닐런지. 과학과 기술을 선진국에서 수입하거나 좇아가던 시기가 지났고, 기초과학에 투자하면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탈추격시대가 도래하면서, 특정 첨단 분야에서는 - 대표적으로 줄기세포연구 - 한국도 경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첨단과학에 기초한 기술개발, 경제화의 가능성을 보면서 지원했지만 그 성과가 그리 크지 않자 이제 그런 접근 자체를 포기하는 것 아닌지... 물론 기초과학연구소(IBS) 설립 자체는 "과학지원을 통한 경제성장에 기여"를 위해서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담론이 먹힌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마저 지지부진하다면 앞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기대는 크게 높아질 것 같지 않다. 또 이러다가 특정 과학 분야가 급부상하면 그 쪽으로 쏠리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노무현 정부 이후로 분위기가 다름은 분명한 것 같다. 이것 모두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보는 문화의 산물이다. 경제성장의 수단에 대한 기대치의 상승, 하강에 조응하는 정책기조 변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우선주의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로는 과학기술이 성장의 수단으로서 갖는 매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인 효과를 갖는 수단을 선호하는 것 같다. 4대강이나 CIT. 어쩌면 "줄기세포연구"처럼 효과를 빨리 얻길 기대할 수 있었던 분야마저 실망감을 갖게 되니 더 그런 것 같다. 절대지원금액이 줄지는 않을지라도... 뭐든지 과도하게 부풀리면 곧 실망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들통나기 마련이다. 이덕환 교수는 정부만을 탓하지만 과학계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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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ICT(정보방송통신)와 함께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가는 창조경제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오래 전에 잊혀졌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선진 창조형으로 도약시키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겠다는 목소리도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오늘날 과학기술 정책은 중소기업과 창업 지원에 매달리고 있고, ICT 정책은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는 이동통신사에 끌려 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미래부, 산업부, 교육부가 모두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우리 과학기술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인 출연연의 현실이 그렇다. 공기업과 함께 비정상적인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출연연은 강도 높은 개혁의 대상으로 추락해버렸다. 출범 이후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미래부가 갑자기 물을 만난 듯 힘을 내고 있다. IMF 이후 어렵게 회복되고 있던 복리후생 혜택의 일방적인 축소를 강요하는 미래부의 정상화 요구는 그나마 남아있던 출연연의 자존심마저 짓밟는 것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출범도 출연연의 진정한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연구회를 통합해서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 전략 수립, 융합 연구 기획, 중소기업 지원, 인력 개발 등을 총괄하는 지원형 연구회로 강화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왔던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연구회를 통합한다고 미래 전략 수립과 융합 연구 기획 기능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순진한 것이다. 통합 연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원장 선임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매년 평균 8명의 원장을 선임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출연연의 원장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독선과 무능은 도가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박 겉핥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출연연의 예산과 결산 심의는 더욱 부실해질 것이다. 출연연의 예산이 각 부처에 묶여있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면 통합 연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어렵게 만들어놓은 기초과학연구소(IBS)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초대 원장은 임기도 채우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인사 문제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형편을 고려하면 후임 원장의 선임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IBS가 기초과학 분야의 투자를 독식하고 있다는 비난을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고, 핵심 시설인 중이온가속기의 건설도 우선순위에 밀려나고 있다. 과학기술의 어설픈 정치 참여의 후폭풍을 수습할 준비가 시급하다.

이공계 대학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가 공허한 특성화와 산학협력 요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취업률이 낮은 기초과학 분야의 학과들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위기 상황이다. 공학 교육을 산업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도 위험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약화된 대학의 교육이 더욱 약화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초중등학교의 과학 교육도 위기에 빠져있다.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최소한의 과학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문ㆍ이과 구분 폐지로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과학기술계는 이공계 진학자의 과학 교육 약화를 걱정하고 있고, 과학교육학자들은 자신들의 몫을 챙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과학기술 시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갖추지 못한 교육학자들에게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구걸해야 하는 과학기술계의 입장은 정말 난처하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고작 중소기업과 창원 지원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출연연과 대학의 획일적인 관리보다 자율성과 다원성을 보장해주는 노력이 훨씬 더 시급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평범한 문과 출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ICT 전문가를 과학자로 분류해서 중용하는 실수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이스라엘을 흉내 내고,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미래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ICT가 분명하게 과학기술의 한 분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을 다시 국정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노력이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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