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대형으로 쏠리는 구도는 사회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대기업, 재벌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랄지, 서울집중현상이랄지....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은 대형교회가 추동한 현상... 경제에 있어서는 대기업이...
대기업, 대형교회, 서울과 수도권 중심은... 초기 발전 단계에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전체 파이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누구나 그 혜택을 얻을 수 있어서 양극화가 감춰지는 착시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면 오히려 발전, 성장을 방해한다. 이런 논의는 노무현 정부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분권화를 이야기하면서... 반면에 양극화 현상은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서양에서 "성장주의""발전/개발주의"가 시들한 것은 실제로 경제 성장의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률을 줄이겠다" 정도가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것. 자연스럽게 사회통합을 성장이 아닌 다른 쪽에서 모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실제로 탈성장,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성장 신화" "성공 신화"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고. 물론 예전같지 않다는 점, 더이상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다는건 널리 알려져있지만... 그럼에도 그 좁은 문을 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자식을 뚫을 수 있을거라, 적어도 그 대열에서 애초에 낙오되지는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생명과학은 한 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기대를 모았다. 생명윤리에 기초한 규제는 어렵지 않게 도입될 수 있었다. 왜? 그것이 생명과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발전주의와 생명윤리의 어색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운 동거가 가능해진 것이다. 생명윤리가 문화를 바꿀 것인가? 글쎄... 특별히 그럴것 같진 않다.
교회의 현상과 한국 사회 정치, 경제 등의 현상과의 유사성, 친화성을 김진호 목사가 매우 잘 지적하고 있다.
"대성장 시대에 한국사회도 급속한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성장의 주된 양식 또한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권력 자원을 독점한 상황에서 성장을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성장주의적 총동원체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것이다. 또한 구기득권세력을 상당부분 대체하였고 일부 보완한 ‘신기득권체제’가 이 시기에 정착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교회는 이 시기에 서북지역 장로교, 혹은 월남한 서북 출신 장로교 중심체제의 응집력이 이완되고, 교파와 출신 지역을 망라한 대형교회들 중심의 체제로 재구축되었다. 한데 이 시기에 정착한 기득권 체제는 이후 대성장 시대가 지나고 저성장, 아니 탈성장 시대에 이르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지닌다.
이와 같이 대성장 시대 교회와 사회는 ‘성공지상주의적 총동원 체계’라는 유사성을 지니며, 이 유사성이 그 시대를 운용하는 주된 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그 시대 사회와 서로 연동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교회의 빠른 변모는, 그 시대의 지배체제가 갖는 문제점 못지않게 심각한 많은 문제점들을 내장하고 있었음에도, 전체적으로 사회와 불화하기보다는 잘 통합되어 있었고, 또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보다는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령 농경사회에서 도시사회로의 이행이 급격하게 진행되던 시절에 아무런 보호망 없이 극한적 야만성의 도시공간으로 내던져진 이농자들의 대대적인 신자화는 그들이 사회적 불만세력 내지 전복세력이 되지 않고 이른바 산업역군으로 권위주의적 체제 속에 잘 흡수되는 과정과 병행했다. 또한 이 과정은 그이들 개개인이 성공한 이들에 대한 일탈자가 되기보다는 그들을 선망하며 열렬히 성공을 위해 매진하게 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이 시기 대형교회 현상을 대표하는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풍요, 건강, 신앙의 동시적 실현으로서의 구원 담론)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통합요소로서의 신앙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부유함은 증오나 질시의 대상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목표다. 3박자 구원론은 그 목표를 신앙의 목표와 동심원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사회통합적 담론의 특성을 지녔던 것이다.
이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교회가 보여준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망 없이 진행된 산업화로의 맹렬한 질주 속에 내던져진 도시 주변계층이 절망에 삐지지 않고 자기 발전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와 사회는 서로 연동되어 있었고, 기독교 편에서 그런 흐름을 주도한 것은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선망한 대다수 ‘짝퉁 대형교회’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동성은 사회통합에는 기여했지만, 그러한 교회들은 그 통합이 내포한 무수한 야만성과 폭력성을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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