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3일 금요일

"함석헌: 국가주의를 극복해나가는 길" (박노자)

"한국적 근대의 최대의 미(未)해결 과제라면 아마도 주체적이면서도 타자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개인의 만들기일 것이다. 1920년대초반부터 “개인”이나 “인격”은 빈번히 쓰이는 말들이었지만 실제로는 개인은 “민족”/”국가”라는 틀 안에서 갇히기도 하고 “여성”으로 성별화되어 “가족”이라는 이름의 전체에 복속되기도 하고, “아동”으로 분류돼 훈육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정 종교의 “신자”로서 종교 집단의 테두리에 갇히기도 했다. 물론 “민족”을 명분으로 삼은 국가가 자본가 계급을 창출시키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병영화 (兵營化)를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개발주의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는 민족/국가라는 전체성이 개인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지배하게 됐다. 오늘까지 와서도 권위주의적 개발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가 “가장 인기가 높은 전직 대통령”으로 여러 여론조사에서 등장되어 보통 60-70% 안팎의 응답자로부터 조건부긴 해도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 지난 시대의 내면적 주체성의 미(未)확립이 어떤 장기적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던 예수를 신앙한다 하면서도 “군대는 우리 울타리””라고 늘 “군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의 수가 약 60만 명이나 되는 것 은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과연 이 60만 명 중에서 조 목사 설교문과 예수 가르침의 일치 여부에 대해 독립적 개인 판단을 시도해본 이들이 몇 명이 될까? 몰개성적인 “일체단결”은 일부 종교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전체의 하나의 “아비투스” (habitus: 관습)를 이룬다. 독도 관련의 일본과의 분쟁이든 월드컵이든 “국가”/”민족”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원을 유도하는 “이벤트”들이 잘 보여주듯이,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의 주술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거의 면역성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억압적 근대의 광기 속에서는 함석헌 (1901-1989)이 – 매우 드물게 – 민족적 전체의 전제 (專制)에 대한 종교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견제, 즉 개체와 전체 사이의 “균형 잡기”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시도해봤다. 그는, “민족” 내지 “국민”을 대신할 수 있는 “계급”과 같은 사회과학적 개념을 설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종교적 논리를 통해 “민족”의 상대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