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퍼, 역사주의의 빈곤
포퍼가 비판하고자 하는 '역사주의'란, '역사적 예측'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역사진보의 밑바닥에 있는 '규칙적인 흐름', '패턴', '법칙'이나 '경향' 등을 발견함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 접근법 중 하나이다.
포퍼에 의하면 이 책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역사 과정은 인간의 지식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합리적 또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 과정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즉, (역사는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이론화하는) 이론 사학 또는 역사적 사회과학의 가능성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역사주의적 방법의 기본 목표는 잘못된 것이며 역사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포퍼는 역사주의(historicism)를 논박하기 이해서 먼저 1장과 2장에서 역사주의를 매혹적인 지적 구조로 만들어 놓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3장과 4장에서 이에 대해 반박을 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내려가겠다고 한다.
역사에 흐름, 패턴, 법치, 경향이 있을까? 없을까? 사회이론 논의에서 핵심 중 핵심을 이루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회이론은 이를 전제하고 있지 않나? 아니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나? 심지어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에 별로 관심없어보이는 루만의 접근마저도 매우 역사주의적 아닌가? 역사주의를 피하는 것... 포스트모던인가... 역사주의를 피하자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게 사는게 재미있을까? 역사주의를 피하자는 포퍼의 주장 자체가 역사적 배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주장은 반복해서 등장했으리라.
불확실성, 무지를 못견뎌하는 것. 확실성의 추구. 그것은 인류의 특징 아니던가? 확실성의 근거가 바뀌고 있을 뿐. 포퍼 역시 합리성에 의한 확실성을 추구한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거부하면서...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처리해주지 못하면 학문의 존재 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불확실성, 무지, 다원성을 안고 살아가라고 얘기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것으로, 그저 심리상담 차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학문은 확실한 지식을 제공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는 주장, 지식...
여하튼 그럼에도 인간은 어떻게든 확실성을 만들어 살아오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그때로 따라서 기술하면 된다. 전제할 필요도 없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은가? 관찰을 관찰하기! 루만은 바로 그런 접근 아니던가? 포퍼가 비판하는 역사주의에서는 빼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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