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과 개별.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원히. 바윗돌을 굴리며 산을 오르내리던 시지프처럼. 타협의 여지는 없다.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 착시현상의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그 그림에서처럼... 젊은 여자로 보거나 노파로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줄곧 지지할 수는 없는가? 얼핏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관점을 확대시키서 보면 모순된 태도를 일관성있게 지지하고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시종일관 꼰대짓하는 어른이 다른 상황에선 자신이 얘기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라던지. 드물게 매사에 일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바람직한가? 그런 것만도 아니다. 모두가 일관성있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에선 공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상엔 어떤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고, 법칙이 있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소리, 구라요 판타지다. 세계에 대한 지식을 모두 합쳐 논다면 그 중 인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0.00000......0001 % 정도일 것이다. 그런 알량한 지식 가지고 세계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면을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바꿔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갈등이 있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 갈등이 없는 것이 비정상이다. 통일, 통합, 단결, 하나됨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걸 자꾸 강조하는 사람은 의심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 쪽으로의 통합을 얘기한다. 상대가 틀렸다는 것이다. - 어떻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문화 세계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수렴, 확산, 강제되고 있는 글로벌 단일문화를 한 쪽에 두고 다른 쪽에 지역 혹은 국가 문화를 생각해보자. 세계의 단일한 문화? 그건 가능하지도 않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역문화, 국가문화에 충실. 그것 역시 가능하더라도 자연스럽지 않다. (북한이나 이슬람 근본주의를 보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 자체가 다양하다.
주체적인 것? 타인의 주체적임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나의 주체성 안에서도 무지막지한 모순이 있고... 모순과 모순이 만나는 세상은 갈등투성이다. 그런 갈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법. 그것이 문명이다. 갈수록 세련되어 왔다. 그래서 심리학이 필요하다.
과학과 관련해서, 생명과학, 배아연구, 생명윤리 등과 관련해서 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어짜피 모순투성이인 사람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함께 살아가지? 일시적으로 가능하다. 힘으로 강제하거나,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거나. 성찰을 하는 이상 그런 상태는 오래 갈수가 없다.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공존을... 차이의 공존.
한국의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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