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주제의 범위는 좁히고 깊고 끈질기에 물고 늘어진 글이다."(이강룡) 페친이 극찬을 해서 훑어 본 허타도의 대작 "주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났다. 주제는 매우 분명하다. 처음 몇 페이지에 논의 배경과 자신의 논지를 잘 소개해주어서 그 부분만 읽고서도 책을 이해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하지만 몇몇 리뷰 들을 읽어보니 국역으로 1199쪽이나 되는 분량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의 김요한 대표의 경우 100쪽으로 줄여서 논증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고... 이런 평도 있다.
"너무 두껍습니다. 너무 방대한 양을 다루다보니 논지가 흐려지고 곁가지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큰 틀에서는 모두 관련된 본문과 논의들이지만 전체적 그림을 그리고 논지를 진행시켜 나가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그렇다. 테제는 분명하고 간명하지만, 논증이 너무 늘어지는 것이다. 독자로선 길을 잃기 쉽다. 이강룡 선생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주제의 범위는 충분히 좁고 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는 것. 과유불급.
여하튼 핵심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 대해서는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주장을 핵심 주제로 삼을 수 있다. 이 핵심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기독교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단순해 보이고 너무도 분명해 보여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주장일지라도 깊게 파헤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말 특별해 보이고, 새로워 보이고, 신선해 보이고... 그런 이야기들에 혹하기 쉽지만 사실 그런 주장들은 대개 현상의 말단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핵심,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뻔해 보이는 것들을 깊게 생각하기 힘들고 귀찮으니까 더 가깝고, 쉽고, 눈에 띄는 이슈들로 눈길을 주는 것이다.
학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듯. 예를 들어 민주주의, 자본주의 중심으로 사회를 본다고 할 때... 아직도 그런 고리타분한 개념에 안주하느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거버넌스, 자본주의 3.0, 피로사회 같은 개념들은 반면에 얼마나 신선해 보이는가... 핵심적인 개념에 안주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핵심에 대한 천착없이 유행에만 휘둘리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현대사회는 기능적 분화 사회다" "과학은 사회의 기능체계다" 같은 주장 역시 너무도 상식적이거나 아님 고리타분해서 그냥 전제로 삼거나 아니면 쉽게 비판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단순해보이는 주장을 깊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루만 이론의 핵심이기도 한데... 그 핵심을 놓치고서 지엽적이거나 유행하는 주제로 - 예를 들어 복지, 문화, 의미론, 위험 등등 - 만족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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