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4일 수요일

주변부 근대성 (2)

'주변부 근대'는 사실 당사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표현이다. '중심부 근대'를 '표준', '정상'으로 상정하는 서구중심주의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존심 상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리고 나서 근대의 문제를 극복하는 일에는 우리가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마. 그 정도로 내 입장을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리 역사 최전선"이란 책은 두 역사학자 박노자, 허동현의 편지 모음이라는데 그들의 입장 중에서 나는 허동현 쪽에 가깝다고 보면 될 듯. 아래는 책 내용 요약을 어떤 블로그에서 긁어 온 것.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도 박노자 교수는 탈근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맡았다.박노자 교수는 근본적으로 서구의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부국강병이란 이름하에 무리하게 추진되는 일본따라가기식 근대화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진리에 처음부터 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갑신정변이나 황서영의 백서 사건들을 인류의 보편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예이다.반면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교수의 생각에 많이 동의하면서도 좀더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역사라는 것이 개구리 뛰듯 점프할 수 없다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필요불가결하게 거쳐가는 과정으로 이를 설명한다.그러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적이 없음을 주장한다.하지만 두사람 다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지향적이었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에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좀 '위로'가 되는 건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가 현실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중심부도 사실 근대의 결과,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 근대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탈근대로 간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그렇게 보면 2단계, 3단계, 즉 근대, 탈근대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근대" 자체는 매우 복잡한 측면들의 총합이고, 아직고 그 경계는 확정되지 않았고... 기능적 분화의 결과로 발생하는 문제로 발생하는 새로운 체계의 등장 같은 얘기는... 현재 근대가 18세기 19세기의 근대와 같지 않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니까.
즉, 근대는 계속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이야기... 아시아적 근대는 근대의 한 양태이지 반드시 중심부 근대의 특정 양태를 catch-up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
사실 이런 접근이 더 현실적이긴 하다. 뭔가 단계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고, 사실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이렇게 본다면 주변부 근대성으로서 자존심이 좀 덜 상할 수도 있고...
아시아적 근대성은 주변부... 라기 보다는 그냥 근대성의 다양한 존재 양태 중의 하나다. 그 아시아적 근대성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same but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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