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 박노자의 '우리 역사 최전선'이란 책을 틈틈히 읽고 있다. 내가 일생의 주제로 삼고 있는 '근대성' '근대화'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책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집자가 끼워 넣은 설명문이 곳곳에 있는 그 중 한 부분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에 오래 남는다. '근대화가 서구(양)화'라는 주장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으로 깨졌다는...
(1) '근대화=서양화/서구화'라는 주장은 '근대화론'(modernization theory)의 핵심 테제다. 요약하자면 사회 여러 분야에서 서양식 근대성, 근대화의 특성이 서로 긍정적으로 상승작용하면서 사회 발전을 가져온다는 그런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서양식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과 경제성장이 함께 간다는...
(2) 아시아 발전은 이런 근대화론에 도전이었다. 즉, 모든 부분에서 '서구'적 기준을 추종하지 않았음에도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에 주목해서, '발전국가'에 의한 경제적 성장, 발전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했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아시아적 가치', '유교 자본주의' 같은 아시아적 특수한 근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견해는 '다수 근대성' (multiple modernities) 같은 주장으로 이론화되었다.
(3) 아시아 위기는 아시아적 혹은 비서양적 근대성의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하는 사건이었다. 아시아의 자본주의는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정의되면서... 아시아적 발전의 한계로 이해되었다. 결국 서양식 근대화 모델을 좇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4) 난 그 이후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아시아적 근대성의 가능성보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들로 이해한다. 근대성은 단일하지만 지역에 따른 다양한 변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니까 근대화=서양화/서구화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서양적 근대성이란 것에도 차이가 많이 있고 (예컨대, 유럽 내의 중심부, 주변부 구분), 서양적 근대성을 통틀어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타자, 그러니까 비서양과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서양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측면에서는 현재 아시아가 서양 어디 못지 않게 서양적이기도 하고... 고전적 근대화론이 서양의 내부를 단일하게, 공통된 것으로 취급하면서, 낙관론, 수렴론 등의 특징을 갖는다면, 새로운 단일 근대성 이론은 근대성의 출발점이 유럽의 근대 역사임을 인정하지만 근대성은 그 속성상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러니 수렴론 운운하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다양함이 현실이라는 점. 낙관론도 아니고...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점...
(5) 물론 깊게 파고들수록 논의 구도를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근대' '근대성'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특징을 좀 좁게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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