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4일 수요일

주변부 근대성 (1)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을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역사 혹은 사회의 진화 과정을 '위기와 안정'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화론 용어로는 '변이, 선택, 안정'이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은 반드시 단선적인 발전만은 아니다. 현재의 안정 상태가 역사적으로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
근대의 중심부는 위기와 안정을 반복하면서 근대적 특징을 구현해 왔다. 그것은 수백년 걸리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위기에 직명해있고,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고... 
근대의 주변부에서의 위기, 안정의 과정은 좀 다르다. 우선 중심부에서 수백년을 거치면서 형성된 나름 안정된 모델을 우선 수입해왔다. 그래서 위기의 성격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세계적 근대성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 
근대의 주변부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지역은 아시아, 특히 유교권인 동아시아다.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의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아시아 지식인들 중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동아시아 밖에서도 그런 기대의 시선을 아시아에 보내고 있기도 하다. 
물론 다른 극단도 있다. 아시아를 덜발전된 상태, 예외적인 상태로 보는 시선. 중심부 근대를 모방하거나 쫓아오고 있고 한동안 그럴 것이라고 보는 시선. '계몽의 대상'으로서 아시아!
굳이 둘 중에서 선택을 하자면 나는 두번째 쪽이다. 
중심부에서 열심히 치고 박으면서 만들어 낸 근대성은 세계사회의 기본 구조를 만드는 원칙이 되었다. 여기에서 외부는 없다! 이 근대성은 세계적이기 위해서 매우 추상적인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런 원칙들은 생각이상 유연하다. 근대의 '중심부人'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 근대성이 매우 추상적이라는 얘기는 결국 그것의 구체적 구현형태는 매우 다양하다는 얘기와 짝을 이룬다. 그러니 일부 서구중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대의 주변부는 그저 중심부를 좇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추상적인 근대성의 원칙을 수용하되 그것을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서 변형시키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근대의 중심부에서 '제공해준' 추상적 원칙을 제도적, 구조적인 차원에서 수입해왔다 (1단계). 지역적 상황에 맞는 근대성을 구현하려면 다음 두 단계가 더 필요하다. 수입해 온 근대성의 (추상적) 원칙을 일상적 영역에서도 적용되도록 폭넓은 합의, 상식을 정착시키는 단계 (2단계). 지금 '싸움'의 전선은 대개 이 단계에 대한 것이다. 즉,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 비상식의 대표주자들 멩박 무리들이고... 그들이 '시범케이스'로 욕을 먹지만, 사실 다른 정치 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고 - 그래서 안철수씨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상식'에 대한 갈급함 때문이다. 복지국가니, 공정사회니, 인권이니 모두 이 단계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주제들이다.
3단계는 근대의 문제,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단계.
근대의 중심부가 3단계를 다루고 있다면, 한국의 경우 안타깝게도 2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3단계의 문제도 동시에 다루고 있는 중이다. 2단계 문제 해결엔 아직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러니. 2단계의 완성이후에 3단계로 넘어가는 일은 전략적으로 그리 좋은 접근이 아니다. 2단계와 3단계를 동시에 다루되, 그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 (근대/탈근대로 표현하기도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