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근대국가는 발전국가다"라는 명제에 충실하자면 발전국가인가 아닌가는 성립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발전국가라는 개념을 쓰면서 논의를 전개하려면 더 좁은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발전국가라고 할 때 그것은 강한 국가 개입이라는 점에서 복지국과 일부 공유하는 점이 있고, 이 두 국가 개념의 다른 편에 신자유주의 국가가 있다. 물론 실제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최소한의 간섭만을 하는 그런 국가는 이상에 가깝고 실제로는 국가의 개입의 분야나 방식이 달라지는 '규제국가'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자유주의국가나 규제국가의 특징은 발전국가나 복지국가처럼 개입의 목적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그 방향은 '시장'에서 정해질 뿐이고, 국가는 기껏 시장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교통정리만을 할 뿐이라는 것. 현실에서 순수한 신자유주의국가나 규제국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발전, 성장을 지향하지 않는 국가가 과연 있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신자유주의국가는 참 애매한 개념이긴 하다. 한편으론 자유방임, 최소간섭, 탈규제 같은 점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특정한 지향점이 없는, 굳이 있다면 최소간섭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밑엔 그렇게 했을 때 경제가 가장 잘 성장한다는 이념을 깔고 있다. 그러니 발전지향이라는 점에서는 발전국가와 다르지 않다. 분명하게 구분되는 점은... 발전국가가 경제성장이 국가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결국 구성원 전체에 이런 저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을 지향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열매는 누구에게나 돌아가지 않는다. 불평등한 분배 정도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 경향이 더 심화되는 것이다. 양극화!
복지국가는 낙오자나 배제된 이들에 대한 포함과 참여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발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그 역시 복지를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경제 발전, 성장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렇게 보면 신자유주의국가와 복지국가는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개념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서 '부'를 키우되 대신 국가가 그 부의 열매를 충분히 거둬서 취약계층에 나눠줄 수 있으니까. 바로 이런 방식이 '제3의 길' '생산적 복지'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신자유주의국가는 시장과 생산 측면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고, 복지국가는 분배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니까 굳이 상충되지 않는다. 복지국가는 생산과 분배, 두 차원에 대해서 모두 일관된 접근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물론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국가의 혼합도 가능하다. 싱가폴 같은 경우를 그렇게 볼 수 있을 듯.
그런 점에서 볼 때 가장 독특한 입장은 '규제국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규제국가의 이념을 교통경찰 같은 역할로 이해한다면... 관계들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소통의 흐름을 규율하는 그런 역할이라는 점에서 굳이 발전이나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루만이 이런 '쿨'한 국가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실 국가에선 이런 다양한 측면들이 대부분 동시에 구현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 어느 시기에서 어떤 점들이 더 강조되고, 어떤 점들은 퇴행적인 요소가 되는지를 아는 것이다.
발전국가는 복지국가 그 이상의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다.
ㄱ) 국가 기구의 동원
- 강력한 산업정책의 존재 (즉 시장과 시장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가 크다는 점).
- 합리적 경제 발전/성장 계획을 세우고 관철시키는 강력한 경제계획기구와 관료제의 존재.
- 산업정책이 아닌 분야의 정책도 궁극적으로 이 경정성장, 산업발전을 위해서 조정된다는 점 [국가 내부의 동원]
ㄴ) 경제 주체의 동원
- 기업(자본)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기
- 금융 통제를 통해서: 기업 조정의 수단은 세율 조정 같은 간접적 수단보다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 같은 직접적... 자본의 부족한 당시 기업이 형편...
- 노동은 억압하고...
ㄷ) (경제를 제외한) 국가 외부의 동원
- 정치, 정책 뿐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분야들도 발전, 성장을 위해서 동원됨 (과학, 출산 등등)
- 이 경우 발전 이데올로기 교육이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된다는 점.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띠기도 한다. (과학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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