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1. 내가 가끔씩 들른 대구성서아카데미(DABIA.net)에서 정용섭 목사님이 쓴 죽음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중에서...





어제 오랫 동안 한 집에서 살았던 독일 영감님을 찾아갔다. 독일 도착 다음날 찾아가서 문패에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벨을 누를 땐 반응이 없더니 어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살아계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방문이 열렸다. 문 뒤에 그 분이 있었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런데... 건강하게 보이는 그 분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뭔가 이야기는 하시지만 두서가 없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 슬펐다. 아. 그 꼬장꼬장하시던 분이... 나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주제들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시던 그 분이... 식사를 하러 나가자고해도 내 말과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제까지의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무엇하러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것인가. 무엇 때문에 노년에도 학문적 작업을 하고, 그리 열심히 사셨던가? 그 당시에야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나고 보면 도대체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오랜 만에 다시 만난 사람들. 그들은 여기에서 무엇을 했던가? 내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또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2. 후배와 논문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내 생각의 근거가 부실한 것이다. 내가 도달할 목적지는 수 년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데 그 출발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도착점을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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