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 월요일

루만과 빌케는 사회가 규범적 질서로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둘은 모두 지식에 기초한 사회의 질서가 더 '바람직하고', 실제로도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전형적인 "근대주의"적 입장이다.
반면에 탈근대주의자들은 - 규범성과 관련해서 본다면 - 근대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윤리와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대개 도덕의 위로부터 주어진 것, 윤리는 개인들이 스스로 결정하거나 개척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도덕을 선호하는 것 같다). 공동체주의, 덕윤리 논의가 대표적인 것 같고... 그런 지향이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다. "근대주의"는 사실 너무 기계적이긴하니까. 공동체의 재발견, 따뜻한 자본주의 논의, 리프킨의 "공감" 등은 모두 이런 경향을 반영 혹은 선도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 주장은 대개 근대사회의 구조에 기생하는 이야기들이다. 근대사회의 구조의 핵심이 과연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근대사회는 기본적으로 탈규범성까진 아니더라도 (탈규범성을 사실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 탈규범성 주장 자체가 규범적이라는 의미에서....) 은 아니더라도 규범최소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화된 규범은 결코 그 함의 자체가 최소는 아니다. 근대주의자들이 저렇게 떴떳하게 규범 최소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건거는 바로 그 최소화된 규범이 이런 저런 메커니즘을 통해서 보호되고, 구조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인권, 개인주의, 자유, 평등 등등). 규범적 혼란을 겪고 있는 후발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루만이나 빌케의 자못 시니컬한 주장에 편승하거나, 탈근대주의자들 주장에 동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근대적 최소주의 규범이라도 제대로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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