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9일 토요일

욕쟁이 예수 (박총, 2010, 살림)

"전적 타락은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깡그리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 속에 죄의 영향에 노출되지 않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는 뜻이다"(17쪽)

"분호하는 것은 함께 고통당한다는 뜻이다. ... 분노를 회피하고 자신의 영혼에만 살뜰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롬 8:17)를 거부하는 것이다" (19쪽)

"그놈의 은혜 때문에 모든 언행심사를 스테리오 타입에 끼워 맞추려 드는 이른바 '은혜 필터링'이 강하게 작용하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닌 폭력과 파시즘이 되고 민다. 사실 그동안 교회는 '있는 모습 그대로'보다 '되어야 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이런 점에서 기독교가 해방의 기제가 아닌 일종의 억압기제로 작용해 왔다는 비판은 우리가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32쪽)

"많은 사람들이 단순화의 폭력에 기대는 것은 '불확실성의 고통(the pain of uncertainty)' - 개혁주의 미학의 거봉 캘빈 시어벨트(Calvin Seerveld)의 책에서 언급된 - 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세상에서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불확실성이란 놈은 우리의 평안을 갉아먹는다. ... 매번 확신 속에만 머무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심리적 안정감을 더 의뢰하는 일종의 우상숭배다... 신앙은 불확실성의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고통 속에 길을 떠났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며 언제 하나님이 자신과 민족을 구원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고통 속에 살았다. 욥도 하나님이 왜 그런 엄청난 재앙을 내렸는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42 - 43쪽)

"필립 뉴엘(J. Philip Newell)에 의하면, 기독교 영성은 지역에 따라 지중해 영성, 켈틱 영성, 그리고 동방 교회의 영성으로 크게 나뉜다. ... 지중해 영성은 인가의 죄성에 대한 뼈저린 자각과 그리스도의 가없는 속죄를 쉼 없이 고백한다. 지중해 영성에 의하면 죄악으로 버물려진 세상에서 낙을 구하기 보다는 영원한 곳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추구할 삶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죄악과 세상이 타락에 방점을 놓고 있는 지중해 영성이 영과 물질을 분리시키는 경향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 켈틱 영성은 창조의 선함에 방점을 찍는다. ... 죄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흐릿하게 하고 창조세계를 비릿하게 했지만 본래의 빗깔과 향기를 다 지우지는 못했다고 믿는다. ... 기독교 전통에서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두 권의 책이 있다고 믿는다. 한 권은 성경, 즉 '말씀의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창조의 책'이다. ... 켈틱 영성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신비와 말씀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 식사기도... 우리가 영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릇된 위계질서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학업도, 결혼도, 식사도, 교제도, 놀이도 영적인 것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가 되고 만다.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가멸게 하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거룩한 일을 해야한다'는 이원론적 환원만이 남게 된다. ...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에 따른 속죄의 필요성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왜 같은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과 창조세계의 선함을 강조하지 않는가? ... 구속신앙에만 치우친 우리들은 켈틱 영성을 통해 창조의 선함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 theory)'에만 익숙한 우리는 메노나잍트 전통을 통해 평화의 그리스도를 만난다. 복음의 사회정치적 에너지를 잃은 우리는 해방신학을 통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삶을 배운다. 신비체험에 두려움이 있는 우리는 오순절 교회로부터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는 법ㅇ르 배운다. 자본주의와 소비문화가 성경적이라고 믿는 우리는 유럽의 사회주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다른 사회정치적 관점도 성경적일 수 있음을 배운다. ... 각양 다른 은사를 받은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여 교회를 이롭게 한다는 말씀(고전 12장)은 개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전통과 특색을 지닌 전 세계 교회에, 나아가 우주적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다."(켈틱 예수. 한국 교회와 켈틱 영성이 입 맞출 때까지 172 - 182쪽)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창조의 선함과 아름다움보다는 세상의 타락만을 기형적으로 강조해왔다. ... 복음주의 전통은 성자의 구속 영성에만 목을 매고 성부의 창조 영성을 등한시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구속의 은혜를 구하게는 되었지만 일상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창조의 은혜를 누리며 살지는 못하고 있다. ... 우리네 삶의 '죄악 됨'과 '덧없음'을 말하면서도 우리네 삶의 '축제 됨'과 '즐거움'을 말해야 하고, 복음주의 신앙의 강점인 구속 영성을 더 깊이 일구어 가면서도 하나님 지으신 일상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창조 영성에 눈을 떠야 하고, 우리의 '원죄'를 통감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원죄' 이전에 '원복'을 먼저 받은 복된 존재들임을 노래할 시간이 되었다." (191 - 192쪽)

"'복음'이 대체 무엇인가? ...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복된 소식...[??]  성경에서 답을...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15). .... 문맥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복음인 것 같은데 이게 왜 복음이 되는지 선뜻 알 길이 없다. ... 회개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실제로 그리스어로 '유앙겔리온(euaggelion)'이라 부르는 복음은.... 로마다 독접하다시피 즐겨 쓰던 어휘... '승리의 소식을 가져왔다!''... 당시 사람들이 '복음' 하면 떠올리던 것은 '로만의 승리'였다. ... 예수님은 로만의 통치와 번영을 뜻하던 단어 '복음'을 의도적으로 하나님 나라(통치)에 사용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로 로마 제국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힘과 지위, 번영과 성공, 기득권과 안락한 생활을 위해 살아가는 '로마의 삶의 방식'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사랑과 공의와 평화와 나눔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 - 이는 산상보훈에서 선명하게 제시되고 예수님의 생애에서 완벽하게 실현된다 -을 제시한 것이다. ... 예수님의 복음은 '반제국적 복음'이라고 한 리처드 호슬리(Richard Horsely).... 말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는 로마의 복음을 부러워하고 추구했던 것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돈과 성공과 일류대...를 더 의뢰했고, ... 제국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들은 보통 회개한다고 하면, 거짓말, 미움, 시기, 분노, 불성실, 음란함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회개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삶의 방식의 회개가 없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 같은 윤리적 사안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갖고 뉘우친다. 제국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삷과 결별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의 회개 없이, 세상 사람들 수준의 뉘우침만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은, 회사를 운영하고, 가정을 꾸리고, 심지어 목회를 하더라도 세상의 방식, 로마의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194 - 199쪽)

"일반은총의 측면에서 보면 불교도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되지 않았다면 우리 민족은 샤머니즘에 더 깊이 물들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샤머니즘엔 윤리라는 것은 없고(윤리란 관계에서 나오는 것인데 샤머니즘엔 신이나 영적인 힘을 '이용'하려는 욕망만 있고 인격적이거나 언약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윤리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자신과 제 피붙이들의 건강과 성공밖에는 없다(물론 불교도 샤머니즘화되어 이런 비판이 무색하긴 하지만 겨우 백 년 만에 같은 꼴을 보인 기독교도 할 말은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고등종교로서 자비에 의거한 생명철학을 설파하고 높은 윤리 수준을 요구하나 불교가 우리 민족의 삶에 귀한 기여를 한 셈이다. ... 이만열 교수는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 불교나 유교가 있어서 그나마 우리나라가 샤머지즘화한 사회보다는 더 건강한 사회였고 그로 인해 불교를 주신 주님게 감사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223쪽)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발전'이란 개념부터가 미국이 유포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C. Douglas Lummis)에 의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하자 해외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서구식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국가를 저개발(underdevelopment)로 명명함으로써 열등감을 조작해 냈다. 이후 선진국(developed country),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 후진국(underdeveloped country)이라는 범주는 나라와 민족의 우열ㅇ르 보여 주는 절대적 지표가 되었고 교회도 이를 충실히 받들어 왔다."(268 - 269쪽)

"가장 기술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일본... 일본에는 사무라이 막부 시대부터 칼 하나를 만들더라도 고도의 기술력이 축적될 수 있었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데다가 칼을 만든 대장장이가 자신의 결함에 대해 죽음(할복)을 책임지는 전통이 더해져서....
스위스... '시계'... 교회개혁자 칼뱅은 직접 제네바를 다스리게 되면서... 이 땅에서 받은 소명(직업)을 따라 열심히 일하는 삶을 설파... 유럽의 다른 어떤 곳보다 시간을 아껴 쓰고자 하는 새로운 '시간관념'이 생겼고... 이에 대해 칼뱅이 여성의 귀금속 착용을 금지함에 따라 일거리를 잃은 보석세공사들이 시계제조공으로 전향...
오늘날 선진국인 유럽은 18세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 뒤지고 있었다. 그러던 유럽이 식민지 침탈과 산업혁명을 거쳐 물질적, 군사적으로 앞서 나가게 된 배경에는 서구인들의 고질적인 침략주의적 성향과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있었다. '수량화 혁명'(The Measure of Reality)의 저자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는 실재라는 것을 수량화된 개념으로 정리하는 유러빈들이 사고방식이 19세기 유럽제국의 패권을 가져왔다고 말하는데... 유럽인들은 지식을 개념화, 수량화, 통계화했고 이를 금속활자 인쇄술을 통해 대량 보급함으로써 지식의 축적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 지식이란 '스승과 제자' 간의 도제식 학습을 통하여만 저수될 수 있다고 믿었던 데다가 물질을 정신보다 천시하는 전통과 맞물려서 서구의 산업혁명 같은 것이 일어날 수 없었다.
조선 기술.... 중국은 명나라 시절 정화의 원정대가 아프리까까지 진출한 적도 있었지만,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항싱 중앙집권이 주요관심사였다. 그러니 해외 진출을 도모함으로 발생하는 해상 거점은 중앙집권체제에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반면 유럽은 좁은 땅에서 경쟁이 심하다 보니 시야를 외부로 돌리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편서풍이 무사히 대서양을 가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공중도덕... 국민성이 ...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일본은 전통적인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개인이 전체에 폐를 끼치면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고, 가정이든 회사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해친 사람은 응분의 이지메를 당하기 때문에 남의 눈을 거스른 행동을 하기 어렵다(한국인의 뻔뻔함과 대척점에 있다. 물론 우리도 집단주의 지향이 강하지만...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jk) ... 일본... 은혜없는 사회... ""(269 - 271)

"서구에서 건너온 논문이라는 글쓰기가 지식을 담아내는 최상의 그릇인가 의문이다. 당장 동아시아권만 해도 경의經義, 서론書論, 문답問答, 도설圖說, 잡설雜說   등 다양다종한 글쓰기가 있고, 지금의 논문이란 것도 데카르트 이후의 학문관과 지식관에 부합하는 지식을 생성하기 위한 글쓰기 장치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지식의 정의부터 문제가 있다. 지식이란 것이 서구 학문에서 말하듯 반드시 오감에 의해 경험되고 또 논리적 분석과 논증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해도 그런 지식과는 거리가 멀잖은가."(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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