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은 그 관계의 성격에 따른 것으로의 묘사된다. 사랑을 구분하는 방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필로스, 에로스, 아가페의 구분일 것이다. 하나(느)님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은 그 대상의 차이 외에 사랑의 내용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형성 메커니즘에도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정은 어떤가? 동성에 대한 감정과 이성에 대한 감정은 동성/이성이라는 구분 이외에 본질적으로 다른 감정일까? 우정과 사랑에 대해선 쉽게 에로틱한 감정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좀 더 따지고 들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이성에 대한 관계에서도 에로틱한 감정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설령 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시간이 흘러서 그런 감정이 퇴색하기도 한다. 실제로 오래된 부부의 관계는 '우정'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생각만큼 분명하지 않은 것 같고, 여러 유형의 사랑도 사실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상호작용의 결과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아붇는다? 그건 특정 시점, 특정 시기에는 가능하나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혹은 상호작용이 제한적인 특수한 관계에서나 가능하다(예를 들어 유명 연예인과 열혈팬의 관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나온 결과이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건 사랑이 가능하려면... 이해, 공감, 격력, 호감, 신뢰, 호혜성... 이런 것들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다. 엄하기만 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의 격려, 도움, 지지, 관심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냉담함으로 반응하는 아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뭐. 그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 같진 않지만.... 예외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어떠한가? 기독교의 배경이라고 봐야 할 구약의 경우... 철저히 계약, 약속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신과 계약하는 것이다. 나만 섬길래? 그러면 이러저러한 것을 보장한다는... 신약은 좀 다른 것 같긴하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되니까... 또 하나님은 세상을 - 조건없이? - 사랑해서 외아들을 보낸 것으로 이해되니까... 이 경우는 도대체 어떤 사랑일까? 이 질문은 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난 "사랑"이라는 표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사랑은 열정, 열광으로 이어지는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용되어서 내용이 비어버린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개념 같아서다. 우선 열정으로서 사랑은 쉽게 과잉으로 이어진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기대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열정의 과잉은 억압, 불만족, 파탄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대로 남용되어서 의미가 죽어버리는 경우는...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표현... 그리고 오가는 길 초등학교에 붙어있는 표현 ".. 학생들은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사실 "사랑" 의미론의 남용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말로는 흔히 "친애하는..."으로 번역되는... 예를 들어 "친애하는 하객 여러분" "Liebe Gäste!" 같은.... 식구들끼리의 인사말이 되어 버린... "I love you"
난 차라리 "사랑" 대신에 "우정"으로 모든 관계를 재편했으면 좋겠다. 우정은 기본적으로 억압적 관계가 들어설 수 없다. 우정은 친구들끼리의 관계다. 비슷한 "레벨"의... 부모와 자식간의 우정은 불가능한가? Why not? 부모가 자식의 개성, 인격을 인정하고, 억압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 니체가 이런 얘길 남겼다고 한다.
“It is not a lack of love, but a lack of friendship that makes unhappy marriages.”
"Nicht der Mangel an Liebe, sondern der Mangel an Freundschaft macht die unglücklichsten Ehen." - Friedrich Nietzsche, Nachlass
또 "니체에게는 '벗에 대한 우리의 동경, 그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주는 누설자'이며, 벗은 또한 위버멘쉬를 낳는 최고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한다.
여하튼...
나는 "도반(道伴)"이란 표현을 좋아하는데... 원래 불교 용어로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하는 벗"이란 뜻이나... 도(道)로서 사귄 동무, 혹은 함께 길을 가는 동무... 라는 일반화된 의미로도 이해된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게되는 길동무들 아닌가? 부모자식 관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예수와 나의 관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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